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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미 없이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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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밭엔 누군가가, 어떤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가 엉큼하게 자리를 떡하니 차고앉아서는 시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발문이라는 핑계로,첩첩疊疊이라는 문패를 달고는,무려 열세 쪽에 걸쳐 시 꽃을 피워 놓았다.이 새로운 시도, 이 새로운 형식은 매우 발랄하다, 낭만이다, 부럽다.그리곤 뭐라고 하느냐 하면‘눈발이 쏟아지면서 흰 그물을 세상에 던지는 법’이라면서 시인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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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시 밭엔 누군가가, 어떤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가 엉큼하게 자리를 떡

하니 차고앉아서는 시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발문이라는 핑계로,

첩첩疊疊이라는 문패를 달고는,

무려 열세 쪽에 걸쳐 시 꽃을 피워 놓았다.

이 새로운 시도, 이 새로운 형식은 매우 발랄하다, 낭만이다, 부럽다.

그리곤 뭐라고 하느냐 하면

‘눈발이 쏟아지면서 흰 그물을 세상에 던지는 법’이라면서


시인은 아무도 읽지 않을 이야기를 썼다 했어요

여하간에 첫 시부터 말은 그랬어요

백지 위에 한 줄을 썼다 했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을 썼더니만

더 편안해졌다고도 했어요

(이하 생략)


정말 간장 종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다리를 빌려 담 너머를 내다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다.

참으로 오랜만에 안도현 시인의 시 밭을 뛰어다닌다.

시인은 시집의 제목이 된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라면서

‘쓸모없음’과 ‘쓸데없음’을 강조하는데 그 단어 속에 담긴 아름다운 향기를

맡을 수 있으니 좋다.

망자들에게 극진하게 절을 올리는 갸륵함도 엿볼 수 있고.


3월 17일 논둑으로 냉이를 캐러 갔다 땅에 발을 묻고 있던

눈발들이 가까스로 발목을 꺼냈다

(중략)

4월 6일 진달래 꽃잎을 따 입에 물어보았다 화전이 눈에

삼삼했으나 찹쌀가루가 없다 했다

(중략)

5월 24일 왕고들빼기 잎사귀 몇 장 싸서 먹었다 봄이

다 가겠다

- ‘3월에서 5월까지’에서


무심히 하루하루의 일을 기록한 일기 같긴 하지만 시인이 시선을 둔 곳은 잎이고 꽃이고 뿌리였다.

이렇게 뚝 딱 시 한 편을 쓴다고요? 부럽고 놀랍다.

시인의 말처럼 그의 세계에서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란 없다.

스스럼없이 다가온 일상이며, 볼품없이 느껴지는 어느 날의 삶이 그의 손과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시처럼 아름다울 수 있음은 물론 아름다운 시로

존재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의 시를 읽으며 위안이 되는 이유다.


정사의 터를 풀숲이 우거진 연못가에 얻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

30명을 빌려 술과 음식을 먹이고 터를 메워서 축대를 쌓았다.

호명면 황지리 구리실 골짜기에 양원석씨의 밭 사백팔십

여 평을 샀다. 2019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집을 지었다.

아내에게 모두 맡기고 나는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

(중략)

집에 있었다.

종일 풀을 뽑았다. 책은 손에 대지 않았다.

(중략)

서리가 눈처럼 내려 목화 싹이 다 시들었다.

큰 산의 눈은 녹지 않았는데 꽃다지는 논둑마다 자글거렸다.

- ‘물소리를 필사하다’에서


조선 중기의 문신 권문해가 쓴 ‘초간일기’ 국역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

쓰며 시인은 그 시절 그 봄과 그 여름과 그 가을을 만끽하며 지냈지 싶다.

이 시 역시 독특한 안도현의 비범함에 깜짝 놀라야 하는 무대 순서의

종장이 되고 있다.

꿈에서도 시인이 꽃밭에 들어가 돌을 골라내고 있을 때 말도 없이 찾아가고

싶어졌다.

시인은 꽃밭을 높여보려고 한다는 말을 해 줄 것이므로.

YES마니아 : 플래티넘 j*****5 2025.12.1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