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창립 20년을 맞아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을 인터뷰해 여성운동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 한 문장에서 태동한 책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몸과 영혼에 담고 있는 여성들이 이야기하고, 그것을 정리했다."는 설명이 덧붙는다. 이 태도가 어떤 가치인지는 인터뷰어의 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엇을 만드는 공장에 언제 입사해 무슨 일을 하는지가 모든 인터뷰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인지하며 삶을 긍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언제 노동조합에 가입했는지, 금속노조에 가입한 뒤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투쟁을 했는지 듣고,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 목록의 전제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노동하고, 노동조합을 만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싸워온 이들"을 기록하기 위함인데, "이들의 이야기는 이름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호명. 이름을 부른다. 누구네 엄마. 회사 소속 직급. 아무개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의 존엄을 이토록 깨끗하게 존중한 인터뷰 초입이 또 있을까.
'들어가며'에서부터 눈물이 찔끔 나온 대목이 있었다. "신기한 것은 농성투쟁을 경험한 모든 조합원이 처음에 뭘 먹었는지 얘기하며 웃었다는 점이다." 9페이지 다섯 번째 문장이다. 9페이지에서부터 나를 울리다니. 아니 왜 어째서!
상상해 보라. 멸시와 모멸을 타파하고자 길바닥에 천막 하나 치고 찬 기운 맞으며 보낸 나날을 음식으로 추억하다니. 게다가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웃었다니. 아아, 언니들이시여. 이건 k-언니들의 내공과 연륜과 해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 독서. 만만치 않으리라는 예감이다.
아니나 달라. "함께 싸우는 동지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농성장에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돌보는 것이 민주노조 사수, 구조조정 저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구호에 담긴,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임을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라는 서술자의 짐작이 달라붙었다. 하씨. 나 또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어. ㅠㅠ 도대체 이 책 작가진 누구세요?
그제야 책 표지를 다시 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지음'이라고 쓰여있다. 흐미. 개인은 숨기고 단체로 걍 박아버렸으. 분명 개별의 인터뷰어, 원고 정리하고 편집한 분들 다 따로 계실 텐데, 누구 하나 단독으로 빛나는 거 관심 없으. 우리는 진격의 노동조합 언니들이니께. 크. ( 나, 마음이 너그러운 단체를 만나본 적 있다. 이 단체는 개인의 '과'를 걍 단체가 먹금해버리더라.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걸로 기죽지 말고, 담에 잘 하면 되고, 담에 니 후배가 실수하면 너도 다독여주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근데 금속노조 언니들은 '공'까지 <N빵>해버려? 이거는 이거는 단체에 아주 커다란 신뢰가 있는 거지. 내가 이 단체에 소속된 게 자랑스러운 거지. 그래서 잘한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 돼버리는 거지. 크으으. 멋지다.
그런 단체답게 이 책은 "대표선수를 뽑듯이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닌, 지역과 기업노조 여성위원회가 추천한 총 69명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언니가 만들어온 길을 따라가는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마음이 훅 간 문단 하나 더 풀어놓겠다. "개인의 삶의 경험과 역사는 어떻게 구분될까? 거대한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이 있다면,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삶이란 어떤 생김새일까? 우리의 경험이 특별하게 이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노동자인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노동이 존중받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노조를 만들고 싸워온 금속노조 언니들의 이야기다."
자. 여기까지가 14페이지까지 읽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써 내려간 책 리뷰다. 이제 313페이지까지 읽고 돌아오겠다.
방금 다 읽었다! 다 읽은 지 5분도 안 됐다. 얼른 기록하고 싶어 달려왔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준비해야 할 자세가 있다. 제조업 '생산현장'과 '노동'과 '노동자'. 이 세 단어의 연결고리부터 가볍게라도 고찰한 뒤 읽어야 이입이 수월할 것이다. 당연하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인터뷰한 책이지 않나. '노동조합'이 어떤 환경에서 태동하는가. 책의 말을 빌리자.
"노동자가 회사에 취직해 일하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할까? (중략) 대부분 '참다 참다못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아직은 노동조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보니 '아무 일 없이, 멀쩡한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성노동자, 반짝이다』에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속 큰언니들과 쌍벽을 이루는 쎈 언니들이 등장한다. 이 언니들이 왜 쎄냐면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현장을 위해"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과정을 온몸과 마음으로 겪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 나는 이 사람들의 위력이 진정 쎄다고 생각한다.
"생산현장은 늘 이해관계가 대립한다. 노동자는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싶고, 회사는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싶다. 노동자는 더 짧은 시간 일하고 싶고, 회사는 10분이라도 더, 이왕이면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키고 싶다. 노동자는 다치거나 죽지 않으며 일하고 싶고, 회사는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어도 다른 사람이 와서 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다치고 죽는 것이 회사의 이윤을 줄어들게 하지 않는 한 회사는 관심이 없다. 아니, 노동자가 다치고 죽지 않도록 개선하려면 돈이 들고 이윤이 줄기에 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방치한다."
이것이 <노동자>가 <생산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겪는 일이라면, 당연히 이런 일을 겪을 때 도움 받을 곳과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위의 상황이 과장이라거나, 소위 '노조'라는 과격 단체(그저 웃지요...)의 일방적 주장이라 생각하시는 분 계시다면,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추천한다.
『여성노동자, 반짝이다』를 읽고 싶은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23페이지를 소개하고 싶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여성노동자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그녀들은 자동차를 조립하고, 배를 용접하고, 식당에서 밥을 하고, 전기 코드를 만들고, 핸드폰을 생산하고, 자동차 램프를 검사하고, 범퍼를 운반한다. 이 중 어떤 노동이 남성이 노동이기에 금속노조의 여성 조합원은 단지 6%일까? 여성노동자들은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다. 이 중 어떤 노동이 부차적인 노동이고, 어떤 노동이 덜 중요하여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55% 수준일까? 어떤 노동이 가치가 없기에 그녀들은 화장실 문짝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식당에는 늘 반찬이 부족하고, 연차를 쓰려면 사유서를 써서 허락받아야 하는 환경에서 일했다. 또 12시간 맞교대 노동을 하며 물량이 쌓이면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2021년 여성노동자들의 일터는 많이 다른가? 여러분이 일하는 현장은 월차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가? 식사시간은 보장되는가? 화장실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가? 관리자들이 존댓말을 쓰는가? 폭언하진 않는가? 어떤 일을 하기에 여성노동자는 천대받는가?"
그렇다. 앞서 읽은 『가족각본』처럼 이 책 역시 여성 잔혹사 없이는 전개가 어려워 보인다. 이게 현실이라니, 참혹하다. 그러나 이 책에는 젠더를 뛰어넘어 우리 모두를 끌어안은 언니들도 꽤 등장한다. 그들의 넓은 마음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빚어진 건지 짐작하며 읽다 보면, 내 좁은 시야가 아주 쬐끔은 열린 것 같다는 착각도 들고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