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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아스 심이라는 필명부터 뭔가 가벼워서... 거기다가 성애소설이란 분류에 ...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하지만 평론가들과 독자들의 리뷰를 보고는 어떤 책인데.. 어떤 내용이길래.. 성애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비난보다는 오히려 찬사를 받는가 호기심이 생겼다. 마광수와 장정일의 경우와는 다르게.. 작가본인도 예술이냐? 외설이냐? 의 경계선에서 칼질을 당하리라는 각오까지 했다는 데.. 그런 논의는 아예 없는 듯 하다.
분명 표현은 상당히 노골적이라.. 처음 몇 개의 작품을 읽을 때까지도.. 제목에서 던져주는 사랑의 떨림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당혹스럽도록 직접적이고.. 다양한 성의 기술.. 근데 그게 애써 독자들에게 어떤 환상이나 쾌락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작가 자신의 경험을 태연히 담담히 얘기해 주듯이 쓱 말해버리는 식이다.
속되게 말하면 여자는 다 좋다는 식의 짐승같은 남자라고 할 수도 있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해결을 위해 온갖 여자들을 이용하는 파렴치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말해버리고.. 저속한 글이라고 주인공이 정말 역겹다고 결론짓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 로리타를 사랑하던.. 예순 넘은 할머니를 사랑하던..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반해있다.
진정으로 그녀들이 아름답다고 .. 그것은 사랑이라고 믿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창부의 눈빛에서마저도 떨림을 느끼는 주인공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이 글을 읽을 수는 없다. 그저 화자가 거친 많은 여성들을 아련히 추억할 때.. 거기에 동참하여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잠시 같이 느껴보는 방법밖에 없다.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감성소설이란 것이 난무하는 요즘에.. 차라리 이렇게 파격적인 거칠것없는 문체가 오히려 반가운 마음까지 든다. [인상깊은구절] 뭔가 써야 할 게 있다면 그러한 그리움에 대한 서러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한 번쯤 불꽃 같은 사랑이 찾아오겠지,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영혼을 바칠 수 있겠지. 하는 허영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은 그와 같이 그리움에 저항하는 일말의 막연한 희망과도 같았다. 절망에 휩쓸려 허우적대면서도 팔을 뻗어보는 힘이었다. 어쨋든 그러한 '고독을 견디는 힘'에 기대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
| 이 소설은 성애 소설이라는 이유로 막연한 떨림을 동반하고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떨림이란 것은 생애 첫번의 설레임의 떨림도 아니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함께함의 떨림이 아닌 또 다른 떨림을 전해주려고 한 것 같다. 마르시아스 심은 성애소설 뒤에 삶의 단편을, 그것도 극도의 끝을 달리는 안타까운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이 책의 모든 내용중에 정말 평범하고 소심한 수줍은 첫 경험이라던지 하룻밤의 사랑같은 로맨스적인 요소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아스라한 기억속의 그녀들은 누구든지 로맨스소설의 그녀들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슬프다. 몸을 구르며 서로 얽히며 잊지않으리라 내지의 인간의 기억되고 싶은 욕망을 여지없이 강조하던 그녀들의 눈빛을 상상하면 그저 살을 섞고 욕을 하고 얼굴이 일그러지게 웃으며 농을 치는 길바닥의 여자, 혹은 더이상, 그리고 아직은 여자가 아니라는 지론속에 꽃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여자의 모습들이라고는 생각할수 없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그것이 뭔가 모양새가 좋지 못하고 삐뚤어져있어 안타깝더라도 그것은 분명 살아있음을 증명받고 싶은 하나의 숭고한 욕구일지도 모르기때문이다. 그 욕구...그 욕구야 말로 진정한 떨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저 서로가 이성의 몸으로 즐김을 위한 떨림이 아니라 함께 보듬어 주고 위로하는 서글픈, 그러나 사람냄새나는 떨림말이다. |
|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섬세한 묘사력, 탁월한 상상력, 유쾌한 진행, 과감한 문체를 지닌 작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히 읽게 된 마르시아스 심의 '떨림'. 한국에서도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다니 한동안 온몸이 '떨림'을 자제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혹자는 성에 대한 지나친 묘사가 거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떨림'이 담고 있는 성에 대한 탐닉은 저급하고 저질적인 것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예를 들어 고은주의 졸작 '여자의 계절'이 보여주는 성의 묘사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남녀의 성을 미학적인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떨림'의 세계에 과감히 뛰어들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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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겪은 자전적 성장소설의 징후가 아주 높다.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주인공이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안타깝지만 사랑스런 여자들을 만나
이런 저런 형태의 성애(性愛)를 겪으며 인생의 아픔을 이겨
나간다는 줄거리.
어떤 얘기는 진흙탕 속의 연꽃 같이 성스럽고
다른 얘기는 읽고 싶지 않을 정도의 낮 뜨거운 섹스향연이다.
물론이다.
이 책은 성인남녀들의 진한 성적호기심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킬 수
있는 포르노성이 진한 소설들이다. 그렇다고 문학적 순수성을 포기
한 것은 아니니 걱정마시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를 연상시키는 표제작 "딸기"
십 몇년 연상의 여자와 사귀지만 끝내는 헤어져야 하는 슬픈 "베개"
는 흥미롭지만 슬프다.
작가 마르시아스 심은 "심상대"의 또 다른 필명이다. 그는 이 작품 이후
다시 심상대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사족; 아주 오래전, "서울시 문학기행"이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이 분을
만났었다. 주로 사회를 보고 일행을 인솔하는 일을 했는데... 참 재밌는 얘기를
많이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가 박범신, 이경자, 김남일, 이남희, ... "매향"의 전성태 작가님을
만나는 행운까지 누렸었다. 청와대 뒷편에 다 쓰러져 가던 초가집으로 남아있던,
일제시대의 소설가 현진건이 살던 집도 구경했었다. 그 집 앞 마당에 둥글게 모여
들어 심상대선생의 얘기를 듣던 그 시간이 지금도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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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대로 들고 나간게 <떨림>이다.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심상대라는 우리 시대의 손꼽히는 재담가라는 작가의 글을 겪고 싶어서. 푸훗, 표지 뒤쪽에 있는 소개글이라도 잠깐 읽고 집어낼 걸 그랬다. 이 연작소설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성애소설이다. 중학교때 책상 서랍에 숨겨놓고 선생님 눈치 보며 읽던 <황홀한 사춘기="">나 고등학교때 남산도서관에서 숨어봤던, 가끔 가다 뜯겨나간 페이지도 있는 마광수 교수의 소설과 같은. 최근에도 성애소설을 잡은 기억이 난다. 영국 출장길, 갖고 간 책을 다 읽고 난 뒤 단순하고 쉬운 읽을거리를 위해 표지에 야한 사진이 붙어있는 책을 한권 샀다. 물론 읽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전문용어로 가득차 있어서 섬세한 묘사를 즐기는 맛에 읽기 마련인 성애소설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상대라는 작가의 이름값 때문인지, 연작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단순한 성애소설로 치부하기 어려운 매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에 읽어낸 걸 보면 그리 세심하게 읽지는 않은 듯 하지만, 적어도 한권을 끝내고픈 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듯하다. 그 견인력의 정체 가운데 하나는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기에 부담이 없는 재미에서부터 찾을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총각딱지를 떼는 시점부터 40을 목전에 둔 이혼남의 숫처녀 따먹기까지 20여년에 걸친 다양한 성 편력을 다룬 8편의 단편소설 모음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 편력을 쫓아가기만 하다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성애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섹스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략으로 일관되기 일쑤고,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이른바 '꼬심'의 과정도 대개의 경우 큰 몫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20년의 성 편력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애기는 무엇일까. 답은 표지의 제목에서 찾고 싶다. 대개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그 책에 실린 단편 가운데 하나의 제목을 따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떨림'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없다. '떨림'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근거다. 고등학생이 처음으로 수줍게 손을 내밀 때, 대학생이 되어 빰 맞을 각오를 하며 입술을 더듬을 때, 좀더 용기를 내서 가슴에 손을 뻗을 때의 떨림. 연인 앞에서 옷을 벗을 때의 떨림, 연인의 옷을 벗길 때의 떨림. 그 떨림이 느껴진다. 작가는 그러나 이 떨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유치함을 피함으로써, 작가 자신이 이 떨림을 직접 정의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냄으로써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엮어낸다. 독자는 다만 어렴풋이 작가의 외침을 느낄 뿐이다. 평론가들의 재주란, 이 책에 대해서도 수많은 성찬의 말을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야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까. 그 막연한 떨림을 느낀다면, 아니 하다못해 20년의 성 편력을 훔쳐보기만 해도 우리의 독서는 충분히 즐겁지 않을까.///황홀한>떨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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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 어디선가 읽은 것 같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쨌든 자신의 이름을 마르시아스 심이라고 개명한 심상대의 『떨림』은 떨림이라는 작품은 들어있지 않은 모두 여덟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작가가 느끼는 섹스 또는 그녀들에 대한 느낌을 응축시킨 떨림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 뿐이다. 그 남자가 사는 법,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도 크게 안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만약 여덟 개의 작품들 중 어느것 하나만 읽고 작품집 전체를 읽은 것처럼 행세를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덟 개의 작품들은 닮아 있고 그 닮음을 부러 피하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각각의 작품은 요약하기에도 편하다, 첫 작품 딸기는 어린 소녀와 그 소녀의 언니와의 정사, 두 번째 샌드위치는 하숙집 아주머니와의 정사,세 번째 나팔꽃은 리듬체조를 배우는 애림과의 정사, 네 번째 우산은 이십년전 풋사랑 옥희와의 이십년만의 정사, 다섯 번째 밀림은 유마담 그리고 포장마차 여인들과의 정사, 여섯 번째 피크닉은 러브호텔에서의 정사,일곱 번째는 노부인과의 정사, 여덟 번째 발찌는 수에게 실연당한 선아와의 정사. 만약 과거가 혼탁한 남자라면 이들 중 몇 개쯤 자신의 것으로 여겨도 좋은, 젖소부인 시리즈의 소설판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무지몽매한 섹스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석연찮은 점이 없지 않다. 동네의 약간 모자란 여자 아이를 윤간한 후"친구 어머니와 누나가 과부를 달래어 합의는 잘 이루어졌다.맨 처음 덮친 녀석이 오만원,나머지 네 명은 각각 삼만원씩,합계 십칠만원을 모아 친구 누나가 당시 시내에서 제일 큰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원피스 한벌을 사 그 계집애에게 주고서야 과부의 용서를 받아냈다고,우리는 나중에 결과를 들었다." 라고 패악스런 자신의 과거를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할때는 독자를 향해 어리숙하고 약삽하게 수작을 부리는 작가를 볼 수도 있다.
또 어느 때는 "..당신은 꼭 섹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나빠. 살짝 키스만 하든가,아니면 발목을 가만히 쥐어본다든가, 그것만 해도 여자는 다 느껴요. 그게 더 자극적일 수도 있단 말이지."라고 말하는 여인을 지켜볼때면 어설프게 도발당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더군다나 "짧은 시간에 서둘러 세 번이나 사정했기 때문에 배꼽 아래가 몽땅 녹아내린 것 같았다.예방주사를 맞은 듯 뻐근한 양쪽 엉덩짝을 주무르면서..."라는 대목을 읽을 때는 아, 그래서 그때 엉덩이 양쪽이 그렇게 뻐근한 것이었군, 하고 넌지시 웃음을 띠울 수도 있다.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성적감정 앞에서 성의 공유화란 역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라는 문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평화적 성관계란 힘든 것이었어, 라고 읊조리게 된다.
아울러 건방지게도 서정적인 포르노 문학에 도전해볼까라는 심상치 않고 허접한 상상을 가져보았던 내가 얼마나 불경스러운 놈이었는지를 깨닫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작가의 이 작품이 서정적인 포르노 문학에 근접하여 기가 꺾였다거나 그런 류는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였을 때 내가 쓴 포르노 문학이란 것이 (실은 난 그러한 포르노 문학이 성의 공유화 내지는 성을 통한 인류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내 기억의 한켠을 너무 섹시하게 물들임으로써 앞으로 도래할 그녀들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라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인 것도 아니며, 다만 여자를 한낱 육체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현재의 포르노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충분한 떨림이 없이 접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른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건 철저하게 여성주의적인 포르노 문학으로서 그것은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가치와는 차별되는 것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믿지는 것 없이 어울려 볼 수 있는, 그런 문학이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 너무 남성적이었던 듯... [인상깊은구절] ...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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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심상대(마르시아스-)에 대한 데이터라고는 전혀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책을 사고, 아무 생각없이 강의실 뒷편에 앉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런 식의 독서는 독특한 경험이었는데, 책 내용이 마음에 들 경우 꽤나 그 독특함이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변하곤 한다.
이 책을 읽은 누구는 얘기하기를, 너무 여성비하적인 내용이 많고 여성의 캐릭터가 어느정도 고정된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얘기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맞는 얘기다. 수많은, 자신을 스쳐지나간(진짜든 가짜든) 여자들 중에서 그 여자들만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 캐릭터의 배열만으로도 심상대는 얘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마 심상대가 여자였어도 좋아했을거다 ^^)
얘기는 오늘과 과거를 오가고,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한 현재의 연장, 떨림의 연속에 불과하다. 결국 그 사실을 매 순간마다 인식하며 신경과민이 되어 버리거나, 오입질을 위해 조기축구회를 조직하면서 그 사실을 잊거나 하는 방법 뿐이다. 많은 작가들은 신경과민이다.
그런데 '불생불멸' 이라지않나. 살지 않으면 멸하지도 않는다. 기쁨도 번뇌도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 단어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얼마나 생의 의지를 역설하고 있는가를, 마지막 단편 '발찌'에서는 마치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엔딩을(스타일이 안맞다면, 라스 폰 트리에나)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웃고 울고 만나고 헤어지고 밥을 먹고 섹스를 한다. 가장 극적인 욕망으로도 삶의 타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쩌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허탈함의 극치에서, 그런데,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아, 멋진 발걸음이다. 아름답다. 나팔꽃이 피고 발찌가 찰랑거린다. 가장 암담한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꽃이 핀다. 꽃잎이 떨린다. 왜.. 그럼에도 살아가고자 하는 당신의 의지가 빛나는 것인가? 저 너머 실존의 순간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나?
..알고싶지 않다. 그것들이 아니어도 좋고, 그 모두일지도 모른다. 그저 다가오는 떨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모를 떨림에 대한 가장 큰 환영이 될 것만 같으니까. 그는 떨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꽤나 가슴이 떨렸다. 자, 제목에도 점수를 줄 수 밖에. 이래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Fortune [인상깊은구절] "난 연실이의 음부에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아침'이라고. 그리고 연실이는 내 성기를 '희망'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어요. 그게 다였지. 우리는 깊은 밤 이슬에 젖은 백사장에서 섹스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내게 이야기를 했지. 이 담에 다른 남자랑 살더라도 절대 날 잊지 않겠다고. 다음날 대낮에 잠에서 깨어보니 연실이는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사라지고 없었어. 여름날의 나비처럼 내게로 날아와 잠깐 쉬다가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지. 그런데 그녀는 사라지기 전에 내 몸에 한 가지 흔적을 남겨두었더군. 수영팬티를 갈아 입으면서 보니까 성기에 뭔가 글자가 적혀 있는 거야. 밤새 술에 취해 늘어진 내 성기에 그녀가 볼펜으로 적은 글자였어. 불생불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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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대충 예상은 하고 책을 펴보았는데 역시 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8편의 성에 대한 연작 소설을 담고 있으며 이것들은 모두 하나하나 떨어진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고 모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쓰여 지고 있다.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성행위등 그에 관련하여 작가의 유려한 문장 기술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섬세한 자의식을 가지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여 감칠맛 나게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현실감이 풍부하며 구성도 탄탄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성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것은 다른면으로의 오해를 사기가 쉬운데 마르시아스 심은 육체의 탐닉을 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 뒤에 숨어있는 메세지를 위한 하나의 부산물로서 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웠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우선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 어떤 문고본 책갈피에 그 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의 몸에서 하나하나 훔친 불꽃털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듯이 내 소설 속에 그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 두려 했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다들 순백의 영혼을 지녔고, 그리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미로운 언어의 선율에 실어 노래하고 싶었다. 오늘의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나는 가슴 아픈 사연 하나를 꺼내 이곳에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청춘, 나의 방랑 |
| 성애를 다룬 소설은 그 속성상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성묘사에대한 반감이나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혀 야하다거나 성적인 자극을 주는 소설은 아닌거 같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경외를 느꼈다. 성을 행위 그이상으로 인간의 몸을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존재로 각인시키는 느낌이었다. 다른 작가가 쓴 성애를 다룬 소설보다 이소설이 더 끌렸던 것은 작가의 진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설이지만 꾸며놓은 실체가 아닌 내면적 감성을 성에 잘 대입시킨 소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담담하게 읽혀졌고 일고나서도 끝이 담백하다 느낌이 들었다. 한번 권하고 싶은 책! |
| 물론 이 소설은 성애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낭만적 공간도 한 손에 거머쥐었다. 낭만을 도입하지 않은 일부 마광수 교수의 소설이나 장정일의 소설은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성이라는 소재로 세상에 숨은 다른 얼굴을 꼬집으려 했다. 하지만 같은 성을 도입한 마르시아스 심은 낭만적 아름다움을 논하려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마르시아스 심의 여성편력 자랑기 라는 냉소만 던질 뿐 마씨나 장씨와 같은 혹평을 기울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미묘한 차이이다. 하지만 그 사회적 반응은 무척 다르게 다가온다. 적어도 마르시아스 심은 아름다운 성애소설 한 권을 써냈고, 누구는 철창 신세를 지고, 자신의 책이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았으니 말이다. 어떻게 써내느냐에 따라 사회의 반응이 판이하게 다른가를 볼 수 있는 한 부분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뒤편에 평론가 박철화 씨의 글을 참조해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교묘히 세상의 눈을 따돌리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르시아스="" 심이="" 여성과의="" 잠자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가="" 누구보다="" 여성들을="" 사랑하며,="" 그="" 사랑이="" 곧="" 이="" 세계와="" 생에="" 대한="" 사랑임을="" 절실하게="" 내세운="" 데서="" 나온="" 것이라고.......(중간생략)......작품은="" 살기="" 위해="" 여성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나’라는="" 인물을="" 보여줄="" 뿐이다.="">> 여성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많은 여성단체로부터 비판을 받던 마광수의 소설을 생각해보자. 그곳에서도 결코 이뤄져선 안 되는 교수와 제자간의 관계가 나온다. 그 관계를 낭만적 사랑으로 포장했다면 결코 그 소설은 그렇게 비판을 받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그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