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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사실 읽기 보다는 귀로 듣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번 작품 역시 종종 들었는데 직접 읽어보니 유쾌하면서 도련님의 특유의 성격이 흥미를 이끌었답니다. '도련님' 이 단어는 이미지가 나약하고 세상에 반항하기보다는 반대로 순응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전혀 다른 성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족에게 사랑 받기 보다는 이 집에 하녀로 일하고 있는 늙은 '기요'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죠. 언제나 말썽꾸러기라 부모나 형에게 조차 혼나기 일수 인데 기요는 오히려 도련님을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자신에 대해 어느 것도 꾸밈이 없이 보여주는 것이 '도련님'의 장점입니다. 이 점 때문에 기요는 늘 다른 가족 보다 더 도련님을 가까이 하게 되는 겁니다. 철딱서니가 없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도련님 하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쓰여지기 까진 일본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쓰메 소세키가 도련님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과 시골의 학교에서 생활하며 만나는 다른 선생님들은 세상에 살면서 만나게 되는 세속적인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서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고 헤어졌던 기요와 다시 만나는 모습..전 이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읽는 동안 도련님이 시골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겉과 속이 같은 도련님을 볼 수 있어요. 사회는 때론 겉 모습을 포장해야하잖아요. 그런데, 전혀 이런 것은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답답함을 말하는데 이 부분이 속이 후련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련님 때문에 웃으면서 답답함이 풀리기도 했네요. 사회 부조리...학교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권력으로 인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학교 선생님들..여기에,도련님은 이 권력과 부딧쳐 보기도 합니다. 왠지 '돈키호테'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엉뚱함이 때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인지...알 수 없지만 올곧은 도련님의 이미지는 책을 덮고서도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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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의 [도련님]을 읽기 전에 o출판사의 [도련님]을 읽은 적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를 알게 된 후 그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보고 있는데 [도련님]은 다순하지만 순수한 한 젊은이의 입장에서 쓰여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다른 출판사의 책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뒷 부분의 해제는 출판사들간의 역자들 간의 생각 차이가 분명해 흥미로웠다. ㅇ출판사에서는 성장소설로 분류하는데 비해 꿈결에서는 사소설로 분류하여 사소설과 나쓰메소세키의 일생과 문학에 대해 좀 더 심도있게 해제하고 있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일본 사소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 작품들 속에서도 걸작이며 대표작이라고 한다.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을 살려서 쓴 작품이며 다양한 개성의 인물들을 설정해 놓고서 작가는 삶과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입장에서 본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을 그리고 있는데 개인의 좁은 체험과 인생 묘사에도 깊은 사상과 사회 비판을 수반하고 있다. 천성적인 개구장이였던 주인공은 부모와 형제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집 하녀였던 기요 할멈에게는 애지중지 떠받듬을 받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자신만을 편애하는 기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이 나누어준 유산으로 우연히 들어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추천해주는 대로 중학교 수학 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너구리 교장 빨간 셔츠 교감,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끝물호박, 아첨꾼 등 개성있고 다양한 인간군상의 표상들인 교사들과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도련님은 진정한 어른이 되어간다. 나쓰메 소세키다운 해학과 풍자로 진실이 왜곡되고, 부패한 사회를 향한 철부지 도련님의 고군분투가 유쾌하게 그려냈다.
꿈결 클래식 시리즈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면 좋은 번역도 좋지만 정성 가득한 일러스트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유쾌하고 무모한데 일러스트는 조금 무겁고 어두워서 조금 아쉬웠다. 좀 더 밝은 그림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꿈결의 새로운 번역으로 만난 [도련님]을 읽으며 보낸 봄날의 오후가 유쾌하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서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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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작가가 유명하다고 들었지만, 난 그의 작품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보니 정말 재미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도련님”에 대해 읽어보기로 하였다. 최근 들어 소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니 이 책 또한 잔뜩 기대를 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이 일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니 오히려 몰입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반 이상 넘어가서는 완전히 몰입되어 감정이 동하는 순간도 가끔씩 생겨 묘한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동안 주인공의 생애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의 성격을 유추해 보고,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또 그가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면서 이 책이 나의 마음에 훅! 하고 들어온 것 같아 놀라면서도 신기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내 삶에서도 저런 태도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부분이 있다. 「"저는 정말로 숙직 중에 온천에 갔습니다. 그것은 정말 잘못한 일입니다. 사과드립니다.“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앉으니 모두 또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뭐라고만 하면 웃는다. 짜증나는 놈들이다. 네놈들은 이렇게 자신이 잘못한 행동을 사람들 앞에서 잘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으니 웃는 거겠지.」(p.128) 주인공의 일관된 모습 중 하나인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주인공은 일관되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아마 그것은 어릴 때부터 생긴 하나의 습관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주인공의 습관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유추해보면, 주인공의 타고난 성품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당연히 그런 모습을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가면서 그런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인공은 남의 시선보다는 자기에 대한 확신과(남들이 볼 때는 똥고집으로 보여 질 때가 많다) 신념 등이 있었기에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멋져 보여 나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당당하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그런 순간이 빨리 찾아오게 되었고, 그 때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잘못했다고 고백을 하게 되면서 갈등을 크게 겪지 않고, 잘 해결되었던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사실 아주 짧은 순간에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되어 망설여졌지만, 그 때 한창 주인공의 태도에 동화되어 있던 중이라 쉽게 잘못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책을 읽고 아주 빠르게 내 삶에 적용해 본 경우는 거의 없어 어리둥절했지만, 이런 것이 책을 읽는 유익함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도련님이라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작품은 내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끝으로 주인공이 세상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짓 하기를 장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든가 애송이라든가 하는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그렇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윤리 선생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든가 또는 정직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과감하게 학교에서 거짓말하는 법이라든가 남을 믿지 않는 법이라든가 남을 이용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편이 세상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빨간 셔츠가 “하하하하!” 하고 웃는 것은 나의 단순함을 비웃는 것이다. 단순과 진실이 웃음을 사는 세상이라면 할 말이 없다.」(p.103~p.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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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이제야 읽어봤다.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집중해보지는 않아서 그저 하나의 풍자를 위한 단어의 선택인가,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나니 그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내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대한 선입견은 왠지 귀하게만 자라 세상물정 모르고 허투루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철부지 어른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역시 그와 다르지 않게 천방지축으로 생활하는 청춘이었고. 이 소설의 첫 문장 자체가 "나는 타고난 무모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손해만 보고 살았다"이니 도련님이 얼마나 멋대로였을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우리의 도련님은 성격마저 급한 다혈질이라 어떤 돌출행동이 나올지,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예측할수가 없다. 이런 도련님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이 건네 준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시코쿠 근처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도련님의 주된 활약 이야기는 중학교에서 이루어진다. 솔직히 천방지축인 도련님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글은 술술 읽혔다. 유명세에 편승해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고전,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왠지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 술술 읽다보면 또 어느새 나쓰메 소세키가 말하려고 하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치졸한 놈들이다.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못하겠으면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지. 증거를 잡지 못하면 시치미를 뗄 작정으로 뻔뻔스럽게 능청을 떨고 있다. ... 거짓말을 해서 벌을 피할 거면 애당초 장난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장난에는 벌이 따르는 법이다. 벌이 있기에 장난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장난만 치고 벌은 싫다는 비열한 근성이 어느 지역에 유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돈은 빌리지만 갚는 것은 싫다는 놈들은 모두 이런 놈들이 졸업해서 하는 짓이다. 도대체 중학교에는 뭐하러 들어온 것인가. 학교에 들어와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남 뒤에서 치사하고 건방지게 장난을 치고, 그러다가 졸업이라도 하면 의기양양하게 자신은 엘리트라고 착각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다."(75-76)
도련님이 부임한 중학교 아이들의 장난을 이야기하면서 도련님 자신의 감정을 쏟아부어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치졸한 놈들,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남 뒤에서 치사하고 건방지게 장난을 치다가 졸업이라도 하면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엘리트라 착각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라고 한다. 그뿐인가. "세상은 희한하다. 맘에 들지 않는 놈이 친절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나쁜 놈이라니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 조만간 불이 얼어붙고, 돌덩어리가 두부로 바뀔지도 모른다"(110)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백년전의 세상이 지금의 세상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을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씁쓸해지고 만다. 철부지 도련님인줄로만 알았는데 불같은 다혈질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간사한 놈들에게 하늘을 대신해 천벌을 내리고 아무리 교묘한 말로 변명을 하더라도 정의는 용서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친다.(243) 이 정도의 다혈질이라면 좋아할 수 있는 성격 아니겠는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오해도 받고, 모함에도 빠지고 - 나는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나를 벼랑끝에서 밀어내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 인간적인 관계맺음은 끝낸지 오랬지만 사회적인 관계맺음은 어쩔수가 없어서 자주 마주치는데 교묘하게 나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게끔 만드는 거짓된 말을 흘리고 다니는 것을 알게된 후 정말 미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지만 권력을 등에 업은데다가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착하게만 보고 있어서 괜히 성격대로 욱했다가는 온갖 흙탕물을 내가 뒤집어 쓰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묵묵히 지내고 있을뿐이다. 정직하지 못한 그런 사람과 싸움을 해 봐야 내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니까. 이것을 이미 백여년전에 나쓰메 소세키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아무튼 좋은 사람은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인간은 대나무처럼 올곧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정직한 사람과는 싸움을 해도 기분이 좋다"(158)
도련님의 이야기는 재미있는데다가 이처럼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문장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거침없는 도련님의 행동은 어떤면에서는 대리만족같은 통쾌함마저 준다. 그리고 꿈결 클래식에서 출판된 도련님은 주석과 해제가 있어서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자의 해제를 상세히 읽어버리면 그의 관점에서 소설을 보게 될 듯 해 해제는 넘겨버렸지만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을 꽤 흥미롭게 봤다. 사진을 보다가 알게되었는데 도련님의 작품 모델이 된 마쓰야마 중학교 교원들의 실존은 놀라웠다. 등장인물의 별명 그대로 사진 속 인물을 설명하고 있으니 괜히 더 뚫어져라 보게 되는데 이것 또한 이 책을 읽은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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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천엔짜리 지폐에서 얼굴이 담겨져 있을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도련님>은 그런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으로서 1906년에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훨씬 전에 발표된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몇줄 읽지 못하고 지쳐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100여년 전 작품이 지니고 있는 고어체 및 외국작품이 지닌 이질성 등이 겹쳐져 아마도 나에게는 쉽게 읽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이번에도 잘 읽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는데, 우려와는 달리 아주 술술 읽혀나갔다. 기분좋은 독서랄까. 무엇보다 장문이 별로 보이지 않고 짧은 문장이 연속되어 있어서 쉽게 쉽게 진도가 나간 듯 하다. 특히,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의 거슬러 일본에서 발표된 작품이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배경이나 소재들이 등장하고는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각주로 덧붙여 놓아 이해를 편리하게 해놓았다. 도쿄 출신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죽고 난 후, 형과 헤어져서 홀로서기에 직면한 20대 청년이다. 어머니 없이 유모 손에서 자란 그는, 유모로부터 언제나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왔다. 그런 측면에서 퇴락한 무사 집안 출신의 유모 ‘기요’는 아직 구시대의 사고방식에 다분한 인물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며 성심껏 대하는 모습으로부터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기보다는 어느 정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기요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그녀를 계속 떠올리고는 한다. 한편, 주인공이 기요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세가 기운 것과 더불어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학교로 교사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산 가운데 일부를 형으로부터 받았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녔던 주인공은,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인텔리였던 셈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에서 젖어있던 그가 시골 학교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성격이 맞지 않는 선생들과 신임교사를 우습게 여기는 학생들 그리고 조그만 행동 하나도 금방 소문이 나는 답답한 환경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맞닥뜨린 상황은 그의 신경을 거듭 거슬리게 한다. 거침없는 주인공의 성격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부딪히게 되면서 주변과 파열음을 일으키게 되는데, 한편으로 그러한 모습들이 아직 세상에 적응하지 않은 미숙한 ‘도련님’의 모습으로 다가가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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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일본어를 도강(盜講)까지 하면서 일본어에 심취한 적이 있다.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기에 비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과연 살아 있는 일본어인지에 대해 스스로 확인 받고 싶어 강심장으로 일본어과 강독과 회화를 몰래 듣게 되었다.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마음적으로 힘을 실어 준 일본어과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덕분에 회화 실력은 녹슬지 않게 살아 있는 일본어가 가능했던 것이다.일본어과 친구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기에 가끔 왕래도 하면서 소통을 하던 중,친구가 어려운 일본어 원문을 보고 있지 않는가.그래서 호기심에 끌려 도서의 제목을 보니 바로 나쓰메소세키의 『도련님』이었다.당시엔 일본어의 독해 심화,회화 실력 쌓기 정도였기에 일본어 원문까지 파고 들 여력은 없었기에 기회가 닿으면 읽어야지 차일피일 미루다 어느덧 한 세기가 흐르고 말았다.
일본의 문호(文豪)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사회 생활 초년기(중학교 수학 교사)를 중심으로 써내려 간 도련님(봇짱)은 글의 구성이 복잡하지 않아 읽기 쉬웠으며,십인십색을 선보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은 내면 심리에 관심이 있는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태어나 성장했던 에도시대의 도읍지 도쿄를 떠나 시코쿠(四國)의 일부인 에히메 현 중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을 받고,임지에서 학생,동료 및 선배 교사,교감,교장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고 투박하게 묘사하고 있다.도련님이 쓰여질 (1906년) 당시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전하면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만 가던 시대였다.러.일전쟁에서 승리를 맛본 일본은 식민지 진출의 토대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나'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게 되는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자라온 환경,성격,전생애 등을 고려할 때 '나'는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틀림없다.부모 덕 없이 자라고 형제와의 우애도 별로였던 나에게 유일하게 넓은 치마 폭으로 감싸 주었던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기요(淸)라는 하녀이다.부모 모두 작고하면서 형으로부터 받은 6백엔이 나의 총자본금이 되고 말았다.이 돈으로 나는 물리 학교(이과 대학)에 입학하여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교장의 교사직 추천에 의해 시코쿠 에미메 시 부근으로 부임하게 된다.정들었던 기요 하녀와는 기약도 없는 이별을 고하게 되는데 나의 마음도 그렇고 기요의 마음도 애잔하기만 하다.
이야기는 대도회지 도쿄를 떠나 시골과 같은 중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터지고 만다.나는 당차고 무모에 가까운 성정을 갖고 있었던 참이라 시골 중학교 학생들,교사들,학교 책임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는 신경 쓰지 않는 무대포적인 기질이 다분하여 학생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사범 학생들과의 패싸움까지 일어나는 등 도련님에겐 타향 땅이 정이 들지 않는 모양이다.교사가 온천탕에서 헤엄을 치지를 않나,누군가 내 이불 속에 메뚜기 떼를 몰래 갖다 놓지를 않나 등이다.또한 교사들로부터는 감시의 대상이기도 했다.흥미로운 점은 교사 및 교감,교장의 별명을 만들어 그에 상응하게 접근을 하고 응수를 하기도 했다.아프리카 바늘두더지,빨간 셔츠,아첨꾼,끝물 호박,너구리가 도련님이 만든 별명이다.
도련님은 인간적으론 끝물 호박을 좋아하고 사무적이고 행동적인 면에선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수학 주임교사)를 좋아한다.도련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적극 호소하고 개선해 나가려는 동료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사시사철 빨간 셔츠의 교감은 곱상하면서 나긋나긋한 여성적인 목소리로 도련님에게 다가 오는데 알고 보니 이웃 현(縣)으로 전근 간 끝물 호박의 애인과 염문이 퍼지게 되면서 도련님은 이 스캔들을 상부에 보고하여 징계라도 먹일까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도련님은 대쪽같이 고지식하면서 욱하는 성질을 못참고 교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고향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죽은 줄만 알았던 기요 하녀는 도련님을 보자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을 정도로 눈시울을 훔쳤다.
세상 물정 모르고 의협심에 불탔던 도련님은 인격적으로 덜 성숙해 있던 터라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많았다.시골 중학교에서 불과 1년도 못 버티고 교사 사령장을 바닷물에 던지면서 도쿄로 돌아가게 했던 도련님은 20대 초반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안목을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20세기 초 도련님을 집필하던 시기 나쓰메 소세키 작가가 체류했던 에히메 현의 문화,풍물,(인간의)심리 묘사도 꽤 관심있는 대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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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라는 소설가를 알게 된 이후 일본 작가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몽십야>를 읽은 적이 있었다.....고양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고양이가 사는 집을 관찰자로서 보는 소설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읽기 시작하였다...나쓰메 소세키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도련님> 또한 책 속의 주인공 '도련님'을 통해서 첫 부임한 중학교에서 학교의 사회적인 모습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에서 도련님은 두가지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몰락한 집안 출신인 하녀 기요(나쓰메 소세키의 부인인 나쓰메 쿄코의 본명)가 말하는 도련님은 챙겨주어야 할 어린아이의 의미로,첫 부임한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아첨꾼 요시카와 입장에선 조롱하는 의미로 쓰여진다.. 어린 시절 도련님은 2층에서 뛰어내려 허리가 삐끗하거나 외제 나이프가 잘 잘라지는지 직접 오른손엄지 손가락을 베는 무모함을 보여주며 부모님에게 외면을 받는 장난꾸러기로서 삼박자를 갖추고 있었다....그러한 도련님을 이해해 주며 챙겨주는 건 항상 하녀 기요 뿐이었다....도련님은 도쿄를 떠나 시코쿠의 소도시 중학교 수학교사로 첫 부임을 하게 된다....(나쓰메 소세키가 1895년 교사 생활을 했던 경험을 소설로 옮겨 놓았다.)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이불안에 메뚜기를 넣은 것으로 인해 소동이 일어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이즈 출신 수학교사 아프리카바늘두더지(훗타 선생) 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끝물 호박(영어를 가르치는 고가 선생)의 약혼녀 마돈나를 좋아하는 빨간셔츠(교감) 로 인해 끝물 호박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고....송별회때 아프리카바늘두더지는 빨간셔츠에게 들으라는 듯 조롱섞인 연설을 하게 된다.. 빨간 셔츠가 구해준 기예공연 표로 아프리카 바늘두더지와 같이 구경을 가는데 공연 도중 학생들의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면서 두 사람은 학교에 먹칠을 한 주인공으로 지역 신문에 나게 되면서 아프리카바늘두더지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두사람은 그것이 빨간셔츠의 계략이었다는 걸 눈치챈다.. 아프리카 바늘두더지는 빨간셔츠가 게이샤 고스즈와 자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두사람이 자주 만나는 여관 옆에서 감시를 하게 되는데...감시 8일째 되는 날 게이샤가 들어가고 아첨꾼 미술교사와 빨간셔츠가 함께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다음날 도련님은 먹으려고 주머니속에넣어 두었던 날계란 6개를 아첨꾼에게 던지고 빨간 셔츠는 줄행랑을 치게 된다.. 다음날 우편으로 사직서를 우편으로 보내고 도련님은 도쿄에 와서 하녀 기요와 함께 지내면서 도쿄 철도회사의 기술직으로 취직하게 된다.소설을 읽으면서 학교 다닐적 선생님들에게 별명을 불럿던 기억이 난다....그 당시 유명했던 스머프를 따서 갸갸멜과 아즈라엘....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다녔는데..소설을 읽으면서 학교시절 선생님을 떠올리니 별명 붙였던 선생님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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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난 성격이 단순해 보인다고 생각마저 단순한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안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하지 않던가..
근대 일본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나쓰메소세끼의 소설 '도련님'은 글의 구성에서도 매우 단순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다지 사람과 친화적이지 못하고 귀하게 자란 느낌의 주인공은 그저 그렇게 성장하여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저 그렇게 라는 것은 성장과정에서 특이한 경험이나 고통을 크게 겪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련님이라는 표현 즉, 물정모르고 자기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인간형으로서 설정된 단어로 선택된 인간형을 나쓰메 소세끼는 도련님으로 표현한것으로 보인다.
이 도련님이 - 세련된 도쿄출신- 시골의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 특히 시골이라지만 음험하고 교묘한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과 갈등을 겪어 나가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교묘하게 동료교사를 음해하고 내쫒고 괴롭히는 교감과 그에 아첨하는 선생을 다른 선생과 함께 주먹으로 응징(?)하는 내용이 소설의 크라이막스이자 마지막 결말이다.
순진하고 단순하다고 해서 올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혹은 부정의한 잘못된 것을 꾹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하여 일종의 응징을 하고, 그 댓가는 있는 그대로 받겠다 하는 생각은 아마도 오히려 단순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뭐가 무서워 피하냐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데 비해 소설속 주인공은 '도련님'답지 않게 바르지 못한 것을 응지한다. 그에 비해 자기 여자를 빼앗기고 살던 곳에서 쫒겨나다시피하고도 예의와 범절을 찾는 끝물호박선생의 우유부단함과 깊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소설 내용이 거창하거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왜 소세끼 소세끼(소새끼가 아니다) 하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묘사도 구체적이지 않고 문장도 평이하지만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문장이 매우 돋보였다.
글 자체도 어려운게 없으면서도 그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문체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나도 글을 쓴다면 저렇게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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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나는 ‘치루’라는 병에 급성으로 걸려, 통증과 몸살이 심했지만, 이 책의 초반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재미로 쉽게 책을 놓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몇 시간만에 완독을 하고 말았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읽기 쉽게 번역을 하신 이병진 교수님의 노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통쾌함과 공감을 가져다준 스토리가 최고였다. 또한 꿈결클래식 시리즈로서 출판사가 많은 노력을 하여 100여개의 주석, 상세한 해제, 일러스트와 사진 자료가 수록되어 완성도를 더한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까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이 보고, 자기 책꽂이에서 동일한 제목의 책을 보여준다(어린이세계명작 시리즈인가보다). 갑자기 딸이 기특해 보인다. 이 책의 이야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먼저 주인공인 ‘나’에 대한 소개와 시골 중학교에서의 스토리로 구분이 된다. 주인공인 나(도련님)는 타고난 무모함으로 어린시절부터 손해만 보고 살지만, 부모와 사별후 남겨진 유산을 가지고 물리학교에 들어간다. 말썽쟁이를 편 드는 사람은 오직 기요라는 나이든 하녀뿐이다. 늘 도련님은 심성이 착한 분이라고 현실과 다르게 말하지만 긍정적인 말 속에 정이 싹트는 것 같다. 시골중학교 수학선생님으로 부임가서 다양한 캐릭터의 선생님들과 겪는 이야기들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지금의 회사처럼 일련의 정치판이라고 할까. 주인공이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에 대해 별명을 지어내었고 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주임으로 정의감이 넘치는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여름에도 빨간 플란넬 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앞에서는 친절하지만 뒤에서는 계략을 꾸며내어 끝물 호박을 다른 곳으로 전근시키고 아프리카 바늘두더니 선생을 내쫓는 빨간 셔츠(교감선생), 빨간 셔츠를 따라다니며 아첨하고 그의 비위를 밪추는 미술교사 아첨꾼, 약혼녀를 빼앗긴 뒤 다른 학교로 전근가는 신사같은 영어 교사 끝물 호박, 교장선생인 너구리. 빨간 셔츠의 계략으로 끝물 호박이 먼저 학교를 떠나지만 주인공 나와 아프리카 바늘두더지는 통쾌한 복수를 한 후 도쿄로 돌아온다. 어찌보면 일반적인 한 편의 단순한 드라마같지만, 소세키 작품의 일반적인 특징인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당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등이 이 작품을 묘미를 극대화해준다. 학교 선생님중 대학을 나온 유일한 문학사인 빨간 셔츠의 계략 등이 현실에서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지금의 우리에게도 늘 이런 류의 사람이 있어서 항상 끝물 호박같은 사람이 당하고 있지 않는가. 하여간, 내가 통증이 심한 질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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