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본격적으로 문학책을 읽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얼추 3년전 이다.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 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당혹케 했던 작품이 하나있다. 읽고 나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래서 인지 왠지 거대하고 무섭게(?) 느껴졌던 그런 작품 이었다. 나같이 머리가 빈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 어른이 되어야만 이해하고 느낄수 있는 그런 작품구나 하고 그 소설의 위용에 작아져야만 했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 작품은 다름아닌, 소설가 최수철의 '얼음의 도가니' 였다.(이상문학상 수상작이란다. 94년도 였나?) 그 소설은 나에겐 너무나도 거대한 산이었고, 내게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소설은 오르락 내리락 하기 쉬운 펀펀한 동산이었지 않나 하는 의혹과 께끄름함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내가 갑자기 내 지난 시절과 소설과 최수철을 이야기에 올리는 것은 바로 프랑소아 모리악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서다. 프랑소아 모리악의 작품을 읽는 다는 것은 내게 3년전의 최수철에게서 받은 그 당혹감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떼레즈 데케루라는 작품의 주제는 도식적으로 파악할수 없을 뿐더러 사색과 대화. 그리고 은은한 '언어'들이 작품속에 배어있지만, 나같이 둔팍한 독자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 하지 못할 것이다. 시시한 고백을 하자면, 어젯 저녁 이 책에 수록된 떼레즈 데쿠루를(떼레즈 데케루, 의사를 방문한 떼레즈, 호텔에서의 떼레즈, 밤의 종말 , 문둥이에의 키스. 이렇게 다섯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문둥이에의 키스라는 작품을 제외한 작품은 모두가 '떼레즈' 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에 떼레즈 데케루라는 작품의 진정한 결말은 '밤의 종말'이라는 작품에서다), 그 '밤의 종말'이라는 작품에서 5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어 버렸다. 독법에서 부터 실패한 것이다. 그때 문득 소설가 최수철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은 압축 파일과 같은 것이다." 독자가 그 문학이라는 압축파일에서 삶의 내밀한 모습과 비의를 캐려고 노력할때만이 문학은 압축된 여하한 진실을 내보여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잡고 부터 헐렁한 독법을 갖추고 책을 대했다. 천한 성취감을 느끼고자 책을 몇 페이지 읽었나를 확인해 보곤 했다. 그 결과 나는 이 작품에서 하나의 파일도 제대로 풀어내지를 못했다. 하지만 떼레즈라는 여인이 내게 준 인상은 남아 있다. 그녀는 자아의 옥탑방에 유폐된 여인인것 같다. 억압과 인종. 그리고 하찮고 소소한 일상에 매몰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여자인 것도 같다. 남편을 독살시키려고 꾀했던 검은 과거가 있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악녀도 아니고 야살스럽지도 않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작품의 이야기는 황량한 편이다. 왠지 메말라 있고, 언제라도 바스라질것같은 포슬포슬함이 외로움과 더불어 산재되어 있는듯 싶다. 나는 그녀를 통해서 나의 외로움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종내 책을 중간에서 손을 놓게 되었고, 무디고 무딘 나의 독법을 통탄스레 여기며 내 자신을 꾸짖었지만, 떼레즈 라는 여인의 무표정함과 원시적인 외로움. 그리고 인간들의 작위와 위선. 그런 것들이 내 의식의 틈틈새새 어딘가에 삽입된것도 같다. 나는 '최수철'의 소설을 만나고 난 뒤에 이런 말이 증오스러워 견디지 못했다. "그건 그냥 소설책 읽듯 읽어..." 소설책 읽듯이라는 말은 대충, 빨리 읽어버리라는 것이 아닌가? 지스러기 소설들, 잉여적인 주제로 대들보를 세운 손쉬운 문화 상품들. 어느덧 '소설'자체는 상당히 통속적으로 의식되고 소비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 자식......소설책이나 읽고 공부난 안 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가공(可恐)의 현실을 보여주며 "그 허구에서 뛰쳐나와!"라고 소리지를 뿐이다. 또다른 인생과의 만남을 '소설'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물론, 당신이 쉽게 읽어왔던, '재미'와 '높은 문학적 평가'를 동시에 끌어안은 여느 작품과는 판연히 다를지도 모른다. 당신이 책을 펴면 드러나게 되는 이곳은 늪처럼 질척질척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기 보다는 고요하게 흐른다. 이 책을 읽는 당신만은 절대, 나처럼 헐후한 독법으로 이 책에 다가가지 말기를 바란다. 수능이 끝나면 나는 이책을 다시 잡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이 소설속의 여인 떼레즈와 진중한 대화를 나눌 것이다. 떼레즈........재회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참고로 작품 목록을 다시 적는다. 책을 사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닌데도, 작품 목록이 나와 있지 않으니까. 수록 작품: 떼레즈 데케루, 의사를 방문한 떼레즈, 호텔에서의 떼레즈, 밤의 종말, 문둥이에의 키스(문둥이에의 키스라는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문명을 얻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