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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독특한 책이다. 전혀 정보가 없었기에 어떤 책일것이다 예상을 하지 못해서 조금은 더 당황스러웠다 할 수도 있겠다. 양장의 다른 책들보다 폭이 좁다. 한 손에 쏙 하고 들어온다. 하지만 생각보다 묵직하다. 종이가 빳빳하다. 전체가 다 사진이 들어갔기에 그러하다. 사진과 짧은 글이 덧붙여진 작품. 이 팩은 소피와 다른 사람들의 이별기다. '시린 아픔'이라는 제목으로 해석된 원제는 원래는 의학용어로 뚜렷한 국소 부위의 격렬한 통증을 뜻한다고 한다. 그만큼 소피에게는 가장 아픔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뒷표지를 먼저 읽는 것이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일본에 3개월간 머물게 된 그녀는 그 당시에는 남자친구와의 잠깐 동안의 이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진짜 이별의 시초였음을 몰랐을 것이다. 일본에 가기 싫어 가능한 천천히 온 대륙을 다 돌면서 도착하게 된 그녀였다. 그녀는 그 시간들은 나중에 인도에서 만날 그를 생각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그런 그녀에게 그가 오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녀가 버려졌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을 물었고 그 기억을 들을 모아서 이 책의 후반부를 만들었다. 즉 이 책의 앞쪽은 소피의 일본생활기이며뒤쪽은 이별기인 것이다.
80년대 일본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사진들이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마스크를 쓴 모습은 지금과 별 차이 없이 여겨지기도 한다. 정갈한 일본식 음식들과 자연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독특한 일본만의 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가 점쟁이를 찾아갔던 모습이라던지 그녀의 점괘대로 행동을 하는 모습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특이해 보인다. 전반적으로 그를 그리워하며 그에게 편지를 쓰는 그녀의 모습이 연상된다.
3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인도에서 만나기로 한 둘. 하지만 그녀에게는 노트 한 장만 건네진다. 자신이 사고가 나서 가지 못한다는 짧은 메세지다. 그녀는 자신들이 만나기로 한 호텔에서 새빨간 전화기를 사진 찍는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히 그녀에게 박제된다. 색이 있었던 빨간 전화기는 흑백으로 묻혀져 버린다. 그렇게 그녀의 이별 이야기는 계속 반복된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 왜 앞의 이야기를 또 하지 하는 생각을 한다. 읽다 보니 조금씩 변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 이야기는 점점 희미해진다.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잊듯이 말이다. 마지막 99일이 지나고 나서 그녀는 더이상 이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린 아픔은 그토록 시렸던 아픔은 완전히 치료가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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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어찌보면 3개월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남녀가 이토록 서로 다르게 동상이몽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으니 여자 입장에서는 더욱 서글퍼진다. 사람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하고 호불호가 분명해지기도 하지만 이유같지 않은 변명을 빗대어 이별을 통보하는 모습이 과연 나이먹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20살 연상의 중년 남성이 할 수 있는 옳바른 태도 인지 한번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책의 전반부에 실린 많은 사진과 글들이 얼마나 소피가 그를 하루하루 생각하고 만날 날을 기다리며 손꼽아 날짜를 카운트 했는지 그녀의 성의와 정성과 한결같은 사랑이 책장을 넘길 떄마다 하나씩 느껴졌다. 하지만 후반부에 적힌 글들은 그의 이별 통보가 얼마나 그녀 가슴속의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며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의 습작이 되어버렸다.
지나간 사랑은 지나간 것이고 '나와의 연분은 여기까지 였나보다.' 라고 훌훌 털고 일어나서 이제는 현명하고 똑똑한 사랑을 하도록 하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진정 여자로써의 행복이라고 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보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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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고통들 같은 경우에는 여러 번 겪을수록 내성이 생겨 덜 아프고 덤덤해지지만, 이별의 고통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매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기는 하죠. 그런데 그것은 고통을 극복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잊어버려서 그런 게 아닐까요? 『시린 아픔』을 읽다 보면 작가가 겪은 이별의 고통에 완전히 감정을 이입하게 됩니다. 마치 제가 얼마 전에 이별을 겪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랬기 때문에 먹먹한 심정으로 천천히 책을 읽어나가야만 했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이별하기 전의 3개월, 후반부는 이별한 후의 3개월 동안 적은 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후반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일 쓴 일기의 한쪽(책을 펼쳤을 때 왼편)에는 자신의 이별 이야기가, 다른 한쪽(책을 펼쳤을 때 오른편)에는 어느 누군가의 이별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요. 자신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항상 거의 비슷합니다. 이별의 순간과 당시의 심정이 문장만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문장 개수가 줄어들고 글씨는 옅어집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때쯤에는 이별을 잊는 과정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기를 마치 제가 쓴 것 마냥 공감하며 읽자, 오른편에 적혀있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도 마음 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나 각자의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치유되는 느낌이랄까요. 이 책의 독특한 형식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새로운 독서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책을 한 번 다 읽은 후, 다시 책의 전반부를 펼쳐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별하기 전, 그러니까 세 달 쯤 후에 이별을 할 줄 몰랐던 때 적었던 문구들이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하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페이지를 추가해서 그곳에는 저의 이별 이야기를 적어놓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면 왠지 이 책의 저자인 소피 칼,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별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둘러앉은 모임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동참한 사람들의 심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부끄럽지 않을까, 민망하지 않을까라는 속단을 넘어서서 속마음을 후련히 털어놓는 용기부터 내봐야겠습니다. ※ 리뷰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http://bookchany.blog.me/220300492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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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다른 인간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연약함을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이 바로 사랑에 관한 내용이며 사랑에 대한 이별과 그리움을 쉴 새 없이 노래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꽂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은 만남에서부터 들뜨게 하고 하루종일 내마음에 들어온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하게 한다. 왜? 혹시? 아닐까?!! 라는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기계랄까?
이 책 「시린아픔」 은 프랑스의 유명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소피 칼의 이별 극복기를 담은 사진 수필집이다 예술가는 사랑을 어떻게 맞이하고 또 상반되는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여러가지 색깔의 감정을 이야기 하지만 유독 사랑이란 감정은 만남도 헤어짐도 저마다 소개하는 색깔이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백척간두에서 일보전진한다면 새로운 계기를 만날수도 있을 것이지만 발을 한번만 잘못 딛이면 마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기분... 그러나 저마다 공감하는 바는 사랑이란 감정, 만남과 헤어짐은 결코 쉽지 않다라는 데서 일치한다.
저자인 소피칼이 사랑에 대한 희노애락을 예술로써 표현한다. 많은 말로도 표현이 어려운 사랑..... 사람을 마음에 새기는 일보다 떠나보내는 일이 더 어렵다고 아프다고 생각한다. 내 삶 가운데로 깊숙히 들어온 그 누군가를 떠나보낸다??? 스스로 그 상황이 이해될때까지... 스스로 그 상황을 받아들일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계속 드러낸다면 이야기를 들어주던 상대방은 바로 KO될지도 모른다. 사진작가이며 설치미술가인 소피칼이야말로 자신의 내면에 상황을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에 접목시켜 승화시키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다.
7일 전,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떠났다. 그는 내 아버지의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나는 그에게 완전히 반해 있었으나, 내 나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따금씩 그는 내게 자신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주었고, 나는 이러한 경고를 비웃었다. 그는 내 곁에 있었으니까.
(…)
전화로 두서없이 몇 마디가 오고 간 끝에, 얼마 전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과, 그가 그 여자와의 진지한 만남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운이 없군.” 그날 밤 내내 나는 임페리얼 호텔 261호에서 좀먹은 카펫과 빨간색 전화기를 응시하며 밤을 지새웠다. -P.208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다시 만날줄 알았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 청천벽력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상실감에 자괴감에 어쩌면 스스로를 회복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끌고갈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리라. 다른 그 누군가를 받아들이기까지 망설임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해야할까? 안간에게 받은 상처는 또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자연 치유된다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는 결코 속성이 없다는 생각이다. 특히 마음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필요하지 억지로 일부러 지워바리려고 할 때 그 후유증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시간이 필요할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누군가와 함께 하던 시간들... 매일 아침 얼굴을 보며 환하게 미소짓고 조반을 나누며 때론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깊은 커피맛에 반했던 일들... 맑은 햇살을 받으며 함께 길을 걷고 울고 웃었던 일들을 어찌 단시간에 삶에서 몰아낼수 있겠는가.
그리워하다가 시간이 흘러 상처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진다면 그때는 상처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누군가에 대한 아픈 기억이 반갑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많은 일들로 인해 한 때 빛나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삶의 흔적이며 열정을 지닌 젊다는 말은 아닐까. 이별로 인한 고통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살아지더란 말.... 이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작고 고급스러운 책이지만 인생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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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아픔』은 소담출판사 서평단의 2월 미션으로 받은 책이다. 서평단을 신청하면서 저자인 소피 칼은 파리 출생으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설치미술가이고 사진작가로 연인과 헤어진 뒤 92일간의 삶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사연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며 책을 기다렸다. 그렇게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허를 찌르는 듯한 전개로 인해 당혹스럽게 읽은 책이었다. 연인과 헤어진 93일간의 아픔! 제목 그대로 시리고 아프면서도 애틋한 아름다움을 기대했으나 한 동안 정신이 없었다. D-93·D-92·D-91…… 등 마치 이별의 카운트다운처럼 숫자와 함께 사진들이 나열되는데……. 사진 하나하나는 예술미가 있는 듯했으나, 이 사진들이 이별과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끔씩 연인에게 보내는 듯한 10여 줄 내외의 사연이 있었으나, 그것이 전체적으로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둘째, 99일 동안 이어지는 이별 후기는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연인과 헤어진 사연이 서너 장에 걸쳐서 소개되었지만, 마치 신문기사의 단신처럼 가볍게 소개되었다. 이어서 이별 이후 99일간의 마음이 소개되고 있었다.
저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는 동안 연인은 변심했다. 저자와 만나기로 한 날 그는 오지 않았고, 저자는 그때의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이 첫 줄만 바뀐 상태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5일 전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날 떠났다.’가 다음날에는 ‘6일 전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날 떠났다.’, 그 다음날에는 ‘7일 전 내가 사랑한 남자가 날 떠났다.’로…….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저자의 심경변화에 의해서 때로는 애절하게, 또는 담담하게, 그러다가 냉소적으로 등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같은 내용을 읽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특히 마지막 일주일을 앞두고는 글자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까만 바탕에 흰색으로 새겨진 글씨가 회색으로 변하더니 짙은 회색으로 바뀌어 급기야 거의 까만색으로 바뀌었다. 보여야 읽을 것이 아닌가
셋째, 이 책은 여유를 갖고, 저자와 혼연일체가 되어서 읽어야 할 책인 듯하다. 나는 좋은 독자가 아닌 듯하다. 빨리 읽고 싶었다. 사진이 이해가 안 되니 갑갑했고, 같은 내용이 반복되니 짜증이 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유 있는 독서가 아니었고, 저자의 아픔과 일체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저자가 99일 동안 느낀 ‘시린 아픔’에 공감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또한 미술적인 안목도 부족하니 사진에서 예술성만 어렴풋이 느꼈을 뿐 혼은 깨닫지 못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저자 못지않게 아픈 이별을 체험한 사람, 저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와 닿는 책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하드카버에 성서처럼 꾸민 장정이 아름답고, 사진마다 어떤 혼이 담긴 듯하다.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동안 아픈 상처를 치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별 52일 전의 풍경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있는 듯한데,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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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의 이별방식이 나에겐 낯설다. 힘든 일이 다가왔을 때,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잠을 잤다. 며칠을 울지도 않았고, 술을 부어대지도 않았고, 누굴 붙들고 아픈 속내를 털어놓을 적도 없다. 그저 이렇게 지나가는 건가 싶은 마음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허기진 것처럼 먹을 것이 아닌 잠을 채워 넣곤 했다. ‘지금도 그런가?’라고 떠올려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두통약 한 알 입안에 털어 넣고 더 고요히 자고 싶다는 것만 다를 뿐. 그러니 소피 칼 슬픔을 극복했던 방식이 나에게 친근할 리 없다. 그녀의 이별 치유법은 이랬구나 싶은 앎 정도라고 해야 할까.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떠났다. 1985년 1월 25일 새벽 2시. 뉴델리 임페리얼 호텔 261호. 빨간색 전화기를 통한 3분간의 통화. 그는 내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별일 아니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사랑을 한다는 건 동시에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 사람과 영원을 약속할 수도 없고, 약속한다고 해서 지켜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영원이 끝날 때쯤에나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 사랑과 이별은 늘 공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소피 칼은 한 남자와 사랑했다. 그리고 이별도 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별을 그녀는 어떻게 건너왔는지, 『시린 아픔』으로, 그녀만의 방식으로 기록된 이 슬픔에 다가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려올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그 아픔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녀가 떠남과 동시에 이 사랑의 끝이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그 예정을 기억하고 싶진 않았을 거다. 기다려주겠지,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의 일을 이해해주겠지, 다시 만날 시간과 장소까지 약속했으니... 하지만 사랑은 끝났다. 그는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고, 참 우스운 방법으로 그녀를 밀어냈다. 어이없는 웃음이 흐르지만, 어찌되었든 결론은 같다. 그녀의 사랑은 끝났다는 것.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이 이별을 극복하는 거다. 지독한 배신감, 남아 있는 아픔을 털어내야만 했다. 가슴 속에 품는 것조차 의미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 슬픔을, 아픔을 얇고 넓게 만들어야했던 것일까. 그녀의 이별을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상대의 이별이야기도 들려달라고 했다. 말하고 듣고, 슬픔을 공유하며 자신의 고통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런 반복이 계속되고 거의 백일이 흘렀을 때, 그녀의 상처는 회복됐다.
책의 전반부는 그녀가 여행 중 찍은 사진과 이별을 통보받기 전 그녀의 마음을 담은 글이 함께 있다. 92일, 91일, 90일... 여행 중의 이야기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별의 그날이 오기 전의 카운트다운. 참 얄궂다. 이미 그녀의 이별을 알고 읽기 시작하는 나에게 그녀의 편지는 슬픔의 전조 같았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더 긴장되는 느낌.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도 너를 기다리는 그는 없어...’라고 읊조리면서 그녀의 슬픔에 같이 빠져들었다. 알고 있었음에도, 예고된 슬픔을 듣는 기분이 우울했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다른 이들의 이별까지 더해지면, 이 책은 정말이지 우울의 구렁텅이 깊숙하게 빠지게 한다. 세상의 많은, 다양한 이별을 경험하게 하면서 나의 이별과 슬픔을 그 속에 희석시키는 듯하다. 누구나가 겪는 고통이라는 공통성을 부여하면서 그 슬픔을 공유함이 얼마나 큰 위로와 치유를 줄 수 있는지 말하려는 것처럼. 누구나 하는 사랑, 그에 따라오는 이별, 여전히 그 아픔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타인과의 공유가 아닌 나만 홀로 감당하는 고통의 깊이가 깊어지는 사람들에게 향하는 울림으로 이어진다.
소피 칼, 그녀만의 방식이다. 사실 나는 그 감정의 공유는 이해하지만 그녀의 방식이 나와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도 이별도 나만의 것으로 나만이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찾아다니곤 했는데, 다른 이들의 아픔을 듣고 기록하며 이 한권에 묶어버린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 치유를 만났을까 궁금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 기록을 남겨두었는데도 15년이 지난 후에 책으로 출간하기를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그녀도 (그 당시에)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간신히 아문 상처가 덧날까 두려워 그 기록을 꺼내지 못했다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이별의 방식이 있겠지만, 분명 나와 다른 방식이지만, 그녀가 보여준 방식 역시 나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하기 싫은 말을 하고 생각을 나누고 나아질 방법을 이야기하면서 의지가 되는 경험을 하다 보니, 그녀가 전한 이 방식이 틀린 것이 아님을, 생각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겠다. 잠깐의 짬이 만든 시간에 붙잡은 이 책이 오늘 밤 숙면을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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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유명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인 소피 칼의 이별 극복기를 담은 사진 수필집. 독서 치료를 알게 되면서 요즘은 치료에도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야기 치료나 글쓰기 치료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 개인적으로도 몇장 끄적거렸던 옛 추억이 있어 이것이 과연 치료가 가능한지가 궁금하여 만남을 시도했던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책의 생김새가 매우 독특하여 놀랐다. 나 어릴 적 성경을 떠올리는 빨간 테두리의 사이즈는 불피료한 부분을 싹둑 잘라내어 한손에 들어가게끔 해놓은 듯한 외모가 어쩌면 소피 칼의 이별 극복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 담겨져 있지는 않았을까.
그녀의 일기장에 적힌 숫자들은 매우 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외무부 장학금으로 3개월간 일본에 가게된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연인을 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렵사리 일본행을 감행하는 모험을 한다.
여기에서 이 여자의 연인의 남자가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실, 그가 중년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거북스럽게 다가왔으나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그가 유부남이 아니었기에 연인이 되는데 장애물은 될게 없으니까..
이 상반된 숫자들이 어쩌면 인생에게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알 수 없는 한계'와 동시에 '감당해내야할 삶의 무게'가 아닐까.
내일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지 못하는 제한된 인생이기에 오늘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아니 웃어야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끌어다 두려워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게 인생이리라.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날 떠났다'는 문구로 반복하여 써내려간 메모는 99일에 이르러서야 끝에 다다른다.
아는 사람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가장 아팠던 기억을 서로 나눔으로써 메워져간 이 일지에는 '그래, 누가 더 아팠겠군' 할 수만은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의 무게가, 고통이 너무 크게 다가와 그 당시에는 기술하고 있지만, 여전히 살아내고 있지만 어떻게 그 당시를 살아왔는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 메모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때가 있었다. 마지막 대화를 기록해두고 그걸 읽을때마다 눈물 흘렸던.. 소피 칼은 매일 자신의 시련을 떠올리면서 그저 시련의 감정에 빠져있던 상태에서 좀더 그 일들을 객관화 시켜보고 있으며, 정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거야'라고 시련이나 아픔을 표현하기 쉬운데, 어쩌면 잊으려 하고 모른척 방관하려 한다해서 그 아픔이 그렇게 쉽게 사그라드는건지 타인은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차피 본인만이 감당해야할 무게지만, '괜찮아 별것도 아니네'라고 말하기 보다는 그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써의 처사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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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월 25일 금요일.
![]() 소피 칼은, 수필가, 설치 미술가, 사진작가이며, 물론 현재도 활동 중인 예술가입니다. 이 책은 자신이 실연의 모진 슬픔을 겪었던 "그날"을 중심으로 삼고, 그 전의 92일, 그리고 그 후의 99일을, 다이어리 형식으로 써 간 책입니다. 192일 중 빠진 날도 있고, 이별의 그 날은 이미지 하나로 처리되어 있으며, 이별 후의 99일은 좀 빠른 템포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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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책의 바깥부분이 반짝이는 붉은색의 종이책.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색과 책의 재질은 기대감을 더욱 생기게했습니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소피칼. 사진작가의 사진집같습니다. 소피칼의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들이예요. 1984년 외모부 장학금으로 3개월동안 일본생활을 하게되는 그녀는 여행하는동안 그녀가 겪은 일들과 사진들을 남자친구에게 편지로 남깁니다. 아픔을 이겨내기위해 타인의 아픔을 들으며 치유합니다. 이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느끼게되죠. 못하고 음악을 들으면 모든 슬픈 이야기가 내 이야기처럼 이겨내기 힘들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약이라고..점점 괜찮아집니다. 소피칼도 이별통보를 받은 날부터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하지 않아도 될만큼 치유해갑니다.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피칼의 이야기에 들어가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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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헤어졌다. 그녀가 이별 통보를 했다. 함께였던 우리라는 연결고리가 너와 나로 분리되었다. 그녀가 나와 함께 걸으며 잡던 손을 놓고 돌아섰다. 뒤통수를 누가 후려친것처럼 멍하니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 말 이별이란 단어를 꺼냈다. 이렇게 이별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서 여러문장을 써도 각각의 문장이 풍기는 뉘앙스 미묘한 감정의 흐름선이 다 다르다. 이것은 소피 칼이 쓴 이별 수필집 " 시린 아픔 " 이라는 책에서 잘 나타나 있는 부분이다. 처음엔 무슨 책이 이런가 싶었는데 책장을 넘기고 이별후의 이야기들을 다른이들과의 공유를 통해 써내려간 이야기는 그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잘 드러낸 구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읽고 있을때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읽고 있었는데 사뭇 작가의 아픔과 다른 이들의 아픔이 내 마음속에 성큼 다가와 내 가슴을 후벼팠다. 이 책을 읽은후 다시한번 느낀거지만 정말 인생의 필사적인 사랑에 대한 이별의 상처는 결코 극복할수도 영원히 잊혀지지도 않는것이다. 다만, 그 절대적 절망의 구렁텅이속에서 다시 빠져나와 아무렇지 않은듯 잘 살수 있지만 그 상흔은 뜬금없이 차가운 물을 마신후 이가 시리듯 별안간 찾아오는 아픔인것 같다. 잊혀졌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별이란 것은 내 가슴 한켠에 영원히 공존하는 아픔의 박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