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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익숙함의 기원은 영화 <동사서독>이었다. 기억해 낸 건 아니다. 이 책에 대한 허희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 알게 됐다. 오래전 <동사서독>을 봤다. 분명 머리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대사였을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에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고 하니 쓸쓸함이 느껴진다. 아니 이 한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김경주는 작가의 말에서 조수간만의 차로 한 남자를 목격한 일이 이 시극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쉬기 위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온몸이 땅과 붙어있는 상태, 불안과 외로움으로 시간을 견디는 남자에게 하늘은 지독하게 아득하지 않을까. 두 발을 딛고 보는 하늘도 먼데 땅에 기대어 보는 하늘은 얼마나 멀까 싶다.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가려고 했는지도.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생각했던 제목은 ‘그런 말 말어’였다. 이 제목은 시극의 대사에도 등장한다. ‘그런’만 빼고 보면 말에 관한 단어가 세 개다. 마지막 ‘어’를 ‘말(語)’로 보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님을 알지만 시극을 읽다 보니 ‘그런 말 말 말’이란 문장이 떠올랐다. 시극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네 명이지만 실제 말하는 사람은 세 명이다. 인간의 시선이긴 하지만 말하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등장인물 리스트에 첫 번째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김씨는 다리가 없어 지느러미처럼 생긴 고무 튜브를 달고 기어 다니는 사람이다. 동화 속에서 만났던 인어처럼. 그래서일까. ‘어’라는 단어가 말하는 사람과 물고기(魚) 모두 상징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말을 말(末)로 생각하면 어떤 기간의 끝이란 의미가 있다. 시극에서 말을 주고받는 세 사람은 내 의지와 타인의 의지가 합쳐져 삶의 끝에 놓인 파출소 직원과 혼자 살아야 하는, 그러나 혼자서 살 수 없는 운명을 가진 김씨와 삶의 끝을 봤으나 한 사람 때문에 떠나지 못한 소년(사내)이다. 소년(사내)는 파출소 직원의 죽은 아들, 그러니까 유령으로 보인다. 그들이 함께 보낸 하루는 눈 내리는 성탄절이다. 이날은 이들이 다시는 겪지 못할 날이다. 파출소 직원에게 오늘은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고, 죽은 사내(소년)에게 이곳은 마냥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으로 혼자 남겨진 파출소 직원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혼자 남겨진 김씨에겐, 그리고 유령으로 돌아온 파출소 직원의 죽은 아들에겐 이름이 없다. 본래 이름이 있었을 텐데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건 그들의 삶이 미미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보통의 존재들, 누군가때문에 웃고 누군가 때문에 우는, 힘들면 넘어지지만 그렇다고 쉽게 주저앉지 않는 존재들 말이다. 김씨와 파출소 직원의 대화를 보다 보면 이들은 따뜻함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김씨는 그를 엎어준 유일한 여자인 아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파출소 직원은 물속에서 종소리가 나는 건 물고기들의 울음소리라고 말했던 그의 아내가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삶은 조금은 윤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도 삶은 가혹했다. 자신을 불쾌하게 여기는 세상을 증오하는 김씨에게 파출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 집에 있는 화장지, 촛불, 크레파스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라는 건 아냐. 다만… 증오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하지는 말라는 거야. 자네에게 존재하는 삶의 능력 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하는 능력을 갖추고 싶다면 난 그만 말하겠네.(65쪽) 파출소 직원의 말은 어설픈 위로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견뎌낸 자가 건넬 수 있는 위로였다. 당장 삶을 바꾸는 마법은 부리진 않을지라도. 인간은 때로 감정으로 살지 않던가. 죽은 후에 내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할까봐 겁이 나. 살아서는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데, 죽어서도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떡해? 기억해내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남은 생을 살아왔어.(128쪽) 그렇다. ‘누구나 조금씩 남아 있는 부분으로 사’(60쪽)는 것이다. 파출소 직원의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에 김씨는 이렇게 말한다. 김씨/ 어둠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조금만 있자… 하는 거요(118쪽) 파출소 직원/ 멋져. 또 말해 줘? 사랑이 뭐야? 김씨/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거.(118쪽) 언젠가부터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었다는 기억을 잊고 산다. 오랜 꿈이었다는 사실은 기억조차 못 한다. 어리석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직 날은 쌀쌀하고 미세먼지와 황사로 목은 칼칼하지만 봄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쓸쓸함과 변명으로 허우적대는 건 그러니까 여기까지. 사실 삶이 힘든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건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감정의 늪에서 헤매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고 기억은 잊히고 시간은 흐른다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사랑하고 현재를 사는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시작에서 쓸쓸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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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시극(詩劇)이란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시극이라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시극(詩劇)이란 극의 내용이 시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시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읽었다, 한 번. 그런데 인물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사가 시 같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대화, 산문체 대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게 시극? 그런 의문이 먼저 들었다. 내가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읽었다. 그런데 내용마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든 생각은 자괴감, 내가 글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일까,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책인가 그렇게 헤맸다. 그렇게 헤매며 한 번 읽고나서 다시 읽으려 했다. 두 번쯤 읽으면 이해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 읽으려다가 해설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해설을 읽어볼까 말까, 순간적인 망설임이 일었다. 문학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해설’이란 항목은 대부분 젠 체 하는 평론가의 놀이터에 불과했다. 요령부득으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현학적인 문장의 뒤엉킴, 그래서 어떤 경우는 더욱 난해한 미로로 끌려가기 일쑤였기에, 이 책의 경우도 혹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기우가 또한 일었다. 그래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니 이 해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체념을 반넘어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목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있었다. - 의문, 자괴감, 기우 말끔히 해소해주는 ‘해설’ 그렇게 생각하고 읽었던 해설, 읽기 잘했다. 해설을 읽고 나니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들인지, 심지어 유령인 것도 알게 되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니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해설 읽기를 잘 했다. 그러니 내가 가장 헤맬 때 나를 도와줄 무언가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자라 보고 놀란 토끼처럼 지레 짐작으로 '해설' 읽기를 저어하고 있었으니, 그걸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진면목을 놓치고 말 뻔했다. 그렇게 나의 부족한 독해력을 도와줄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나의 의문, 자괴감, 기우를 모두 말끔하게 해소해주었다, 들어있는 ‘뜻 깊은 의미들’ 그래서 나는 해설을 읽고 본내용을 다시 한번 읽었다. 거둔 수확은 의외로 많다. 뜻 깊은 의미들이다. 그냥 열거하기로 하자. 인생은 다른 인생의 삶에 있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타자와의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눈을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답하는 가운데 상대방과의 접점이 생긴다. 대화는 정보교환에 머무르지 않고 시적교류로 이루어지면 어떨까 빛나는 아포리즘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슬픔마저 떠나지는 않는 법이니까 (60쪽) 사람들은 벌레가 징그럽다고 생각할 뿐, 벌레의 날개에는 관심이 없죠. (105쪽) 눈은 세상에 자신의 고요를 조금씩 쌓고 있는 거예요. 곧 저 눈은 다 고요가 될 거예요. 깊고 아득한 것들로 돌아가기 위해서. (108쪽)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어둠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조금만 있자....하는 거요. 멋져 또 말해줘. 사랑이 뭐야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거. (118쪽) 그래서 이 책, 시극(詩劇) 맞다. 이런 아포리즘을 찾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왜 시극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대사들이 리듬을 타고 있으며,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에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허희는 리듬을 재발명해야 한다(149쪽) 했는데, 그것은 작가의 몫이고,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에서 시극의 요체인 리듬을 재발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리듬을 타고 소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런 책 처음이다. 좋은 느낌으로 - 비록 등장인물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지만 - 책을 접었다. 다시 질문 -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이 책의 ‘해설’ 이야기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헤맬 때 과연 내 옆에 누가 있을까? 내가 그 헤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쓸 때 누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든 또 하나의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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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림원에서 서평을 목적으로 제공을 받은 도서입니다. 연극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등장을 하는 인물들이 하는 대사는 일반적인 대화가 아닌 시어와 같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언어라는 사실이 시극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수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시나리오도 아니고 시극이라는 이름으로 등장을 한 책을 읽으면서 느낄수가 있던 일면은 그동안에 참 각박하게 살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을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밀려난 계층에서 오는 아픔과 나름의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파출소에 근무를 하는 순경도 일반적인 순경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그것에 대하여서 흘러 나오는 경험을 무시를 못하고 슬픔에 의하여서 쇠락을 거듭을 하고 있는 인물로 등장을 하면서 배경과 등장인물 모두가 기쁨이 아닌 슬픔을 간직을 하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생활에서도 나름의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갈수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기쁨의 흔적이 얼마나 작은지에 대한 그들만의 대화를 통한 방법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행으로 인하여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형성을 하는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던 인물이 자신이 나름의 행복을 유지를 하기 위하여서 찾아가는 과정에 등장을 하는 나름의 행복이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작은 행복이 사라지는 순간에 경험을 하였던 아픔이 계속하여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과 그러한 아픔을 유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간의 아픔을 보듬어 주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면서 절정으로 달려가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인간세상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가지기 위하여서 선택을 하는 생활이 자신의 신체에 남아있는 그동안의 모순을 집약을 하여서 보여주고 있다고 보여주는 장면들은 중요한 인물로 등장을 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손과 다리에서 보여주는 사물의 모습이고 그러한 신체적인 모습이 자신의 내면에서 발화를 하면서 아픔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서 찾은 과정을 방행을 하면서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신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서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고 있는 순경이라는 존재를 통하여서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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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만으로 채워진 한 권의 책은 제목만큼이나 대조를 이루는 듯한 느낌이다. 나의 삶의 한조각엔 무채색만을 칠했던 시기가 있었다. 검정색의 단조로움 그리고 흰색의 마음색깔, 회색으로 검정과 흰색을 위한 중용정도가 아닐까? 가끔 그 때를 떠올리며 검정과 흰색 그리고 회색의 특별함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책의 느낌도 무채색으로 담담하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먼저 누구나 가장 아름다울 때가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잠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울 때 곁에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는 부분은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에 대한 가슴아픈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시극은 생소한 장르였기에 궁금하고 읽고 싶었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김경주의 시극은 빨리 읽고 넘어 갈 수 없는 시로 엮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무대를 준비하고 막이 오르면 각 상황에 맞는 조명도 필요했다. 이렇게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극에 빠지고 싶었다.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은 춥고 쓸쓸하다. 폐쇄된 바닷가의 작은 파출소, 등장인물인 김 씨와 파출소 직원 그리고 파출소 직원의 죽은 아들, 이들의 대화는 인생의 고뇌와 애환을 떠올리게 하는 인생 역경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장애에 대한 편견 뿐만 아니라 다름에 대해 고개를 돌리며, 각 자의 삶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의 죽음과 떠남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의 감정들이 마음을 짓누르지만 서로의 마음 표현을 통해 하늘을 향한 호소와 살아갈 희망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의 별을 찾아 환하게 웃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두워지면 별을 찾아요. 하지만 별은 낮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133쪽)
별을 찾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해본다. 별은 세상의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날개짓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이들의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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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 김경주의 시가 된 이야기 마술적 언어로 공간을 채우다.
‘시가 된 이야기’라고 별명이 붙은 이 작품은 ‘시극’이다. 시극은 대사가 시의 형태로 쓰인 희곡을 말하는데, 산문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각각의 글에 라임과 운율이 살아 있는 문학적 장르이다. 낯선 시극이라는 장르의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T.S. 엘리엇의 <캣츠>도 시극이었다.> 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낯선 시극이 알고보니 친숙한 장르였더라는 반전이 이 작품에 호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작품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가 배경인 이 시극은 저자가 신촌 한복판에서 만나곤 했던 실재의 인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큰 연기력이나 배경이 아닌 주인공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긴 대화가 아닌 단답형처럼 짧은 대화가 오가지만 이해하기 난해한 대화들이다. 소설책 속 문장이라면 여러번 읽다가 덮어버렸겠지만 무슨 말인줄 100%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은 이해가 가기에 막힘없이 읽힌다.
====================================================================================== 김 씨 / 사람들이 제 옆을 빠르게 지나갈 때마다 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있어요. 파출소 직원 / 떨어진 동전? 김 씨 / 그것도 보이구 파출소 직원 / 떨어진 귀걸이나 립스틱? 김 씨 / 그것도 보이구 파출소 직원 / 또 뭘 보았지? ... 김 씨 / 몰래 떨어진 눈물요. p.073 - 074 ======================================================================================
각 막에는 그 막에서 하고 싶은말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대사가 있다. 대사만 보면 무슨 뜻이지 싶지만, 극의 흐름에 따르면 마음을 울리고 마지막장의 해설을 보면 아! 이런거였어~ 라고 깨달을 수 있다. 2막의 주제는 취생몽사이다. "죽은 새가 땅에 내려와 눕지 못하고 하늘을 맴돌고 있어요." 라는 대사에 취하는 것과 사는 것, 꿈꾸는 것과 죽는 것이 이토록 닮아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담아 표현한 문장이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담겨진 의미의미에 놀라움까지 담아낸 매력이 가득한 장르. 시극. 단 한편의 작품으로 시극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이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작품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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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책이다!!!
최근 본 책들중에서 가장 내가슴의 무엇을 건들인것 같다... ![]() ![]() ![]() 김경주란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시들을 몇편 보았고 그저 감각적이다라고만 느끼고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진지하게 그의 책을 대하고보니 몹시도 궁금해진다. 어떻게 생겼을까부터 그는 어떤말을 하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무엇보다도 무슨 생각을 할까,어떤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볼까...진짜 궁금하다..어떤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지마저 궁금해진다. 연극을 한편 본것 같다! 그것도 참 이상한 연극말이다. 마치 등장인물이 몇몇 더 있는 이인극... 나는 연극을 무척 좋아한다. 정말 연극으로 올려지면 어떨까? 김씨는 어떻게 표현해야하나?그리고 폭설오는 바깥 풍경은 그렇다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가벼운 이야기로 또 하자면 김씨를 업어야하는 그의 아내는 얼마나 덩치가 좋아야하나? 김씨와 파출소 직원의 대화를 듣다보면 겉도는 듯하다가 둘은 정말 진지하고 깊다. 서로에게 귀기울이고 서로에게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리가 없어 고무를 씌우고 거리에서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김씨...그는 이야기한다. 구걸하며 살아가지만 감정을 구걸한적이 없다했고 사랑은 이불속에서 손을 꼭잡고 있는거라고 했다...하늘에 물고기가 날아다니고 있다고 했을때 파출소직원의 알아본 것같았다...서로를...이렇게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 내 가슴밑바닥을 꿈틀거리게...이것이 무어라고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그 깊은 속의 무엇이 결국 나를 울어버리게 만들고 말았다... 오랜 시절의 나에게로 가 보았다. 영화"아비정전"에서 아비가 스스로에게 말했다.자신은 '발없는 새'라고... 김씨를 보면서 아비같았다... 발없는 새...발이 없기때문에 계속 날아다녀야만 하는 죽을때 한번 땅에 내려오는... 많이 서러웠는데도 그것을 느끼는게 싫다... 그냥 이상한 채로 그러려니 하며 그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김씨처럼 살아가는 게 초라한가? 다시 태어나면 물고기로 태어나길... 나는 파출소직원처럼,김씨처럼 업히고 싶다.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 바다로 들어가고 싶다... 업혀서... 어쩌면 나역시 발없는 새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선문답 같기도 했던 시극이란 장르는 새롭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허희씨의 해설도 있었어 보다 도움이 된것도 사실이다!왕가위 감독의 영화들과이 왜 회자되는지...알겠다...그리고 새로운 리듬이라고 하셨는데 어쩜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았던 리듬이라 처음 조금 생소했지만 알고나면 내속에 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경주 작가의 연극도 기다려본다!!! 한동안 공연을 못 봤다! 그리고 아마 오랫동안 못 볼 것 같다... 참고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기다리지 않아도 될 때까지... 누군가에겐 어떨지 몰라도 내겐 최고의 울림을 남겨준 글이다! 시극<내가 가장 아름다울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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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은 처음 읽는다. 이런 시극이 멸종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저자 김경주는 이런 시극이 사라져가는 걸 매우 안타까워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시극은 눈 내리는 밤에 버려진 바닷가의 한 작은 파출소를 무대로 펼쳐진다. 등장인물로 늙은 파출소 직원, 김 씨 그리고 사내가 등장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 빛이 파출소를 은은하게 비춘다. 김 씨는 다리가 없어 하체를 고무로 뒤덮고 거리에 나가 잡화를 팔아 연명하고 있다. 상상 속의 아내가 자기를 업어다 거리에 내 놓는 것을 꿈으로 표현하며 모진 삶을 영위하고 있다. 김 씨는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의 후예라서 하늘과 마주보이는 바다를 동경하여 늘 바다 속에 들어가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을 동경한다. 늙은 파출소 직원은 헤엄을 치고자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는 김 씨를 바다에서 건져 올려 눈 속에 파묻힌 파출소로 데려오곤 한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바다에 버린 일과 그런 아들의 죽음을 비관하여 물에 빠져 죽은 아내에 대한 애닲은 추억을 그리는 늙은 파출소 직원은 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한다. 김 씨가 동경하고 있는 아름다운 낙원에 대한 추억이나 늙은 파출소 직원이 그리워하는 가족에 대한 연민은 어쩌면 같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막극의 아주 짧은 시나리오 대본을 읽는 것 같다. 시극이라는 용어 자체가 조금 생소하지만 장편의 희곡과 같은 범주로 인식된다. 이 시대의 하층민들이 등장하는 이 책에서의 시극은 너무 슬프고 애잔해서 장편의 비극 못지 않음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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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극[詩劇]”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것과 분위기이지만, 산문보다는 대체로 운문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그런 시극. 처음 접하는 장르의 책이기에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금세 읽을 분량이기에 한번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훑어보며 그 여운을 즐겨본다.
무대는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 한 사내가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들어온다. 업혀온 사내는 김씨다. 김씨는 고무인간이다. 반은 인간, 반은 고무인 고무인간. 그의 다리는 기껏 15센티미터 가량. 그 다리를 기다란 고무 튜브로 감싸고, 길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다를 향해 기어가다,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온 거다. 이렇게 파출소에서 둘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이 둘의 대화가 시극의 주를 이루고 있다.
김씨는 땅바닥을 기다가 사람들에게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본다 말한다.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엔 물고기들이 날아다닌다고. 김씨는 물고기가 되길 꿈꾼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항 안의 물고기 지느러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단다. 그곳 물고기의 지느러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김씨는 꿈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꿈이 있다. 언제나 바닥이 익숙한 그는 다시 태어나면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한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생보다는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침이 더 낫다 여겼을 터. 어쩌면, 그 꿈을 찾아 바다로 기어갔던 건 아닐까? 어쩌면, 김씨는 자신의 몸 절반을 뒤덮고 있는 고무 튜브가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되길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씨는 땅을 기어 다닐 때, 선글라스를 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자신의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리어 사람들이 김씨의 눈을 보면 불편해할까 봐 선글라스는 낀단다. 사람들은 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왜? 작은 동정을 지불하기도 부담스러워서일까?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한다.
그는 또한 나비의 연한 발목을 바라보곤 했다고 말한다. 실처럼 가늘고 긴 나비의 발목, 하지만, 그에게는 그나마 가는 발목조차 없다.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어쩜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을지도.
이런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파출소 직원은 이제 은퇴가 몇 날 남지 않은 늙은 경찰이다. 이제 곧 폐쇄될 해수욕장, 그리고 그 안의 파출소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그런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자폐를 앓던 아들이 집을 나가고, 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아내 역시 죽음을 선택했던 것. 그는 다리가 있지만, 그 역시 파출소와 그 관할 구역을 제외하곤 어느 곳도 향할 수 없는 다리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가슴 속에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술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어쩜, 우리네 인생은 이처럼 아픔이 가득할까? 우린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기보다는 왜 누군가의 남은 다리나마 밟고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아픔 하나씩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안타깝다.
그렇다. 인생이란 누구나 아픔 하나쯤 감추고 살아가는 게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김씨는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땅바닥에 있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그것은 바로 ‘몰래 떨어진 눈물’이라고. 이처럼 누구나 남이 알까 두려워 남 몰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인생이다. 그런데, 그 눈물은 언제나 따뜻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래, 오늘 우리가 남 몰래 흘리는 눈물, 아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도 따뜻하다는 것. 우린 이것을 잊지 말자.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은 따뜻한 것이다. 우리 안에 아픔 하나씩 감추고 있다 하지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다. 작가는 김씨를 통해 말한다. 사랑은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것이라고. 그렇다. 우리에 삶 속에 다리가 찢기고 그저 지느러미 하나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할지라도, 그 상처 난 지느러미를 서로 부비며 노는 행복이 우리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삶의 지느러미를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맞대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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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지만, 누구나 이별을 해야한다.
시가 있는 이야기, 생소한 장르라 흥미진진하였고, 시극인만큼 단숨에 읽어내기 좋은 책이다. 그러나,
다시 되돌려 생각하는 여운을 주는 이야기인만큼 여러번 들추어 기억해야 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에 관한 에피소드가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우리도 일상에서 한번 쯤 겪게 되는 일이다.
횡단보도를 종종걸음으로 갔지만, 가운데쯤헤서 신호등이 깜빡일 때, 다시 되돌아 가지도 건너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릴 때가 았다. 어서 판단을 해야 하지만, 주위환경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면
순리에 맡기거나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겁을 먹은 채 중앙선 위에 배를 깔고 위태로워 보이는 그를 보고 이
야기가 시작되었다. 다음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를 보고 그분께 이 책을
바친다고 하는 작가의 말에 한참 머물다 간다.
"시극은 그 모성의 언어를 찾아가는 리듬을 포기하지 않는 작업이다"-P149
재단되지 않은 언어로 표현되는 시적표현이 여러번 되뇌이게 한다. 천상과 바다는 마주보는 거울이라 표현한다.
회전하는 둥근 지구의 상하를 뒤집으면, 하늘은 바다가 되고, 바다는 하늘이 된다는 간단한 원리를 우린 외면
하지는 않았을까? 전도된 세계에서 비상과 침잠은 같은 형태의 움직임이라는 것, 구원과 죽음의 외면이 상동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다리는 어디에 두고 타락했을까? 타락천사의 울부짖음은 아무 꿈없이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외침으로 들렸다. 인어가 된 인간, 동냥을 하며 먹고 사는 운명, 우린 먹고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 간다.
아내와 매일 이별하지 않고 사는 방법이 뭐가 있냐는 물음에 뚜렷한 답을 못한다. 미미한 답은 희망을 잃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밖에, 그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다소 철학적인
희망의 원리가 존재할 뿐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슬픔마저 떠나진 않는 법이니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맴맴 돈다. 상처가 없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있기에 살아야 하며, 바다로 무작정 몸을 던진다고 해서 하늘에 닿을 수 없기에 생사에 대한
치열한 탐구에 기반을 둔 통찰과 결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쉽게 생각하는 본인의 목숨에 대해 깊은 사고가
필요할 때이다. 시극이라 다소 난해하였지만, 철학적 문답에 깊이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취하듯 사는 삶 속에
꿈꾸는 삶과 죽음이 닮아 있다니 언어의 예술이다. 3막에서 시차가 사라진 세계의 표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를
넘나들며,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나날을 추억해 본다. 결코 비애가 아닌 충만한 기쁨으로 막을 내리는 시극이다.
성탄절에 기적처럼 푹푹 눈이 내려 축복하듯이, 살아 있는 삶이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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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끌리는그 무엇에 망설임 없이 눈 뜨고,보고자,알고자,취하고자 한다.독서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무작정 책 내용을 몰라도 제목만 보고서 끌리는 책이 있는가 하면 또는 표제부 이미지만 보고 끌리는 책이 더러 있다.지금 내가 막 읽고 덮은 책은 이 두 가지를 다 끌어안고 있다.읽기 전 제목을 몇 번 읊조리고 표제부 하얀 여백을 함께 바라 본 시간은 어쩌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숱한 메세지를 그렇게 하얀 여백으로 남겼는지도 모르겠다.아마 '이끌림의 법칙'과 함께 '범사감사'란 말을 마지막 장을 덮고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는 이전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여주가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며 읊었던 대사를 빌려 쓴 제목이기도 하다.하지만 속을 들춰보면 우리 시대 가장 낮은 자리,힘든 이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등장인물인 김씨,파출소 직원을 통해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다.저자는 김경주 시인이다.그는 색다르게 시로 희곡을 쓴 것이다.자칫 생소할 수 있는 시극(詩劇)을 선보이고 있다.물론 읽는 독자들이 시 읽기를 즐겨 했거나,그간 독서량이 많은 이들의 독해력이 월등하지 않는 한 한 번만의 일독으로 내용의 이해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듯 하다.마치 등장인물 김씨를 바로잡지 못하고 헤메일 수도 있고 시에서 드러나는 시어와 달리 라임은 있으나 그 깊이가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그 불후하고 처절한 삶을 피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파출소 직원에겐 위로해 줄 아내도 자식도 잃은 상태이고,김씨 또한 하반신 대신 고무튜브를 의존하며 거리를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그런 힘들고 고된 삶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가슴으로 언어를 이어갔고 자기에게도 부족한 것을 상대에게 내어 줄 수 있는 마음과 지켜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세상을 살면서 먼저 내어주고,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대상은 극히 정해져 있지 않나 하는 내 짧은 생각을 완전 뒤엎어준 그들였다.다만,무언가를 내주기엔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는 편견 앞에서 그들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그러나 결국엔 그 바닥에서 가장 따뜻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가슴이란 사실을 깨닫고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은 존재하리란 희망과 함께 나 역시도 먼저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길 노력해 보고자 한다.마지막으로 김씨가 파출소 직원에게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는 부분에서 만감이 교차하며 짙은 감상에 젖는 나를 느끼는 것도 잠시,곧 덮어야만 하는 마지막 장에서 아쉬움이 클수록 다가오는 그들의 날들이 각별하고 간절할 것 같은 생각들이 스며드는 시간였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을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는 시어가 아닌 대사가 시의 형태로 쓰인 희곡이지만,장르 자체가 생소했으나 막상 읽으면서 중간에 등장하는 김씨의 아내나 파출소 직원의 아들이 환상처럼 등장하는 부분을 떠올려 보면 시극만의 끌어당김의 마술적 언어로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들이 무대에서 보는 듯 그런 착각을 하게 한다.괜시리 세상사 팍팍하고 고되고 힘들다고 해도 '누구의 것이든 눈물은 따뜻하다'는 말처럼 그렇게 서로를 보담아 가며 따뜻한 시선,말 한마디 주고 받는 그런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우리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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