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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재미있다. 주로, '빙그레' 웃으며 잠깐 생각에 잠기게 할만큼의 재미이지만, 간혹 그 엉뚱함에 낄낄거리며 웃게 될만큼 재미있는 시들도 있다. <나의 아랫배 이야기>나 <나의 게으른 다림질> 같은 시들이 그렇다. 이 두 시의 제목, 그리고 내가 한 때 적어 책상 머리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마다 읽었던 <즐거운 아침을!>이라는 시, 아니 표제작인 <오, 가엾은 비눗갑들>, 이 제목들이 보여주듯 이 시집은 '일상적인 것'에 대한 재미있고 쉬운(?!) 시들을 싣고 있다.
하루키의 산문들이 보여주는 '작고 사소한 행복'과 겹치는 지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는데, (다시 읽으면서 사실 나는, 별로 공통점은 없는 것 같은데도 자꾸 하루키의 산문들이 연상되었다), 여기 실린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시들은 그럼에도 애수랄까, 막막한 정조 같은 걸 갖고 있다. 출구없음! 이런 게 아니라, 왜 나는 재밌는데도 고달플까, 같은 정조다. 나는 그게 참 마음에 들었었다.
변기에 대한 이런 시를 읽고 나면, 정말 잠깐이라도 변기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더러운, 아니, 깔끔한 그르릉 그르릉거리며 변기는 잦은 배설물을 삼킨다. 한꺼번에 삼키기엔 제 명을 그르치는 많은 양인데도 그는 감쪽같다, 봐라 그의 거만하게 빛나는 하얀 육체 불륜의 애인을 만나고 돌아와 다시 가족이 되는 저 처녀의 태연자약한 얼굴처럼 그는 어쩌다 저리도 당돌한 꿈을 꾸게 되었을까? 그는 제 존재에 들러붙은 더러운 운명을 부인한다 그 존재의 바닥 깊이 쌓인 엄청난 배설물에 스스로 찌들어가면서 속이려 들지 말아라 비난받아 마땅한 변기여, 나의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하게 보이던가
나는 좁은 입구 그대 가슴 언저리에 누렇게 멍울진 더께를 본다 그대 가슴을 몇천 번 몇만 번 후비고 들어갔을 더러운 배설물의 흔적을 그 농후한 사기성을 그대 몸은 오래 젊지 않다 나는 늙고 병이 든 변기를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교묘한 사기꾼일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변기의 사랑스러움을 안다 더러운, 아니, 깔끔한, 변기의 인생관 그 눈물겨운 사기성을 나는 듣는다 그르렁 그르렁 제 가슴의 체적보다 큰 배설물을 단번에 삼키고 한동안 헐떡거리는 변기의 고통을.. [인상깊은구절] 즐거운 아침을! 아침이 와도 방바닥에서 쉽사리 등이 떼지지 않는 까닭이 있다 아무렇게나 개켜져서 또다시 장 구석에 처박히는 이 하릴없는 되풀이의 운명이 싫기 때문이다 내 생은 왜 확연히 보이는 저 벽 높이까지 일어서지 못하는가 미안하다 생의, 떠맡겨진, 너무 안락한 이불들을 걷어내야 한다 나의 온갖 체액을 부볐던 베개 철부지 적 내 오랜 정든 이여, 언제까지 나를 붙박아 두려 할 텐가, 만번째의 아침이다, 아쉽지만 푸근한 옛정에 젖어 있기엔 나의 짧은 젊음이 모자르다 아침엔 내 방의 전등 스위치를 가볍게 위쪽으로 치켜올리고 싶다 다음엔 한껏 기지개를 켜고 경쾌하게 내 방의 미닫이 문을 열어젖히고 싶다 --요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되는 요라 할지라도-- 즐거운 매일의 아침을 맞이할 권리는, 당신 뜻대로 나를 만들어 놓은 조물주여, 나에게도 배당돼 있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