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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 한때 인터넷상에서 그런말이 유행이였습니다. 'K장녀.'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나의 감정 알기 전에 부모의 좋은 딸이 먼저 되어야하는. 나답게 살기보단 길들여져 살아야하는. 그런 딸이요. <도실>은 성공을 쫓아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님. 악착같이 살아내는 엄마와 가족의 안위는 뒷전인 아빠의 첫째 딸, 한국인과 미국인, 착한 딸과 길들여지고 싶지않은 딸. 그 사이에서 겪은 혼란스러움을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 입니다. 온순하고 길들여진다는 뜻의 ‘docile’. 작가님은 그 단어를 빌려 좋은 딸,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온 여성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순종적인 얼굴 속 이글거리는 분노. 명문 대학 졸업장과 하버드대 로스쿨 입학, 촉망받는 젊은 화가라는 커리어까지 갖춘 '혜승'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방황과 우울의 시간을 보냈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고, 엄마의 큰 기대감이 만든 인형같은 삶, 이방인으로써 받은 차별을 견뎌내고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했는지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나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식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혜승의 엄마를 보고 참 많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엄마와 똑똑한 자식. 온순하고 착하단 말의 내면엔 불안한 눈물이 가득하다는걸 '혜승'을 보며 알았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엄마와의 관계를 보며 공감을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혜승'이 어떻게 긴터널을 빠져나오는지, 특히 엄마와의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고 서로를 이해하게되는지를 읽으며 공감 뒤 또 다른 위안을 얻게 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결핍과 부족이 나에게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모든 여성들이 이 책으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길 바랍니다. "혜승아, 너는 커서 엄마처럼 되지 마라" 엄마가 말했다. 엄마처럼 되는 게 뭐가 나쁜 걸까? 가난해도 친절하고 너그럽고, 모든 일에 똑부러지는 엄마처럼 되는 게 뭐가 안 좋은걸까? 하지만 나는 그 말 뜻을 알았다. '엄마가 갇혀 있는 감옥의 문을 열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돼?' 나는 우주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혹시 내가 그 열쇠를 잃어버린 걸까? 그렇다면 나는 나쁜 아이다.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내 피부로 엄마의 슬픔을 빨아들이며, 내 생명으로 엄마의 슬픔을 부식시켰다.(p.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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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무너질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무너져 눈물이 흘렀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서 무너져 쓰러지지않고 굳게 일어서 자신을 스스로 구해냈다. 마지막 감사의 말까지 다 읽고 난 뒤에는 그녀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있었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는 힘들지만 아름다웠고 나의 삶도 다시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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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 이 책의 제목인 '도실 docile'은 미국에서 아시아인, 특히 아시아 여성에게 자주 쓰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유순하다, 고분고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0년 미국으로 간 혜승의 가족. 직장에 다니던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사업을 시작했고 엄마는 부족한 돈을 벌기 위해 간호사로 일을 시작합니다. 5년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아빠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부모님은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아집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혜승에게 "너는 커서 엄마처럼 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그런 엄마를 위로하며 혜승은 착한 딸이 되기 위해, 엄마의 마음에 드는 딸이 되기 위해 애씁니다. 혜승은 학교 성적이 뛰어났는데요. 칭찬보다는 늘 더 잘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가끔은 삐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다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혜승은 미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아이비리그 대학,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하는데요. 다른 사람들 눈에 성공한 듯 보였지만 10대 시절부터 극심한 조울에 시달리게 됩니다. 몇 번의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려 노력하며 촉망받는 화가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딸을 인생을 설계하고 안전이라는 이유로 딸의 행동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엄마와 착한 딸로 살아가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혜승의 모습.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과 행동들이 아이에게 족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게 말했던 '착하다'라는 말을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더 마음에 와닿았던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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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어서도, 실패해서도 안된다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은 무시당하는게 두려웠고, 딸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시당할까봐 딸을 휘둘렀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토종 한국인이지만 아무리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밀고 갔다한들, 이렇게 무모할수가 있나. 그들이 생각해낸 꿈과 대책은 결핍에 대한 집착이었고, 말도안되는 꿈들이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목숨같은 딸 뿐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계속 속으로 외쳤다. 어머니 이쯤되면 알아주세요, 알아주세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어머니와 화해했기에 이 책을 쓸수있었겠지 라는 생각은 뜬구름 같은 환상이었다. 나는 그러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담담한 문체를 쓰다니 엄청 끔찍하다고 느끼게 될줄 알았는데.. 그리고 존경스러웠다. 평소 힘든걸 뱉고싶어 안달이난 나에게 평생을 끔찍이 버티고 산 작가가 이제껏 올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않고 살아왔다는것이.. 나도 큰맘먹고 상담을 하면 왜이리 담담하냐는 소리를 듣지만, 담담하면서 적당히 침묵하는 건 더욱이 어렵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끈질기에 변호사를 포기하고 작가의 삶을 택하려한 그 옹집이 지금도 계속되어 발현되길 바란다.🙏 🏷 ✍ 내가 인생 최초로 맞은 큰 위기로 흩어지는 정체성을 수습하기 위해, 내가 살아 있는 걸 확인하기 위해 달려간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였다. 내가 영위하는 이 처량한 인생에서 성적이 딸어지거나 상을 못 받았을 때처럼 불가피하게 실망했을 때 내 가치를 확인할 대본이 내게는 없었다. 행여 그 대본이 있었다고 해도, 파편적이고 허술하며 남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물론 그중에는 좌절 속에 찾아온 내게 친절을 베푼 목소리의 엄마도 있었다. 엄마는 나를 안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그때 누군가 죽은 그 병실에서 우리 엄마, 내 삶의 근원인 엄마가 온 세상이 미워해도 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심지어 엄마인 내가 미워해도 너는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전보다 더 밀착되어 내 심장과 가치 감각을 엄마에게 넘겨주고 떠났다. _ p. 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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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억만장사를 꿈꾸며 가족보다 타인이 우선인 아빠, 딸이 완벽했을 때만 사랑을 주는 악바리 엄마,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성공이 우선이라는 가르침 속에 미국 최고 대학인 하버드 대학원까지 진학하지만, 어쩐지 여자는 점점 텅 비어 있는 진흙 인형이 되어 간다. 여자가 원하는 것은 자궁과 같은 안락한 빵집의 이 층집에서 사는 것. 여자는 2번의 자살 시도를 하고 정신병원에 가고, 이혼을 하게 되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을 때 오히려 부모님에게 사랑과 신뢰를 느꼈다는 여자. 결국 여자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성공했을까? 스토리가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서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엄마의 과도한 욕심과 잘못된 사랑으로 한 사람이 어떻게 삶이 망가지는지 매우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덕분에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 없는 전개와 저자가 걱정되어 마지막까지 숨도 안 쉬고 읽었다. 이보다 솔직한 자서전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저자는 모든 것을 포기했고 내려놨겠지? 제발 부디 저자분이 남은 인생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의 삶을 살길. ※ 출판사의 도서를 지원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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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이주와 정체성에 관한 또 하나의 소중한 증언으로 읽혀집니다. 도실은 ‘착한 딸’이나 ‘고분고분한 아이’라는 부모의 칭찬을 먹고 자라던 한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온갖 종류의 다양한 강요들을 버리고 자아존중감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저자 송혜승님은 100점과 A+로 가득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아이비리그 대학,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앞으로 이제 보장된 미래를 상징하는 명문 대학 졸업장과 번호사 자격증, 오늘날 촉망받는 젊은 화가라는 커리어를 갖춘 그는 ‘성공한 젊은 한인 1세대’의 정석을 잘 밟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게 인생의 탄탄가도를 달리고 있는 송혜승님이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방황과 무기력, 우울의 시간을 보냈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동시에 왠지 모를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를 쫓아다녔던 엄마의 기대감과 그로 인해 얻은 정신 질환은 엄마로서 저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받은 차별, 엘리트주의 등을 뒤로하고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했는지 고백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솔하고도 담담한 문체와 고백이 독자들에게 무한한 응원과 사랑을 보내게 해주는 책읽기였습니다. #도실 #송혜승#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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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적 느낌도 나며 때로는 개인적 자서전이나 에세이북의 느낌도 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그만큼 누구나 현실에서 경험하거나 공감 가능한 주제를 통해 표현한 책으로 특히 여성의 삶, 엄마나 가족, 딸이라는 관련한 키워드에 대해 관심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며 긍정의 메시지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실> 현실의 삶이 팍팍하거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경험 등이 자주 드는 분들이라면 더 크게 공감할 것이며 이를 통해 개인 단위에서의 변화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나 관심 자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실> 지금이야 세상이 변했고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격으로 인해 해외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더 나은 대우와 인정을 받고 있지만 불과 예전만 하더라도 이런 반응과 기대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실에서 자신의 삶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살아가거나 희생 자체를 강요받았던 시대 정신과 문화도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는 점도 참고했으면 한다. 아무리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 있더라도 당연한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때로는 우리가 너무 당연해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책을 통해 접하며 생각해 보게 된다. 열심히 살아가는 행위나 마인드도 좋지만 때로는 명확한 주체성이나 정체성 등이 왜 중요한지, 이를 통해 한 개인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도 책에서는 자세히 전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의미나 논리가 모든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요즘처럼 살기 팍팍한 현실에서 때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이나 타인이 말하는 이야기를 통해 내가 바라는 삶에 대해서도 투영하거나 변화된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책을 통해 접하며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매우 무거운 주제로도 볼 수 있고 개인을 위한 현실적인 직언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책이다. 지금 당장 내가 경험한 부분은 아니지만 누구나 감정적인 공감이 가능한 이야기 구성이나 이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어떤 형태로 공감하거나 관련 주제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지도 책에서는 잘 정리된 형태로 소개하고 있어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의미보다는 현실적인 부분이 더 돋보이는 책의 구성과 가이드라인, 어떤 형태의 내용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지, 함께 접하며 생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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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 기록이면서 동시에, 완벽함의 그늘 아래서 무너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저자 송혜승은 ‘착한 딸’, ‘우등생’,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낸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불안, 그리고 엄마의 기대에 짓눌린 채 살아온 오랜 시간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읽는 내내 ‘도실’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어떤 방, 혹은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만든 작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그 방 안에서 수많은 질문을 반복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그 질문은 곧 나 자신에게로 향한다. 나도 어쩌면, 남들이 정해준 기준 안에서 스스로를 잃고 살았던 적이 많았다. 책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억눌렸던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대목은 읽는 내내 숨이 막히듯 아팠다.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지난 세월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저자는 끝내 마주한다. 그리고 그 잔해 위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이 책의 진짜 힘이다. 『도실』은 결국 완벽함에서 도망쳐 자신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사회가 정해준 기준을 벗어나 자기 속도로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를 건넨다. “그렇게 애써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한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책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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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남미쪽 사람들은 여전히 그 꿈에 도전하는 것 같다. 가난한 조국을 떠나 억만장자가 되어보고 싶었던 남편의 결정으로 미국으로 이민한 부부가 있다. 부부에게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딸이 있었다.
지방이었지만 명문여중을 나와 서울대 간호학과까지 나온 엄마는 수재였고 한양대 공대를 나온 아빠도 나름 머리좋은 엔지니어가 될 뻔했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는 서울대 출신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었고 출신과는 상관없이 평등하게 기회를 줄 것 같은 미국을 택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미국이란 자유국가가 존재하는 엄청난 차별, 특히 인종차별을.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미국에는 한국의 명문대 출신생들이 그리 많을까. 입국할 때 졸업증명서를 보지 않으니 다들 그렇게 허세를 부린걸까. 아니면 이 책의 주인공 아버지처럼 공평한 기회가 더 유혹적이서,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해서-머리는 좋으니까- 미국행을 택했을까. 암튼 부부의 고행은 시작된다. 진득하게 직장을 잡거나 차라리 글로서리를 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간호사는 엄청 연봉도 높고 인정받는 직업이다. 엄마가 버는 돈은 매번 실패만 거듭하는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작살이 난다.
꿈에 그리던 집을 사서 살아도 봤지만 경매로 넘어가고 낙후된 지역에서도 살았다. 그럼에도 부부의 딸 혜승은 늘 앞등수를 놓치지 않은 우등생이었다. 그것 밖에 할 수있는게 없었다고 했다. 엄마의 엄청난 집착과 잔소리, 압박에 혜승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엄마의 설계대로 살아간다.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모두 한국인이 열광하는 대학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갈만큼 충분한 성적을 내긴 했지만 여전히 혜승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사이 남동생, 여동생도 태어났고 생활은 조금 안정이 되었지만 혜승은 결국 정신적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사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냥 아무 의욕도 없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조증과 울증이 교차되는 양극성 장애가 있음을 진단받는다. 그 사이 혜승을 보살피던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는 암에 걸린 자신의 부모와 우울을 겪는 아내를 잘 보살핀다. 서른 무렵에 들어서고서야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된 혜승은 엄마의 바램인 로스쿨에 진학하지만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게 된다. 엄청남 짐만 지우는 것 같아 남편과도 이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살아간다고했다. 가슴아픈 소녀의 성장기, 혹은 투쟁기이다. 부모의 불화, 과도한 집착, 그런 것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특히 인종차별이 심한 이국에서 버티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 기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혜승,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글과 그림으로 멋진 인생을 설계하기를 기도할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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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디플롯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도실 DOCILE. 유순한, 고분고분한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동양계 여자아이들을 묘사하는 말로 많이 쓰이기도 한다. 유달리 순종적이고 모나지 않은 틀에 갇힌 안정적인 삶을 사회적인 시선이나 가정의 울타리에서 강요 아닌 강요로, 학습된 목표로 인식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자신'이란 존재는 스스로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또 그들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지 읽는 내내 골똘히 생각하게 한 책을 만났다. 아니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이 이야기는 굵직한 사건들을 개인의 관점에서 마주한 이야기이자,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 노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송혜승이 쓴 <도실>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고스란히 먹고 자란다. 특히 너무나 착한 아이들은 일찌감치 철이 든 나머지 그런 감정들이 아이에게 맞지 않거나 그를 좀먹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부모의 그것을 먹고 삼키며 어떻게든 이해하려 자신을 바꾼다. 지극히 순응적인 이들만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혼란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바로 이 책을 통해 만난 작가의 시간 그 자체가 아닐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떠난 타국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나 동네의 환경, 낯선 풍경이 주는 두려움, 피부와 언어가 다른 이들이 주는 차별이라는 날카로움도 그저 "성공을 위한 희생과 노력"이라는 이름 앞에 당연히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어린 혜승은 너무나 착했고 순종적이었으며, 엄마의 감정을 끌어안는 것이 자신의 사랑이라 생각하며 수많은 틀어짐과는 달리 자신은 엄마의 믿음에 부응하겠다며 자신이 빠진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이름 있는 학교로의 진학, 훌륭한 성적, 이민자라는 한계와 차별을 넘어선 성과들은 그녀의 만족뿐 아니라, 엄마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 속에서 작가는 점점 자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곤 한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 도망치듯 떨어졌다가도 이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엄마의 곁으로, 자신을 잃게 하는 일상 속으로 돌아오고 만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고, 잃어버린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혜승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내디디며 완벽이라는 이름에 갇힌 자신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여정을 함께하며 진정한 성공과 행복에 대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돌아볼 수 있었고, 오랜 방황과 우울 속에 있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고 싶어졌다. 나이를 먹는다고 온전히 독립한 '자신'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대, 평가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비로소 나의 세계에서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힘들었고, 제대로 바라보지 못해 자신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작가의 이야기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너무나 온순한 여성들을 위한 진한 고백과도 같았다.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 솔직하고도 깊은 내면의 이야기, 한 사람으로 그중에서도 여성으로서 직접 싸우며 체득했던 위로를 가득 전하는 잔인하고 아름다웠던 책 <도실>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