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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에 대해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책 표지에 있는 '나는 쓰다, 나는 읽다' 이 문장이 먼저 이끌렸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의 저서를 읽지 않았기에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었고 자전적 에세이라는 글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펼친 도서는 내가 예상한 에세이라는 시점을 완전히 벗어났다. 첫 장에서 시작되는 사진은 단순히 사진이 아니라 언어의 또다른 방식이다. 롤랑 바르트에게 있어 언어는 의사 전달을 넘어 자기만의 사유와 삶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자신를 표현할 때 사람은 단어를 신중하게 고른다. 곧 그 언어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롤랑 바르트가 쓴 언어는 자신을 너무 솔직하게 대상화 하면서 써서 읽는데 쉽지 않았다. 에세이는 보통 그의 삶과 신념 그리고 생각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은 독특하다. 자신을 보여주되 더 깊이 고찰하게 만들며 단편적으로 쓴 문장들은 서로에게 연관이 안되지만 큰 시선으로 바라보면 단편적이라도 결국 이어져 있다는 게 삶이 아닌가?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바르트 역시 그러했으며 글쓰기 즉, 글쓰기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인생 그 자체를 더 깊이 사색하게 한다. "문장은 이데올로기적 산물의 오브제이자 쾌락으로서 공포가 된다" 롤랑 바르트는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이 한권으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자신을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며 쓴 <롤랑 바라트가 쓴 롤랑 바르트>. 읽는 내내 바르트가 던진 단어들 중 내 삶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가벼운 언어가 아니어서 힘들었지만 그의 사유에 다가가기 위해선 필요한 절차다. 옮긴이의 말 중에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알게 되었다. '길을 잃으면 바르트의 글을 부여잡았다' 이 문장이 더더욱 바르트의 글을 보도록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만나면서 언어가 삶에서 어떻게 작용 되는지 생각을 했다. 바르트 처럼 깊은 사색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써내려간 글을 읽다보니 나를 어떤 단어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질문을 들게 했던 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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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작’은 무엇일까요?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 그 질문에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답합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R.B.’ 혹은 ‘그’라고 부르며, 마치 다른 사람을 관찰하듯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죠. 보통 자서전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바르트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일관되지 않은 생각조차 숨기지 않고,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의 복잡함을 드러냅니다. 바르트에게 글쓰기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탐구하는 여정에 가까웠죠. 완벽한 문장을 쓰는 것보다,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더 중요했습니다. 이런 대목을 읽다 보면, 정말 천재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AI가 완벽한 답을 내놓는 지금, 바르트의 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창작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미완성이고, 모순되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그 불완전함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불완전함 속에, 인간이 있습니다. ‘나’를 쓰고, ‘나’를 읽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창작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 뜻깊고, 오래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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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기묘하다. 이것은 롤랑 바르트 본인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듯이 3인칭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근본을 뒤집는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라는 제목은 탁월하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마치 소설 속 인물이 말하는 것처럼 거리감이 든다. 그렇기에 이 글은 진실한 그의 고백이 아니라, 허구의 존재를 분석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자기지시라는 행위를 설명한다. 구두닦이는 다른 구두닦이에 가서 구두를 닦아야 하고, 미용사는 다른 미용사에게 가서 미용을 받아야 한다. 이 책도 이와 같다. 글을 쓰는 바르트는 글의 대상이 되는 바르트를 관조하며 글을 쓸 수 밖에 없다. 2.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섰다. 이곳은 어떠한 인과관계나 선형적인 스토리가 없다. 단서들이 무작위적으로 흩뿌려진 미지의 세계이다. 마치 꿈 속을 부유하듯이, 어떠한 완결성 있는 서사를 거부한다. 주제는 파편화 되었으며, 각각은 독립적으로 살아숨쉰다. 이 책은 내용을 넘어서 구성 자체로도 매우 혁신적이다. 텍스트들이 저자의 철학 위에서 조립되고 있는 것이다. 아르고 선원들은 배의 부품을 하나씩 교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배를 타고 있음에도 그것을 아르고호라고 부른다. 아르고호는 그 이름 말고는 다른 원인이 없는 오브제이다. 우리 자신도 고정된 본질 없이 계속해서 대체되면서 살아왔음에도 우리의 이름으로 불린다. 이 책은 그 삶의 파편들이 모인 '롤랑 바르트'인 것이다. 3. 우리가 자서전을 읽을 때면 그의 사건이나 업적을 기대한다. 무릇 자서전이란 그렇게 쓰여지니까.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언어와 몸이다. 저자가 겪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학문적인 성취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의 사유를 형성한 언어라는 유기체를 바라보아라.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시대에 따라좋으면서 동시에 나쁜 단어로 쓰였다. 언어는 그 자체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삶처럼 생동한다. 그에게 언어와의 만남은 신체적 감각이다. 바라보고 만질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내용만 나열하지 않는다. 그의 에세이에는 학창 시절과 가족에 대한 기억이 배어있다. 단순하다. 그의 가장 개인적인 삶이 가장 객관적인 철학을 만들어 냈다. 4. 자신을 3인칭으로 쓰는 글이라면 나 자신을 비판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바르트라는 자신의 권위를 해체시킨다. 그는 바르트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독자와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서 이 책의 파편적인 특징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환상으로서의 파편적 단상'에서도 이러한 자신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보기에 망설이지 않는다. 형식을 파괴하려는 혁신적인 시도조차 또 다른 질서에 포함될 것이다. 롤랑 바르트를 이 책으로 맨 처음 접했지만 매우 독창적인 텍스트에 감탄했다.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마저 일관된 철학으로 쓰여졌다는 점이 그의 깊이를 보여준다. 단지 잉크 속 텍스트가 아닌 유기체처럼 대화할 수 있는 글이 있다면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리앤프리 #롤랑바르트가쓴롤랑바르트 #롤랑바르트 #21세기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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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롤랑 바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21세기북스 인공지능 AI 시대, 글쓰기란 무엇일까? 생각하기란 무엇인가? 무려 50년 전에 쓰인 이 에세이가 지금 우리 시대에 주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인간은 다면체다. 나라는 인간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그가 말한 인간 창작의 특별함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프랑스의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본격적인 텍스트에 들어가기 앞서 유년 시절의 사진과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당대 사회적 분위기나 유행을 알 수 있는 흑백사진이 먼저 소개된다. 흑백사진을 보는 것은 컬러로 가득한 지금의 세상과 사뭇 다르다.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 예시, 비유, 때로 날선 마주하기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에게 프루스트를 절대적인 인물이었기에 P41 사진에서도 말하듯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소년의 모습의 바르트가 프루스트를 언급한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마쳤다 하며....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권태감 천재들은 왜 권태를 느끼는가? 그것은 일반인들과 좀 다른 감성이다.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민감한 방식으로 수없이 자신의 존재를 되묻는다. 롤랑 바르트의 삶도 그렇다. 그도 하이네의 시를 인용한다. 자신을 '그'라고 표현하는 바르트, 그의 문법은 신박하다. 신선하다. 정치를 권태와 쾌락의 원천이라고 언급하고 국가라는 상징주의에 대해서도 나를 그로 표현한다. 옮긴 역자의 후기도 남다르다. 논문을 쓰는 중에 아버지의 부고를 접했고 그때 만난 책이 바르트의 《애도 일기》라고 한다.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떨 때는 놀랍도록 운명의 힘을 믿게 된다. 바로 이런 경우가 그렇다. 책을 옮기신 분 덕분에 바르트의 책을 만난 것도 내게 운명이다. 번역, 두 세계를 이어주고 교차시켜 보여주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바르트를 통해 나를 쓰고 나를 읽는 시간, 내게도 그런 충만함이 오늘 밤 보름달처럼 가득하다. #롤랑바르트가쓴롤랑바르트, #류재화, #21세기북스, #아포리아. #기억과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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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그의 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첫 장에는'이것은 다 소설적 인물이 말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그의 필체로 적혀 있어요. 생전에 직접 쓴 자전적 에세이, 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설적 인물의 말하기로 인식했을까요. 스스로를 소재 삼아 사유하고 기록한 내용이 바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달리 여러 단편들과 사진들이 퀼트 조각처럼 나열되어 있어요. 모든 조각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려면 매우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네요. 일단 무엇을 탐구하고 있는가, 자신에 대해 쓰고 있으나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언어 세계와 글쓰기라는 행위를 주목하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그' 또는 '나'로 지칭하거나 이따금 R.B. 라는 이니셜로 부르고 있어요. 지금은 이니셜 사용이 흔한 데다가 자기애적 표현이라면, 바르트의 의도는 정반대라는 것,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태도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거예요. 이전에 읽었던 바르트의 책이 생각났어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 상실감을 애도하기 위해 써내려간 일기를 읽으면서 그 마음을 오롯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읽고, 쓰는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네요. 네다섯 살로 보이는 바르트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사진 아래에 '사랑 요구.'라는 제목이 달려 있는데, '이미 네 안에 가득하다.'라고 바꿔주고 싶네요. 사진은 보여줄 뿐 아무말도 없지만 엄마와 뺨이 맞닿은 모습이나 꽈악 끌어안아 깍지 낀 엄마의 손에서 사랑이 느껴져요.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처럼 그의 결핍은 사실이 아니라 망각에서 비롯된 착각일지도 몰라요. 그가 기억하는 건 자신이 자주 그리고 많이 권태스러워했고, 이런 권태는 아주 일찍 시작되었고 평생 계속되었으며 항상 눈에 보였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바르트의 권태를 그의 기질로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미지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자기 자신을 볼 수 없기에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서는 거예요. 저자의 말처럼 이것은 글쓰기의 전체상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고, 나의 텍스트를 통해 일종의 집단적 '그거'가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는 상'을 대체하는 구조주의적 모드를 제공하고 있어요. 상상적으로 자기 고유의 기호로 축소되고, 자기 스스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복잡한 주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매우 복합적인 이야기라서 마냥 쉬운 내용은 아니었네요. "여기에 가족 소설이 들어 있긴 하지만, 내 몸의 기원 이전, 그러니까 선사적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 이 작업, 즉 이 쾌락적 글쓰기는 이 몸에서 시작해 진행될 것이다. 이런 한정 또는 제약으로 이론적 의미도 생기기 때문이다. (전체상의) 이야기 시간은 주체의 젊은 시절에서 끝난다고 명시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전기에는 비생산적 삶만 있다. 내가 생산하는 순간부터, 내가 글을 쓰는 순간부터 나에게서 내 서술적 시간을 앗아가는 것은 (행복하게도) 바로 텍스트 그 자체이다. 텍스트는 사실상 아무것도 이야기해줄 수 없다. 텍스트는 그저 내 몸을 나라는 상상적 자아로부터 벗어나 머리, 저 다른 곳을, 일종의 기억 없는 언어 세계로 데려간다. 비록 내가 나의 글쓰는 방식 때문에 그런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해도 이 기억 없는 언어 세계는 이미 '민족'의 언어가, 주관성 없는 덩어리 집합의 언어 (또는 일반화, 보편화된 주제)가 되었지만. 여러 이미지들이 모인 전체상은 생산적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에서 멈출 것이다. (이 입구가 나에게는 결핵요양소에서 나오는 입구이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전혀 다른 전체상이 나올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의 전체상이다. 전체상이 펼쳐지지만 (이 책의 의도가 그것이니까), 시민으로서의 한 개인을 표상하기 위한 건 아니다. 그래서 그 상들이 채택되거나, 보장되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형상화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그저 알 듯 말 듯한 기호처럼 깜박일 것이다. 텍스트는 이미지 없이 이어질 것이다. 글을 쓰는 손의 이미지 정도면 모를까. " (18-20p)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 롤랑 바르트를 만나게 되다니! 그와의 첫 만남 치곤 상당히 강렬하다. 사실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쓴"을 매개로 앞뒤에 똑같은 이름 혹은 책 제목? 이 등장한다. 내가 느꼈던 제목에 대한 감정을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언급해 주어서 내심 반가웠고, 기분이 좋았다.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하는 말 말이다. 한편, 이 제목보다 더 이 책을 잘 설명해 주는 제목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자신에 대해서 쓴 자서전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가장 많이 고민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은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린 시절 보다 더 기억이 안 나는 사춘기 시절을 보내며 내게 남은 감정은 "짜증"이었던 것 같다. 심하게 사춘기를 앓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답답하고 짜증 나는 감정은 강산이 여러 번 바뀐 지금도 느낌으로 남아있다. 대학 1학년 2학기 교양으로 들었던 수업 시간에 과제 중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써오는 것이었다. 하...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과제가 또렷하게 생각나는 이유는 그 어떤 과제보다 많이 생각하고, 머리카락을 뽑으며 칸을 채웠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만약 그때 이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색다른 방법으로 나에 대한 글을 채워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보통의 자서전과 많이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자서전이라 하지만, 담론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연구 자료 같기도 하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소제와 주제가 모여서 마침내 롤랑 바르트를 쓰고 읽게 된다. 쉽게 보자면 쉬울 수 있고, 어렵게 보자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다. 초반에는 롤랑 바르트의 가족과 자신이 경험했던 사진들이 나열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서술이 곁들여진다. 오히려 그 부분은 일반적인 자서전 같은 느낌이 살짝 풍긴다. 물론 그 이후에 담긴 글들은 많이 색다르다. 이 책은 전공서적도 아니고, 앞 장을 이해해야 기억해야 뒷장으로 이어갈 수 있는 줄거리를 가진 책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냥 문장을 곱씹기 보다 소설책 읽듯이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꽤 재미있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롤랑 바르트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그의 이름 외에는 없었기에, 책을 읽으며 마주하는 그의 글에서 '이 사람은 참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글 쓰는 것을 숨 쉬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적어온 사람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느낌은 옮긴이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숨을 쉬고, 밥을 먹는 습관적인 행위가, 때론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몸에 밴 행동이 롤랑 바르트에게는 글쓰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글쓰기는 그에게 또 다른 위로의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마치 얼마 전 수술하러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전자책과 종이책을 몇 권 가방에 넣어갔던 나처럼 말이다. (물론 무료한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예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평의 마감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압박으로 책을 챙겨가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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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정체성, 이미지를 가로지르며 쓰기 자체가 된 사람, 롤랑 바르트”
영어 수업을 하다가 롤랑 바르트라는 기호학자를 처음 만났다. 이미지는 본연 그대로 해석되기보다는 그것을 보는 자의 의도나 혹은 특정 해석을 이끌어내기를 원하는 자의 의도대로 해석된다는 그의 통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책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며 모든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 독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요즘같이 모든 정보가 받아보는 사람들의 의도대로 각색되고 확산되는 현상을 미리 예언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작가가 스스로에 대해서 쓴 일종의 자서전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서전처럼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떤 거대한 서사가 있기보다는 이야기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마치 미술에서의 모자이크 장르나 패치워크처럼 사진, 편지, 짧은 글 등이 조각조각으로 이어져 있는 상태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만든 느낌이다. 그러나 음악, 영화, 신화학 기타 등등 실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번뜩이는 지성과 통찰이 느껴지는 짧은 글들이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토리텔링의 즐거움 대신 천재적인 학자의 날것 그대로의 번뜩이는 지성을 느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고 텍스트화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말하자면, 우선 그가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결핵의 그림자, 그리고 그 몸이 남긴 흔적들을 기호와 구조의 언어로 해부한다. 그는 여러 인칭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지칭하고 때로는 독자에게, 때로는 자신에게 주석을 붙인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조차 “기호학”의 주제로 삼은 셈. 앞에서 이야기했듯 서사적 흐름을 기대하긴 힘든 책이지만 좀 재치 있고 재미있다고 느껴진 해석이나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그는 기흉 수술을 받고 난 후 잘려나간 자신의 갈비뼈 조각을 선물받는다. 그것을 한동안 소중한 것을 모아두는 서랍에 보관해두었다가 미련 없이 버리게 되는데, 인간들이 흔히 “죽음”에 대해 치르는 장례식 등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스테레오 타입의 역류 효과”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잠비넬라라는 여장 가수가 “진실한 친구”가 되고 싶다면서 스스로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 스테레오타입의 역류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와 같은 유럽어의 경우 단어마다 남성형, 여성형으로 구분되는데, 언어 안에 갇힌 사고랄까? 그런 면이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파편들로 글을 쓴다는 것. 파편들은 둥근 원의 둘레에 있는 돌들이다. 나는 그 위에 내 몸을 둥그렇게 펼친다. 내 모든 작은 세계가 부스러기들이다. 그 중심에는 뭐가 있을까?” - 164쪽
굉장한 의도를 담은, 마치 아무런 의도가 없어 보이는 책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사뭇 불친절한 책이기도 하다. 서사적 즐거움을 기대하기 힘들고, 짧은 글 각각은 맥락 없이 흩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마다 사유의 밀도가 굉장히 높다. 그리고 글뿐 아니라 사진과 해설 그리고 갈겨쓴 메모와 자기 글에 대한 주석 등 이 책은 롤랑 바르트가 쓴 책이기도 하지만 그 주인공을 두고 구경하고 사유하며 함께 사색을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느낌도 든다. 기호학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정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철학 서적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 나를 쓰다, 나를 읽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롤랑바르트가쓴롤랑바르트, 롤랑바르트, 21세기북스, 인문학, 인문에세이, 기호학, 철학, 리앤프리서평단, 리앤프리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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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서평_롤랑 바르트가 쓴 롤라 바르트_롤랑 바르트_21세기북스
오늘 하루도 롤랑 바르트 한 건가. 과연 인생이란 건 롤랑 바르트처럼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삶의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결론은 모른다. 그저 살아가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물론 밥은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며 나름의 즐거움도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로랑 바르트의 책을 읽었음에도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그저 작가의 문학 세계라고 생각했을 뿐이지만 좀 더 내면의 울림을 느껴본다면 낫지 않을까. 그래서 롤랑 바르트 하다고 한 것이다. 그는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호학자이자 문학 비평가로 텍스트와 글쓰기의 본질을 탐구한 사상가이다. 1915년 프랑스 셰르부르에서 태어나 파르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과 고전학을 공부했다. 기호학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사실 굉장히 낯선 분야다. 기호학자들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즉 기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해석되는지를 탐구한다. 그건 단순히 언어나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 제스처, 소리, 상징, 행동 등 의미를 전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의미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역동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글쓰기의 가능성을 모색했고,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텍스트성’ 이론을 발전시켰다.
책이 참 멋지다. 특특하고 두꺼운 하드커버 양장본에 매력적인 블랙 컬러가 마음에 든다. 적당히 두꺼운 분량의 책은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문학적 보석이 들어있을지 기대하게 했다. 첫 내용은 롤랑 바르트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가족사진과 특별히 의미를 부여했던 장면 사진이 보였다. 덧붙여 짤막한 글도 흥미로웠다. 흑백 사진 속의 그는 신사적이고 지적인 모습이었다. 내용은 생각처럼 쉽게 읽히진 않았다. 오히려 빠르게 읽었다가는 이해도 못 하며 페이지를 넘길 것 같았다. 짧은 글들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주제의 조각들이 모여있어서 특별해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제목을 찾아서 읽고 싶은 부분부터 봐도 좋을 듯하다. 아직 완벽히 그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의 에세이를 통해 문학적 사유를 해본다. 그럼으로써 철학의 깊이에 조금은 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소중한 책이 널리 읽혀서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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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는 역시나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나’라는 존재를 언어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철저히 실험적인 텍스트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바르트는 자기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언어의 파편들로 자신을 흩뿌려 놓고, 독자가 그 조각을 스스로 맞춰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텍스트로 만듭니다. 그는 “나는 언어 속에 있다”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기억과 감정, 습관, 사유의 파편을 마치 일기처럼 흩어놓습니다. 그 조각들은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묘하게 하나의 인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 인물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의 말처럼, ‘저자는 죽고, 독자가 탄생한다.’ 결국 이 책은 바르트 자신을 말하는 동시에, 읽는 이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간 순서도, 사건의 흐름도 없습니다. 그 대신 바르트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에게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호와 언어의 관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죠. 이 책은 그 실험의 기록입니다. 책 속에는 바르트가 직접 선택한 사진들이 등장합니다. 그 사진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의 표정, 책상, 좋아하는 사물들—그 모든 것이 언어와 함께 ‘바르트라는 기호’를 구성합니다. 그의 일상은 철학적이고, 그의 사유는 놀랍도록 인간적입니다. 바르트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둡니다. 그의 글은 완성된 자서전이 아니라,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완성되는 ‘열린 텍스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단상들 사이를 거닐며, 바르트를 이해하려다 결국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바르트가 말한 ‘텍스트의 즐거움’일지도 모르죠. 이 책은 자서전의 틀을 깨뜨리는 책입니다. 그는 언어 속에서 자신을 해체하며, 자아를 텍스트로 다시 써 내려갑니다. 읽는 내내 나는 ‘나 자신을 언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책은 단순히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를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지적 모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을 이해하려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하나의 미로이자 거울, 그리고 사유의 여정을 안내하는 지적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천사 전우치 :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가 ‘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책의 묘한 매력이다. 악마 전우치 : 명확한 서사 구조가 없어, 철학적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겐 다소 난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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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바르트의 독창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도서는 전통적 자서전의 틀을 철저히 해체하고, 글쓰기와 자아를 근본적으로 재탐구하는 작품이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자신을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며 ‘R.B.’ 혹은 ‘그’라고 지칭함으로써, 흔히 자서전에서 기대되는 일관된 자아상을 배제하고 파편적이고 다층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문학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글쓰기를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도구로 전환시키는 혁신적 시도로 읽힌다.
전통적 자서전이 선형적 서사를 통해 삶을 일관된 이야기로 재구성한다면, 바르트는 200여 개의 단편을 통해 독자에게 스스로 ‘R.B.’라는 존재를 조각조각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각 단편은 사적인 기억, 철학적 사유, 예술적 감각을 결합하여 인간 존재의 예측 불가능성과 모순을 드러낸다. 바르트는 자신이 가진 모순과 불일치를 숨기지 않으며, 이를 통해 글쓰기가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탐색하는 행위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바르트의 글쓰기는 ‘쓰기의 쾌락’에 뿌리를 둔다. 그는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데 집착하지 않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의미를 만들고 깨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하는 순간에서 진정한 창작의 가치를 찾는다. 이러한 접근은 AI가 창작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도 인간 글쓰기의 고유성을 부각시킨다. 완결성이나 효율성이 아닌, 질문과 실험, 모순과 탐구가 글쓰기의 본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의 기록을 넘어 문학과 철학, 기호학적 실험의 결합체로 읽힌다. 바르트는 자신의 기억과 사유를 텍스트에 직조하면서, 독자가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사진, 음악, 일상적 사소한 경험까지도 그의 철학적 탐구와 나란히 배치되어, 글쓰기 자체가 존재의 방식이자 사고의 실험으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전통적 자서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사유의 장으로 안내된다. 출판사와 평론가들은 바르트의 글쓰기를 ‘파편적이면서도 사유적’, ‘해체적이면서도 창조적’이라 평가하며, 그의 자전적 글쓰기가 문학과 철학, 그리고 글쓰기 연구에 있어 혁신적 지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그는 스스로를 텍스트로 만들고, 독자가 그 텍스트를 해석하며 새로운 바르트를 구성하도록 함으로써, ‘작가와 독자의 관계’, ‘언어와 존재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를 인간 탐구의 도구로, 자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유동적 텍스트로, 자서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실험적 사유의 장으로 재정의한 작품이다. 언어와 존재, 기억과 사유를 끊임없이 조각내고 재배치하며 독자를 사유의 미로 속으로 안내하는 이 책은, 글쓰기와 자아, 창작과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현대 독자에게 깊은 통찰과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