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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지하철을 타면 놀랄 때가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노약자들이 앉는 좌석은 물론 일반인들이 앉는 좌석에도 많이 앉아 있다. 그러고도 모자라 일부는 서 있기조차 하다. 국제연합에서 정한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12.2%에 이르렀다. 이미 고령화 사회를 지나 고령 사회에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도 어르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인이 많을 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불평을 많이 듣는다. 지난해에 일간지에서 채현국 어른을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어른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우리 시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 나선다. 2008년 봄부터 한 철에 한 번씩 어른들을 찾아가 말씀을 듣는다. 열네 명의 어른을 만나 정리했고, 몇몇 분들은 만남 뒷이야기까지 담았다. 나이순으로 정리한 이 책에서 두드러진 것은 무위당 장일순의 사람들이다. 저자는 무위당을 한 사람의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위당을 살아 있게 하고 그를 믿고 따르며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수많은 제자와 후배들. 그들 모두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분명 실재하는 무엇으로 ‘무위당’이라는 커다란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는 무위당 실체의 일부를 어른 다섯 명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무위당’의 중심에 있는 어른은 장화순 교장 선생님이다. 장화순 어른은 무위당의 친동생이다. 천주교 원주교구가 세운 진광고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서른일곱 살이던 1973년부터 1997년 정년퇴임 때까지 이십오 년도 넘게 이 학교 교장을 맡았다. 어른은 아침마다 교장실로 가기 전에 학교 둘레에 있는 쓰레기를 먼저 주웠다. 그렇다고 하여 깔끔을 떨어 교사나 학생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았다. 학생이 늦게 오면 어디 아프냐고 묻지 왜 늦었냐고 묻지 않았다. 지각도 하고 결석도 하며 조퇴하는 학생이 생겨야 정상이라고 여겼다. 어떤 규칙에도 반드시 예외를 인정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게 어른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학생을 품고 가르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은퇴한 지 오래인 지금도 제자들은 ‘맹물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교장 선생님을 만나 맛있는 것을 사 드리고 싶어 한다. ‘무위당’이 널리 알려진 데에는 한살림 영향이 크다. ‘한살림은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서,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농사짓고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들과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물품을 이해하고 믿으며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결성한 생활협동조합’이다. 지금은 50만 명 조합원이 함께하는 큰 조직으로 컸지만 초기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런 한살림을 만든 사람이 바로 박재일 어른이다. 어른은 지학순 주교를 중심으로 무위당 장일순과 함께 한 원주 사람들의 운동에서 ‘하늘이 스스로를 돕게’ 하는 방식에 눈을 뜬다. 당시의 가슴 벅찬 경험을 살려 한살림 운동을 시작한다. 유무형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전국 어디서나 삶의 현장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드림실험교회’를 펼쳐 보인 이현주 어른도 무위당 사람이다. 어른은 목사로, 동화작가로, 번역활동가로 활동하는 한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상록수』를 읽고 일찌감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소설 속 박동혁처럼 채영신 같은 이를 만나 농촌과 나라의 운명을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이병철 어른, 자기 성찰과 생명을 화두로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의 삶을 목판 위에 담아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 이철수 화가 또한 무위당 사람이다. 이 시대의 어른 열네 명 중에 다섯 명이 무위당 사람들인 것이다. 무위당 사람들이 많은 까닭은 저자 또한 무위당과 한살림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이고 한살림이 펴내는 잡지에 연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어른들을 그 틀에 한정할 수 없다. 풀무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장을 했지만 늘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학교라는 것을 강조하고, 교장과 교사들 간의 급여 차이를 허물어 평등 급여 전통을 지켜온 홍순명 교장 선생님, 지구에 사는 낱생명인 우리들에게는 태양과 한 덩어리인 지구 전체가 하나의 온생명이기에 자신의 나이가 지구와 같은 40억 살이라고 주장하는 장회익 물리학자, 대학교에서 일할 때는 자동차를 없애 버리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으며,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에너지 독립선언을 한 윤호섭 그린 디자이너, 철밥통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느슨한 생활 공동체인 변산공동체를 세워 20년 넘게 뒷바라지하고 있는 윤구병 농부 철학자, 장애를 지닌 사람들과 시골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임락경 어른, 바깥 기온이 영향 18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에도 따로 난방을 하지 않아도 영상 22도를 유지하는 집을 지은 이대철 어른, 지리산 실상사 주지를 지내며 귀농학교와 작은학교를 열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펼치다 그것을 넘어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는 5년 동안 3만 리를 걸으며 8만 명의 사람들을 만나 생명 평화의 가치를 전달한 도법 스님, 1989년 방북한 여대생 임수경 씨 손을 잡고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문규현 신부. 저자가 만난 어른의 폭은 넓고 깊다. 그리하여 귀담아 들을 절절한 이야기가 많다. 표영삼 어른 이야기는 특히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사람들은 어른을 ‘살아있는 동학’이라고 불렀다. 동학이란 역사 속에 묻힌 전설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철학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당신의 일상생활과 존재 자체로 보여준 것이다. 이를테면 아내 대신 20여 년 밥 당번을 맡았다. 밥을 하고 아내에게 “밥 먹어요.”가 아니라 “진지 잡수세요.”라고 말하며 극진히 모셨다. 어른에게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공손히 모셔야 할 하늘님이었다. 하루하루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었다. 어른은 죽음도 미리 준비했다. 의료 연구용으로 시신 기증을 약속하고, 장례식도 둘레에 알리지 말고 식구끼리 조용히 치르라고 했다. 어른을 양평 집까지 여러 번 모셔다 드리며 인연을 맺은 저자가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수소문 끝에 빈소를 찾아가 겪은 이야기는 큰 감동이다. 화장 절차를 순차적으로 알려주는 전광판 어디에도 ‘표영삼’이란 이름 석 자는 없었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표응삼’이란 선생의 본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우두커니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선생의 외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그냥 조용히 곁에 앉았다. 아들은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하셔서 혼자 왔다고 했다. 소박한 나무함을 보자기로 감싼 선생의 유골함이 아들의 품에 안겼다. 따뜻할 것 같았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에요.’ 그는 아버님을 모시고 일단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만 했다. 나는 전날 사모님 전화를 받고는 펑펑 울었는데, 이상하게도 선생의 유골함 앞에서는 차분해졌다. 아버지를 꼭 닮은 아들을 보니 생전에 이 세상 저 세상이 따로 없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였을까. 그의 육신이 다른 형태로 환원했을 뿐 어디로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29 - 30쪽) 노인만 많지 어른은 없다고들 말한다. 대부분 도시에 사는 우리는 어른의 지혜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연에 관한 경험이 많다. 젊은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아가려면 어른을 존중하고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부양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어른이 존중받을 수 없는 구조다. 그렇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른은 우리 둘레에 여전히 많다. 세상 구석구석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세상을 이롭게 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 그이들의 삶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어른이 더 많다. 어른을 꼭 멀리서 찾을 일도 아니다. 잘 살펴보면 존경할 만한 어른은 우리 둘레에 꽤 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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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 먹었다고 남들보다 오래살았다고 어른인것은 아니다.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은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현재가 아닌 미래의 후손들의 삶까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다른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치 엄마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듯이 말이다. 이 책속의 어른들은 모두 남들이 가지 않았을 길을 가고 있었다. 동학농민운동의 근원이 되어준 동학운동, 천도교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천도교의 산 증인(교주님이라고 해야하나?), 학벌이 최고가 아닌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장선생님, 자연친화적인 에너지 생산을 위해서 애쓰는 환경 운동가. 철학을 바탕으로 농사도 짓고, 글도 쓰는 농민 철학자. 신을 대신해서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쳐주는 목사님과 신부님. 그리고 사람과 사랑을 그리고, 파고, 쓰는 판화가이자 작가인 아저씨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책속의 어른은 모두 남자들만 있다. 이런 남자들, 아저씨들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이는 분명 여자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심지어 작가도 여자인데 왜 남자들만 어른으로 느꼈는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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