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작품인가? 예순이 넘은 늙은 세일즈맨 윌리 로먼, 그리고 두 아들과 착한 아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소시민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와 현실이 때론 공존하고 교차하면서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그려내는 기법을 쓰고 있다. 1949년 퓰리처상까지 받은 고전적 희곡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연극과 영화를 통해 우리곁에 다가온다. 시대착오적인 꿈과 물질만능주의를 추구해온 한 인간의 소외와 파괴과정이 잘 묘사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가? 나는 이 작품이 가진 의미를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다. 주인공인 윌리 로먼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쫒는 소시민이다. 사실 아이들 성장기였던 대공황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물질적 부와 행복을 맛보기도 하였다. 할부금 상환부담은 있었지만 자신의 보금자리인 집도 가지고 있었다. 운동선수였던 아이들은 그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만든 또 다른 희망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던 그의 꿈을 산산조각내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이들은 한탕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허황한 꿈만 쫒는 부랑자로 변해간다. 실적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메기는 잔인한 사회는 이용가치가 사라진 주인공을 가차없이 해고한다. 옛날 자신이 귀여워했던 젊은 사장 하워드로부터 받은 해고통지서는 그를 막다른 골목인 죽음으로 내몬다.
둘째는 가정에서 고개숙인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고발이다. 윌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의 대화는 물질적 성공에 관한 것뿐이다. 부부와 부자간의 가슴을 털어놓는 진정한 소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려고 하면 미리 화제를 돌려버린다. 자신의 참모습을 대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출장지에서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가슴을 닫아버렸다. 아내와의 대화도 할부금 낼 돈 걱정하는 그런 이야기뿐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큰아들에게 한재산 물려주는 일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큰아들이 보험금을 받게 만드는 배려를 통해서... 한 마디로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고립된 고개숙인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고발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변화와 적응문제이다. 주인공 윌리는 철두철미 과거형 인간이다. 항상 대공황 이전의 좋았던 시절의 회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형인 벤의 새로운 사업제안과 도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코쿤형 인간을 고집함으로써 점점 주위사람들로부터 배척받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이 먼저 생각난다. 가족이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기본전제까지 버려가면서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윌리의 첫번째와 두번째 모습은 아닐까? 차이가 있다면 윌리가 과거지향적이었다면 우리의 기러기들은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란 점일 것이다. 우리가 진정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적 성공인지 아니면 인간다운 삶의 모습인지는 각자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
|
고등학교 연극부 단장으로 활동했던 시절 이 희곡을 읽었다. 범우사에서 나온 16권의 희곡선을 읽는 것은 단장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 그 때 인물분석도 함께 했던 것 같은데 당시 나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을 "불쌍한 이 시대의 아버지"라고 평가한듯 싶다.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희곡을 읽고 그 때의 인물분석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는다. 윌리는 불쌍한 이 시대의 아바지가 아닌 바보로 말이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착한 아내의 남편인 외판원 윌리 로먼. 이것이 그의 모습이자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과거에 사는 사람이다. 현재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를 생각하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그리워 하며 '만약 그 때 이렇지 않았더면…….'이란 가정속에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 처음에 이 희곡을 읽으면 당황해 할 것이다. 윌리로 인해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얘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과거로 갔다가 어느새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는. 어떨 땐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윌리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하며 과거 지향적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어찌되었든 여기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수 있다. 물론 그 교훈은 읽는 사람마다 달라지겠지만 희곡이라는 형식이로 이 <<세일즈맨의 죽음>>은 새롭게 다가갈것이다. 연극으로 표현되는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찾아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비프 : 한번 아버지 따라가봤으면 좋겠어요. 윌리 : 여름이 되거든 가자. 해피 : 정말? 윌리 : 우리 세부자가 말이다. 도시란 도시는 다 보여주지. 미국은 아름다운 도시와 강직한 사람들로 꽉 차 있단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 뉴잉글랜드 어디서건 다 알지. 참 좋은 사람들이야. 너희들을 데리고 가면 어딜 가나 대환영일 거다. 그건 말이야. 아버진 친구가 많거든. 뉴잉글랜드 거리마다 차를 세울 수 있고, 순경들은 마치 자기 차처럼 잘 봐주거든. 올 여름엔 문제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