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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 이어 2000년에 출간된 시집도 펼치며 한 시대의 한 부분을 장식한 시편을 더듬는다. 애타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을 이 시집의 책머리에도 그간의 고달픈 기다림을 증명하려는 듯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반질반질한 맵씨로 누군가의 손길을 한참 기다렸을 표지, 속은 낡아가기 바쁜데 겉은 궁색한 눈웃음이다.
내 속을 휘젓던 사람들, 그들로 인해 오늘을 낡아갈 수 있음은 축복일 수 있겠다는 객쩍은 생각을 한다. 애정이 아니라도 좋다, 누군가 내 속을 거쳐간 흔적이. 상처뿐이라도 좋다, 그가 너라면.
(상략) 허리가 가슴둘레보다 굵으며 관광버스 타고 내장산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저 다소곳한 늙은 여자
저 늙은 여자도 딱 한 번 뒤집혀 보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땅에 박힌 머리채를 송두리째 들어올린 뒤에, 최대한 길게 다리를 쭉 뻗고 누운 다음, 아랫도리를 내주고 싶을 때가 있었나 보다
그걸 간밤의 태풍 탓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절반도 모르는 자의 서툴고 한심한 표현일 뿐
- 안도현 시, ‘느티나무 여자’
사람도 낡아간다. 책처럼 낡아간다. 삶의 반절이 지나도록 두 손의 온기를 양 어께로 감지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쓸쓸한 사람이다. 뜨듯한 두 손으로 한번도 가랑이를 만들지 못했다면 참으로 쓸쓸한 책이다.
10여 년 전 출간된 책을 읽으며, 안도현의 시를 읽으며 누군가의 눈빛으로 낡아갈 수 있음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 1994년부터 발간된 올해의 좋은 시 시리즈가 저학년 아이의 입속마냥 품절된 경우가 많아 전부 감상하기는 어렵겠다. 우선 2009년에 이를 때까지 한두 권씩 구매할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