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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시인의 일기를 읽었다. 시인의 일기를 읽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시인 신동옥의 일기는 왠지 '읽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혹시 서사적이거나 지나친 묘사가 강점인 작품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못 오해하면 지나치게 허세스럽고 시인이라는 직업이, 시를 쓴다는 어떤 행위가 그렇게 대단하고 유난을 떨어야 하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들만한 내용들도 많다. 하지만 때때로 신동옥 시인의 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소의 허세스러움, 유치함, 문학인들만 알 수 있는 다양한 작품세계, 시어 등을 접해야만 할 때가 있고, 자연스럽게 찾게되는 때가 온다. 요즘의 내가 딱 그런 상태다. 서정적 게으름이 필요한 때. 개인적으로 '눈(雪)'을 정말 좋아해서 그런지 찬양에 가까운 시인의 눈 이야기는 읽고 또 읽고 세 번을 연달아 읽었다. 그의 말처럼 '첫 눈', '눈꽃송이' 등 눈을 상징하고 비나 다른 것들이 따라올 수 없는 눈에게만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참 많다. 소복하게 눈이 내린 다음 날 아침, 집 앞에 누군가의 발자국 흔적이 부정적이거나 두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는 것도 눈이 가지는 여러가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강아지와 아이가 눈을 가장 제대로 즐기는 존재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아 문학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구나하고 정겨움을 주는 일기등도 물론 감흥이 크다. 가령 다른 시인은 다 몰라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시인 고은은 이름만큼은 워낙 유명한데 나 역시 그 분의 시집 한 권은 소장하고 있지 못하면서 [바람의 사상]이라는 1973년 부터 1977년 동안 시인이 쓰신 일기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일기를 쓰기전 고은 시인의 일기 한편을 읽고서 쓸만큼 애착에 가까운 호감을 가지는데 전부가 그렇진 않지만 의외로 고은 시인의 소박함과 털털함,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다. 반면 신동옥 시인의 일기는 서두에 밝힌 것처럼 누가봐도 '시인'의 일기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시인들, 문장가들의 명언과 아포리즘 등이 거의 매 일기마다 등장하고, 시인이 일기를 쓰는 시간을 책 맨 앞에 공개하는 까닭을 처음에는 알지 못하다가 일기를 읽다보면 이 사람은 정말 시인이구나 싶다고 느낀 것이 오후 3시에도 마치 우리가 이른 새벽 어쩌다 끄적일 법한 감정이 뚝 뚝 떨어지는 글들을 여과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책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애초에 출간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가 지인과 편집자였을 아내의 조언으로 책까지 펴내게 되었다는 말을 봐서 그런지 더더욱 시인의 글들이 유치하지 않고 나의 게으름으로 미처 세상에 나오지 못한 어느 시점의 일기를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인상깊은 구절
인내, 인간은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박탈당한 후에라야 거울을 정면으로 본다. 응시한다. 인내의 결과는 고통이고, 새로운 고통을 사기 위해 새로운 공포를 판다는 것을 안다. 고통의 결과는 공포이고, 인내를 없애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시 속에서 너무도 많은 ‘자아’들이 너무도 많은 것들을 인내해야만 했다. 35쪽 시가 되기 전에, 시인이 되기 전에, 말이 되기 전에 우선 한 인간의 삶이 저를 까발리며 시와 시인을 말하리라는 것. 결국은 한 인간으로 살아간 그이의 민낯이 시가 된다. 그 저열한 실패와 악전고투와 숭엄한 광기와 지리멸렬한 일상과 타협과 협작 속에서의 자기 확신까지도 말이다. 27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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