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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미주리주의 오자크 호수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일을 맡는다. 사실 그의 계획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저리에 서서 현장 분위기를 좀 끄적댄 뒤 관객들 중 몇몇 사람들과 대충 이야기를 나누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연주자들의 뻔한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적다가 올 예정이었다. 밤이 되면 자신이 몰고 간 렌터카에서 몰래 술을 좀 마신 뒤 모닥불가에 둘러앉은 기도 그룹 사이에 끼어앉아 있다가 분위기를 좀 느끼고 나서, 비행기 타고 귀가, 통계 사항들을 좀 섞어 넣은 뒤 입금 확인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 취재는 그의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울기 시작한다. 이 여행을 장난처럼 생각하다니, 나는 얼마나 멍청이였던가부터 시작해 형편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하다면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글 '이 반석 위에서'를 읽어 보자.
이번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고,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글이다. 카트리나는 미국에서 기록된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폭풍해일을 만들어 냈는데, 파도 높이가 무려 9미터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거대한 해일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밀어닥쳤기 때문에 미시시피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그는 인근 초등학교에 마련된 적십자 대피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잠을 자다 깨어났을 때 2미터가 넘는 물이 집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는 사람부터, 바람이 휘몰아쳐 나무에 부딪히고, 주변에는 뱀들이 헤엄치고 있었다는 이도 있었으며, 대부분 자신이 곧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바로 '사라졌다'는 거였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책로들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미래는 강제로 뜯겨나갔고 거대한 공백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생생하게 현장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 세상의 진짜 마지막의 시작'을 그려낸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글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끈이론>에 수록된 다소 장황한 서문으로 처음 만났었다. 천재적 재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46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끈이론>에서 테니스 경기를 둘러싼 모든 철학적, 정치사회적, 심지어 수학적 맥락들을 깊이 쑤시고 건드리며 테니스의 시간을 경이로운 산문의 언어로 옮겨냈다. 그리고 그 독특한 에세이만큼이나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서문 또한 유려한 언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미국 매거진 저널리즘계에서는 이미 뛰어난 저술가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매체에 글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만난 책은 그 중 선별한 열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에세이라는 카테고리의 책 중에 이렇게 두툼한 분량의 작품이 있었나 싶은데, <펄프헤드>는 무려 564페이지에 달한다.
이 벽돌 에세이집에는 음악을 하는 형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감전되어 거의 죽을 뻔했던 일을 비롯해서, 19세기의 르네상스형 식물학자와 선사시대의 미시시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대중문화 소비 현상의 일면을 날카롭게 고찰하고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체험기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글은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고, 날카롭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루며 놀라운 세계를 보여준다.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방식의 글은 저널리즘 역사 속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뉴 저널리즘'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런 형식의 글을 우리 저널리즘 역사나 문학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이번에 출간된 <펄프헤드>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훌륭한 저널리즘이 갖춰야 할 덕목을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인디언 동굴에서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의 깊이 있는 이면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 불리는 뛰어난 저술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탁월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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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60 : 펄프헤드 Pulphead, 존 제러마이어 설리반 저, 202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및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위 그림은 초 현실주의 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의 대표작으로 제목부터가 재미있다. 마그리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의 인식 체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는데, 그 의도를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그림은 물리적으로 캔버스위에 물감 덩어리의 분포에 따른 어떤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물리적 실체를 보지 않고 그림이 표방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그것이다. 이는 보들리아르 Baudrillard 가 "시뮬라시옹"에서 실체에 대한 이미지의 전복(그리고 잠식) 으로 매우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지적한 바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문득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아마 다양한 이미지가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며, 오만가지 대답이 교차할 듯 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마천루, 넓디 넓어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는 광활한 대자연, 화려한 라스베가스나 마이애미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기회의 땅 등등... 기존에 우리가 가진 미국의 이미지는 크고 광활한 대륙, 전 세계의 중심인 패권의 나라,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대중 문화의 끝판왕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그들을 우리와 최근의 현대사(해방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를 함께한 "혈맹" 으로 간주하고, 늘 부러운 대상으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문득 나는 우리의 이 모습이 마치 큰 코끼리의 몸 여기저기를 부분적으로 만지며 느낀데로, 그 거대한 전체의 집합인 코끼리를 속단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든다. 누군가 미국인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설명해주지 않겠어?"라고 부탁하면, 전혀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올거라는 기대마져 하면서 말이다. 소위 "디커플링" 시대에 들어서 이제는 그들을 객관적으로 봐야할 상황이 자꾸 발생하니, 적어도 그들의 민낯은 고사하고 도데체 무어라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개하는지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에 특히 더 그러하다. 그리하여 다음의 질문을 또다시 던져본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John Jeremiah Sullivan 은 미국 중부 테네시 출신의 기자 겸 저널리스트이다. <GQ>, <하퍼스 매거진> 등을 비롯 유수의 잡지사에 기고를 하고, 현재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전속 필진으로 활동중인 작가이다. 본 작, 펄프헤드로 2011년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이후로 언급할 "뉴 저널리즘 New Journalism"으로 특징되는 에세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 뉴 저널리즘은 영미권의 잡지들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서 기사와 에세이의 절충적인 양식으로 자리잡은 장르이다. 일반적인 신문 기사들이 그렇듯이 시계와 같이 딱딱하고 정확한 사실 전달, 기자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제가 아니라, 마치 문학의 그것처럼 세부 표사의 극적인 디테일, 필자의 의도나 느낌을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 개입까지 한다. 따라서 논픽션의 기틀은 유지하되 소설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차용하여 독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마치 사건을 "목도하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본 작은 이러한 뉴 저널리즘의 현재적 대표작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한 그 특유의 문체를 경험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가진 미국의 이미지와 다른, 미국인 저자가 느끼는 진짜 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접해보기에 상당히 강점이 있다 하겠다.(그리고 책 말미에 출판사의 후기에서도 이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이미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를 모은 일종의 모음집 성격을 가지고 있고, 각 글들의 주제나 동기는 정말 제각각이지만 근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 한 가지는 일관되게 느껴진다. 그것은 현재 미국을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써, 동시대에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과 그 뿌리, 그리고 나아가는 여정을 그들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그 주안점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3. 인상적인 부분...
처음 이 책을 접하면 - 약간이나마 이 책에 대해 전달받은 사전 정보와 달리 - 다소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분명 에세이 집이라고는 하는데 소위 벽돌 두께의 큼지막한 분량이란! 더군다마 펼쳐든 목차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 미국 문화에 꽤 익숙하다고 평소 자부하던 나부터도 도데체 종잡을 수 없으니...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던진 내 질문을 스스로 찾아보리라는 의무감마져 동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그 제목들을 선정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다른 면을 접해본 기쁨이 나름 존재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인 그 외형과 달리 선정한 주제들은 꽤나 현시적이다. "트럼피즘"의 지지 기반이 된 미국 보수 복음주의의 반동을 연상케하는 대형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다룬 첫 장 "이 반석 위에서"로 서두를 시작한다.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상흔이 남은 태풍 "카트리나"의 기억들, 그 속에서 벌어진 일련의 재난 영화같은 일화들을 그 이후의 장에서 다룸으로써, 현재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분명히 큰 트라우마를 안겼음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더욱 노골적인 표현이 엿보이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는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는 면을 보여준다. 전前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매카시즘적인 공격들은 결국 "메디케어 Medicare"로 대표되는 복지정책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로 귀결되며, 이 준동의 밑바닥에는 "폭스 뉴스"로 대변되는 극우 레서시 미디어와 티파티 Tea-party 로 잘 알려진 보수 공화당을 지지하는 로비스트들을 등장시킨다. (심지어 이 자들이 자기 친척들이다.) 짐작컨데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가 느끼는 이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서 훗날 "미 의회 점거 폭동(2021)"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건 나만의 우려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진 과도한 황홀감도 어두움도 없다. 다만 현장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생생함이 묻어있다. 이러한 현장감이 내가 당신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의 흔적들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직도 대륙(유럽)에 대해서 느끼는 문화적, 역사적 열등감의 발로라고 느끼기에는 이미 오래전에 미국은 패권주의에 익숙해진 시점 아닌가. 오히려 그것보단 자신들의 고립된 대륙에서 아직도 그 기원에 대해 불분명한 고대의 문명들의 탐사와 재발견("이름 붙여지지 않은 동굴들")이라든지 "남부"로 대표되는 자연주의(때론 낭만주의)적 문학 운동의 마지막 장의 결말("미스터 라이틀:에세이),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부분이었지만 과소평가된 "블루스"의 알려지지 않은 흔적들과 그를 둘러싼 문화적 의의 평가와 보전에 대한 글("알려지지 않은 시인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서사를 외부 시선과 상관없이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렇게 갈망한 자기들만의 서사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결국 "전통"이란 것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형성되어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역량과 세대의 자세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느덧 우리가 기억할법한 헐리우드 고전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이제는 당당시 "고전 Classic"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오마쥬를 바치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밴드 출신의 저자 자신의 경험은 숨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록 문화를 포함한 MTV 시대의 성장, 그리고 미디어 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은 확실히 감정이 있다. 그 누가 우스스탁 페스티벌 Woodstock festival의 안티 테제로 크리스쳔 록 페스티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이 반석 위에서"). 게다가 "액슬로즈의 마지막 컴백"에서 엿보이는 노골적인 락에 대한 경배와 - 나는 이것이 편협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 "마이클"에서 나타나는 모타운 사운드를 넘어선 한 위대한 뮤지션의 최대 논쟁 지점 - 아동 성추행 혐의 - 는 지금도 명백히 유효한 미국 대중 문화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늘도 펍 Pub 에서 들려오는 각종 록 음악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하는 우리의 아이돌 그룹들의 뿌리에는 마이클 잭슨의 업적이 자연스레 녹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레게 음악의 시발점인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Bob Marley & the Wallers 의 바로 그 에윌러를 취재하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빌보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 음악의 한 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그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저자의 예리한 느낌이 살아서 숨쉬는 느낌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책은 너무나도 미국적인 에세이 집이고 그들의 현재 시각과 공감대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정도로 미국 문화에 대해 선지식이나 당대의 이해도가 없는 독자들에겐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로 비춰질 여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마치 지금 화면에 나오는 미국 현지의 스탠딩 코메디 쇼를 볼때,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부분에서 자막을 보아도 유머의 맥락을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책은 주석이나 해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엄밀성을 요구하는 학술서나 전문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도 아니다. 따라서 주석이나 해설글이 장황해지면, 자칫 가벼운듯한 느낌의 저자의 글들과 어우러지지 않을거라는 지점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의 우려를 반영한듯 최대한 주석을 자제한 편집이 보인다. - 그러므로 이 책을 보다 더 다양한 독자들과 조우하게 하려면, 기존의 방식보다는 "영상"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미디어에서 그 역활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또한 내가 보기에 미국의 현대사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고 믿는다. 1,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6.25 전쟁과 베트남전으로 우리 역사와도 조우하는 지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으로 대변되는 미국 건국 초기의 역사나 그들 이전의 원주민들에 의한 역사들은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알려져있지 않다. 그저 단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백인 중심"의 시각에서 다룬 일부만을 알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원 즈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독자들이 따라가기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구글 검색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소스가 존재하고, 접근성도 꽤 용이한 편이므로 보다 더 깊은 논의를 접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읽어나가면 어떨까하고 추천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구현하고 있는 "뉴 저널리즘" 문체의 한계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앞서 밝혔듯이, 이 글들은 뉴스 기사와 소설사이의 어딘가 지점을 점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낯선 글들이며 신선할수도 있지만, 거부감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미 부연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그들의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 쟝르가, 전혀 규모가 다르고 독자의 성향이 다르며, 언어가 다른 우리의 그것에서 얼마나 인상을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인듯 하다. -그리고 출판사도 이를 비판하는 문제 인식을 거론한다.- 그러나 나는 대중들에게 이 문제를 굳이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일뿐, 어떤 목적성이 들어갈 문제는 아니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꾸준히 이러한 글들을 소개한다면, 꽤나 가독성이 보장되는 이 쟝르의 글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미국을 바라보도록 하자. "신대륙, 신국가"라는 의지의 표상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고, "구대륙"의 모순들을 피해 모여든 이민자들의 다양성이 혼재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현재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기회의 땅"의 모습, 물질 문명의 극치를 선보이며, 그 이미지적 헤게모니를 장학한 거대 국가... 이 정도로 그동안 정리된 이미지를 뒤로 하고, 오로지 이 책에서의 느낌으로 재정의 해보는 것이다. 문자를 남기지 않아 지금도 그 신비함의 비밀을 간직한 원시적 대륙, 가장 현대적인 도시 문명과 가장 전원적인 자연 환경이 공존하는 드넓은 나라, 이제 비로소 자신들의 문화적 근간들 - 흑인음악, 남부문학, 헐리우드 영화 - 을 구축해낸 역동성의 나라, 그러나 아직도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와 복지국가간 견제가 팽배한 국가.. 이 정도가 아닐까?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오늘도 외신을 장식하는 그들의 뉴스를 좀더 이해해보면 어떨까... 그렇게도 자유 지향적이면서도 극도로 보수적인 그들의 내면, 패권주의를 보이지만 자신들의 대륙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의 뿌리,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 문화적 배경을 대중문화와 영상매체를 통해 완전히 자기들 것으로 재편한 그들의 모습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이 모순적인 부분들을 보다 더 잘 드러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낮은 단계의 시도일지라도 서서히 우리의 인식을 바꿔주는 좋은 계기를 꾸준히 제공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펄프헤드 #존제러마이아설리반 #고영범 #알마 #알마출판사 #에세이 #미국문화 #신간 #마이클잭슨 #건즈앤로지스 #리얼리티쇼 #미국남부문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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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그렇기는 하지만, 마이클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무런 가식 없이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이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들어보면 이때의 마이클은,... 마티 베셔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과 함께 살기> 같은 이야기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마이클이다. <제트>와 <에보니>를 읽고 나면 여러 인종의 아주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마이클 잭슨과 좋은 친구로 남아 있었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매력적이고 살아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_p182
_로비스트 사촌은 D.C의 분위기가 거칠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제시한 공공의료 방안이 동력을 얻고 있었다. 로비스트 사촌의 상사가 그날 아침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우리 망한 거 같은데”였다. .... 나는 내 사촌의 시도가 실패하길 바라면서, 그에게 행운을 빌어줬다._p284
<뉴욕 타임즈 매거진> 전속 필진이자 <파리 리뷰>의 남부 담당 편집자고 활동 중인,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열네 편 에세이집, <펄프헤드>를 정말 긴 호흡으로 읽었다. 책의 부제는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이 부제처럼 미국의 문화와 역사 등을 다루고 있었는데, 사실 읽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크리스천록 페스티벌, 감전되어 거의 죽다살아난 저자의 형인 록 뮤지션, 태풍 카트리나와 사람들, 리얼리티쇼와 출연자들, 마이클 잭슨,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 미국 의료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분위기, 기인 라피네스크, 미국 남동부 원주민들의 동굴 유적, 자메이카로 가서 만난 버니 웨일러, 그리고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간에 대한 동물들의 반격과 촬영지로 빌려준 자신의 집 이야기 까지, 다양한 소재들이였다.
모두 미국 유수의 잡지들에 수록되었던 에세이라고 한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설 같아서 읽기 시작할 때 여러번 도서장르를 확인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논픽션의 기본을 유지하되 다양한 소설적인 기법들을 채택한 이런 방식’의 글을 ‘뉴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소설기법들이 적용되어 있어서 일반 저널 보다 몰입하기 좋았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불편해지고 이해가 안되는 지점들로 잠깐 멈추기도 하다가... 그러다가 또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도 하고 같이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독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뜻밖에 마이클 잭슨과 오바마케어가 등장한 챕터가 인상적이였다. 마이클 잭슨의 곡들을 분석해놓은 부분에서는 알아가는 맛이, 여러 논란 중에 있었던 그에 대한 냉철한 저자의 의견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바마케어 파트에서는 이성적인 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정책반대자들이 씁쓸한 부분이였다. 저자에게 전적으로 공감했었다.
전체적으로 읽기에 난이도가 있는 책이여서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중에, 그리고 독서 후에도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이였고, 사회전반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픈 도서였다.
_우리에게 참인 건 자연에서도 참이다. 우리에게 의식이 있는 게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의 결과라면 자연에도 의식이 있다. 자연이 우리 안에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스스로를 관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_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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