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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김연수보다 이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김영하다. 한동안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니 왜 김영하같은 작가를 놔두고 김연수같은 작가가 인기가 있는 거지?' 김영하같은 작가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게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 김연수보다 훨씬 대중적일 수 있는 작가인데... 물론 이건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지만, 암튼 그렇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읽기 시작한 김연수를 이젠 김영하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는 언제 읽어도 참... 양파같은 작가이다. 만화경같은 작가랄까? 작가 김연수같은 경우는... 나랑 참 많이 닮아서 좋다면(말이 참 잘 통할 것 같은 선배같은 스타일), 김영하같은 경우는 나랑 참 판이하게 달라서 좋다. 근데 또... 9는 달라도 1은 같은데 그 1이 9를 상쇄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암튼... 각설하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1. 수정아 사랑해 / 오! 수정
근데 책 맨 앞에 경고처럼 써놓은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들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아무런 배려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개개의 영화에 대한 감상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시발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적확하다. 따라서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이 무슨 자다가 봉창? 참 뜬금 없다' 싶을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작가가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혹은 작가에게 그러한 사고나 연상을 불러일으킨 장면이 무엇일지 생각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은 2000년에 나왔다. 말하자면 여기서 논하는 영화들은 모두 2000년대 이전의 영화라는 것. 옛날 영화를 보는 감흥과 옛날 글을 읽는 감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에 접했던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로 인해 촉발된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당시 당신을 복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모두에게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때가 가장 빛나던 시기였음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
이 양반은 친구로서 우정을 나누기보다는 연애하기에 좋은 상대같은데... 암튼 추운 겨울에 좋은 연애한다는 기분으로 읽으면 좋을 만한 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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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의 세계에 사자인 척 하며 얼룩말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샴고양이가 나타난다. 샴고양이는 얼룩말 말로 경계심이 낮아진 얼룩말들을 쉽게 잡아먹는다. 얼룩말들은 공포에 빠진다. 일부는 사자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믿는다. 한편 얼룩말 이야기꾼은 얼룩말 말을 하는 샴고양이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 때 샴고양이가 나타난다. 하지만 얼룩말 이야기꾼은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이 불쾌하다며 뒷발로 샴고양이를 차서 죽인다. 스펜서 홀스트(Spencer Holst)의 ''얼룩말 이야기꾼 |
| 적어도 내게 있어 김영하는 한번도 부도 난적이 없는 신용등급 높은 수표다. 그래서 작가 이름만 보고도 별다른 의심없이 책을 사게된다. 이우일과 함께 쓴 영화이야기도 그러했지만 김영하에게 있어서 영화란 또 다른 얘기를 이끌어내는 모티브일뿐 영화내용에 대한 분석은 관심밖이다. 김영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느끼듯 김영하의 글은 기발하고 발랄하고 엉뚱한듯 하면서도 재미있다. 어찌 이 책인들 예외랴. 곳곳에 숨어있는 밑줄까지 치고 싶은 감탄스런 문장은 여전하다. 작가에게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때 김영하의 강점은 장편소설 보다는 오히려 이런 잡문이며 그 다음엔 짧은 단편이다.독자들이 대부분 대충 읽는 책의 서문도 그 작가가 김영하라면 꼼꼼히 읽어보시길. 조기낚시가 아닌 굴비낚시가 제목인 이유를 알아야할테니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중 못본 영화가 많더라도 이 책을 사는데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에서 영화란 그저 얘기를 이끌어내는 한 방법이므로. |
| 지은이는 '지금까지 본 자서전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냉철했던 건 알튀세의 <그래도 미래는="" 지속된다="">였다'고 71쪽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확인한 결과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였다. 자신이 탁월하고 냉철해서 기억에 남는다는 책의 제목을 잘못쓴것과 자신의 별로 좋지 못한 기억력을 믿고 다시 확인하지 않은 것은 독자를 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책과 그림 그리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일일이 찾아보는 나로서는 저자의 책이름을 잘못 쓴 것은 읽는 독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쓴들 알기나 하겠어'하는 마음으로... 오타 한 글자만 있어도 책을 읽다가 기분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소한 실수 하나가 책의 질을 평가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야할 것이다.미래는>그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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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를 참 좋아한다. 웃기고 자빠지는 이야기서부터 눈물이 찡하게 나는 감동 코드까지, 잔인하게 뼈와 살을 바르는 호러에서부터 보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야!'한 영화까지. 어떤 장르 불문하고 영화라면 다 좋아한다. 책과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다. 글보다는 영상을, 영상보다는 경험을 좋아한다. 경험할 수 없고 상상속에서만 품어왔던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을 누군가 대신 시나리오를 쓰고 배역을 정해 가상의 공간에서 열심히 쿵짝쿵짝해서 보여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그 노력과 수고를 나는 9천원이라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정정당당히. 그리고 그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내 주위에 있는 바퀴벌레들에게도 전파한다. 난 어두 컴컴한 극장에 앉아 2시간 동안 영상을 보는 걸 무척이나 즐겨한다. 그렇다고 변태는 아니다.
-작가 김영하 국내 작가 중에 가장 좋아라 하는 작가를 말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김영하'라 말한다. 왜냐고 물으면 '그냥'이라 대답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구절절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거다. 이유는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런 이유를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싫다. 일단 말해버리면 뭔가 신비한 비밀같은 게 사라지는 것 같으니까. 굳이 몇가지를 꼽자면 내 성격하고 잘 맞는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다른 그 어떤 작가보다 참 '공감'이 간다. '이해가 잘 간다', 라는 것과 '공감이 잘 간다', 라는 것은 천지 차이다. 비슷한 거 같지만 이게 다르다. 이 차이점을 그냥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된다. 그리고 그는 젠체하지 않는다. 그리고 할말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글은 파도같다.
-극장은 신비한 공간이다 극장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데이트 장소로 끝난다. 어릴 적엔 큰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이 무지하게 신기하기만 했다. 저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고 어떻게 이런 영상들을 담아 극장에서 쏴주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으면 별거 아닌 '영화'일 뿐이고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꼬시고 싶은 여자를 데리고 가는 한 공간, 필수 코스가 되버린다. 그렇게 극장이란 다양한 쓰임새가 있는 신비한 공간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첫 데이트를 극장에서 한 적이 몇 번 있었던 거 같다. 그 중에 가장 웃겼던 경험은 극장 앞에서 만나 인사를 주고 받고 바로 극장으로 직행,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서 첫 인사를 한 것이다. 당시엔 로맨틱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가막혔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눈치를 봐야하는 공간 가끔은 영화를 혼자 본다.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렇지 않은 영화는 대부분 우울하거나 눈물이 나오거나 사랑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홀로 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싶은 날도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사실 나는 눈물이 정말 많다. 가끔 속상하거나 내가 초라해보일 때면 눈물이 난다. 슬픈 음악을 듣다가도 거지가 구걸하는 모습을 보다가도 눈물이 흐른다. 가끔 내 자신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아무튼 나이를 먹으니 눈물도 함부러 흘리면 안 된다. 이걸 어떻게 표현한다?
-글 잘 쓰는 방법 내가 생각하는 글 잘 쓰는 방법은 이렇다. 아는 지식이 미친듯이 많아서 단어 하나 툭 던져주면 A4 몇백 장은 능히 쓸 수 있거나, 평범한 인생에서 겪을 수 없는 경험들만을 버라이어티하게 겪거나, 자신만의 생각을 정형화 시켜 마음데로 삶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난 이 중에서 무엇을 노려야 할까? 분명 보기는 있지만 답은 보이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의 글쓰기는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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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신없이 살았다 책도 읽지 않고 그러다가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하게 해 준 책이 굴비낚시였다. 아마도 이 책이 내손에 들어와 읽힌 이유는 '김영하'였기 때문이다. '김영하=특이함',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보다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개인적으로 아주 마니 참 좋아한다. 그 책을 일고 김영하에 빠져버렸으니..정말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특이한 사람이 있을까 그게 책을 덥고 난 후 드는 생각이였다. 역시나 굴비 낚시도 그랬다. 조기를 말린 것이 굴비라는 그래서 굴비 낚시란 말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글에서 역시나 특이함을 느꼈다. 책 표지에 영화산문이라 적혀 있다. 영화평론이라는 느낌인데 7~8페이지의 그의 글에서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과연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그렇지만 영화잡지에서 영화얘기만 잔득하고 마는 영화평론과는 확연히 틀리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그래서 신선했나 보다. 그런 영화평론에 지쳐버린 나에게...김영하는 역시나 특이한 방법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를 꼬집고 있다. 영화가 우리 사는 세상을 보여주는 작은 창이라면 그 영화에 숨겨졌던 하나하나의 소품을 이요하여 김영하는 세상의 모순을 우리의 모순을 꼬집어 주고 있다. 얇아서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영화평을 읽으면서 잠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멈춘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을 되새김질을 하여 본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김영하는 정말 특이해. [인상깊은구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류승완감독의 프로필과 인터뷰를 꼬집은 부분, 쉘위댄스<저도 춤추고="" 싶어요,="" 다른="" 나라="" 구경도="" 하고="" 싶어요.망해도="" 제가="" 망해요.나라="" 탓은="" 안합니다.="" 대신="" 나라도="" 제="" 탓하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대부 <마이클 꼴레오네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있다="" 이제="" 그는="" 진정한="" 혼자다.아버지도="" 형제도="" 없다.="" 그의="" 왕국은="" 아직="" 굳건하다.="" 정적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불리한="" 증인에게는="" 로마식="" 자살을="" 권해="" 동맥을="" 끊게="" 만들었다.="" 난봉으로="" 속을="" 썩이던="" 누이="" 카롤린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그의="" 곁에="" 있다.="" 아내만이="" 멀리="" 떠나="" 있을="" 뿐이다.="" 아이들을="" 보러="" 찾아온="" 아내의="" 면전에서="" 조용히="" 문을="" 닫음으로써="" 떠나보낸="" 마이클,="" 그는="" 진정한="" 혼자다.="" 적들은="" 떠나갔지만="" 그냥="" 가지="" 않았다.="" 적들은="" 그의="" 형제와="" 친구들을="" 볼모로="" 데려갔다.=""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최후의="" 서정까지="" 가져갔다.="">마이클>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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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 씨를 처음 알게된 건 영화 잡지 [인상깊은구절] 지금도 스칼렛 오하라, 하면 자동으로, 난 꼭 대학에 가야겠어, 라고 말하던 그녀가 연상된다. 내게 있어서 스칼렛 오하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산부인과의 김 간호사다. 내 머릿속의 그녀는 산부인과가 아인 미국 남부의 어느 이름 모를 언덕빼기에 올라 치마를 휘날리고 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들은 심심찮게 내 삶과 얽혀들었다.화양연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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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순하고 명료하며 침잠하지 않고도 속이 들여다보이고 가볍되 쉬이 날려가지는 않을 법한 글들을 순식간에 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독특한 상상력으로 세간의 독자들을 무척 즐겁게 했던 김영하가 영화전문 월간지에 썼던 글이라고 하는데,요즘 씨네 21에서 쓰고 있는 글들과 같은 맥락인 듯하다. 김영하는 철저하게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영화를 해석하되 그것이 영화로부터 나와 영화로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자기 자신에게로 수확되는 그런 영화보기.
괜스레 폼을 잡지도 않고, 영화의 내부에 너무 깊숙히 침투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 나오지 못하는 불가피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영화를 보고 그렇게 영화를 이해한다.그러다보니 얕은 수 잘못 쓰는 바람에 제 꾀에 발 걸려 넘어지는 우스꽝스러움 같은 것도 연출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거나 담지한다.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팬티 속의 성기가 용솟음첬는가 확인하듯이 주말이 되면 새로 나온 영화가 없나 주간지를 들추거나 인터넷을 뒤진다.게다가 어느 정도 영화보기에 자신이 생기면 영화의 프레임을 손바닥에 펼쳐 위치를 확인하고,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살피고, 시간을 암시하는 소품을 찾고, 배경이 되는 산이 실제인지 아니면 씨지인지를 내기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영화 보기는 점점 불편한 무엇이 되고 처음의 재미는 반감에 반감을 거듭하고,강도가 약해진 자극에 불평하고, 어설픈 해소에 코웃음 치는 지경에 이른것이 히로뽕이 아니라 키노뽕에 맞은 듯한 우리들 씨네키드들의 현실이다.
김영하의 굴비낚시는 이러한 우리의 영화보기 자세를 자신의 글 전체를 통해 나무라는 것만 같다. 거만하지 말고 자기의 품에 알맞게 그냥 보라고 넌지시 귀뜸하는 것만 같다. 제 일상의 범주 안에 들어 있는 많은 것들처럼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면서 스스로 조금 객적은 상상력을 키워보는 것도 괜찮다고,시시한 사회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교정기로 여기고 즐기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듯한다.
낯간지러운 영화 평론서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책임에 분명한데 다만 아쉬운 것은 책값이다. 한시간 반이면 충분히 독파가 가능한 얇은 책 한 권이 7,500원이다.사실 책값이 부담되면 대형서점에 쭈그리고 앉거나 꾸부정하게 서서 봐도 된다. 그 정도만으로도 눈치 챌만한 사항은 전부 눈치 챌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영화는 비린내나는 현실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콩처럼 간편하게 털어 넣을 수 있는 스낵도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가공된 현실이다. 우리는 2차원의 스크린을 통해 3차원의 세상을 보며 4차원의 세계, 즉 과거로 혹은 미래로 거슬러 혹은 앞질러 달려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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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를 왜 보는 것일까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영화는 인생을 반영하니까.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교과서적이고 고리타분한 대답을 김영하는 재기 발랄하고 사회의 환부를 헤집는 목소리로 당당히 제시한다. 따라서 영화의 미장센이 어쩌고 구조나 카메라 워크가 어떤지 알고 싶으면 당장 이 책을 덮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이유로 영화를 보고 있고, 그는 자신의 영화적 지평을 과시하고자 또는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고자 쓰는 글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여타의 영화 비평서들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이렇게 소박한 목적으로 영화를 보는 그의 글과 생각은 절대 소박하지만은 않다. 그가 쓴 영화들은 소위 평론가들만 보는 예술영화는 아니며 우리가 가까이 접하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점들이 그의 예리한 눈에는 관찰되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되씹어지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굴비 낚시라고 명명하고 있다. 굴비 낚시... 어느 누가 이 세상에서 굴비를 낚을 수 있단 말인가, 조기란 생선에서 적당히 가공된 생선이면서 또 생선이 아닌 이 반찬을 기발하게도 영화에 투영하고 있다. 그가 자조적이라고 밝힌 이 굴비 낚시 작업은 내가 들은 영화에 관한 정의중 단연 베스트에 들어간다. 굴비를 젓가락으로 헤집듯이 영화를 헤집는 작업은 곧 나에게도 시작될 것 같다. 물론 나도 예전부터 시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김영하처럼 맛있는 굴비를 먹을 수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한때는 왜 우리나라의 인터뷰어들은 이토록 무책임하게 무성의한 질문들을 남발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 문화에서 질문자가 갖는 권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선생님들은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져놓고는 멀뚱멀뚱 앉아 있는 학생들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본 후, 흐믓한 얼굴로 '역사는 반복이다' 같은 황당한 대답을 내놓곤 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땅에서 질문을 던지는 자들은 언제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대답 잘한 궁리나 햐며 살았지 질문 잘한 궁리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질문의 기술이 발달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날이 퇴보해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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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아무런 배려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슨 경고문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말이다. 김영하의 '영화산문'이라고 명명된 이 책은 작가가 [스크린]이라는 영화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은 위의 경고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타의 다른 영화 관련 서적들과는 다르게 단순한 영화에 대한 소개글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의 해박한 영화지식으로 풀어낸 해설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일까. 친절하게도 그에 대한 대답은 작가가 직접 책머리에 적어두었다.
본래 나는 그리 영화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 아니다. 기회가 닿으면, 혹은 시간이 있으면, 혹은 공짜표가 생기면 이벤트 삼아 극장을 드나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그런 기록들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글을 써서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변질되어 버렸다. 어쩐지 '내 인생의 영화' 혹은 '추억의 명화' 같은 글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내 기획은 내 잡스런 일상과 상념에 관한 일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자조적으로 이런 내 작업을 굴비 낚시라고 부른다. 누가 굴비를 낚겠는가. 생선이면서 생선도 아닌 것을 어디 가서 낚겠는가. 그저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낚이지도 않을 굴비를 상상하며 나름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그게 내가 상정한 내 글쓰기의 모습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오! 수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셀 위 댄스, 러브레터, 매트릭스, 주유소 습격사건, 셰익스피어 인 러브, 쇼생크 탈출, 아메리칸 뷰티, 시네마 천국, 토이스토리2, 걸 온 더 브릿지, 유 턴, 부기 나이트, 애널라이즈 디스,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백치, 동사서독.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대부2. 이상이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의 제목이다. 그냥 대충 훑어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서로간의 연관성이나 공통점은 찾아 보기 힘든 영화들이다. 헐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 멜로와 액션, 휴머니즘 영화. 장르의 구분도 없다. 이는 처음부터 한권의 책으로 엮기 위해서 씌여진 글들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작가에는 영화의 장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작가의 친구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유하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에 의해 낚여 올려지는 순간 모두 '김영하의 영화'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영화는 그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감각, 경쾌한 사유들을 펼쳐보이는 데 필요한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여기엔 영화는 없고 영하적인 것들로 가공된 영화만 있다. 말하자면 김영하표 굴비인 셈이다. - 유하(시인)
그냥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이 책을 읽다보면 가끔 당황스러운 전개가 펼쳐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쇼생크 탈출'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탈옥수 신창원이 나오고, '걸 온 더 브릿지'에서는 사람의 다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전혀 딴소리를 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단지 그 '경쾌한 사유'의 확장 폭이 굉장히 넓다는게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의 '영화'는 작가의 사유와 철학을 펼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 생각을 100%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헛소리'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다.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작가 유하의 말처럼) '김영하표 굴비는 아주 맛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