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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 남을 명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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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쓴 파일을 발견했다.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이 번역본이 얼마나 화려한 지 독자는 보게 될 것이다.   0. 난 최근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안또니오 그람쉬가 감옥에서-신채호가 그리하였고, 마르꼬 뽈로가 그리하였고, 보에띠우쓰가 그리했듯이-피흘리며, 좌절하지 않고, 희망에 대해 속삭인 육체의 소진의 결과물이었기에 진정 소중히 다루었다. 하
"역사에 길이 남을 명번역" 내용보기

오래 전에 쓴 파일을 발견했다.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이 번역본이 얼마나 화려한 지 독자는 보게 될 것이다.

 

0. 난 최근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안또니오 그람쉬가 감옥에서-신채호가 그리하였고, 마르꼬 뽈로가 그리하였고, 보에띠우쓰가 그리했듯이-피흘리며, 좌절하지 않고, 희망에 대해 속삭인 육체의 소진의 결과물이었기에 진정 소중히 다루었다. 하지만 문제는 번역에 있었다. 그리하여 난 여기에 몇 개의 오류를 지적한다.

 

내가 검토할 책은 대한민국 최대 출판사가운데 하나인 민음사에서 2000년에 나온, 양희정 번역본이다. 이를 추천한 자는 오직 영어 자체에 빠진 진보학자(?) 최장집이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자 유형이다.

 

. 잘못된 이딸랴어를 포함한 외국어 및 외래어의 표기법을 관례나 잘못된 문교부안을 무시하고 원음에 가깝게 고치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된소리표기와 구개음화가 포함되며, 이 두 가지는 상대 언어권 거주자에 대한 예의이전에, 우리 조선어 사용자의 자주의 표상이기 때문에 어떤 변명으로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1) 16쪽 투스카니, 마르케스, 아브루치-또스까나, 마르께, 아브룻쪼

이 모든 것은 영어(영어)로 적고 어설픈 이딸랴어로 읽는 격이다. 바로 이런 점이 영문과 일문과를 나와서 그 언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중역하는 사람들이 대중독자를 우롱하며, 자주성을 말살하는 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중역을 하더라도 원어에 대한 최소한의 소양이 있어야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2) 17/230쪽 엥겔스-엥을스, 적어도 엥엘스로 해야 한다. -ng-만 있으면 로 읽어야 한다는 영어식의 못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대부분의 게르만어군을 제대로 표기할 수 있다

 

3) 25쪽 주6의 역주 주세페 마치니-주젯뻬 맛찌니, 역자의 전형적인 잘못으로 이딸랴어 읽는 법만 알아도 이런 희한한 표기는 꿈엔들 생각하지도 못했으리라.

 

4) 25쪽 리소르지멘토, 리쏘르지멘토를 혼용하고 있다.-리쏘르지멘또; 29쪽 베르그송, 지오반니, 주세페-배륵쏜, 조반니, 주젯뻬; 34쪽 피에드몬데-삐에몬떼. 이것은 이딸랴어가 아니라 영어로 옮긴 것을 이딸랴어로 표기한 해괴한 표기이다. 반드시 고유명사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알프스의[산기슭]을 의미하며 프랑스와 오랜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이 지역을 프랑스어로는 뼤몽(Piemont)이라고 한다. 이 지방의 중심도시가 또리노가 아니던가 

 

5) 37쪽 짐머발트-찜마발트(Zimmerwald); 45쪽 지아친토-쟈친또(Giacinto); 49쪽 지아코모-쟈꼬모(Giacomo), 프랑스어의 자끄, 자꼬브, 영어의 잭, 제이콥이 아닌가

 

6) 51쪽 줄 움베르드로(Jules Humbert-Droz)-쥘 욍베르 드로; 67쪽 피에르 조셉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뺴르 조재프 프루동; Gilles, Gille(질레)-

 

7) 치레나이카(Cyrenaica)-키레나이카, 영어로 써놓고 멋대로 읽는 것이다. 이른바 고대 뀌레네(키레네)’학파의 어원이 된 오늘날 리비아의 동부 지역이 아닌가.

 

8) 131쪽 마시(Massis), 바레(Barrres), 필리포(Filippo)-마씨쓰, 바래쓰, 필립뽀. 마시와 바레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의 번역자 및 소위 문단계 지식인의 문제점은 어설프게 발음법을 외어서 고유명사에도 강제로 적용시킨다든 것이다. 왜 무엇이 두려워서 우리는 마지막 프랑스어-s-를 보면 도피하는 것일까 

 

9) 133쪽 롬바르디(Lombardy)-롬바르디아, 역시 영어로 표기하고 이딸랴어로 읽는 것이다.; 브레시아(Brescia)-브렛샤; 모라(Maurras)-모라쓰; 마르초코(Marzoco)-마르쪽꼬; 레이몽 포엥카레-래몽 뿌앵까레,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아롱도 레이몽 아롱이 아니라, 래몽 아롱이다.

 

10) 161/317쪽 마리탱(Maritzin)-마리땡(Maritain); 198쪽 빈센초(Vincenzo)-빈첸쪼, 프랑스어의 뱅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213쪽 니콜라이(Niccolai)-닉꼴라이, Nicolai의 오타라면 니꼴라이

 

11) 224쪽 퀴비에르(Cuvier)-뀌비에, 아마 초급 프랑스어를 배울때 c,f,l,r 보통 영어 careful로 외운다. ‘그런 문자가 끝에 걸리면 발음할 때가 있다.’ 바로 그 달콤하며 그러기에 모호한 원칙아닌 편법에 놀아난 것이다. 이번에는 또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여백의 미를 저버리고 마지막 자음을 발음해야 하는가 

 

12) 230쪽 주세페 살비올리-주젭뻬 살비올리; 230쪽 엥겔스-엥을스. 다시 강조한 것은 지겨운 반복이 아니다. 언젠가 이성복은 말했던가? ‘반복은 철면피하다. 하지만 변주는 살아있다라고. 다시 도마에 놓은 것은 위대한 철학자를 이젠 죽이지 말라는 진심어린 부탁이다. 이것은 대역죄인에게나 할 수 있는 부관참시보다 심한 것이다. 우리의 김씨를 기무 혹은 깅 이라고 부르면 우리는 어떡할까 그것을 생가하면 되는 것이다. 왜 나는 엥엘스도 아니고 엥을스라고 극좌적인 주장을 펴는가? 한 번 바꾸기도 힘든데 이 때 아니 바뀌면 힘들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이다. 이해하시라

 

13) 231쪽 테오도르 몸젠-테오도아 몸즌; 231쪽 구리옐모-굴리옐모(Guglielmo), 에쓰빠냐어의 길례르모(기예르모), 프랑스어의 기욤에 해당하는 것으로, 도이취어로는 빌헬름, 네덜란뜨어 윌럼, 영어 윌리엄에 해당하지 않는가

 

14) 237쪽 루차티(Luzzatti)-룻짯띠; 268쪽 푸슈킨-뿌슈낀; 270쪽 톨스토이-딸스또이; 295쪽 푸가체프-뿌가쵸프

 

15) 295쪽 오렌부르크-아림부륵; 306쪽 타티야나-따찌야나; 312쪽 지올리티-졸릿띠; 333쪽 알프레도 로코(Alfredo Rocco)-알프레도 록꼬; 341쪽 체사노 마데르노(Cesano Maderno)-체자노 마데르노; 350쪽 루시엥 장(Lucien Jean)-뤼썡 장; 355포템킨(Potemkin)-빠쬼낀, 어원은 어둠, 모호, 불명확이다. 보시라, 얼마나 현실음가와 현 표기법의 차이가 큰 것인가를.

 

16) 360쪽 쿠수마노(Cusumano)-꾸주마노, 퀴시사나(Quisisana)-뀌지자나

 

 

. 역자가 이딸랴어본이 아니라, 영어(소리글자가 아닌 뜻글자의 한계로 받아들인 중국이나 일본의 부정확한 표기법에 영향을 받고 식민의 표상인데도 못 느끼고 사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영어라고 부른다)본을 기준으로 한 중역에서 오는 문제다. 인용된 단행본, 잡지, 논문은 무조건 이딸랴어본으로 옮겨야 하고, 이딸랴어가 아닌 언어는 역자가 찾아 역주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는 불성실함을 탓한다.

 

1) 71쪽 부하린의 책 [사회학에 관한 대중적 시론]은 역자가 원전과 출판연대를 찾아서 밝혀야 한다. 도무지 어떤 글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 192쪽 사르데냐 행동당-최소한 이딸랴어 명칭을 찾아 적어야 한다.

 

3) 216쪽 딩카족에 관한 역주-수단 어디에 대충 얼마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수 년째 북부와 투쟁하고 있는 수단 남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언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4) 268쪽 푸슈킨의 소설 [황금빛 병아리],[어부]-원전과 출판연도를 찾아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닌가; 270쪽 톨스토이의 소설 [유아기], [사춘기]

 

 

. 원어 노출의 문제다. 예를 들어 인용된 책이나 논문이 있는데, 자꾸 그것이 본문에 반복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 나왔을 때 번역과 함께 원어를 노출하고, 차후에는 번역만 하면 좋을 것인데, 정반대로 한글로 번역을 해 나가다가, 느닺없이 번역어도 없이 원어가 나오고, 다시 그 뒷부분부터 번역을 해 나간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의 갈리마르사가 있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김상환의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을 번역한다고 하자. 그런데 프랑스의 역자가 김상환의 책에서 인용한 책을 갑자기 프랑스어 번역이 없이 한글제목의 책을 쓰고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을 해 나간다고 하자. 어떤 상황인지는 뻔한 일이다. 오늘난 대부분의 이른바 사회과학도서라든가, 저급한 번역수준의 대학교재용 교육학 관련 도서들이 그런 식이다.

 

250Note sul Machiavelli; 260Il materialismo storico e la filosofia di Benedetto Croce; 278Sotto la mole, Mole Antonelliana; 286Literatura e viya nazionale

이런 말들을 번역을 안 하면 독자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 오류/번역어의 문제다.

 

1) 144[유년기와 사춘기의 기억들 Souvenirs d’enfance et de jeunesse]-유년기와 청년기의 기억들, ‘사춘기는 생리적 변화가 있는 시기이며, 프랑스어에는 ‘adolescence’란 낱말을 사용하므로 적합한 번역어가 아니다. 그런데 역자도 270쪽에서 톨스토이의 소설[사춘기 adolescence]에서는 내 주장처럼 사춘기로 번역한다. 번역은 대충하는 것이 아니다.

 

2) 151[페터와 파울]-베드로와 바오로, 혹은 이딸랴어로 삐에뜨로와 빠올로, 굳이 영어로 한다면 피터와 폴이 옳은 것 아닌가? 갑자기 도이취어로 표기한 것은 무엇일까 

 

3) 162[프랑스의 국민적 삶에 대한 노트 Notes on French National Life]-프랑스 국민의 삶에 대한 노트, 어떻게 국민적 삶이란 표현이 가능할까? ‘한국의 국민적 삶이란 표현이 가능하는가 이말이다.

 

4) 194쪽 지하의(podpolie) - 루씨подполье를 전사한 것인데, 뜻은 지하도, 지하생활, 지하조직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다.

 

5) 유진 오네긴(Eugene Onegin)-루씨어도 아니고, 이딸랴어도 아니고, 한글표기는 영어도 아니다. ‘이브계니 아녜긴이 정확한 표기다.

 

6) 226쪽 아브루치-아브룻쪼, 과거에는 어떻게 표기하는지는 몰라도, 정확히는 아브룻쪼가 현재 이딸리아의 공식표기이다.

 

7) 226쪽 통일 이탈리아-이딸랴의 통일

 

8) 244쪽 그라스 뱀(grass snake)-온전히 번역을 하든지, 학명을 달아놓던지, 이딸랴어 원전을 찾아 그대로 한글로 표기를 해야지 그라스 뱀이 무엇인가 

 

9) 295쪽 오렌부르크(아림부륵)는 역사상 키르기즈에 속한 적이 없다. 따라서 수도일 수는 더더욱 없다. 영어 편역자가 잘못 주석을 달았다 해도 중역자의 잘못이 크다.

 

10) 361쪽 그런 루씨어용 끼릴문자는 없다-‘твойпапа가 옳다. 물론 그람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기했는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번역도, 아빠-너의 아빠, 뒤에 이어지는 루씨어 문자는 전부 틀린 것이다.

 

11) 362[피오니르 pioneer]-‘개척자’, 아니면 파이오니어’, 그것도 아니면 무엇인가? 이딸랴어에 차용된 영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읽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 오타의 문제다.

 

1) 24쪽 변형주의 trasformismo-transformismo.; [한국 민주주의와 조건과 전망]1926년이 아니라-1986년 출간이다. 번역서 추천자 책 출간년도마저 틀린다!

 

2) 196Eugene-Eugene; 231쪽 몸젠(Mommser)-Mommsen; 238goudenti-gaudenti; 282쪽 카발칸티 Caralcanti-조선어가 맞는지, 로마문자가 맞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3) zivoj ugolok-루씨어 원어가 живой уголок이므로 로마자 전사는 ?ivoj ugolok, 혹은 zhivoy ugolok으로 표기해야 한다. 굳이 번역하면 생체 표본실정도면 문안하다.

 

4) 322쪽 역사적블록 historical bloc>-<역사적 블록 historical bloc>

 

5) 355쪽 케르체프(Kerzencev)-조선어가 맞는지, 로마자가 옳은지?; 361쪽 체흡-체홉

c**********1 2019.06.2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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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도, 사람이다.
"혁명가도, 사람이다. " 내용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베스트셀러 ‘뇌’에서는 주인공 뤼크레스가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방에 가둬지는 부분이 나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어서, 감각적인 자극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이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은 죽음과 다름없는 ‘인식의 부재’를 가져온다. 뤼크레스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고한다. 머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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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베스트셀러 ‘뇌’에서는 주인공 뤼크레스가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방에 가둬지는 부분이 나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은 생각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어서, 감각적인 자극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이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은 죽음과 다름없는 ‘인식의 부재’를 가져온다. 뤼크레스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고한다. 머리 속으로 집을 짓고, 부수고, 다시 집을 짓는 것을 반복한다. 사람에게, 그것도 활발한 지적 활동을 펼쳤던 사람일수록 지적 자극을 받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상당한 고문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억압에 대해 뤼크레스가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그람시는 감옥에서 끊임없이 사고함으로써 자신을 감옥으로 내몰았던 이들에게 저항한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사회에 있을 때 왕성한 저술, 정치활동을 펼쳤던 그람시가 어떻게 자신의 지적 사유를 지속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치열한 기록이다. 어머니와 처형,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읽고 싶어하는 책들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요즘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학문적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그람시의 모습은 20여 년의 징역 선고에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한 인간의 눈물겨운 투쟁의 증거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감옥..’은 투쟁의 결과물인 ‘옥중 수고’를 통해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던 그람시의 혁명가적 명성 뒤에 가려져 있는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되어 주기도 한다. 아무리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감옥은 역시 감옥이고, 자유가 없는 것은 다르지 않다. 아내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왜 편지를 보내지 않느냐고 말그대로 ‘칭얼거리는’ 그람시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철같이 단단한 혁명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은 혁명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좀 더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보다 정성스런 편지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편지를 기다리는 그람시의 흔적이 담긴 편지들을 읽노라면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고교 시절,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얼마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억울하기만 했을지도 모를 20여년간의 긴 옥중 생활을 배움의 자세로 일관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입시에 치이는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너무나 커다랗게 다가왔었다.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어도 ‘자유’를 일정부분 구속받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차이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나로 하여금 수년전의 그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해준다. 공교롭게도 지금 역시 정해진 구속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랬는지, 그람시의 편지 안에 담겨진 그의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그 제목처럼 사색과 깨달음으로 점철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새로 다잡도록 해주는 편지들의 모음이라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감옥조차 가둘 수 없었던 그람시의 학문적 열정과 사회와 분리된 공간에서 그가 느꼈던 좌절감을 동시에 가슴으로 절절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편지들의 모음이었다.
b*****l 2004.08.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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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그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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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 그는 현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마르크스주의자중 한사람일 것이다. 그가 자주 인용했던 “이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은 이미 너무나 자주 언급되어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의 사상 중 가장 핵심이 되는 ‘헤게모니’는 비단 정치투쟁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가 더할 수 없이 극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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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 그는 현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마르크스주의자중 한사람일 것이다. 그가 자주 인용했던 “이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은 이미 너무나 자주 언급되어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의 사상 중 가장 핵심이 되는 ‘헤게모니’는 비단 정치투쟁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로 자리 잡았다.   스스로가 더할 수 없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람시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타니아의 건강을 끊임없이 염려하고 자신의 부인 줄리아와 아들 델리오에 대해서는 관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부를 계속하려는 의지도 보인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람시가 자신의 공부 계획을 알리고 필요한 자료를 요청 하는 등 그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게 해줄 만한 열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기에 앞서 무한한 인내심과 소신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위대한 인간 그람시를 직접 만날 수 있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c******3 2006.07.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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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아픔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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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옥중수고에서 그람시가 다루는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계속해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회학적, 문학적 문제들 뿐만 아니라, 철학적문제들 그리고 문화의 조직화문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이글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사항들만이 간략히 언급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들 모두가 어떻게 동일한 시각 즉 그람시 스스로가 절대적 역사주의라고 불렀던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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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옥중수고에서 그람시가 다루는 다른 수많은 문제들을 계속해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회학적, 문학적 문제들 뿐만 아니라, 철학적문제들 그리고 문화의 조직화문제와 같은 다양한 주제들 가운데 이글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사항들만이 간략히 언급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들 모두가 어떻게 동일한 시각 즉 그람시 스스로가 절대적 역사주의라고 불렀던 시각에 의해 조명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모든 일체의 역사적, 형이상학적 또는 사변적 초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역사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그람시가 항상 보다 덜 이데올로기적이고 보다 과학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하나의 유물론적 이론이다.
g*******3 2002.04.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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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상가의 인간적 고뇌와 의지를 엿보게 합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인간적 고뇌와 의지를 엿보게 합니다" 내용보기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창설멤버였다. 그때가 1921년 무렵..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혁명을 주도하였고, 새로운 혁명 전략 이론가로서 예지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책은 안토니오의 정치 혁명가의 면모보다는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적었던 편지, 메모등을 통해 그의 문학적 발견, 지적 엄격성을 잘 드러낸 책이다.  이 글은 세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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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창설멤버였다.

그때가 1921년 무렵..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혁명을 주도하였고, 새로운 혁명 전략 이론가로서

예지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책은 안토니오의 정치 혁명가의 면모보다는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적었던 편지, 메모등을 통해 그의 문학적 발견, 지적 엄격성을 잘 드러낸 책이다. 

이 글은 세심하고, 건조하며, 자기연민의 공간이 없는 그야말로 자신의 의지와 정신을 집중시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가 6살무렵 계단에서 떨어져 등이 꼽추가 되었고,병약하였으나 그의 정신만은 맑았다. 그는 너무 어린나이에 주변의 냉대를 겪으면서 자신 내면에 깊은 철학적 사유를 만들어 갔다.

 

책 속으로

p304

사랑하는 델리오

멋쟁이새와 물고기가 있는 너의 <작은 생기 있는 구석>에 대해 듣고 아빠는 기뻤단다. 멋쟁이새가 가끔씩 새장엣 달아나면 날개나 다리를 잡지 마렴. 그런 섬세한 부분들은 부러지거나 탈구될 수가 있단다....<중략>  [정글 북]도 읽었니?.. 키스를 보낸다. 1932년 2월 22일 투리에서 아빠가

 

p383

이 작품에는 그람시의 문제 의식을 추적할 수 있는 단초뿐 아니라 단테 연구가였던 그럼시의 문학에 대한 애정, 아내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의지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등 그의 정신적 투쟁들이 감동적인 충격을 준다.

f*********5 2009.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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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과 억압안에서 자유를 만나다.
"구속과 억압안에서 자유를 만나다. " 내용보기
몇주전 옥중수고를 읽었다. 사회, 인문 과학 지식이 짧은 내 입장에서 옥중수고는 참 난해한 책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세에 대한 짧은 지식까지 더하다보니 더 어렵게 다가지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옥중수고를 쓰게된 배경과 옥중수고 당시 그람시의 상황을 통해 조금은 수고에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어린시절의 가
"구속과 억압안에서 자유를 만나다. " 내용보기
몇주전 옥중수고를 읽었다. 사회, 인문 과학 지식이 짧은 내 입장에서 옥중수고는 참 난해한 책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세에 대한 짧은 지식까지 더하다보니 더 어렵게 다가지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옥중수고를 쓰게된 배경과 옥중수고 당시 그람시의 상황을 통해 조금은 수고에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어린시절의 가난과 병으로 평생을 걸쳐 병고에 시달렸던 작은 몸집을 가졌던 사람 1차 세계 대전이후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토리노에서의 공장 평의회라는 조직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소비에트를 건설할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실천가이자 혁명가였던 그람시는 1927년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구속된다. 망명을 시도할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이탈리아에 남아 있길 바랬던 그람시는 근 11년에 걸친 감옥생활속에서 지식인의 역사와 역할을 연구하고 시민사회와 정치를 이해하면서 노동자 계급이 앞으로의 싸움에 필요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그의 몸을 갉아먹는 와중에서도 그람시에 가족들 특히나 델리오와 줄리아노에게 보낸 편지는 아버지로써의 그람시의 따뜻함의 부성애를 느끼게 해준다. 그람시... 그를 억압하고 구속하는 감옥은 도리어 그에게 세상의 변혁에 대한 자유의지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안토니오 그람시.. 인간 그람시의와 소중한 만남 - 감옥에서 보낸 편지이다.
i*****7 2004.09.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무도 인간적인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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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장애(곱사등이)를 극복하고 위대한 혁명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장애는 세상과 그를 연결하는 문을 폐쇄하여, 고독한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러한 고독이야말로 그의 사색의 지평을 넓혔으며, 훗날 이론가로 단련되는 그의 사상체계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람시는 단련된 언론인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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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장애(곱사등이)를 극복하고 위대한 혁명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장애는 세상과 그를 연결하는 문을 폐쇄하여, 고독한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러한 고독이야말로 그의 사색의 지평을 넓혔으며, 훗날 이론가로 단련되는 그의 사상체계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람시는 단련된 언론인으로 이론적인 글을 여러차례 기고하는 등,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남겼다. 혁명활동의 시련 속에서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일관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했던 그의 의지 역시 위대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혁명가로서의 그람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그의 이론적 소양이나 불굴의 의지도 아닌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육체적 장애 앞에서 나약하고 사랑 앞에서 좌절하며 변심하는 그의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이야말로, 혁명가로서의 위대성을 부각하는 배경이었다.
k*****l 2003.0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