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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우리 안의 모순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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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창시절 읽었던 소설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그것은 전편에 흐르는 음침하고 기괴한 분위기와 끔찍한 살인과 자살이, 당시 짜르의 전제 정치와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이중적 억압 구조에서 살아가던 민중과 대학생, 그리고 지식인을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던 무신론적 사회혁명 사상이 잉태하고 전개되는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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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학창시절 읽었던 소설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그것은 전편에 흐르는 음침하고 기괴한 분위기와 끔찍한 살인과 자살이, 당시 짜르의 전제 정치와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이중적 억압 구조에서 살아가던 민중과 대학생, 그리고 지식인을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던 무신론적 사회혁명 사상이 잉태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파생한 것임을 모르고 있던 까닭이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870년대 러시아와 유럽 사회에 만연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부유한 지주 미망인의 외아들로 태어나 잘생기고 우수한 두뇌를 소유한 니꼴라이는 이십 대 중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뻬쩨르부르그 생활을 하면서 화려한 사회에 가려져 있는 어두운 뒷골목에서 술과 탐욕, 방종과 황폐한 생활을 이어가다 몇 년 만에 마을에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울리는 친구들은 반사회적인 혁명사상에 동조하고 있는 가난하고 어두운 사람들이다. 특히 그를 추종하며 모든 사건을 획책하는 악마 같은 뾰또르는 외부 조직인 인터내셔널이 보낸 책임자로 활동한다. 그는 니꼴라이의 스승이자 한 때 대학교수를 지낸 소심한 자유주의 사상가의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뒤 먼 친척에게 맡겨져 부모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자란 냉혈한이다. 마을에 이주해온 기술자 끼릴로프 역시 그들과 한 패인데, 좀 특이한 사상을 지닌 허무주의자다. 다음 그의 말 속에 죽음으로써 인간의 고통과 공포를 초월하고자 했던 그의 신인(神人)사상의 배경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삶이란, 고통과 공포의 대가로 주어진 것입니다. 더구나 그 속에 모든 기만이 있습니다. 현재의 인간은 진짜 인간이 아닙니다. 이제 행복과 자존에 넘치는 새로운 인간이 출현할 것입니다. 살고 있어도, 살아 있지 않아도 마찬가지인 사람 말입니다. 누구든 고통과 공포를 정복하는 사람은 스스로 신(神)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신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들의 대 국민 사회불안 획책과 선전선동 활동은 스또프라는 청년이 조직을 이탈하려고 하자 그를 밀고의 위험이 있다는 죄명 아래 조직적으로 살해 하고, 스또프의 죽음을 포함하여 그들 조직의 모든 범죄를 짊어지고 자살한 끼릴로프의 죽음의 비밀이 유약한 비르긴스끼의 자백으로 밝혀지면서 전면에 드러난다.

 

 이 외에도 니꼴라이를 둘러싸고 죽음을 맞는 네 명의 불행한 여성이 나온다. 열두 살 소녀의 자살과 미모의 귀족 처녀 리자의 대중 폭동에 의한 죽음, 니꼴라이의 숨겨진 아내인 절름발이 미친 여인 레뱌드끼나, 스또프의 아내가 (니꼴라이의) 아이를 낳고 남편의 죽음에 절망하고 죽은 일 등은 주인공 니꼴라이의 처절한 마지막을 예고하며 전개되지만, 그의 심리를 직접 알 수는 없다. 그의 또 다른 여인 다리야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니꼴라이의 회개와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는 단초가 있지만, 이미 사태는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뒤였다. 그가 지은 죄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에 너무도 버거운 짐이었고,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쩌면 그로서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악령’이란 다름 아닌 무신론적 공산주의 사상을 말한다. 전제 정치와 자본주의의 진행으로 암담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러시아 민중과 그와 같은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던 젊은 지식계층은 인간 사회를 기계적으로 파악하는 잘못과 자신들의 인간적 모순과 더불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야심으로 인해 달성할 수 없는 목적을 향해 끝없는 악행을 되풀이하는 악마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개혁을 분명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지 않으면 사회 모순을 극복할 수 없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결국 1917년에 달성된 러시아 혁명의 궁극적 실패를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 속에서 이미 예언하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물질만능주의 풍조 속에서 참된 인간적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주고, 동시에 인간이 극복해야 할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21세기 우리의 현실과도 닿아있는 잊지 못할 고전이다.

 

 

 

 

a*******5 2014.11.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