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스토이의 유작 <악마>. 3대 고백에 꼽히는 톨스토이의 <참회록>에서도 드러나듯 톨스토이는 자신에게 상당히 솔직한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다. 이 자전적인 책에도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톨스토이가 담겨 있다. 도덕에 대한 의무와 본능적 성욕 사이에서 느끼는 양가감정이 아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건 톨스토이 자신의 옛 모습이다. 톨스토이는 <참회록> 이후에 이 소설을 썼기 때문에 아직 식지 않은 감정으로 용서를 빌며 쓰지는 않았다. 혈기왕성한 시절이었음을 밝히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며 일종의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두 가지 결말을 보면 변명이라기 보다는 반성에 가깝다. 결말들은 모두 성욕에 휩쓸린 예브게니, 즉 톨스토이 자신이 파멸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니까.
인간의 성욕은, 특히 생산력이 절정에 달하는 나이의 인간이 지닌 성욕은 그야말로 '알 수 없는 힘'이 이끈다고 생각될 만큼 강렬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꼭 바람을 피워야 될 정도로, 그렇게 미칠 듯한 혼돈에 인간을 몰아 넣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본능인 것일까.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그렇게 휘둘리게 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톨스토이는 그랬나보지. 바람피는 것들은 다 죽어야 된다고 막말을 할 정도로 나는 불륜을 혐오한다. 사람과 사람의 건전한 관계는 믿음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 아닌가. 하물며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거론하고 약속한 사람들이 믿음을 저버리는 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아닌가.
안다, 알아. 톨스토이도 나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부적절한 관계의 여성에게 느낀 성욕을 깨닫고 절망한 것이다. 톨스토이가 마지막에 말하듯 예브게니, 즉 톨스토이가 진짜 몹쓸 놈이었다면 절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예브게니는 결혼 후 어떠한 불륜 관계도 맺지 않았지만 그러한 성욕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미칠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를 유혹한 스체파니다를 악마로 규정했다. 부적절한 성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파멸을 부르는 죄이며, 그 파멸을 불러 일으키는 악마는 여성이라니. 이거 결국은 성욕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단정치 못한 여자는 악의 근원이라는 건가.
엇, 여자로서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남자의 성욕은 잘못 품으면 죄이긴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참회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정숙하고 남편을 사랑한 여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싶어하는 것도 모르고 시종 남편 걱정을 하고, 방탕한 여자는 즐길대로 즐기고 살긴 하지만 악마 취급을 받게 됐다. 남자는 용서되고 여자는 이래저래 뒷통수를 맞는다. 톨스토이의 탁월한 묘사와 대인배다운 고백은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이상하게 억울하네. 내 주변의 남자들은 이런 고백을 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의 모든 이들이 누굴 악마로 여기든 말든 불륜은 파멸을 부른다는 진실을 깊게 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에서 그만 멈춰야겠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노년층이 매우 보수적이고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주의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결코 공정하거나 옳지 못하다. 통례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은 바로 젊은 계층이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늘 보아왔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자기 삶의 전형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2쪽)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잡념이 파고들지 못하게 육체노동에 매달리거나 단식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모든 사실을 자신의 아내와 장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았을 때 그가 감당하게 될 수치심을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예브게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시간이 흘러 정오 무렵, 이전에 풀을 베고 오다 마주쳤던 그 시각이 가까워지면 어느새 숲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108~109쪽)
다음날 그는 다시 탈곡장으로 향했다. 특별한 용무도 없이 두 시간 가량 머물면서 그는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육체를 눈으로 마음껏 탐닉했다. 한편으로 그는 파멸을 떠올렸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었다. 다시 시작된 이 고통, 두려움과 공포가 또다시 덮친 것이다. 구원은 없었다. (130~131쪽)
실제로, 만일 예브게니 이르체네프가 죄를 범했을 당시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정신병자인 셈이다.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광기의 징후를 자신에게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40쪽) |
| 단시간에 읽을 수 있는 짧막한 책이지만 그 안에 담져진 내용이 내 삶과 결부되어 양심의 찔림을 받게하는...한편으로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톨스토이의 젊은 날의 고백서라고 하는데 가볍게 읽을 수도 있는 책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몇번씩 느끼는 감정들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대개의 남성들의 심리를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이 쉽게 꺼내기 힘들어 하는 이야기들이다. 젊은 날의 쉽게 저지르던 불장난들.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또한 다른 여자를 향한 욕망. 자신의 양심과 본능속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우리속에 내재된 싸움에 항상 휘말리고 있음을 느낀다. 결말이 특이(?)하다고 해야할까... |
|
이 글은 톨스토이의 자전적인 소설이란다. 자신을 책망함과 동시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모든 인간들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악'이라는 존재를 파헤치고 나약하게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 톨스토이가 아니라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에브게니 이르체네프는 모든게 완벽하게 갖추어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안에는 사랑이란 이름이 아닌 몸에 대한 탐이라는 강한 악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나중에 어떠한 종말을 가져오는가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 하겠다. 이 글은 다른 책과는 달리 두개의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로 에브게니가 리볼버 권총으로 자신이 자살하는 결말이다. 그가 죽은후 그 어느 누구도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 첫번째 죽음보다는 두번째 죽음이 더 많은걸 생각하게 한다. 두번째 결말은 에브게니가 자신의 부인인 로자를 죽이지 않고 그와 밀회를 가져왔던 스체파니다를 권총으로 죽이게 된다. 나중에 그는 정신착란으로 살인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다.
작가가 마지막에 남겨준 대목에서 알수 있다. 실제로 에브게니 죄를 범했을 당시 정신병 증세를 보였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정신병자인 셈이다. 진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광기의 징후를 자신에게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인간 내면의 '악'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것을 솔직하게 들어내준 시원한 소설이라고 평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 여자는 악마야. 진짜 악마라구. 그 여자는 내 의지와는 반대로 온통 나를 사로잡고 뒤흔들고 있어. 죽여버려? 그래, 오로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 아내를 죽이든가 그 여자를 죽이는 방법. 이렇게 살순 없잖아. 더 이상 못 살겠어. 좀더 심사숙고하고 앞을 내다볼 필요가 있어. 만일 그냥 이런 상태로 지속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또다시 혼잣말로. 내가 원하는 바가 아냐. 기필코 떨쳐버릴 거야. 말뿐인 채 저녁 어스름이면 그녀의 집 뒤뜰로 달려갈 테고, 그 사실ㅇ르 안 그녀가 내게로 올 것이다. 아니면 드디어 마을 사람들이 알고 아내에게 일러 바치거나, 어쩌면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내 성격에 스스로 아내에게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 순 없어. 정말 그럴 순 없지. 알게 될 거야. 파라샤, 대장장이 사람들 전부 알게 되겠지. 과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안 돼. 오로지 두 가지 탈출구밖에 없어. 아내를 죽이든가 그녀를 죽이든가. 그리고 또.....아 그래 세번째 방법이 있지. 나 자신-나지막이 소곤대다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자살하는 거야. 그러면 두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잖아.'오직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 |
|
예브게니 이르체네프... 그의 욕망의 실체는 무얼까?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식욕, 성욕, 권세욕 등 수많은 학설의 근거가 되었던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들 중 톨스토이의 <악마>는 성욕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즉 예브게니의 욕망은 "도덕적 금지"에 대한 육체적 열망, 죽음에 이르는 갈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귀족 청년 예브게니는 젊은 시절 그의 젊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 농부의 아내였던 유부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이후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면서 그 관계를 정리하게 되는데 평화로운 결혼생활을 영위중에 어느 순간 마주친 그 유부녀에게서 '심장을 움켜쥘 듯한 육체적인 유혹'을 느낀다. 그는 끊임없이 그 유혹속에서 괴로워하다가 결국에는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 말로가 두경우이다. 하나는 자기 부인과 그 유부녀중 누구를 죽일까 하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자살하게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유부녀를 죽이고 감옥살이를 하고 난후 알코올중독자가 되어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것이다.
그 두 결론 모두에서 예브게니의 행위에 "정신병"이란 판단을 내렸는데 후미를 장식한 톨스토의의 절제된 문장은 예브게니의 <욕망>의 광기어린 발현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났던 것임을 꼬집고 있다.
'실제로, 만일 예브게니 이르체네프가 정신병력자였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정신병자인 셈이다. 진짜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의실할 여지 없이,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광기의 징후를 자신에게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139~140쪽)'
예브게니의 비극적 말로- 분명 그는 사려깊고 현명한 아내와 그를 믿고 따르는 그의 영지의 사람들, 그리고 그에게 호의와 애정을 갖고있는 마을 사람들틈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부녀에 대한 '갑자기 마치 손으로 심장을 움켜질 듯 절제할 수 없는 욕망'이 그를 엄습하고 휘감아 '그녀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고,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데다가 오늘은 다행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 또 모레는 마찬가지로 파멸에 빠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결국에는 그 파멸로 제 자신을 이끌어 가고 말았으니, 부적절한 것에 대한 유혹의 손길은 과히 늪과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작은 수많은 욕망을 갖는다.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에서부터 살아가면서 얻어가는 소유욕들.... 특히나 사람과 같은 움직이는 것들에 갖는 소유욕은 자기도 모르게 무섭도록 증대한다.
예브게니가 그의 본능에 그토록 충실하게 빠져들었음에도 비극적 종말을 맞이했던것은 '삶의 질서'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다. 결국 그의 종말은 그의 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의 시비를 따지지 않았다면 그는 '삶의 질서'에 역행했어도 거리낌이 없었을테니깐.
욕망을 자제한다는 것은 어렵다. 특히나 윤리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욕망을 자제하기란 더욱 그렇다. 이때문일까? 예브게니 이르체네프가 멀게 느껴지지도 않고 외려 연민이 느껴지는게...책을 덮으면서 내 마음속에 의혹이 생긴다. "내가 그라면, 아니, 내가 그 상황이 되었다면..." 그건 어느때고 들이닥칠 수 있는 설명불가해한 삶의 일편일테니.. [인상깊은구절] 그녀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고,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데다가 오늘은 다행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 또 모레는 마찬가지로 파멸에 빠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겠죠!!
이성간의 성적 끌림과 관계를 죄와 파멸, 타락으로 규정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관점을 넘어 증오심까지... 독자로소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악마는 흔히 우리들 곁에서 유혹하는 그무엇처럼...아주 자연스럽게 ?? 조금은 이해할수 없을정도로,관념적 사고에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안스럽게 느껴집니다... 어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책이 약간은 얇아서 ~~~ 넘 이야기가 빨리 마무리 되는것 말곤 잼나게 읽을겁니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잡념이 파고들지 못하게 육체노동에 매달리거나 단식하는 것이었다. |
|
사랑이 일회용 취급 받고 있는 요즈음에 어쩌면 아주 고루한 주제의 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쓰여진 시대(1889년)와 사회를 감안하여 보면 무척 진보적이고 솔직한 주제가 아닌가 한다. 물론 작가는 끝내 발표하지 못하기는 하였지만.
제목에서 주는 강인한 의미는 결국 자신의 도덕성과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한 젊은이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뇌를 말하고 있다. 자신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또 자신 이외에는 어느 여자도 어울리지 않다고 믿고 있는 아내와 사랑에, 그것도 육체적인 사랑에 빠졌을 때만 행복한 다른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젊은이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였을까.
자신을 유혹에 빠지게 한 악마는 결국 악마라는 허구의 존재를 이유로 자신의 방황을 합리화 시킨 그 자신이 아닐까. 이 책은 고뇌하는 한 젊은이의 방황을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악마의 유혹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은, 그 악마는 우리 인간이라고 불려지는 직립동물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와 함께 진화(?)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상깊은구절] 다음날 그는 다시 탈곡장으로 향했다. 특별한 용무도 없이 두 시간 가량 머물면서 그는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육체를 눈으로 마음껏 탐닉했다. 한편으로 그는 파멸을 떠올렸다.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었다. 다시 시작된 이 고통, 두려움과 공포가 또다시 덮친 것이다. 구원은 없었다. |
|
독자리뷰를 쓰기 전, 다른 이들의 리뷰를 하나씩 읽어본다. 그리고, 출판사 리뷰와 YES24 리뷰까지 읽는다. 다른 사람들의 글과는 다른 나만의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나에게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유는 있다. 다른 이들의 동정을 살피고 싶어서다. 충격적인 고백이 담겨 있는 자전적 소설 "악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싶어서다. 이 책의 핵심은 역시 "성욕"이라는 단어다. 사실, 성욕 자체로는 악한 게 아니다. 식욕과 마찬가지인 게다. 하지만, 이 것이 도덕과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탐식이 되고, 음욕이 되는 것이다. 그래, "성욕"보다는 "음욕"이 핵심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이 "음욕"에 대한 위대한 작가의 고백 앞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하기에 앞서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첫째 조건은 진실성 아닌가! 글쓰기가 똑바로 바라보기라면, 이 책의 리뷰에서 나는 "음욕"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읽은 후, 나의 마음은 온통 그 생각뿐이기에 나는 음욕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리고, 내 안의 마음까지 바라본다. 그리곤, 이 작은 소설 "악마"는 곧 나의 얘기임을 나 스스로 인정한다. 음욕 앞에 선 한 남자 예브게니... 그가 도덕을 가지고 욕망과 맞서는 심리묘사는 사실적이고, 치열하다. 자신의 순결한 아내 리자가 아닌, 결혼 전 관계를 가졌던 스체파니다를 생각하며 내뱉은 다음과 같은 독백을 보라. 그의 깊은 고뇌와 절망적인 갈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녀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고,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데다가 오늘은 다행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 또 모레는 마찬가지로 파멸에 빠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파멸이야-그는 이 상황을 달리 인식할 수가 없었다-마을의 하찮은 농꾼 여자와 젊고 사랑스런 아내를 바꿀 것인가. 누가 봐도 이것이 파멸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파국이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안 돼! 뭔가 방법을 찾아야 돼.' (중략)
자신에게 엄격하게 명령했다.
하지만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어느새 그녀에게로 옮겨가고 눈앞에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으며 단풍나무 그림자가 어룽거렸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붙는 성욕을 음욕으로 떨어드리지 않고, 어떻게 그 자체를 순결히 지켜낼 수 있을까? 하나님 주신 성의 테두리인 부부 관계에서만 지켜라는 조언만으로는 다소 무책임하게 들린다. 성에 대한 욕망이 이처럼 끈질기며, 그 힘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난 남자가 된 것이 싫다. 남자들이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섹스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한 섹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순간의 쾌락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부부간의 사랑스런 섹스는 친밀감을 주지만, 사랑 없는 섹스는 친밀감은커녕 참된 만족감도 주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결국 예브게니의 슬픈 종말을 보여 줌으로, 사랑 없는 무분별한 섹스의 비참한 결말을 보여 준다.
제목이 '악마'다. 주인공 예브게니는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유혹하는 스체파니다를 악마라고 말하며 그를 피하다가도, 어느 새 자신의 발걸음이 그녀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곤 자신을 죄책하곤 한다. 하지만, 악마는 스체파니다가 아니다. 그리고 예브게니도 아니다.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 절제를 모르는 탐욕이 바로 악마다. 성욕을 넘어선 음욕, 식욕을 넘어선 탐식, 더러워진 집착 등이 바로 악마인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 하나만 말하고 이만 마치겠다. 톨스토이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육체에 대한 왜곡된 욕망을 감춘 채 얼마든지 위대한 인간, 성실한 인간으로 버젓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종종 추하고 더럽지만, 나를 좋아하고 심지어 존경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 인격의 이중성과 일탈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많은 물음으로 이 책을 덮는다.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 주는 책. 이 것이 좋은 책 아닌가! [인상깊은구절] 중요한 것은 그가 그녀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고,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데다가 오늘은 다행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 또 모레는 마찬가지로 파멸에 빠질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파멸이야-그는 이 상황을 달리 인식할 수가 없었다-마을의 하찮은 농꾼 여자와 젊고 사랑스런 아내를 바꿀 것인가. 누가 봐도 이것이 파멸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파국이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안 돼! 뭔가 방법을 찾아야 돼.' (중략) 자신에게 엄격하게 명령했다. 하지만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어느새 그녀에게로 옮겨가고 눈앞에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으며 단풍나무 그림자가 어룽거렸다. |
|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오고도 읽을까? 말까? 망설이던 책이었습니다. 빨간색 표지가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악마'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것만큼, 이 표지에서 풍기는 것만큼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악마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악마같은 존재를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아무런 걱정없이 살던 남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빚이 많다는 것을 알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지주가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젊은 나이의 이 남자는 성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도시에서 일하는 남편을 가져 떨어져 지내는 여자를 꼬셔내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결혼 할 때까지....그리고 결혼 생활을 잘 하던 그는 자기 집에 일하러 온 그 여자를 보고 그 여자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두 가지의 결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남자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것과 그 여자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스토리 전개라서 놀라기도 했지만 둘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자살하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쪽이 남에게 피해도 덜 주고 마음도 편하게 되지 않을까요?? [인상깊은구절] '안 돼. 오로지 두 가지 탈출구밖에 없어. 아내를 죽이든가 그녀를 죽이든가. 그리고 또……. 아, 그래 세 번째 방법이 있지. 나 자신―나지막이 소곤대다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자살하는 거야. 그러면 두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잖아.' 오직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되자 공포가 밀려왔다. '리볼버 권총이 있지. 하지만 과연 스스로 총을 쏠 수 있을까?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데.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곧바로 권총 상자를 넣어 둔 장롱을 열었다. 그러나 아내가 들어왔기 때문에 권총이 든 상자를 열지 못했다. |
|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탓에 결코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남성들의 육체적 욕망이다. 남자들의 주장대로 정말 그들의 욕망은 여자의 욕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한 것인가? "중고등학생 때는 하루종일 Sex 생각 뿐이었다"는 남편의 말을 어느 선까지 믿어야 하는 것일까? 환생하여 남자의 몸 속에서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결코 확인할 수 없으리라.
톨스토이의 젊은 날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악마>의 주인공 예브게니는 바로 이 주체할 수 없는 욕망때문에 고통받는다. 결혼 전에는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을 어찌어찌 찾아내 해결해 가지만, 문제는 결혼한 다음부터 발생한다. 도덕적인 인물인 예브게니의 입장에서는 결혼까지 한 자신이 마을의 유부녀를 탐하는 것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욕망의 대상인 스체파니다를 끊임없이 떠올리고, 어떻게 하면 그녀하고 좀 마주칠 수 있을까하여 숲으로 발길을 옮기고...이러면 안돼 하고 돌아서지만 결국엔 다시 숲으로 향하고... 이런 예브게니의 방황이 처음엔 좀 우습고 귀엽기조차 하다. (남자들의 주체하지 못하는 욕망은 종종 여성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곤 하지 않는가?)
하지만, 방황이 계속될수록 그의 고민은 더욱 심각해진다. 아무리 내가 독자에 불과하다해도 쉽게 웃어넘겨서는 안될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그 불같은 욕망은 그의 삶과 정신을 무참하게 좀먹어 온다. (재미있는 것은 예브게니는 그의 감정을 단 한순간도 사랑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직 "욕망"일뿐이다.) 그 욕망의 순간들을 묘사하는 부분들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육체적인 욕망때문에 다른 여인을 탐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선악관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주인공은 욕망의 대상 스체파니다를 없애거나, 자신이 자살을 하거나, 혹은 아내가 죽는 상상까지 한다는 점이다. 욕망에 흔들리는 자신과 모든 상황에 대한 혐오가 너무 깊어, 그 외의 죄악은 죄악으로도 여겨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깊이 고민하지 않고 욕망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에 비하면 준수한(?) 편이지만, ( 톨스토이 시절이나, 요즘이나 별다른 고민없이 아내도 품고 애인도 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주객이 전도될 정도의 도덕관도 좀 어이없지 않은가? 어쩌면, 문제는 도덕관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 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예브게니의 최종 선택은? 물론, 그걸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영화 식스센스에서 부르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는 걸 기사랍시고 버젓이 내놓았던 어느 일간지 기자를 정말 혐오한다.) 예비독자님들이 직접 확인하시길... 톨스토이의 심각한 고민이 엿보이는 결말이니 기대하셔도 좋다.
**그리고, 이 소설이 책 한권으로 내놓기에는 쪼금 민망한 단편 길이라는 사실은 미리 알려드리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맞아. 나한테는 두 개의 인생 가능성이 있어. 하나는 리자와 시작했던 결혼생활이야. 벌여놓은 여러 사업과 농장 경영, 그리고 딸애, 나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 만일 그것이 내 인생이라면 스체파니다는 없어져야 해. (중략) ..만일, 만약에 말이지. 리자가 병에 걸려 죽는다고 치자. 리자만 죽으면 만사형통일 텐데. 만사형통이라! 아, 부질없는 짓이야. 안 돼. 만일 죽어야 한다면 스체파니다가 죽어야지. 그래야 모든 게 무난히 해결되지. |
|
난 톨스토이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니 톨스토이라는 작가의 명성을 익히 들어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중학생때 처음 그의 작품들을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내용을 이해했다기 보다는 유명한 고전이니까 왠지 꼭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였던 것 같다. 부활, 전쟁과 평화,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인 안나카레니나등.
이 소설, 악마는 최근에서야 읽게 된 나에겐 새로운 책이다. 다른 독자 리뷰도 꼼꼼하게 읽어 보았는데 난 조금은 동감하지만 주인공 예브게니의 고뇌와 비참한 선택은 솔직히 가슴에 크게 와 닿지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자가 악마라니... 성욕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리라. 여자들에게도 성욕이 있고 정도는 다르겠지만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육체적인 욕망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그렇다고해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할까.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면 너무 진부한 충고가 될까.
난 그가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고통받았던 것은 성욕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조절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아니었는가 싶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기자신이 누군가에게 지배받고 자신이 너무나 빠져버리는 것을 늘 두려워한다. 나의 경우엔 무엇이든 내가 너무 깊게 좋아하게 되면 늘 두려웠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결국 벗어나려한다. 왜 그런지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순수하고 열정으로 가득찼던 그때는 그랬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예브게니의 선택에 백퍼센트 동감할 수는 없지만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 그의 환경, 지위등을 고려해보았을때 이 소설은 참으로 대단한 소설이다. 고전을 읽을때 흔히 명성에 비해 아무런 감동이 없다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본다. 난 그럴때 이렇게 충고하곤 한다. 지금의 잣대로 평하지말고 소설속의 시대로 들어가 읽고 느껴보라고.. 이 소설 또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읽는다면 분명 작가로서 톨스토이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왜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높이 평하는지 조금은 알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그 여자는 악마야. 진짜 악마라구. 그 여자는 내 의지와는 반대로 온통 나를 사로잡고 뒤흔들고 있어. 죽여 버려? 그래. 오로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 아내를 죽이든가 그 여자를 죽이는 방법. 이렇게 살 순 없잖아. 더 이상은 못 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