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이 책의 단편 하나밖에 안읽은 입장에서 리뷰를 쓰는 이유는 이 책의 훌륭함을 내 글의 제목이라도 보게 되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101편의 한국 단편 선집이라면 한국의 현대 문학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모든 단편들을 대표하는 선집인데 이런 것을 문단의 어른인 황석영 작가가 기획하게 된 것은 2000년부터이나 신수정 평론가와 함께 작품 선정과 설명의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서 진척이 생겼다고 한다.
기존 선집들이 '신문학 형성기 이후 작단에 이름을 올린 거의 모든 작가들의 잘 알려진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 있어서 지난 시대에 나온 작품집들과 차별화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이 작품집을 기획하게 된 계기인 것 같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에서 정해준 모두 알고 있는 그 제목의 소설만 계속 이런저런 이름으로 계속 재출판되고 다른 작품들은 선집을 통해 읽어볼 기회도 없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내가 학교다닐때는 염상섭 하면 표본실의 청개구리, 김동인 감자 이런 식으로 항상 작가와 작품을 한쌍으로 해서 자동 생각나도록 외우게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교과서도 아닌 선집에서조차 그런 형태를 보였다면 작가가 단편 한편만을 쓰고 죽은 것도 아닐텐데 설사 여러 작가의 대표작들을 앵무새처럼 말하지 못하더라도 작가와 작품을 연결하거나 작품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시대에 지어진 작품을 그 때의 역사와 당대 사회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들이 반영된 작품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는 일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기를 작품의 선정은 작가를 먼저 선정하고 그 작가의 작품 하나씩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80년대까지 70명의 작가를 그 이후 31명의 작가를 신수정 평론가가 주로 골랐고 그 작가의 작품은 가장 잘 알려진 것보다는 덜 알려진 것으로 황석영 작가가 주로 골랐다. 1편은 식민지의 어둠이라는 주제로 염상섭 이기영 현진건 채만식 김유정 이태준 박태원 강경앵 이상 김사랑의 작품이 각각 실렸고 매 작품마다 낱말풀이와 황석영 작가의 작품해설이 함께 실려있다. 내 경우 단편 뒤에 실린 평론가의 평론은 뭔소린지 너무 현학적이어서 이해하기도 어렵고 설득도 납득도 안되는 말도 많아 잘 안읽게 되는데 황석영작가가 직접 쓴 해설은 일단 쉽게 읽혀서 좋다. 첫작품은 염상섭의 전화다. 대개 식민지 시대의 문학은 너무 어둡고 가난이 짙게 깔려있을 곳 같아 읽기가 망설여지는데 이 작품은 소세키 풍의 유머를 찾아볼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옛날에는 전화 개통을 하려면 신청자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서인지 추첨을 해서 당첨되어야만 가능한데 이주사가 바로 운이 좋아 전화기를 들여놓게 된다. 전화를 놓고도 걸려오는 전화가 없어 이틀이나 기다리지만 처음으로 온 전화는 남편 이주사가 마음을 두고 들락거리는 채홍이라는 기녀다. 당시 전화기는 지금으로 따지면 최신 기술을 갖춘 뭐 대문짝만한 곡선 형 LED티브이보다도 더 귀한 물건이었을테지만 빚을 내어 들여놓은 전화기가 결국은 이주사의 기녀 출입의 수단이 되고 어쩌다 보니 주인아씨는 전화로 그들을 매개해주는 꼴이 되어버린다. 바가지를 벅벅 긁으면서도 비꼬는 건지 체념한 건지 한편으로는 기방 출입을 묵인하는 것 같은 아내도 재미있는 캐릭터지만 기녀 한 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남자들 사이의 쟁탈전에서도 전화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백석 평전을 읽다 보면 일제가 어느 순간 아예 한국어로 된 글을 어느 잡지에도 싣지 못하게 막는 때가 오는데 아마 그 전에 출판된 것이것이고 탄압을 우회하기 위해 소재에 많은 제약들이 있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일제 치하의 어두움보다는 소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작품이었다. |
|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 식민지의 어둠 / 황석영 / 문학동네
황석영 작가가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단편들을 선집으로 묶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고 한다. 물론 여러 출판사에서 잊을만하면 한 차례씩 「단편 선집」을 내놓긴 했었다. 대학입시를 앞둔 아이들의 논술 대비 학습용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제껏 나온 단편선집은 거의 같은 패턴이었다. 신문학 형성기이후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의 제법 잘 알려진 단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어진다.
그렇다면 황석영 선생의 이번 시리즈는 어떤 차별화를 두고 있을까? 열 권 중 이제 첫 권을 연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으나, 작가와 작품 선정에 무척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인다. “다시 지난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것은 한국문학의 토양은 예나 지금이나 거칠고 험난하고 척박했다는 것이다.” 척박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목숨 걸고 쓴 글들이라는 것을 느낀다.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봐도 몸과 마음을 한 곳에 두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열정이 그들에게 펜을 들게 했을까? 참으로 경외의 마음이 들 정도다.
이 작업엔 평론가 신수정 교수의 힘이 컸다고 한다. 선생은 신교수를 이렇게 평한다.“그는 특정한 문학적 경향을 고수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과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도 남다른 좋은 점들을 발견해내어 유연하게 해석해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잘 쓴 작품을 편견 없이 골라내는 밝은 눈을 지닌 평론가다.” 신교수는 황석영 선생을 향해 이렇게 화답한다. “선생은 저 지난한 세월을 뚫고 ‘문학’이라고 하는 이 남루한 성채를 보존하고 기려온 선배들의 고투에 대한 경외이자 애처로움을 갖고 있다.”
이 책엔 10작가의 10작품이 실려 있다. 부제에서도 나타나지만, 일제하시대를 기반으로 드물게 해방 후 어수선한 정국이 오버랩 된다. 나에겐 다행히(?) 몇 작품을 제외하곤 처음 만나는 단편들이다. ‘식민지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집에 도둑이 침입하면서 담장에 사다리를 걸치고 들어왔다. 도둑은 집안의 재물을 훔쳐 달아나면서 담장에 걸쳤던 사다리를 남기고 갔다.” 과연 한일 관계의 개선이 올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듣게 될까? 사과할 마음도, 사과를 할 기회와 방법을 흘려보내고 사는 사람들이 상대방에게만 반성과 사과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은 ‘그래도 사다리는 건졌잖아!’ 하진 않을까? 한일관계를 생각하다보니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일단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
황석영 선생이 식민지 시대 우리 문학의 시작을 염상섭으로 정한 것은 그에 이르러 비로소 애매모호한 계몽주의를 벗어난 근대문학의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식민지의 사회상과 그 개인의 생활과 내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의 이러한 언급은 ‘소설에선 사람의 냄새가 나야한다’는 평소 생각에 근원을 둔다. 염상섭의 「전화」는 전화를 매개로 한 경성 유산계급의 일상을 그려주고 있다. 거금을 주고 맨(소설에선 이렇게 표현된다)첫 전화의 목소리는 그 집의 주인남자를 찾는 요릿집 마담이다. 공교롭게도 전화를 가설하고 때르릉~ 종이 울리기만 기다렸던 그 집의 아내가 받는다. 당연히 퉁명스럽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집에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없다하고 끊어버린다. 그 뒤로 요릿집 여인들 이야기, 친구에게 전화를 팔면서 발생하는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결국 문제의 전화는 아내의 투정과 경제적인 이유까지 겹쳐져서 웃돈을 주고 팔게 되었지만, 아내는 전화가 놓였던 자리를 보며 못내 아쉽다. “여보, 우리 어떻게 또 전화하나 맬 수 없소?”
「쥐불」은 이기영이 2차 카프 검거 선풍으로 옥고를 치르기 전에 쓴 중편소설이다. 돌쇠라는 주인공이 동네청년들과 정초에 노름을 하는 데서 시작된다. 돌쇠는 2%가 부족한 이웃친구인 응삼이가 소 판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노름판에 끌어들인다. 돌쇠는 나중에 내가 눈독을 안 들여도 어느 놈이든 빼앗아갈 것이라 생각하기에 차라리 내가 챙겼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응삼에겐 그 마을에선 그 이름만큼 이쁜이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다. 돌쇠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 이쁜이라는 여인 때문에 돌쇠는 자칫 곤경에 빠질 번했지만, 어느 지식인 청년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잘 넘기게 된다. 지식인 청년의 입을 통해 그 당시 남녀 결혼의 폐단과 소위 마을 유지들의 행태, 소작농의 현실 등이 노출되는 것이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더라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학창시절 대부분 의무적으로 읽었던 작품 중 하나 일 것이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 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희극으로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난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웨 먹지를 못하니, 웨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드니만....” 현진건은 당대의 문우들로부터 ‘조선의 체호프’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문장과 구성에서 짜임새가 뛰어난 단편의 명장(名匠)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과거를 더듬으며 한숨 쉴 일이 아니요 미래를 바라보며 팔만 벌리고 있을 것이 아니다. 손아귀에 단단히 힘을 주어 현재를 움켜질 것이다.”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그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소문안 인력거꾼 김첨지에겐 붙들어야할 오늘은 손에 쥐어야 할 돈이다. 먹고 살아가야 할 절대 절명의 존재다. 「운수 좋은 날」은 식민지 사회의 민중은 모두가 노예와 같이 저당 잡힌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려주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마르크스주의나 그것을 믿는 자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하고 시작하는 채만식의 「치숙(痴叔)」은 채만식이 1938년에 발표한 ‘모노드라마’식 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그 답답한 양반의 조카다. 조카나 고모부나 각기 처한 현실이 녹녹치 않다. 조카는 기왕 일본에 먹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일본인 여자와 결혼해서 성명까지 갈고 모든 생활법도를 일본화해서 살아가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런 생각이 잘못 된 것이라고 꾸지람하는 고모부에게 조카는 오히려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타박한다. “사람이란 건 제아무리 날구 뛰어도 이 세상에 형적 없이 그러나 세차게 주욱 흘러가는 힘, 그게 말하자면 세상 물정이겠는데, 결국 그것의 지배하에서 그것을 따러가지 별수가 없는 거다.” 황석영 선생은 채만식이 ‘작가적 관점’이 살아있는 작가라고 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작가적 관점’이란 무수한 삶의 표상들 가운데서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잡아채는 현실적 시선을 의미한다.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로 시작되는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은 이야기의 끝까지 독자 역시 금줄에 기대를 걸게 한다. 당시 유행하던 가요 중 이런 노래가 있다. “노다지 노다지 금 노다지 노다진지 도라진지 알 수가 없구나 나오라는 노다진 나오지 않고 도라지가 나오니 애물이로구나 집 팔고 땅 팔아서 모조리 바쳤건만 요다지 말리느냐 사람의 간을” 금줄을 잡아 금을 캐는 일은 뿌린 대로 자라고,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과는 상반된다. 그러나 오죽하면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 밭을 죄다 엎고 금을 캐겠다고 덤볐겠는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이 소설의 영식이 뿐이었겠는가. 실제로 김유정의 고향 인근에서 사금터가 벌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매형의 권유로 한때 충청도 예산에 내려가 금광의 현장감독을 지낸 적도 있다. 따라서 「금 따는 콩밭」은 당대의 ‘골드러시’를 직접 체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동네에선 노랑수건이라는 별명을 얻은 황수건이라는 다소 모자란 이가 등장하는 이태준의 「달밤」은 작가 자신이 화자로 등장하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도 좋지만, 황석영 선생이 작품 뒤마다 붙인 글들이 무척 소중하다. 이제껏 천편일률적인 작가소개완 사뭇 다르다. 황선생의 1989년 느닷없는 방북은 그동안 이름 석 자 중 한 글자에 O 이 표현되었던 작가들의 뒷이야기를 듣고자 작가, 가족, 지인들을 찾아 나서는 계기도 됐다. “이들 월북 문인들의 후일담에 대해 내가 알고자 했던 것은 남측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궁금증이었다.” 황선생은 그들의 후일담을 최대한 알고자 노력했고, 그들을 더욱 이해하게 되길 바랐다. 신수정 교수의 말이다. “선생과도 여러 차례 주고받은 이야기지만,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삶과 운명을 생각하면 어느 누군들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난과 요절, 식민지 현실의 정치적 억압과 구속, 전통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특히 ‘방북’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확인하게 된 월북 문인들의 말년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어지는 소설은 박태원의 「골목 안」, 한 여인의 참으로 기막히고, 기구한 운명을 그린 강경애의 「소금」, 이상의 「날개」, 일본어로 소설을 쓴 것이 차후에 문제가 되자 ‘무엇으로 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썼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던 김사량의 「빛 속으로」로 마무리된다.
황석영 선생이 적어 놓은 다음 구절을 마음에 담는다. “작가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람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잠시 도피할 수도 있고 어떤 형식의 아류를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그것은 다만 기슭을 스치는 호숫가의 잔물결처럼 삶의 표피를 간질일 뿐이다.”
이 시리즈의 균형감을 잡아준 문학평론가 신수정교수는 책 말미에 붙인 ‘해설’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선 그가 읽은 책들을 보라. 이는 완전한 진실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 오늘 그대의 손에는 어떤 책이 들려 있는가? 나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 〔해방과 전쟁〕속 작가들을 만나봐야겠다.
![]()
|
|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은 황석영 작가와 평론가 신수정 교수가 근현대 우리 문학을 시대적 흐름을 기준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여 10권의 시리즈로 묶어낸 책이다. 고전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망설이던 나는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같은 친절한 책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1권은 식민지 시대~ 1960년의 전쟁과 해방을 겪고 폐허 속에서 되살아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자아가 형성되던 시기에 쓰인 작품을 식민지의 어둠이라는 주제에 맞게 엄선하였다. 작가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지만 고교 시절 읽었던 작가들의 틀에 박힌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염상엽의 〈전화〉, 이기영의 〈쥐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채만식의 〈치숙〉,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 이태준의 〈달밤〉, 박태원의 〈골목 안〉, 강경애의 〈소금〉, 이상의 〈날개〉, 김사량의〈빛 속으로〉가 실려있다.
책의 구성은 상단에 언급한 10편의 단편작과 낱말 풀이, 황석영 작가의 작품 설명의 순서로 이어진다. 작품 설명에는 작가들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썼는지, 월북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와 그들의 마지막 모습(혹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성향과 작품의 배경을 알고 작품을 대하면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문학은 일상을 담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 곳이 전쟁터라도, 식민지 시대라도, 폐허에서 가치관이 새롭게 형성되는 지점에도 삶은 이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로운 시대의 요즘의 소설보다 그때의 작품이 인간의 속내를 훨씬 진솔하고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식민지에서 산업화로 이어지는 혼란한 생활에서 삶 하나만 보고 노력하는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일까. 적어도 현대의 사회의 복잡한 이기심은 보이지 않아 등장인물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험난한 시기에도 이렇게 좋은 작가와 작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여기서 알게 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어서 읽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문학의 흐름을 알고 싶은 분들께, 유명 작가의 뻔한 작품 말고 새로운 작품을 접하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다
|
|
황석영의 단편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