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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먼저 우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이다. 또한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환공이 최초로 패업을 이루게 만든 재상이고, 그의 사상은 유가, 법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 사상의 효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었으며, 실질적으로 상가商家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상가는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거론되지는 않으나, 춘추전국시대는 물론 진한시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했다고 한다. 사마천이 [사기]에 [평준서]와 [화식열전]을 편제한 것이 그 증거라고 이 책의 역자는 말한다. [평준서]는 경제정책, [화식열전]은
경제경영 이론서에 해당되며, 이것은 현대의 경제이론이나 정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상가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관중은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꼽힌다.
제환공을 첫 패자로 만든 관중은, 한때 제환공의 정적이었으나 포숙아의 천거로 제나라의 재상이 된다. 그만큼
관중에게 있어 포숙아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관중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포숙아는 제환공에게
적극적으로 관중을 천거하고, 제환공은 한때 원수였던 관중을 받아들여 재상으로 삼으면서 패자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다. 이후 포숙아는 혼란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하니, 아마 관중과 제환공의 관계에서 포숙아가 가장 많은 실리를 취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관포지교의 고사에서 보듯 관중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수많은
좌절 속에서 관중의 현실 감각은 다듬어졌을 것이고, 그의 이러한 현실주의는 제환공을 도와 정치를 시작하면서
빛을 발했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춘추시대 초기로, 서주시대
읍제국가 형태로 유지되던 국가체제가 영토국가 형태로 이행되던 시기였다. 관념은 서주시대의 전통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현실은 이미 전국시대로 움직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과도기의 핵심, 전통과 변화의 교차점을 정확히 진단한 정치가가 바로 관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춘추시대의 패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슬로건 아래, 실질적인 중국의 지배자였다. 관중은 제환공이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하고, 그것은 경제적 토대를 확고히 해야 가능함을 간파했다. 또한 그것은 백성들의 경제적 삶을 안전하게 보호함과 동시에, 귀족들을 무마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는 행정조직과 군대편제를 통일시킴으로써, 백성들이야말로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기반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는 한편, 유화책으로 제후국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 냈다. 강압과 강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강자만이 약자에게 먼저 시혜를 베풀 수 있으며, 이런 시혜는 강압보다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것을 관중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중의 정책은 후대 진나라 상앙의 변법과 노자의 정치이상으로 상징되는 소국과민과도 일맥 상통한다. 즉
상앙이나 노자의 사상이 관중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관중사상의 핵심은 예禮, 의義, 염廉, 치恥로 대변되는 4유四維이다.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을, 의는 벼슬청탁을 행하지 않는 것을, 염은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치는 그릇된 것을 좇지 않는 것을 뜻하는 4유는 관중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요체로 삼은 부민부국富民富國을
위한 행동강령과도 같았다. 부민부국은 상가이론의 핵심이기도 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인 호리지성好利之性의 충돌과 이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유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예치禮治를 해법으로 제시했고, 법가는 법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그러나 관중은 당시 현실적이고 타당한 필선부민必先富民의
해법을 제시했다. 상가는 이를 위한 방략을 중농重農이
아닌 중상重商에서 찾았지만, 이념적인 지표에서는
유가와,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에서는 법가와 손을 잡기도 했다. 즉, 관중이 추구한 부국강병의 목표는 우선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어, 그들이
예의염치를 아는 문화대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중사상을 이은 것은 공자와 순자 그리고
한비라고 역자는 말한다. 비록 공자의 치국평천하 사상이 맹자와 주희에 의해 왜곡되어 수신제가修身齊家에 방점을 찍었지만, 유가와 법가의 근본사상이
관중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후세사람들은 관중을 유가와 법가의 실질적인 효시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관중이 주장한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을 실현하기 위한 계책의 보고寶庫라
불리는 [관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관자]는 춘추시대에서부터 전한 시대까지 8백년의 시간을 두고서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이를 현존하는 [관자]체제로
정비한 것은 전한 말기의 학자로 [전국책]을 저술한 유향이다. 그는 안팎으로 모은 864편의 관자를 중복되는 편수를 제거하고, 남은 86편을 새롭게 편제하면서
8개 부류로 나누었다고 한다. 경언經言, 외언外言, 내언內言, 단어短語, 구언區言, 잡어雜語, 해언解言, 경중輕重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나눈 8개
부류, 86편중 송대이후 11개편은 제목만 남고 내용은 사라졌으며, 따라서 현재 전하고 잇는 것은 75편 이라고 한다. 이 중 경언은 관중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며, 나머지는 관중을
추종하는 문인이나 그를 계승한 관자학파에서 지은 것이지만, 큰 틀에서
[관자]는 관중의 저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역자는 말한다. 마치 [논어]를 공자의
저술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런 [관자]가 오랫동안 잡가雜家로 분류되어 온 것은, 관중이 살았던 시기가 제자백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자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서라는 [관자]를 처음으로 완역하였다고 한다. 작금의 세계는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난세와 하등 다를 바도 없다. 단지 무력대신 경제로 그 전장을 옮겼을 뿐이다. 이러한 때, 필선부민의 해법을 제시하여 제환공을 패자覇者로 만든 관중의 사상을 읽는다는 것은 시의적절 하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그 누구도 국가의 방략을 필선부민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말이다. 더불어 우리가 중국 고전을 읽는 것은 단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더욱이 춘추전국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이 동양전래의 문화와 학문을 이해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시대는 백가쟁명의 시대이었고, 그것은 모든 동양사상의 요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언젠가 춘추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역사서들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학의 보고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동양문화의 정수는 인간학에 있고,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활짝 피웠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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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제대로 알기 - 줌인 때로는 줌아웃으로 관자의 기본 사상 관중은 치국평천하의 이론과 실체를 모두 아우른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그의 저서인 관자에는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이 녹아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어가 바로 ‘부민강국’이라는 점이다. 이는 부민부국을 치국평천하의 요채로 삼는 상가(商家)의 이론 핵심에 해당한다. (87쪽) 그러나 주희는 관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관자는 여러 사람의 말을 주워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관중은 제나라의 정사를 떠맡아 일이 매우 많았던 까닭에 한가한 때가 드물었다. 게다가 그는 사치에 빠져 결코 한가하게 공부하며 책을 지을 사람이 못되었다.”(203-204쪽)
주희는 왜 그런 평가를 내렸을까 그것은 주희가 성리학을 제창한 입장에서 그렇게 파악한 것이다. 그 반면 사마천은 관자의 원형에 해당하는 목민과 산고 및 경중 등을 읽은 사실을 거론하며, 그 내용이 매우 상세했다고 호평했다. 그러니 사마천은 관자를 관중의 저서로 파악한 것이다.
원래 관중이 살던 시기는 제자백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특정한 사상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치국평천하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할만했다. 실제로 관중은 그런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게 실용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의 계책이 관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나오는 근본 배경이다. (203쪽) 공자를 보다.
그래서 관자에서는 공자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이 보인다. 관자를 읽어가면서 그 안에 그런 생각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관자, 경연 <목민(牧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국다재즉원자래 (國多財則遠者來)’ 이 말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재부가 풍족하면 먼 곳의 사람이 찾아온다.’ (215쪽) 또 이런 말도 보인다. ‘고종기사욕, 즉원자자친 (故從其四欲, 則遠者自親)’ ‘백성이 바라는 네 가지 욕망을 따르면 먼 곳의 사람도 저로 다가와 친하게 되고’(218쪽)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백성이 원하는 ‘네 가지 욕망’이란 무엇일까 백성이 바라는 것은 일락, 부귀, 존안, 생육, 이렇게 네 가지이다. 그런 네 가지 백성의 욕망을 채워주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도 저절로 오게 된다는 이치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공자를 통해서도 이어진다. 논어 자로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근자열 원자래 (近者說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라. 먼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리라.’ -(논어, 자로 16장) 섭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정치란 다름 아니라, 가까이 있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알게 되면 먼 곳에 있는 사람들도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가까이에 있는 백성들을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무엇으로 백성을 기쁘게 할까? 백성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바로 관자가 말한 백성이 바라는 사욕(四欲)- 일락, 부귀, 존안, 생육 - 일 것이다. 그렇게 관자의 생각은 공자를 통해서 이어지고 있다. 논어 안연편을 살펴보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족병(足兵), 족식(足食), 민신(民信)이라 했다. (논어, 안연 7장) 이에 자공이 그 중에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냐고 하자 병(兵)이라 했고, 또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냐 묻자 식(食)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민신(民信)은 버릴 수 없는 것이라 해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백성이 정치를 신뢰하게 하는 것, 이것이 가까이 있는 백성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될 것이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을 몰려오게 하여 나라는 부강하게 될 것이고, 결국 관자가 추구하는 ‘부민강국’ 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관자의 사상은 공자에게 이어지고 있으니, 관자를 읽고 논어를 읽으면서 사상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순자를 보다 순자는 주어진 현실을 토대로 패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순자, <왕제>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관중은 밭과 들을 개간하고 창고를 충실하게 했다. 점차로 상을 줌으로써 인민을 선도하고 형벌을 엄격이 함으로써 인민들을 바로 잡았다.>(151쪽) 또 이런 말도 보인다. 예로써 다스리는 자는 왕자王者 바른 정사를 행하는 자는 패자覇者 민심을 얻는 자는 안자安者 백성을 착취하는 자는 망자亡者 가 된다. 왕자는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고 패자는 선비를 부유하게 만들고 안자는 대부를 부유하게 만들고 망자는 군주 개인의 창고를 부유하게 만든다. 역시 순자, <왕제> 편에 나오는 대목으로,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게 나라의 임무라고 말하는 관중의 사상이 거기에 녹아있는 것이다. 바른 해석을 찾아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지금의 시점에서 읽을 때에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그 해석을 얼마나 올바르게 하느냐이다, 올바른 해석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읽고 또 읽는다 할지라도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해석은 시시때때로 제대로 되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 책에서 바로 그런 해석의 문제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논어 안연편 7장의 해석이다. 거기에서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족병(足兵), 족식(足食), 민신(民信)이라 했다. 이어서 그 중에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냐고 하자 족병(足兵)이라 했고, 또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냐 묻자 족식(足食) 이라 답했다. 마지막 대목을 인용해본다. <먹을 것을 버려라.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새번역 논어, 이수태, 319쪽) ‘먹을 것을 버려라’는 말이 바로 거식(去食)이다.
<거식은 경제의 축소를 의미한다. 공자의 이러한 주장은 일견 ‘족식’에 해당하는 ‘실창’을 강조한 관중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성리학자들은 그 같이 해석하면서 관중이 말한 ‘실창족식을 통한 부민 - > 지례지법을 통한 부강’의 도식은 공자사상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103쪽) 이렇게 주장하는 성리학자들의 견해가 바로 잘못된 해석이다. 우리는 지금껏 그렇게 잘못된 해석을 마치 정설처럼 듣고 배워온 것이다. 그런 잘 못된 해석에 대하여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에서 공자가 민신을 가장 중요한 국가존립의 요건으로 거론한 것은 국가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족식’과 ‘족병’을 포기해도 좋다고 말한 게 아니다. 이런 오해가 빚어진 것은 자공이 외적의 침공으로 인해 성이 함락되는 등의 극단적인 위기상황을 전제로 한 질문한 점을 간과한 데 있다.> (103쪽) 그러니 자공이 처한 특수상황, 그래서 질문이 전제로 하고 있는 점을 무시한 채 그 질문을 일반화시켜 해석했으니, 그 해석이 잘 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해석의 문제점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면서, 그런 잘못된 해석을 지적한 이탁오를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나로서는 관중의 사상을 알아가는 기쁨과 함께 논어 해석에 있어서 잘 못된 점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런 게 바로 책읽는 기쁨이 아닐까 싶다. 결어: 이 책의 의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20세기 말까지 관학을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인 신동준이 1998년 박사학위로 제출한 논문이 사실상 최초의 본격적인 관학 연구에 해당한다. 지난 2006년 관자의 한글 완역본이 최초로 출간되었으나 여러 사람이 공역한 탓에 적잖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209쪽)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저자인 신동준 박사는 그동안 관중이란 인물을 발굴, 그의 존재가치를 면밀히 분석하여 학계에 알려오고 있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 사기 화식열전>이란 책이다. 그 책은 ‘부를 향해 줄달음질치는 인간의 본성을 꿴 사마천의 상가 이론에 초점을 맞춰 상가가 출현한 배경과 전개 과정 등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그런 점에서 관중과 자공, 사마천으로 이어지는 상가의 흐름을 21세기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최초의 해설서에 해당한다.’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거기에 바로 관중의 위치가 드러나고 있다. 여기 이 책에서도 관중의 가치를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 87쪽에서 98쪽 까지, 거기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해 놓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관중을 - 단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으로서가 아니라 - 상가(商家) 이론의 창시자인 관중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때로는 줌인으로, 때로는 줌아웃으로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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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준 역 [관자]를 읽기 시작하면서 관자의 기본 사상 관중은 치국평천하의 이론과 실체를 모두 아우른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그의 저서인 관자에는 제자백가의 모든 사상이 녹아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어가 바로 부민강국이라는 점이다. 이는 부민부국을 치국평천하의 요채로 삼는 상가(商家)의 이론 핵심에 해당한다. (87쪽) 그러나 주희는 관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이렇게 말한다. “관자는 여러 사람의 말을 주워 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관중은 제나라의 정사를 떠맡아 일이 매우 많았던 까닭에 한가한 때가 드물었다. 게다가 그는 사치에 빠져 결코 한가하게 공부하며 책을 지을 사람이 못되었다.”(203-204쪽) 주희는 왜 그런 평가를 내렸을까 그것은 주희가 성리학을 제창한 입장에서 그렇게 파악한 것이다. 그 반면 사마천은 관자의 원형에 해당하는 목민과 산고 및 경중 등을 읽은 사실을 거론하며 그 내용이 매우 상세했다고 호평했다. 그러니 사마천은 관자를 관중의 저서로 파악한 것이다. 원래 관중이 살던 시기는 제자 백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데 특정한 사상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치국평천하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할만했다. 실제로 관중은 그런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게 실용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의 계책이 관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나오는 근본 배경이다. (203쪽) 우리나라에서의 관자 - 이 책의 의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20세기 말까지 관학을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인 신동준이1998년 박사학위로 제출한 논문이 사실상 최초의 본격적인 관학 연구에 해당한다. 지난 2006년 관자의 한글 완역본이 최초로 출간되었으나 여러 사람이 공역한 탓에 적잖은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209쪽)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저자인 신동준 박사는 그동안 관중이란 인물을 발굴, 그의 존재가치를 면밀히 분석하여 학계에 알려오고 있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 『사기』 화식열전>이란 책이다. 그 책은 ‘부를 향해 줄달음질치는 인간의 본성을 꿴 사마천의 상가 이론에 초점을 맞춰 상가가 출현한 배경과 전개 과정 등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그런 점에서 관중과 자공, 사마천으로 이어지는 상가의 흐름을 21세기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최초의 해설서에 해당한다.’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거기에 바로 관중의 위치가 드러나고 있다. 여기 이 책에서도 관중의 가치를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이 책 87쪽에서 98쪽 까지, 거기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해 놓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비로소 관중을 - 단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으로서가 아니라- 상가(商家) 이론의 창시자인 관중을 알아가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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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관중/신동준/인간사랑]자금성 수뇌부는 지금 관자의 부국강병을 통찰 중...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을 최초의 중원의 패자로 만든 재상은 관중이었다. 그는 제갈공명과 함께 중국의 2대 재상으로 올랐던 인물이다. 더구나 제갈공명이 롤 모델로 삼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천재적인 전략가이자 정치가인 관중에 대한 공부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자금성의 수뇌부다. 자금성의 수뇌부는 겉으로는 공자의 덕치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관자의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을 통찰하며 G1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치국평천하에 초점을 맞춘 공자사상이 수신제가로 방점을 찍은 주희의 성리학에서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금 자금성의 수뇌부는 관자를 논어보다 더 열심히 읽으며 G1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이 G2로 올라선 배경 철학에도 『관자(菅子 )』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에 성공했던 배경에도 『관자(菅子 )』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깔려 있다고 한다. 관중은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에 해당한다. 공자가 제자들 앞에서 관중을 수시로 언급하며 그가 이룬 업적을 仁으로 풀이한 게 그렇다. (중략) 청조와 조선조의 패망은 『관자(菅子 )』의 키워드인 경세제민과 부국강병 이치를 무시 내지 폐기한 후과로 볼 수 있다. (중략) ‘난세에는 난세의 논리가 있다!‘는 간명하면서도 엄중한 이치를 통찰하는 데 있다. 그 해답이 바로 마키아벨 리가 군주론에서 역설한 ’군주민주주의‘이다. 그 효시가 바로 춘추시대 중엽 사상 최초로 패업을 이룬 관중이다. 필자가 본서를 펴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역자 서문 중에서 책에서는 관중이 등장하기 전의 혼란스런 제나라 상황, 관포지교의 유래부터 시작하고 있다. 멋진 우정의 대명사인 관포지교의 주인공은 관중과 포숙아다.
(관중)
(포숙아) 관포지교는 관중의 재와 포숙아의 덕의 결합이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중에도 서로 학문을 격려하면서 규와 소백의 스승으로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재주가 뛰어난 관중이 일을 벌여 곤혹을 치르면 포숙아가 나서서 변론을 해줄 정도로 쿵짝이 맞는 친구였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람을 다루는 일이 능숙한 관중의 잠재력을 알고 포숙아는 관중을 의도적으로 키워줬다. 더구나 제환공에게 관중을 천거한 이도 포숙아였다. 관중은 그런 포숙아를 향해 자신을 키워준 이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서로 끌어 주고 당겨주는 두 사람의 우정에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관중이 포숙아와 습봉과 함께 제나라의 정치를 가다듬었다. 군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화폐를 만들고, 제염과 광물제련 등의 이용후생의 조치를 하고, 빈궁한 자들을 구제하고, 능력있는 현사를 등용했다. (56쪽) 저자는 제환공과 관자의 만남을 명군과 현신의 만남인 수어지교로 설명한다. 책에서는 제환공을 가르치며 예의염치인 사유를 말하는 관중의 모습, 백성을 사랑한 다음에 법치와 부국강병을 논하라는 가르침, 법령을 정비하고, 빈곤한 자를 구제하고, 인구 증가, 혁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는 모습 등이 나와 있다.
(제나라의 화폐)
관중은 제환공에게 ‘부민⟶ 부국 ⟶강병 ⟶승적(勝敵)⟶ 정천하(正天下) ⟶문화대국 건설’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부국강병 방안도 제시한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8가지 방안과 하늘의 때를 알고 덤비는 패천하의 치밀한 전략까지 제안한다. 상업에 대해서도 관중은 개방적인 입장이다. 관중은 상가의 효시이기도 하다. 관중의 경제학은 치미경제학인데, 소비를 많이 하도록 하는 경제학이었고, 소비의 미덕, 부의 자연스런 분배,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의 노력 등을 그 시절에도 말하고 있었다니, 대단한 재상이다. 관중의 언행을 모아놓은 <관자>에는 토지개간, 수리시설 확충, 물자유통, 특산물인 소금과 수산물 활용법, 물가조절, 재정을 튼튼히 하는 법, 소비 강조 등 경제학 총서에 나오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기에 뒷 내용들이 궁금해진다. 정치와 경제를 하나로 녹인 관자, 가히 지금에도 통하는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의 논리다. 춘추전국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서인 관자의 논리가 지금도 통하기에 대단해 보인다. 40년 간 제나라의 환공의 책사가 되어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든 관중의 탁월한 정치경제적 안목이 녹아 있는 책, 부국강병의 논변들이 가득한 관자에 대한 역대 주석을 총망라한 국내 최초 의 책이라니, 곁에 두고 싶은 소중한 책이다.
지금도 주변국들의 치열한 경쟁 구도는 난세다. 춘추전국시대에 못지 않게 치열하다. 일본과 중국이 정치경제학의 동양의 고전인 『관자(菅子 )』에 집중하는 이유도 알려 주는 책이다. 백성을 바탕으로 하는 목민과 모두가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경세제민, 이웃 나라보다 강해지는 부국강병으로 제나라를 춘추시대 최고 강국으로 키운 관중의 정책들이 가득한 고전이기에, 읽을수록 더욱 귀중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오호~ 대단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