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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적인 너무나 칸트적인 책을 추천합니다. 데카르트 -> 비트겐슈타인 -> 코페르니쿠스 -> 뉴턴 -> 칸트 르네 데카르트(1596.3.31~1650.2.11)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는 주체는 세상의 중심에 두고 주변 객체를 분석하는 존재자였다. 데카르트 철학의 한계점은 과연 생각하는 주체는 존재하는 것이며, 보여지는 객체는 완벽하게 말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험적(타고난) 자아와 경험적 자아가 구분이 없었으며, 객체의 자연과학 영역과 사물 그 자체(물자체)를 구분하지 못했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4.26~1951.4.29) 칸트의 사물 그 자체(물자체)를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수학과 자연과학은 현상 세계이다.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사물 그 자체(물자체)와 선험적 자아(무의식, 의지, 욕망)은 침묵(듣기)의 세계이다. ...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1473.2.19~1543.5.24) 코페르니쿠스는 이전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왜 행성이 천체상을 역행하는가 등의 의문에서 출발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지동설에 도달했다. 지동설 주장은 발표되고 440년이 지난 뒤에야 로마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 라고 말했다. ... 아이작 뉴턴(1643.1.4~1727.3.31) 아이작 뉴턴은 코페르니쿠스 세계관을 이어 받는다. 고정된 시간과 공간을 외부에 설정하고 눈 밖에 보이는 자연세계(현상 세계)를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기술한다. 뉴턴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 임마누엘 칸트(1724.4.22~1804.2.12) 칸트는 데카르트 철학을 부정하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꾀한다. 주체과 객체를 바뀐다. 객체는 경험적 세계(현상 세계, 자연과학)와 선험적 세계(사물 그 자체, 믈자체)로 나뉘며 주체도 경험적 자아(인식하려는 자아)와 선험적 자아(인식하려는 나를 인식하는 나)가 존재한다. 그리고 뉴턴 역학에서의 외부에 고정 불변으로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주체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시간과 공간을 주체의 감각에 내장시키며, 인과율을 이성에 내장시킴으로써 뉴턴을 극복한다. 또한 선의지와 법의 위치로 바꾼다. 도덕법을 중심으로 선의지(내용)는 도덕법 주위를 맴돈다. 칸트는 "더 자주 끊임없이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로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 내 위의 별로 가득찬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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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윤리학. 시계처럼 정확했다던 칸트,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고 음식을 섭취하는등 본인 스스로에게 엄격한 생활을 했다는 배경만 알고 시작한 책. 왜 현대사회에서 칸트의 윤리학이 중요한지, 우리가 왜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지로 시작하는 이 책 속 큰 단어들은 여전히 읽기 어렵고 기억하기 어려워서 진도가 참 안나갔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도 있고 앞에서 쌓인 내공 덕에 전반부 보다는 쉬웠다. 그러니 철학을 나처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라도 중간까지만은 꼭 힘내시길 바란다. 읽으면서 선의지에 대한 단원이 기억에 남는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이득에 기대지 않은 선의지의 선택만이 올바른 선택이 될 거라는것이 인상깊었다. 그렇지만 행복보다 선의지가 더 우선이어야 하고 행해져야 한다고 할때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그의 이론을 이해는 하지만 따르기 어렵다. 동시에, 의무를 매일 따르고 고통도 감내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도 했든 그렇지 않았던, 성취에서 오는 행복이 있긴 하겠지. 다만 내가 그렇게 여물지 못한 사람이라 애초부터 손을 내두르게 된다. 마지막에 결국엔 이 모든 사유의 삶, 이성적인 삶, 선의지를 위한 삶 도덕적인 삶을 위해서는 신이 있어야만 한다고 결과가 나왔을때는 살짝 당황했는데. 그의 이론 안에서는… 그것도 맞는말이겠지. 비 종교인으로써는 이걸 이렇게 결론 낸다고? 싶었지만, ㅎㅎㅎ 그 시대와 그 배경을 한번 더 생각해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더 잘 알고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의 자신을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행하는 선택의 도덕의 범위를 알기 위해서,그리고 그것으로 나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철학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어려웠고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 조금씩 읽어내서 다행이고 뿌듯했다. 각 챕터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좋았다. 처음 몇 챕터가 너무 어려웠지만 내 그릇이 부족해서 참 아쉬웠으니 철학 공부를 조금 더 하고 나서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이해를 잘 할 수 있겠지. #원전으로이해하는칸트윤리학" style="color : #0055FF">#원전으로이해하는칸트윤리학 #칸트 #칸트윤리학 #박찬구지음" style="color : #0055FF">#박찬구지음 #세창출판사" style="color : #0055FF">#세창출판사 #일파만파독서모임 #세창출판사 #원전으로이해하는칸트윤리학 #박찬구 #곤파만파독서모임 #철학 #철학책 #철학책추천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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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때 서양 윤리 사상에서 의무론적 윤리, 선의지, 정언명령 등 한줄짜리 지식으로 듣고 기억한다. 최근에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으로 제목만 아는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철학자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칸트 였었는데, 그건 선의지 때문이었다. P.143 ‘이 세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계 밖에서도 제한 없이 선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뿐이다.’ P.146 ‘의지는 그것이 실현하거나 성취한 것 때문에, 또는 이미 주어진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에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는 일 자체로 선한 것이다.’ 칸트를 좋아했던 이유는 이 문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고민없이 읽기 시작한 이유는 칸트에 대해서 좀더 잘 알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물론 책의 저자의 말에 칸트 윤리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칸트의 원전을 읽는 데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집필 되었다는 얘기에 잘 읽을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철학서를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아는 이름이지만 책 한두페이지로 된 설명만 읽었던 내게는 어려운 부분들이 꽤 있었다. 형이상학 부분과 자연결정론 등의 강의는 어려웠고 뒤에 선의지와 도덕 법칙, 도덕적 감정, 도덕 교육에 대한 부분들은 그래도 쉽게 읽힌것 같다.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열두번째~마지막 강의 부분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타인에 대한 의무는 특별히 칸트를 잘 이해하지 못해도 누구나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생활속에서 충분히 공감 가는 내용들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중 동물적 존재로서의 대한 의무의 자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자기 마비에 대한 설명은 철학의 개념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무 등 스스로는 대하는 태도와 타인에 대한 나의 자세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P.303 자기 자신에 대한 불완전한 의무에는 ‘자신의 자연적 완전성’을 개발할 의무와 ‘자신의 도덕적 완전성’을 고양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자는 자신의 심신을 잘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의무이며, 후자는 가능한한 도덕적 완전성(도덕법칙의 실현)을 추구해야 할 의무입니다. P.312 감사는 의무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는 나에게 베풀어진 친절에 대해 나의 책무성(내가 빚지고 있음)을 내보임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친절을 베풀게 만들려는 한갓 영리함의 준칙이 아닙니다. 감사란 나의 다른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한낱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법칙에 의한 직접적인 강요, 즉 의무입니다. P.325 타인에 대한 사랑의 의무로는 ‘자선’ 감사’, 동정’의 의무가 있고, 이 의무에 반하는 악덕으로는 ‘시기’, 배은망덕’, 남의 행에 기뻐하기’ 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존경의 의무는 타인을 언제나 존엄성을 지닌 인격체로 존중해야 할 의무인데, 이 의무에 반하는 악덕으로는 ‘거만함’, ‘비방’ ‘조롱’ 등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존경의 의무가 인간관계에서 일종의 필요조건이라면 사랑의 의무는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의무의 위반은 단지 ‘부덕’이라 할 수 있지만, 존경의 의무의 위반은 악덕’이 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칸트윤리학 #박찬구지음 #세창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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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본 칸트 윤리학은 액자에 담겨진 백지 인것 같다 그 안에 뭔가가 채워지는걸 원지 않는 순수 그 자체가 투영된 백지, 도덕 그 자체의 작품으로서 남길 원한것 같다 요즘 나에게 느껴지는 도덕은 뉴스에 나오는 비도덕 행동에 기반한 뉴스, 식당 및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지키는 공중 도덕.. 이번에 칸트를 통해 도덕에 대한 Perception 변화 & Coverage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된것 같다 특히 ① 나 자신 ② 타인(가족/친구/직장동료)에 대해서도 확장된 도덕(존경을 기반한)에 대해 확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도덕 동기화의 주기도 고려 해야 할 것으로 생각 해 보았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기적으로 스스로 타인에게 투영 되는 나 자신에 대해 한번 생각 해보야 할것 것이다 언급된 단어중 인색함이 계속 머릿속을 남아 있는것 같다. 너무나 많은 / 다양한 정보들이 주위에 산재 되어 있는것 같다 모바일 알림만 보아도 수시로 오는 관심사 / 업무 등 많은 알림에 의해 나 자신에 대해 생각 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 하지 않은것 같다 → 풍부함을 증기는 것보다 소수에서의 소소한 행복 및 의무를 이행 하는것에 대한 무게를 두어야 할것 같다 칸트 윤리학의 확장성 도덕의 저변 확대를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하지만, 사회에서의 실천 / 반영성은 극히 힘들지 않을가라고 생각된다, "도덕"의 존재는 점점 퇴보 되고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 및 나 스스로도 도덕이라는 의미를 성찰 할 수 있는 기회 증가를 위한 방안을 수립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 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