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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배에서 "다르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를 외치다.
"침몰하는 배에서 "다르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를 외치다." 내용보기
지난 주말, 김영하 작가님의 데뷔 30주년 기념 강연회에 다녀왔다. 사실 작가님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부끄럽게도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알게 된 이상 안 갈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것들은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단순히 문학을 넘어 우리의 삶과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작가님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위장된 목소
"침몰하는 배에서 "다르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를 외치다." 내용보기

지난 주말, 김영하 작가님의 데뷔 30주년 기념 강연회에 다녀왔다. 사실 작가님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부끄럽게도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알게 된 이상 안 갈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것들은 3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단순히 문학을 넘어 우리의 삶과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작가님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위장된 목소리를 따라 위장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는 어릴 때부터 "너는 이 집안의 장남이야, 너는 의사가 되어야해" 등의 사회나 타인에 의한 삶을 의도치 않게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작가님은 이런 위장된 목소리가 닿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나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책'이라고 하셨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애쓰지 않나.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장래 희망란에 '화가'를 적어 냈다. 그림 솜씨가 좋으셨던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무의식중에 '좋은 사람이 되려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화가가 되라고 강요한 적은 없기에 잘못된 목소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화가'는 나에게 적절한 운명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했따. 나는 아주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림을 못그리기 때문이다. 그림에 관심도 없기 때문에 '화가'가 되고자 한 것은 긍정이나 부정의 의미를 띄지 않고 보더라도 위장된 목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성장한 후 엄마가 다니시던 출판사 공장에서 직원가로 사다 주신 책들을 읽을 때에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특히 일본 소설 <샤바케> 시리즈가 기억난다. 병약해서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요괴들과 친구가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현실의 제약을 넘어 머릿속으로 무한한 모험을 떠났다. 어찌보면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게 당시 나는 친구가 별로 없었기에(안타깝게도 지금도 없다) 거의 집에서 혼자 놀았다. 그래서 이야기속 주인공이 요괴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사건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책이 보여준 그 상상력의 세계야말로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친구였던 것이다.


강연 중반부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타이타닉>을 대조하며 예술의 가치에 대해 말씀하셨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예술을 위해 죽을수도 있다! 는 예술의 숭고함과 무용함(예술은 의학과 상업 등 과는 달리 무용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억압에 반항할 수 있다)을 보여준다면, <타이타닉>의 현악 4중주단은 절망적인 순간 타인에게 평안을 주는 예술의 '유용성'을 보여준다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도, 타이타닉도 정말 여러번 봤음에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작가님은 영화를 보실 때에도 그런 것들을 통찰력있게 포착해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리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던 비유는 글을 쓰는 것을 포함한 출판 산업을 "침몰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타이타닉호"에 비유하신 부분이었다.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묘한 슬픔이...)

"우리는 그 배에 탄 4중주단입니다. 배가 언제 가라앉을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우린 달리 할 일도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결국 우리는 책속의 작은 목소리를 찾은 사람들이니까요. 생각보다 배가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침몰할 수 있어요."는 작가님의 농담 섞인 말씀이 참 웃프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사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어차피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이 문학을 읽고, 쓰고, 느끼는 것 밖에는 더 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것을 열심히 하자! (지금은 너무 못하고 있으니까...ㅠㅠ)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가님이 "우리"라고 해주셔서 나처럼 문학을 멀리하며 살고 있던 사람도 "우리"라고 쳐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달까?...

이렇게 맨 처음과 끝에 말씀해주신 것들이 각각 보면 다른 얘기 같지만 강연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가 되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을 보니, 새삼 소설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YES마니아 : 골드 w*******2 2025.12.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