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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하우스』엄마는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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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맨처음 들어갔을때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첫 인사말이 달라진다. 불꺼진 집에 들어가기 싫듯, 집에 들어갔을때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을때 맨처음 묻는 말이 '누구 어디 있니?' 일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자주하는 말이 '엄마 어디 있니?' 라는 말이 아닐까. 저녁을 해야 할 시간, 엄마가 준비해주는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 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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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 맨처음 들어갔을때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첫 인사말이 달라진다. 불꺼진 집에 들어가기 싫듯, 집에 들어갔을때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을때 맨처음 묻는 말이 '누구 어디 있니?' 일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자주하는 말이 '엄마 어디 있니?' 라는 말이 아닐까. 저녁을 해야 할 시간, 엄마가 준비해주는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 그 모습이 없을때의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별다른 연락도 없었고, 어딘가 특별히 가야 할 이유도 없었을때. 더군다나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 훌쩍 지났다면? 이럴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가 갈만한 곳을 찾아가 봐야 할 것이다. 엄마가 차를 가지고 갔다면? 이웃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으로 가 차를 빌려타고 엄마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다가 평소와 다르게 얼굴을 파묻고 운전을 하는 엄마가 자신들이 타고 있는 차를 지나쳤다면 그대로 엄마 차의 뒷꽁무니를 따라가야 할 것이다. 엄마에게서는 휘발유 냄새가 났고, 얼굴은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부어있었고, 옷에도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에 빠진 얼굴 표정으로 엄마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행복했던 가정은 엄마가 겪은 일로 인해 침울해져 버렸다. 누구한테 당했는지 물어도 말을 잃은 엄마. 다른쪽으로 뒤돌아 누웠고,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은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엄마에게 폭행한 자를 찾기 위해서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엄마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가 기소되기를 바라지만 어디에서 당했는지 알지 못한 엄마때문에 아빠와 조는 애가 타기만 하다. 판사인 아버지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버지가 판사라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원주민과 백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경계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났을때 우리가 하는 생각 첫번째가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할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하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엔 일어난 일이었고 돌이킬 수가 없다. 조의 엄마를 폭행한 사람을 알기만 하다면 그를 죽이고 말거라고,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죽였거나 폭행을 가했다면 그 일을 저지른 자를 찾아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지만 법이 그에게 죗값을 묻기에 자신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인데, 만약 법이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자신들이라도 어떻게 해보고 싶은게 사람의 심정일 것이다.

 

 

 

 

 

정의는 있을 거야. 정의가 도와줄 거야. 지금 당신은 정의는 아무 도움 안 된다고,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 방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사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의가 도와줄 거야.  (235페이지) 

 

  법에 대한 정의. 정의는 있을 거라고 믿지만, 그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상대적 박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가는 북미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법적 관할권 문제에 대해 쓰고 싶었고,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로 하여금 물었다. 열세 살의 조가 생각하는 정의는 아버지가 말한 정의와 달랐다. 판사이면서 그 어떤 것도 할수 없는 아버지 보다는 누군가라도, 아니면 직접 자신이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엄마에 대한 사건으로 어린시절은 사라져 버렸고, 엄마와의 평온했던 감정도 조금쯤은 물러나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나름대로 엄마의 사건을 유추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라운드 하우스 주변을 뒤지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엄마 아빠에게 숨기고 싶었던 일들까지도 인디언 특유의 정령을 보는 것 때문에 숨길 수 없었다. 그럼으로써 조는 성장한다. 조가 성장하는데 많은 것을 이루는 부분이 친구들과의 관계도 있었다. 조에게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 캐피가 '스타트렉'을 좋아해 '스타트렉'에서의 내용과 빗대어 사건을 해결하고 생각하고자 하는 십대 특유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루이스 어드리크의 작품 『그림자 밟기』를 읽었기에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작품을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법적 적용에 대한 문제가 이 작품의 배경인 1988년도와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때의 역사, 그 시절의 정의에 대한 것을 알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마 작가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의 전편 격인 『비둘기 재앙』의 이야기도 그래서 궁금하다.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그들에게 말살 정책을 펴기도 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책을 읽으며 우리의 시선이 한 곳에 편향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뜻이 아니었을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5.04.09. 신고 공감 7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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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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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엄마가 강간당하는' 사건을 겪은 소년이 그 사건 이후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와 대화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그러면서 한 남자로서, 인디언의 후예로서 어떻게 성장해나가는가를 그리고 있는 아주 특별한 성장소설이다. 화자는 이미 소년 시절의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 안정된 어른이 된 상태여서, 비록 소설이 전개되며 나타나는 소년의 돌발스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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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아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엄마가 강간당하는' 사건을 겪은 소년이 그 사건 이후 어떤 생각을 하고, 누구와 대화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그러면서 한 남자로서, 인디언의 후예로서 어떻게 성장해나가는가를 그리고 있는 아주 특별한 성장소설이다. 화자는 이미 소년 시절의 폭풍 같은 시간을 지나 안정된 어른이 된 상태여서, 비록 소설이 전개되며 나타나는 소년의 돌발스러움이 불안하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안도감을 느낀다.

 

소년과 소년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스타트렉과 스타워즈 속의 대사들이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 소설을 소년스럽게 만들고 소설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가 된다. 소제목들이 스타트렉의 에피소드 제목이라는 단서가 책의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발견해내고 친절하게 해설을 덧붙인 번역자의 탐구적이고 창의적인 번역 정신도 감동적이다.

 

이 소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비둘기 재앙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루이스 어드리크는 참으로 훌륭한 작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0 2015.03.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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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물어볼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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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가는 대로 펼쳐 읽는데, 작품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우연이 신기하고 기쁘다. 상당히 묵직한 분위기의 전작, <비둘기 재앙>의 복잡한 구도를 경험하고 나니, 이 책은 스핀오프처럼 단출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성이나 상처의 깊이가 얕지는 않다. 선주민으로 태어나 이주민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이렇게나 참혹하고 억울하고 힘든 역사여야 했을까. 인간이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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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가는 대로 펼쳐 읽는데, 작품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우연이 신기하고 기쁘다. 상당히 묵직한 분위기의 전작, <비둘기 재앙의 복잡한 구도를 경험하고 나니, 이 책은 스핀오프처럼 단출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사건의 심각성이나 상처의 깊이가 얕지는 않다. 선주민으로 태어나 이주민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이렇게나 참혹하고 억울하고 힘든 역사여야 했을까. 인간이란 종과 문명이란 허상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고 싶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가 라운드 하우스다. 선주민에게 신성한 장소라는 점에서 이주민들의 가학과 폭력은 일말의 수치도 주저도 없는 구역질나는 짓이라는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혐오에 빠질 듯해 잠시 숨을 고른다.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하는 것이 당연한 여러 입증 절차와 빠른 해결이 어려운 여러 부차적 조건들에 한숨이 난다. 이따위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 따위가 한 인간에게 가해진 저열한 범죄를 밝히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한가.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폭로 대신 침묵을 택했다. 보호구역 내에서 저지른 범죄일 경우 원주민이 아니라면 처벌할 형사 관할권이 없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지점을 알지 못하면, 연방법, 주법, 부족법 중 적용한 법조차 알 수 없다.

 

간판은 법치국가인데 그런 메뉴가 없는 지경, 정의를 바라는 이는 이제 인간사회를 포기하고 하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피해자는 어머니고 아들인 조는 이제 열 세 살이다. 판사인 남편과 아버지도 무력하다. 요즘 유행하는 사적복수가 답일까.

 

정의는 있을 거야. 정의가 도와줄 거야. 지금 당신은 정의는 아무 도움 안 된다고,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 방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사랑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의가 도와줄 거야.”

 

장애를 비하하고 차별하는 표현인지도 모른 채, 무엇을 살까 하는 고민에 결정 장애니 선택 장애니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없으면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모를, 정의와 자유에 대한 고민을 더 깊고 넓게 진지하게 해야 되지 않을까.

 

잘 모르던 사회지만 어느 사회나 닮아 있는 약자들이 당하는 이야기에 화가 너무 많이 난다. 손가락이 아니라 부글거리는 뇌가 타이핑을 하는 기분이다. 이런 꼴 안 보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되돌릴 수도 없다. 아무리 간절하다해도. 그래서 죄를 물어 처벌을 하고,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하고, 상처를 계속 치료해야 한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방법이 유일하다.

 

책을 덮으며 할 수 있는 건, 1988년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고작이다.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는 한,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누군가의 차분한 의견처럼, 동물원이 있어 당장은 보호받는 동물도 있으니까.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고 하니까.

 

읽고 나서 다시 본 표지 일러스트에 울음이 터질 것 같다.

 

 

 

 

k****k 2023.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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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폭력성에 관한 문제들, 《라운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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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하우스》. 이 책의 제목만 따로 떼어 생각해보았을 때 그 내용을 종잡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의 표지를 먼저 보면 웬 여인이 홀로 웅크리고 누워 있다. 주변에는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이 둘러쳐져 있으며 빛이 퍼지며 내려오는 중앙에 십자가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종교와 예수, 희생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운드 하우스'란 인디언들의 종교를 상징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폭력성에 관한 문제들, 《라운드 하우스》" 내용보기

 《라운드 하우스》. 이 책의 제목만 따로 떼어 생각해보았을 때 그 내용을 종잡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책의 표지를 먼저 보면 웬 여인이 홀로 웅크리고 누워 있다. 주변에는 가시나무와 가시덤불이 둘러쳐져 있으며 빛이 퍼지며 내려오는 중앙에 십자가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종교와 예수, 희생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운드 하우스'란 인디언들의 종교를 상징화한 건물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샤머니즘적이고 토템을 숭배하며 애니미즘을 보이기도 하는 그 원시성은 생명력이 있고 신비로우며 슬픈 비극을 안고 있다. 라운드 하우스를 지은 건 무슘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 '나나푸시'이다. 나나푸시의 이야기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나나푸시의 아버지가 나나푸시의 어머니인 아키를 위인디구(다른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 인디언의 법칙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죽여야 한다)로 몰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나나푸시에게 그의 어머니를 죽이도록 시킨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아샤르 케말의 소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가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소년이 어머니를 죽이게 하려고 속살거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참혹하고 잔인하지만 부족의 규칙에 따라 자행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아키는 그 비극 가운데서 자연의 도움을 받아 현명하게 대처한다. 가까스로 위험에 벗어난 아키는 그의 아들 나나푸시에게 늙은 버펄로 여인을 따라가라고 당부하고, 늙은 버펄로 여인은 죽음으로 그들의 부족에게 생명을 준다. 그리고 늙은 버펄로 여인의 지혜를 얻은 나나푸시는 그 후에 라운드 하우스를 지어 억울한 사람을 위인디구로 몰아 살해하는 부당한 일이 없도록 올바른 방법을 따를 수 있는 신성한 장소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신성한 장소에서 열 세살 소년 조의 어머니가 강간과 폭력을 당했다. 따뜻하고 애정넘치는 자애로운 어머니는 사라졌다. 그의 유년의 행복이 타인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가 버리게 된 것이었다. 조의 아버지는 판사였는데, 아주 작은 사건들부터 공정한 법의 규칙을 따라 판결하면서 인디언의 보호구역에서 저질러진 범죄를 인종에 상관없이 똑같이 정당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자신의 아내의 강간 사건의 가해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는 열 세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며 메말라가고 버석거리는 어머니를 지켜보고, 아내의 피해 사실에 분노하며 괴로워하지만 무력한 아버지도 본다. 게다가 가해자를 우연히 식료품점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그에게 달려들었던 아버지가 갑작스런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되었을 때도 조는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 어리고 미성숙한 나이의 소년이었지만 조는 더 이상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를 보호하고 감싸던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부서져내렸으며, 자신의 세계를 관리하던 두 사람의 무력함을 보면서 그들의 무능력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촉발된 비극은 점차 불어나게 된다. 조의 단짝인 캐피와 함께 스타트렉의 흉내를 내기도 하고, 함께 어울려 지내며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깊어지는 사건의 흐름은 조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어린 나이로 취급하여 사건으로부터 그를 소외시키려는 어른들의 행동이 조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속에서 오직 캐피만을 의지하며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고 실행에 옮기는데 도움을 받는다. 그들의 우정은 견고하고 매우 깊었으며 그 어떤 타인들과의 유대관계보다 끈끈했다. 오직 조가 의지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 되었다.


 저자 루이스 어드리크는 『라운드 하우스』의 등장인물들을 연작 소설인 『비둘기 재앙』에서 끌어왔다. 물론 연작 소설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나 또한 『라운드 하우스』를 『비둘기 재앙』보다 먼저 읽게 되었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비둘기 재앙』도 북미 원주민의 가슴 아픈 현대사를 여자아이 '에블리나'를 화자로 삼아 풀어간다 하니 그 무게감이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꼭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인디언에 관한 이야기이자, 인디언이 겪고 있는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서 같기도 했다. 매우 충격적인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제시하며 더욱 더 그 비극과 부조리함을 배가시킨다. 꽤 문명화되었고 수많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족에 대한 차별과 그 야만적인 폭력성은 여전히 이 세계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세요, 참혹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꽤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당신들은 그들을 '바깥의 사람들'로 규정하고 난 후,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들을 박탈하지 않았습니까? 이어지는 사건들로부터 그 부당함을 발견할 수 있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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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중 어느 한쪽만 아주 멀리 가게 두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나는 알았다.

478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그곳에 서지 않았다.우리의 작은 영원 속으로 끈질기게 이어질 슬픔의 물결 속에서 그냥 그곳을 스쳐지나갔다. 우리는 그저 나아갔다

 시골의 정감 어린 사람들이 있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때로 등장인물들의 위트 넘치는 대사에 웃음짓기도 하고, 더없이 인간적이고 그렇기에 인간적인 본성을 떨쳐낼 수 없는 우스꽝스런 몸짓을 쓰게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주 슬픈 소설이다. 한 소년이 유년기의 세계로부터 박탈당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화자인 1인칭 주인공 자신의 시선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 슬픔은 배가되며,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한 소설 속 허구적인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현실의 문제를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더 큰 울림을 주었던 책이었다.

 

p****p 2015.0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