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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심판을 읽다. 라캉을 읽다가, 정신분석 예시문에 '심판'을 인용한 글이 궁금해 심판을 내쳐 읽는다. 카프카의 글을 피해 갈 수 없다. 문학에서, 심리학에서, 세계사에서…. 어느 방면에서라도 카프카를 만나게 되니 읽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소설은 끝까지 주인공 K의 죄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재판의 진행과정만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의 갑작스런 체포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구속되지 않는다. 피고는 자유롭다. 일상 업무에 소송업무가 가중되어 사소로운 일거리가 서서히 가중되고 꼬여 급기야 큰 고통으로 압박해 온다.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변호사, 화가, 신부, 여인들…. 아니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주인공 K, 요제프는 재판에 실패한다. 그리고 채석장에서 칼에 찔려 살해된다. 죽음으로 끌려가는 주위에 경찰이 있었고 여인들이 있었다. 소리만 지르면 죽음을 연기하거나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반항하지 않는다. 운명에 맡긴 듯, 어차피 세상은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므로. 이미 삶을 포기한 사람이다.
송사를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변호사는 재판관들과 끝간데까지 사건을 우려먹고 피고들의 인생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법에 관계되는 것들은 남들이 먼저 알고 떠들고 걱정해 주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거미줄 같은 법망에 걸려 있다. 소설 속의 소설 - '법 앞에서'를 신부(神父)가 해설한다. 법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법의 문지기 앞에 별에 별 수단을 다 부리고 매달려도 법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나는 크라이스트, 카프카, 밀란 쿤테라를 한 맥으로 읽는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의 선후배 정도로. 클라이스트의 법과 카프카의 법, 쿤테라의 그것. 그리고 밀란 쿤테라의 소설에서 외설스런 글들을 읽으며 경악하고 카프카의 글에서 그 모태를 찾곤 한다. 변호사의 집에서 달라붙는 간호사 레이니와 자신의 중대사인 소송 건을 버려 두고 희희낙락하는 K, 그리고 이를 간파한 K의 숙부와 변호사와 사무국장. 정리의 아내와 학생과 K, 그리고 예심판사.
카프카는 어떻게 한 세대를 앞질러 읽고 썼을까. 금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보험회사 직원으로 대인관계도 좋았으며 키에게골을 읽는 지성으로 여가 시간을 몽땅 창작에 바친 사람이다. 그리고 체험 또한 만만치 않다. 당시 관료기구의 무자비성과 가혹성, 노동자의 참담한 생활 실태를 체험하고,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하는 데 따른 공장의 안전 시설의 결점과 사회보장 제도의 결함을 목격하고 동정과 분노를 느꼈던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가시간을 몽땅 창작에 들이부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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