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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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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에 노자하면 무위자연을,공자하면 인, 의, 예, 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이러한 노자와 공자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어떤 일들이 오고갈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분먕한 것은 서로가 이상향이 달랐기에많은 말싸움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봅니다.하지만 단순한 말싸움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두 성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과연 무위소유욕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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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에 노자하면 무위자연을,

공자하면 인, 의, 예, 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자와 공자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일들이 오고갈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분먕한 것은 서로가 이상향이 달랐기에

많은 말싸움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봅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싸움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

두 성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과연 무위소유욕을 주장하던 노자와

덕을 강조하던 유가사상의 시초자 공자가 만남을 통해

어떻게 상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행한 바를 따르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굽히면 도리어 온전할 수 있다.'는 도리가 어찌 빈말이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이란 고로 윗 사람 부터 아랫 사람을 공경하고 존대하면

자연스레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공손히 대하고

존경을 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먼저 잘대해주는 자신이 된다면,

자연스레 주위에서 많은 영향을 받게되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자도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도리는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느 선에서 노자와 공자는 같은 뿌리에 두고이야기 하지만

그 자세한 면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도자가 덕으로 다스리면, 마치 북극성 주변에 수많은 별들이 위치하듯이

주변의 사람들이 몰려와 그를 지지하고 따르게 됩니다."

"하늘은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기 때문에 누구와 친하지도

그렇다고 소원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이롭다고도

또는 해가 된다고도 할 수 없으며, 무조건 귀중하다고 볼 수도

천박하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세상이 모두 수긍하고 따르게 되오."

 

공자는 덕을 강조하였는데 인과 마찬가지로

먼저 자신이 도리를 다 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알고 따르며,

리더가 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휘어 잡을수 있는 방법을 공자가 말하고 있는 9개의 덕대로

우리의 삶을 따른다면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

보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반면에 노자는 어떠한 것에 집중하여 하려하기 보다는

자연의 순리대로 세상이 하라는 대로 쫒으면서

살다보면 그 해답이 나올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성현이 쫒고 있는 이상향은 같지만

그 과정이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s****s 2018.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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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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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답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묻기도 한다. 밑줄을 좍좍 그으며 철학책을 독파하고, 유명 인문학자의 강연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렇다고 길이 훤히 보이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벚꽃, 개나리가 활짝 핀 4월에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책 한권을 읽었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라는 책이다.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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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답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묻기도 한다. 밑줄을 좍좍 그으며 철학책을 독파하고, 유명 인문학자의 강연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렇다고 길이 훤히 보이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벚꽃, 개나리가 활짝 핀 4월에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책 한권을 읽었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라는 책이다.

 

노자는 위대한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도가 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런가 하면 공자 또한 당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요 유교학파의 창시자다. 이들 두 사상가는 춘추전국시대의 혜성 같은 인물들로 등장하여 각기 태평천국을 위한 도를 가르쳤다. 노자가 무위자연에 입각한 무위의 정치를 역설했다면, 공자는 인의예지 사상에 입각하여 도의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 책은 중문학자인 안성재 인천대 교육대학원 교수가 노자와 공자의 사상이 대치된다는 기존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노자와 공자 모두 법치(法治)보다는 덕치(德治)를 중요하게 여겼고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노자가 이상향인 대동(大同)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무위자연의 통치법을 강조했다면, 춘추시대의 혼란기에 살았던 공자는 일종의 과도기인 소강(小康)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의예악(仁義禮樂)을 중시한 것이 차이라고 안 교수는 풀이했다. 선배 노자가 원론주의자라면, 후배 공자는 수정론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고전은 확실히 어려운 분야이지만, 노자와 공자의 사상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쉽게 대화형식으로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것이 같은지를 객관적으로 다룬다. 특히 열 하룻날의 대화라는 형식을 가져와 좀 더 친숙하게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비교하므로 현대의 우리처럼 혼란기에 살았던 노자와 공자의 대화에 참여하다 보면 우리에게도 그들이 고민했던 선택의 기로가 놓이고 현실 세계 참여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모두 열한 가지 주제로 나누어 토론 형식으로 전개하였다. 먼저, 노자가 추구한 대동사회와 공자가 회복하고자 노력한 소강사회의 개념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이어서 대동사회를 이끈 성인과 소강 사회를 다스린 군자에 대해 상호 비교하였으며, 무위자연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러한 무위자연의 정치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한다. 또한 날은 중()과 화()라는 덕의 양대 구성요소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알아본다. 중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태도를 일컫고 화란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함께하려는 조화로운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중과 화는 덕을 행하기 위한 양대 실천 강령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노자가 말하는 지도자의 세 가지 보물에 대해 이야기 한다. 노자는 검소함, 자애로움, 겸손함이다. 이는 중과 화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공자 역시 이 세 가지를 중요시 여겼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고전은 모두 오래된 과거 문헌이지만 고전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는 생각의 창고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자와 공자가 태어난 역사적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 안성재 저 / 어문학사 / 2015.02.06.

k*****6 2015.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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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에 노자하면 무위자연을, 공자하면 인, 의, 예, 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자와 공자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일들이 오고갈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분먕한 것은 서로가 이상향이 달랐기에 많은 말싸움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봅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싸움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 두 성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내용보기

 

 

우리는 학창시절에 노자하면 무위자연을,

공자하면 인, 의, 예, 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자와 공자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일들이 오고갈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분먕한 것은 서로가 이상향이 달랐기에

많은 말싸움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봅니다.

하지만 단순한 말싸움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접근하려는

두 성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과연 무위소유욕을 주장하던 노자와

덕을 강조하던 유가사상의 시초자 공자가 만남을 통해

어떻게 상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행한 바를 따르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굽히면 도리어 온전할 수 있다.'는 도리가 어찌 빈말이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이란 고로 윗 사람 부터 아랫 사람을 공경하고 존대하면

자연스레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공손히 대하고

존경을 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먼저 잘대해주는 자신이 된다면,

자연스레 주위에서 많은 영향을 받게되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자도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도리는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느 선에서 노자와 공자는 같은 뿌리에 두고이야기 하지만

그 자세한 면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행한 바를 따르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굽히면 도리어 온전할 수 있다.'는 도리가 어찌 빈말이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이란 고로 윗 사람 부터 아랫 사람을 공경하고 존대하면

자연스레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공손히 대하고

존경을 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먼저 잘대해주는 자신이 된다면,

자연스레 주위에서 많은 영향을 받게되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자도 마찬가지로 옛 사람들의 도리는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느 선에서 노자와 공자는 같은 뿌리에 두고이야기 하지만

그 자세한 면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s****s 2015.04.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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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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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고전을 찾아서 읽으려하고 기회가 된다면 강좌도 듣고자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방에 살다보니 이런 기회도 자주 없거니와 운전을 못하는 나로서는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사하게 얼마 전에도 도서관에서 공자에 관한 특강을 개최했었다. 2시간 강좌로 끝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책에서 그저 활자로만 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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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고전을 찾아서 읽으려하고 기회가 된다면 강좌도 듣고자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방에 살다보니 이런 기회도 자주 없거니와 운전을 못하는 나로서는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사하게 얼마 전에도 도서관에서 공자에 관한 특강을 개최했었다. 2시간 강좌로 끝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책에서 그저 활자로만 읽었을때와 사뭇 다른 시각을 갖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고 고전이나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었기에 이런 기회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욕심을 안고 돌아왔었다.

고전은 여전히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고맙게도 저자는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듯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다가가가기 쉽도록 대화형식으로 집필해주었다.

노자와 공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알려주고자하는 바를 총 11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이어지는 대화는 열하룻동안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중과 화- 덕의 양대 구성요소'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과 '지도자의 세 가지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고민에 대해 한 발짝 물러서서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것 같았다. .

문명의 발달, 첨단 기기의 발명으로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고 바쁘게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다. 손 안의 기기로 온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물론 업무 처리도 할 수 있는 지금,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굳이 수 천년 전의 고전에 관심을 갖고 찾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춘추전국시대를 살아야했던 그때나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지금이나 우리들이 꿈꾸는 것은 행복과 평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가야할 세상에서 노자와 공자처럼 현명하게 함께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그들의 대화를 읽고 또 읽어보려한다.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덕을 닦아야 하는데, 이 덕을 닦기 위해서는 그 구성요소가 되는 두가지 즉 중과 화를 먼저 실천해야만 하오. 중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고, 화는 중을 바탕으로 나아가 양쪽의 모순을 없애고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니. 즉 먼저 중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오.-216

 

 

k*****m 2015.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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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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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열하룻날의 대화 어문학사 안성재 지음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것 같지만 어찌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성을 위하는마음이 같다고 해야할까? 노자와 공자의 선택은 달랐지만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하여 배척하고 무시하는것은 옳지 않다. 그럴수록 사람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비판하려고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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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열하룻날의 대화

어문학사

안성재 지음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것 같지만 어찌보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같다고 해야할까? 노자와 공자의 선택은 달랐지만 말이다. 사람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하여 배척하고

무시하는것은 옳지 않다. 그럴수록 사람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비판하려고 듣지 말고

귀 기울여 듣고 나의 점과 동일한것은 무엇인지 상이한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루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열하룻동안의 대화를 보면사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이렇게 차분히 들어주고 질문하면서 말할수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 될까 생각해본다. 진정한 경청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자신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할려고

자신의 뜻만 옳다고 내세우고 있는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듣는것만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오해를

풀수 있다.

 

필자는 말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다. 자신의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허물을 들어내어 수정할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신 분이라서 더 마음이 간다.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여 구하면, 비록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못해도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기를 배운

후에 시집가는 이는 있지 아니하다"

 

 

 

성인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지만 스스로 도를 깨닫고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이기에 노자는 성인의
행적을 소개학도 알리려 노력했다. 반면 군자는 성인의 도를 배워서 실천하려고 노력한 지도자이기에 공자는
군자 양성에 주력한 것이다.
노자-성인은 나라가 수모를 당했을때 모두 짊어져야 임금이라 할수 있고, 나라에 재난이 발생했을때 오직
백성들을 생각해야 그를 지도자라 인정한다고 했다.
공자-군자는 선한것과 옳은 것을 지키는 것이 천명이니 순리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

 

덕은 타인에게 관대하지만 자신에게 엄격한것을 뜻한다. 세가지덕을 다스리면 집안을 다스리고 여섯가지의
덕을 다스리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아홉가지(구덕-관이율,유이립,원이공,치이경,오이의,직이온,간이염,
강이실,강이의) 모두를 다스리면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다.
노자-타인의 실수는 관대하지만 자신의 실수는 엄격하게 따짐으로써 허물을 고치려는 모습이 진정한 지도자.
공자-다섯가지(헤이불비,노이불원,욕이불탐,태이불교,위이불맹) 좋은 일을 숭상함으로서 정치에 종사하면

좋은 지도자.

 

소강사회 통치의 틀은 크게 크게 내용, 인과의가 있고 형식, 예와 악이 있다. 공자는 도의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서 명분을 구체화 시킨다.

노자-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년 효와 자가 생겨나고, 가정이 화목하면 효와 자가 필요없다. 자연스러운 조화가

바로 대동사회의 통치이념.

공자-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진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애써 노력하여 진실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저는 사람의 도를 추구하는 소강사회로의 복귀를 바라고 있다.

 

노자와 공자가 열하룻날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상을 이야기 하는데 저는 외국어인줄 알았다.
개인적으로 노자에 대한 책도 읽었고 공자에 대한 책을 읽었다. 그런 나의 지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만큼
너무나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다.
동양철학 전문가 안성재 교수님이 쓰신 이책은 가볍게 주부나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다소
난해하며 어렵다. 노자와 공자의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그리고 그 시대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어렵다.
나름 친숙하게 쓰려고 대화의 형식을 빌려왔고 길지도 않은 열하룻날의 이야기지만 나의 기준에서는 백스물
하루를 대화를 해도 알아들을만 말까이다.

k*****7 2015.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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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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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인류의 사상사적 흐름에서 각 시대에 제기되었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양철학의 사상적 출발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제자백가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로부터 2500여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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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것인가 물러설 것인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인류의 사상사적 흐름에서 각 시대에 제기되었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양철학의 사상적 출발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제자백가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로부터 2500여 년 전에 시작된 문제제기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고작 그 문구의 해석에 그치거나 그 해석의 올바름에 주목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렇더라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에 따른 사람들에게 당면했던 문제를 풀어가고자 제기되었던 각종 사상은 인류, 특히 동양사회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인정한다고 해도 동양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철학자와 사상가들에 의해 노자와 공자의 사상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두 사상에 대한 비교분석 또한 수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안성재의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와 같은 구성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는 노자와 공자의 핵심사상 열 한 가지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해가고 있다. 이 확인해 가는 형식이 두 사상가의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 마치 대화의 현장중개를 보는 것처럼 이끌어가고 있다.

 

안성재가 주목한 두 사상가의 핵심 사상의 키워드는 대동사회와 소강사회’, ‘성인과 군자’, ‘무위자연(無爲自然)’, ‘()’, ‘()’, ‘()과 화()’, ‘삼보(三寶)’, ‘()’, ‘인의예악(仁義禮樂)’를 비롯하여 변치 않고 실천하는 태도와 올곧음, 지혜로움과 올바름, 신중함과 무력을 포함한 강압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태도나아가고 물러서는선택의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어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반갑다. 앞의 열 가지의 주제를 통해 마지막에 제기하는 나아가고 물러섬의 선택에 관한 것으로 모아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나라에 도가 있으면 머무르면서 지도자를 올바른 길로 보필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세상을 등지고 유유자적하라는 당시의 불문율에 대해 보여준 두 사상가의 태도가 여러 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노자는 도가 없는 세상을 등지고 유유자적하는 선택을 했지만, 공자는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남아 세상을 바꾸려 했던 차이가 두 사사의 핵심적 차이로 나타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현대사회에 와서 노자의 사상이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표면적인 이유는 노자의 무위자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현대인들의 선택은 어디에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할까? 공자처럼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도자가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하지 않을까? 선택의 몫은 개인에게 달렸다고 하더라도 시대정신에 부응해야할 의무 또한 있음을 알아야 한다.

m*****8 2015.03.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