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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도서제공
내 앞에 살아 숨쉬는 이 존재가 세상의 유일한 개체일 수도 있다는 것. 종의 마지막 개체를 바라보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동물의 멸종은 머나먼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동떨어진 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는 오귀스트와 프로스프의 관계 속에서 프로스프를 세상 유일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그 결과 한 생명이 사라지고 종이 멸망하는 현실을 피부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오귀스트는 사실 자연사 박물관에 큰바다쇠오리를 보내겠다는 목표로 이 여정을 시작했고, 운 좋게 한 마리를 생포한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생포한 큰바다쇠오리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고,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붙여주기까지 한다.
귀스가 프로스프에게 갖는 책임감과 애착은 경이롭다. 그는 자신이 프로스프를 포획함으로써, 그를 동족과 같이 살 기회를 뺏은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그를 보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스프가 세상에 남은 마지막 개체라는 것에 우울해한다.
지금이야 종의 멸종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오귀스트가 살던 183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공룡의 멸종처럼 기후가 급작스럽게 바뀌지 않는 이상 종이 멸종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개념이었고, 아무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저자는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당연하지만 깨닫기 어려운 진실을 매우 섬세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큰바다쇠오리에게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붙여 준 순간, 그는 한 개체에서 유일한 '존재'로 격상하게 된다. (프로스프가 짝짓기를 실패하고 동족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볼땐 마음이 찢어져..??)
오귀스트는 프로스프가 사라지면, 앞으로 그 어떤 것에서도 프로스프의 잔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프로스프의 독특한 흰 반점이나 물갈퀴, 퇴화된 날개 등, 나는 비로소 종의 멸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된다. 언젠가는 인간이라는 종 또한 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머릿 속을 스친다.
인간이 단순히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학살하고,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는 시대에 매우 섬세한 방식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책이다. 오귀스트와 프로스프가 맺는 관계가, 함께하는 모습이 왠지 행복해 보이면서도 씁쓸했다.
??우주는 인간이 바라보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테지만, 자신의 일부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인간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는 자신을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꼈다. 파도와 다를 게 없는 존재라고, 검은 모래톱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와 친구가 될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아주 작고 하찮으며 세상 모든 것과 동등한 존재로서 이 무한한 우주와 토론을 벌이고 있어서,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우주를 상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p.125)
??어쩌면 큰바다쇠오리와 인간은 일련의 관습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 탓에, 자기들 눈에 보이는 것과 실 모습 사이의 차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실제 모습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건 그저 해석일 뿐이며, 그래서 그 오해들이 서로 얽히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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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멀리에서 해안 절벽을 바라보니 그 새들 배에 생긴 흰 반점이 유독 눈에 잘 띄었다. 반점 위쪽에서 부리가 빛나고 있었다._p9
'우리가 함께 갈 이 바닷새의 학명은 Pinguinus impennis, 즉 날갯죽지를 이루는 빳빳하고 긴 칼깃이 없어서 날지 못하는 핑구이누스라는 뜻이다. 이 새를 프랑스인들은 <그랑 팽구앵grand pingouin>이라 부른다. 언뜻 보면 <큰 펭귄>으로 옮길 법한 이 말을 우리는 <큰바다쇠오리>라 옮긴다. 이 바닷새의 학명과 일반명에는 긴 사연이 얽혀 있다.‘
평화로운 새들의 이동으로 시작하는 글을 나는 두 번째 페이지에서 멈춰버렸다. 언젠가 보았던 일본어부들의 잔인무도한 돌고래살육 영상이 떠오르는, 인간들의 학살 장면은 한 글자도 새겨서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훑고 간 처참함 뒤에 분노에 찬 바닷새 한 마리가 남았다. 젊은 생물학자 오귀스트(귀스)가 발견하고 물고기 한 마리를 놓아주었지만 먹기를 거부한다. 어떤 박물학자에게 고용되어 있었던 귀스는 이렇게 큰바다쇠오리 한 마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멸종을 앞둔 #큰바다쇠오리 , 한 종의 마지막 개체와 지내며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그 새에게 지어주었다. 이윽고 타인과도 어울리게 되고 끈이 없어도 오귀에게 되돌아올 정도로 서로 신뢰가 커진다. 유의미한 이들의 관계는,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생태와 그 법칙 사이에 변칙적으로 끼여있는듯한 인간들, 한 가지 종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며 큰바다쇠오리의 생존여부를 추적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오귀스트에 감정이입하며 두근두근 하며 읽었던 책이였다.
#프랑스소설가 #시빌그랭베르 의 장편소설이지만, ‘귀스와 프로스프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1844년에 사라진 그 종에 관한 풍부한 참고 자료’를 활용했다고 작가후기를 통해 보충설명해주고 있었다.
작가후기를 통해 실재로 이 새들은 사라져버렸다 하니, 허망한 쓸쓸함에 책의 도입부의 잔인한 장면이 또 떠올랐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없어진 많은 동식물들과 멸종위기의 개체들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죽어가는 프로스프를 보며 귀스는 어떤 심정이였을까?
#그바다의마지막새 , 내 안에서만이라도 영원히 살게 하고 싶다.
_“왜 큰바다쇠오리가 마녀라고 생각하세요?”
“배에다 큰바다쇠오리들을 붙잡아 두면 그 새들이 폭풍우를 불러옵니다. 뭍에다 붙잡아 놓으면, 그 새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 때문에 이제 그 새들이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뭍에서 그 새들을 포획했어요. 그래서 이젠 마녀가 다 사라진 거죠.”
그 마녀 애기는 귀스도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문득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프로스프가 미친 듯이 울어대니 그의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_p104
_귀스는 자기 앞에 있는 장벽의 성격을 파악한 기분이 들었다. 큰바다쇠오리는 어떤 부당 행위의 희생자이지만, 그 부당 행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었다. 본질적으로 부당 행위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므로, 남의 이해를 얻기도 어려울 터였다._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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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한 큰바다쇠오리와, 그 마지막 남은 한 생명을 지켜주려 했던 귀스의 우정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가슴을 조여왔다. 인간의 보호 아래 살아온 새가 정작 같은 종을 만났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까지 당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차올랐다. 그 장면은 생태의 비극이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만들어낸 상처의 초상처럼 느껴져 더욱 애잔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멸종된 동물들은 정말 완전히 사라진 걸까?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살아남아 있지는 않을까? 이런 질문을 품게 된 건, 어쩌다 보니 동물의 행동과 감정에 마음을 쓰게 된 이후부터다. 두 달 된 작은 강아지를 처음 보았을 때, 혹시 잘못될까 봐, 혹은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까 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누가 주인인지 모를 만큼 삶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종 자체도 요즘 점점 보기 힘들다고 해서 더 짠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서인지 큰바다쇠오리의 이야기는 더 깊게, 더 슬프게 다가왔다. 동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것도 인간이고, 상처 입은 생명을 치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도 결국 인간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지구상에서 인간만 없다면, 이곳은 혹시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큰바다쇠오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강화된 관찰이나 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외로움과 감정의 떨림에 가까운 방식으로. 나 또한 강아지를 키우며 종종 그 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동물의 마음과 생각은 항상 궁금하고, 그래서 이 책이 남긴 여운은 더 길고 깊다.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이런 상상도 스쳤다. 만약 인간이 멸종하고 최후의 한 사람이 남는다면, 그 외로움은 어떤 감정일까? 그 질문은 곧 큰바다쇠오리가 겪어야 했던 절대적인 고독과 겹쳐지며, 책의 페이지 밖까지 울림을 남긴다. 『그 바다의 마지막 새』는 멸종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를 넘어, 인간과 동물, 보호와 상처, 고독과 연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책이었다. 📍펭귄과 큰바다쇠오리는 다른 종임 📍우리나라 상주 국립 낙동강 생물 지원관에 표본 전시되어 있다함🙊 *이 서평은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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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 직감했다. 이 책과 사랑에 빠질 거라는 걸.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생명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건, 다시 없을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오리도 펭귄도 아닌, 그저 날지 못하는 새일 뿐이었던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스스로 깃털을 다듬는 모습을 지켜보고, 부리를 움직이는 방식의 차이를 알아가며 오귀스트는 프로스프와 사랑에 빠진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제목에서 이미 결말을 암시하고 있음에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새는 큰바다쇠오리의 마지막 개체였다. 꿈을 향해 나아가던 청년 귀스는 적당한 때 결혼하고 귀여운 아들이 있는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가족을 뒤로한 채 바다로 향했고, 그 바다를 떠나지 못한 채 몇 해를 기다렸다. 나는 그 마음이 궁금했다. 자신의 선의가 한 종의 멸종을 앞당겼을 수도 있다는 괴로움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내가 깨달은 건 새를 그리워하며 말라가는 인간도, 그저 새일 뿐이라며 학살에 가담하는 인간도 모두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인간일까.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의 '뷰캐넌' 같은 사람이 아닐까.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의 손에 죽어갔다. 아름다운 깃털 장식을 위해, 멋진 모자를 위해, 기름지고 맛있는 고기를 위해. 큰바다쇠오리는 마지막 몇 개체까지도 한낱 인간의 ‘수집욕’ 때문에 사라졌다. 다른 종을 대하는 근본적인 인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괴로웠다. '아무도 배고프지 않았으므로 근거 없는 학살'이었다는 귀스의 말에 나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종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을 ‘비천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책을 추천한다. 한 생명이 가진 무게를 끝까지 응시해 보기 바란다. 📍 하늘을 보세요. 검은 것들이 눈에 뛸 겁니다. 티끌만 한 반점들이 보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거건 먼지가 아니라 새들입니다. 그다음으로 저 바다를 보세요. 표면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합니다. 우리는 저 움직임을 물결이라 부릅니다. 세상은 그냥 이런 겁니다. P244 📍 나는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사람입니다. 나는 프로스프를 떠나고싶지 않습니다. 프로스프를 다시 만날 수도 있는데, 왜 그런 기회를 저버리겠어요? 프로스프가 파도를 헤치고 나와서 나한테 인사를 할수도있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어요.P242 📍 하지만 그는 대학살을 보고 구역질을 느꼈음에도, 지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비천하게 만드는 그 장면을그냥 지켜보았다. 아무도배가 고프지 않았으므로 그건 아무런 근거 없는 학살이었다.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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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 그 바다의 마지막 새 ✒️ 시빌 그랭베르 🔖 열린책들 🌸 처음에는 온전한 궁금증 이었어요. 이 세상에 단 하나만 남은 지구상의 마지막 개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 하다는 그 의문으로. 그래서 열린책들의 서평단 지원할 때에도 남긴 댓글이 이거 였어요. 인간도 그 인간이 이 지구상에 단 하나만 남은 개체라면 진짜 홀로이 남은 곳에서 어떻게 어떤방식으로 살아남게 될지 궁금하지 않으실까요? 📌 소설은 1835년,북유럽의 동물상을 연구하러 떠난 젊은 생물학자 오귀스트가 아이슬란드의 한 섬에서 우연히 멸종 위기종인 <큰바다쇠오리>를 만나 관계틀 맺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동물을 단순하게 의인화하지 않으면서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존재로 탁월하게 그려 내며, 종이 다른 존재와 지내며 생겨나는 호기심과 불신, 호혜와 애착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나아가 우리는 자연에 무엇을 빛지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생명을 보존한다는 것과 한 종이 지닌 삶의 방식과 기억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저 진짜...이책을 읽기 시작하고 시작하자마자 단 한장을넘긴 10페이지부터는 책슬 읽어나가는것이 매우 힘들었어요.생명이 있는 이 큰바다쇠오리를 너무나도 잔인하게 학살하고, 나약한 존재를 죽여서 이익을 취하려는 인간의 모습에 진짜 혐오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장면들 이었거든요.ㅜ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 글로 언급은 피하고 싶어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 오귀스트는 책의 주인공 입니다. 귀스라 불리는 이 남자는 어떤 박물학자에게 고용되어 있었는데 큰바다쇠오리를 사로잡는 임무를 가지고 학살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어요.그 잔인한 모든것을 지켜보면서...(처음에는 이 사람이 진짜 빌런이고, 이 생태계를 학살과 동시에 파괴하는 악한 사람이라 생각했었어요) 그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간 이유는 죽은 큰바다쇠오리를 구해서 릴의 자연사 박물관에 보내는 것, 그런다음 거기에서 그 새를 박제로 만드는 것 이었어요. 잔인하죠. ✒️ P49 그는 큰바디쇠오리를 잃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처음엔 큰 바다쇠오리가 적처럼 보였다. 도망치려고 애쓰는 죄수를 대할 때보다 많은 동정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다음에는 큰 바다쇠오리가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닥치고 있는지 모르는 존재로, 그래서 보호해 주어야 하는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그 싸움이 끝날 무렵, 여전히 물속에 앉아 있는 그의 가까이로 큰바다쇠오리가 다시 나타나자, 문득 그새가한 마리 외로운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62 그가 들어서자 새가 소리를 지르며 되도록 빠른 걸음으로 뒤뚱뒤뚱 다가왔다. 적어도 귀스에게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새의 울음소리는 짧았지만. 어떤 안도감의 표현, 자기가 잊히지 않았다는 기쁨의 표현과 비슷했다. 귀스는 자기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 마치 분양받거나, 입양한 첫 반려동물들이 반응이 없었다가 믿음과 사랑이 생겨 주인이 외출 후 돌아왔을 때 맞이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슬펐다. 📌 책속의 주인공은 새에게 이름까지 지어줬다.그의 이름은 <프로스퍼러스: 일명 프로스프> 이름의 뜻은 무언가 행복의 전조 같은 것을 담고 있는 이름. ✒️P92 귀스는 큰바디쇠오리 덕분에 깼다. 프로스프는 그의 코를 여리게 깨물고 있었다. 그를 아프게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꼬집는 것과 비슷한 동작이었다. 그렇게 그의 품을 막았다가 누르던 것을 푸는 동작을 되풀이했고, 그 일시적인 호흡 정지가 귀스를 깨어나게 한 것이었다. ➡️ 마치 우리가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의 사랑스런 행동 같죠? 📌 이렇게 원래의 주인공의 목적과는 다르게, 평온하고 행복한 새와함께 하는 시간들이 흘러가요. 아내는 아이를 낳게되고, 프로스프는 아이를 시샘하지도 않고 위험한 순간에 아이를 지켜내기 까지 합니다. 진짜 또 나에게 눈물을 가져다 주는 책 이었어요😭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 우리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인상적인 소설. 감동적인 해피엔딩의 소설. 같이 읽어보시길 추천. - #그바다의마지막새 #시빌그랭베르 #열린책들 #책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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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사람들에게는 짜면 기름이 많이 나오는 연료로, 수집가와 박물관에게는 박제로, 몸의 일부라도 소장하고 싶은 탐나는 컬렉션으로, 젊은 생물학자 오귀스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줄 연구대상일 뿐이다. ⠀ 새장 속에서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그 새를 멍청하다 생각하는 오귀스트. 하지만 자신이 있던 곳이 아닌 얕은 바다임에도 터질듯한 생명력과 만족감을 심장박동으로, 표정으로 보여주는 것을 보고,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 큰바다쇠오리가 불쑥불쑥 머릿속에 떠오른다. ⠀ 떨어질 수 있을 만큼 떨어져있던 그 둘의 거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렇게 내려다보던 오귀스트의 시선은 점점 고개를 들어 눈높이를 맞춘다. ⠀ #그바다의마지막새 (#시빌그랭베르 지음 #열린책들 출판)속 배경인 1830년대는 ‘멸종’, ‘진화’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이다. 특정 군집이 보이던 자리에 없다면 어딘가로 이주했다 생각할 뿐,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시기. 인간은 짐승을 잡아먹고 짐승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것이 당연하다고, 어딘가에 또 있을 것이라는 안일함으로 폭력과도 같은 행동을 정당화한 시대. 참 많은 종들이 세상에서 사라진줄도 모른채 사라졌다. ⠀ 연구대상에 불과했던 큰바다쇠오리는 오귀스트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수조를 가진 ‘프로스프’가 되고 우정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눈높이가 동등한’ 사이가 된다. ⠀ 비로소 있어야 할 곳에 있지않음, 이 하나만으로 본모습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개체로 존재하며 그 종의 다른 개체들과 유대할 때만 원래의 정체성을 띠는 것이다. ⠀ 그렇게 오귀스트는 프로스프의 완전한 정체성 회복을 위해 자연 속 큰바다쇠오리를 찾으러 또 한번 모험을 떠난다. ⠀ 관심을 가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동물에게도 표정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냉혹한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그 중 실험대상과 교감한 누군가의 업적일 것이다. 관심은 대상을 나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생겨난다. ⠀ 각종 데이터에 의하면 세상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세상에 큰바다쇠오리 같은 ‘지구’는 없었다. 또 어딘가에 있을 무한한 것으로, 착취해도 되는 동등하지 않은 것이었다. ⠀ 이제서야 지구가 병들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제서야 지구와 인간의 눈높이가 맞아진 것이다. ⠀ 즐거움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것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에서 떨어져나와 좁은 우리안에 갖혀 전시되고있다. 그것이 본래의 정체성과 행복을 여전히 지니고 있을까. ⠀ 이미 많이 늦었다. 이 세상에 ‘프로스프’같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 그래도 늦음 중에서는 지금이 가장 빠른 시점이다. 또다른 ‘프로스프’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는. ⠀ 나와 동등한 눈높이를 가진 것으로 모든 ’지구‘를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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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요약 :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폭력성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버린 아이의 씨를 말리려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소설은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해,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귀스는 한 박물학자에게 고용되어 죽은 큰바다쇠오리를 구해 자연사 박물관에 보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뱃사람들과 엘데아 섬에 있는 30마리 정도의 큰바다쇠오리를 말살한다. 이들은 이 지역의 마지막 군집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식량이자 값비싼 희귀한 수집품일 뿐이다. 귀스는 한 마리의 큰바다쇠오리를 구하게 되고, 그 역시 최초로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이자 박물관의 훌륭한 조력자로 이름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바닷새를 대한다. 하지만 큰바다쇠오리와 함께 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정이 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그는 ‘책임감’이라는 것을 느끼며 큰바다쇠오리 또한 그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바닷새에게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 인간은 짐승을 잡아먹고, 짐승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다. 그게 세상의 법칙 아닌가. 귀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공황 상태에 빠졌던 기억, 기뻐하던 뱃사람들, 야비한 살육, 자기 알을 지키려다가 돌에 맞아 죽은 큰바다쇠오리의 모습. 사실 귀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꿈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보았다. (p.41) 프로스프를 진정으로 아끼게 된 귀스는 프로스프의 자유를 빼앗아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게 옳은 일인지, 동종의 개체와 어울려 사는 것이 프로스프의 권리가 아닐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 이 소설은 뭔가 신기했다. 멸종 위기 동물의 비극을 향해 나아가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가 매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이 작은 동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내면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었기에 오히려 바로 옆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고, 주인공 귀스처럼 이 작은 동물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이 싹트기도 하며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동안 인간의 욕심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한없이 먹먹해지는 소설이었다. 결국 인간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며, 이 작은 동물 역시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였던 것이다. 인간에게 다른 개체를 통제하고 함부로 대할 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표지에서 헤엄치고 있는 큰바다쇠오리는 실제로 1844년에 이미 사라진 종이다. 이들은 지구온난화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한 사냥에 의해 멸종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었다. ‘왜 그들을 보호하지 않지?’ 이 당시는 자연이 무궁무진하다 생각하며 종이 멸종할 수 있다는 개념 또한 고생물학 분야의 한 개념일 뿐 널리 퍼지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기 위해, 혹은 그 새의 기름을 짜내 연료로 쓰기 위해 학살했다. 19세기 초에는 박제 기술이 발달하며 희귀한 이 동물을 수집하기 위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인간에 의해 학살되었다. 이 책이 참신했던 점은 소설이 뭉클함을 줬다면, 옮긴이의 말에서는 매우 유익한 정보들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따로 큰바다쇠오리에 대해 찾아봤을 때보다 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전 세계에 78개 남아 있는 큰바다쇠오리의 희귀한 박제 표본 중 하나가 우리나라 한 지방 도시의 전시실에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상주 국립 낙동강 생물 자원관까지 오게 되었을까? *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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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었다. 공모나 묵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63 최근 읽은 책이 하나의 궤로 엮인다. 책임감. 인문학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야간비행>에서 리비에르라는 인물의 투철한 사명감은 주어지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벨아벨 독서모임 리더 북클럽에서 함께 읽은 책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보였던 의사 아내가 병동에서 보인 이타적 행위에 대해 어떠한 책임감과 당위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 <그 바다의 마지막 새>를 마지막으로 내 안에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꽤나 진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도도새라고 해서, 아이가 네다섯 살 때 우연히 들여다본 바바파파 그림책으로 처음 만났다. 그전에는 도도새라는 존재에 무지했고, 사실 ‘멸종’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림책 속에서 도도새를 뱃사람들이 잡아먹어 종이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어 그 새의 모습이 명징하게 머릿속에 남았더랬다. 이 책에서도 처음 큰바다쇠오리를 잡아먹는 뱃사람이 나오고,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왜 잡아먹으면 안 되냐 되묻는 지점에서 마음이 꿈틀댔다. 오직 ‘맛있음’을 위해 하나의 종을 멸절해도 되는 것인가? 그럼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여러 식재료들은 어떠한 과정으로 나의 식탁에 오른 것이며 혹여나 나의 위장을 채우기 위해 아름다운 생명체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노파심이 일었다. 무엇이든 이 땅에 있는 걸 싫어하진 않아요. 나한테 무언가를 싫어할 시간이 있겠어요? 72 이 땅에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내 곁에 있지만 언제고 사라질 수 있는 것들과, 내 곁에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것들도 떠올려본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유해하다는 누명을 쓰고 실제 몰살을 당하고 있는 비둘기나 길고양이도 떠올려본다. 유해하다고 해서 멸절시켜도 되나? 누구에게 유해하다는 것인가? 자꾸만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진다. 하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고심해 본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동물의 한 종류가 아주 없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지구는 풍요 그 자체야. 127 소설을 읽으며 새삼, 내가 이런 결의 소설을 참 좋아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과학적 사실과 저자의 견해를 소설이라는 장르를 입혀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니 단순한 사실적 정보들이 더욱이 진하게 다가온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존재는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동물이었다. 같은 부류가 없는 동물, 귀스와 엘린보르의 집에 사는 자기네 종의 유일한 동물, 자기 주위에 사람들과 공통의 언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 이제 큰바다쇠오리라 할 수도 없게 되어 버린 동물, 한낱 대용품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동물, 148 멸절의 이유가 순리이지 않았고, 지금 우리가 영위하는 지구에서 마지막을 온전한 존재로 불리는 많은 존재들에게 같은 마음으로 사과를 전해본다. 내가 질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으로. #그바다의마지막새 #시빌그랭베르 #열린책들 #장편소설 #과학소설 #멸종 #책추천 #강력추천 #책벗뜰 #책사애25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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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협찬 1835년 북유럽의 동물상을 연구하러 떠난 젊은 생물학자 오귀스트가 아이슬란드의 어느 섬에서 우연히 멸종위기종인 '큰바다쇠오리'를 만나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박물관에 보내려고 했지만 프로스프라는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새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고, 새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며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종의 소멸을 지켜본다. ⠀ 단순히 동물과의 교감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뭐랄까 읽는 내내 슬프기도 하고 경이로웠다고 해야 하나.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크게 애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이런 감정을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감정을 느낄 수가 있구나 싶었다. 이름을 지어주고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거까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새의 행복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도 하고 새에게 같은 종을 만나게 해 주려고 애쓰며, 늘 새의 관점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어쩌면 내가 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이런 모습들이 더 크게 다가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마지막 순간까지도 새를 위해 헌신하고, 결국 종의 소멸을 지켜보며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 🌸P.125 우주는 인간이 바라보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테지만, 자신의 일부분으로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그래서 이 세상은 혼자서 제 깜냥으로 숨을 쉬고 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인간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지저깨비에 섞인 하나의 부스러기보다 나은 존재도 아니고 그보다 못한 존재도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름이 붙어 있고, 체격, 냄새, 습관, 취향, 변하기 쉬운 개성을 지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 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는 자신을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꼈다. 파도와 다를 게 없는 존재라고, 검은 모래톱 위를 날아다니는 파리와 친구가 될 만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아주 작고 하찮으며 세상 모든 것과 동등한 존재로서 이 무한한 우주와 토론을 벌이고 있어서,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우주를 상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 🌸P.226 하지만 그렇게 용맹하고 담대함에도 프로스프는 사라지리라. 그냥 죽는 거라면 정상적인 일이지만, 단 지 죽는 것이 아니라 녹아 없어지듯 사라지리라. 떠나면서 자기가 속한 종의 모든 흔적을 가져가리라. 어떤 식으로 존재했는지, 어떻게 먹이를 먹고 스스로를 지키고 이따금 사랑을 나누었는지를 알려 주는 모든 흔적을 함께 가져가리라.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은 그것을 나 한 사람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로스프 자신도 알지 못하는데 나만 알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 #그바다의마지막새 #시빌그랭베르 #열린책들 #책 #책추천 #책리뷰 #도서추천 #도서리뷰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bookstagr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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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인간들의 횡포로 세상에 마지막 종이 되어버린 프로스프 그를 지켜주는 생물학자 오귀스트 ️〰️〰️〰️〰️〰️〰️〰️〰️〰️〰️〰️〰️〰️〰️〰️〰️〰️〰️〰️〰️ 🐧 귀스의 ‘책임감’,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 처음에는 이 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프로스프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일심동체의 존재로 느끼며 온전한 ‘사랑’을 배우는 귀스의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 인간의 욕심으로 멸종이 된 ‘큰바다쇠오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될 수 있던 이유도 자연 덕분인데 우리는 자연이 소중함을 당연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광대하고 신비롭고 어딘가에 수백만 마리 큰바다쇠오리를 맞아들여 보호해 줄 수도 있을 법한데, 그런 세상의 마지막 큰바다쇠오리가 된 것이다.’ ️〰️〰️〰️〰️〰️〰️〰️〰️〰️〰️〰️〰️〰️〰️〰️〰️〰️〰️〰️〰️ 귀스와 프로스프의 종을 뛰어넘는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결국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에서 따라왔다고 생각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하등한 생물도, 고등한 생물도 없다. 모든 생물은 생태계의 틈새 하나를 맡아 자기 삶을 산다.’ _『찬란한 멸종』, 이정모 ️〰️〰️〰️〰️〰️〰️〰️〰️〰️〰️〰️〰️〰️〰️〰️〰️〰️〰️〰️〰️ 현재 큰바다쇠오리의 박제 표본은 전 세계에 78개만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상주 국립 낙동강 생물 자연관에 있다고 합니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에 하나 남은 개체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 *이 글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