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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을 믿는다. 그러나 신을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신을 자신이 안다는 독단에 기초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계에 주어진 것들을 바라보며 그것을 억지로 묘사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이해하며 초연히 그 세계가 자신 앞에 정체를 드러내기를 기다릴 뿐. 어려운 어휘도, 장엄하고 장휘한 문체도 불필요하다. 단테의 신곡을 읽어 보았는가? 단테의 명문장에서는 어려운 어휘를 찾아보기가 매우 드물다. 기탄잘리 또한 마찬가지다. 단테의 믿음처럼 - 믿음이란 본디 증거가 필요치 않으니 - 그의 믿음 역시 순수한 하나의 신앙이었고 자신의 무지함을 순순히 인정하고 순종하며 세계가 자신에게 내려주는 운명과 '사물'들을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는 자였다. 발가벗은 채로 신 앞에 선 자의 걸작. 키에르키고르가 말하지 않았는가. Self before god. 신앙만으로 신 앞에 설지어다.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결국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 현대라는 시대에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이 기탄잘리 안에 그는 모아 두었다. (아직 보편개념의 실재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바) 때문에 회의주의와 불가지론, 무신론이 지배하는 현대라는 시대이건만, 그의 노벨 수상에는 한림원의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