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부제는 아마도 후대에 붙였을 것이다. 모든 독재자는 자신이 현명한 지도자로 기억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물러나야만 하는 적절한 시기를 외면하는 것일 게다. 이와 같은 그릇된 확신은 혼자 만드는 게 결코 아니다. 독재자의 주변에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존재한다. 개개의 노력은 옳다는 신념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친일파의 변명이나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는 나치 군인의 증언 등이 모여 그릇된 역사를 이룬다. |
|
흔히 "무대리" 또는 "무사장"으로 불리는(아마 굽시니스트의 영향일듯)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매니아들에게는 대체적으로 "진따"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죠.
알만한 사람은 아는 웹툰 작가이자 패러디의 대가 굽시니스트 "무솔리니의 야망"편에서 나오는 무사장. 개인적으로 꽤나 감명깊게 본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솔리니는 거의 정신줄을 놓았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오판과 실책의 연속이었습니다. 동맹자라기보다 정치적 라이벌로 여기던 히틀러가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자, 기회주의식으로 전쟁을 시작하지만 죄다 망신만 당한 채 실패로 끝나면서 그의 정권은 히틀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가 됩니다. 주 전선이라 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는 자력으로 뭔가를 하기보다 잠시 도와주러 왔을 뿐인 롬멜에게 전적으로 떠넘겨 놓고 자기 위신을 세우는데만 급급하다 결국 패망하여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마지막 모습조차 웃음거리였습니다. 히틀러처럼 미련없이 자결하는 대신, 따르는 측근 한 사람 없이 애첩 클라라만 데리고 스위스로 도주하려다 독일군에게 버림받은 채 파르티잔들에게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고 파르티잔들은 그의 시체에다 오줌을 갈겼습니다. 현대 역사의 수많은 독재자들 중에서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처럼 국민의 손으로 처형된 이도 있고 후세인처럼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받은 이도 있지만, 무솔리니 정도의 굴욕을 당한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리비아의 카타피 정도일까요. 흔히 자기 기만과 허세, 무능한 지도자로 알려진 무솔리니이지만, 사실 그는 그렇게 단순한 인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1920년대와 30년대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동안 간신히 열강의 끄트머리에 서서 변방 취급을 받고 있던 이탈리아를 일약 주요 열강의 하나로 올려놓고 국제 연맹과 유럽 외교를 좌지우지한 것이 바로 무솔리니였습니다. 당시 주로 귀족 출신의 늙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유럽 정치가들은 말이 민주주의일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사교 무대를 벌이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명문 출신이라는 배경 하나만으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라 결단력도 없고 추진력이나 카리스마도, 현실감각도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 몰아닥친 혼란을 헤쳐나갈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이탈리아였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달리, 이탈리아는 전승국이었음에도 어마어마한 부채와 심각한 경제 불황, 대규모 파업, 사회주의 혁명 사상이 전파되면서 바이마르 정권 시절의 독일을 연상케 할 만큼 내전 직전의 정치적 혼란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비롯해 지도자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무솔리니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서 우익단체인 흑셔츠단을 만들어 로마로 진군하였고 국왕의 승인과 국민 투표를 통해 절대 권력을 위임받게 됩니다. 그의 나이 39세로, 이탈리아 최연소 수상이었습니다.
무솔리니의 집권은 당대 많은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첫째로, 무력으로 기존 체제를 전복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최초의 독재자라는 점이었습니다. 두번째로, 파산직전의 기업을 인수한 격인 그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이른바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라는 이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냅니다. 이는 공산주의처럼 모든 자본를 국가가 전유하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하나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습니다. 세번째로, 정치와 대중운동을 결합시켜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집권하자 특유의 카리스마를 통해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을 단숨에 종식시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지방색이 강한 이탈리아를 대중 운동을 통해 하나로 통합시키는 한편,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켰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강력한 정부의 지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정치적 혼란을 겪던 많은 국가들이 무솔리니의 방식을 흉내내어 파시즘화되거나 파시스트를 모방하는 정치 세력들이 강력하게 대두됩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과 일본이었습니다. 비록 무솔리니의 방식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고 명백히 폭력에 의한 독재를 지향했지만(여기다 무솔리니의 문란한 사생활과 난봉질까지 있었음에도) 당대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불가피한 산고"라고 여겨졌습니다. 자유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조차도 파시스트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던 루즈벨트 정권 역시 미국 헌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과 언론 통제 등 미국 역사상 보기 드문 파시즘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히틀러가 그를 흉내내어 독일식 파시즘인 나치정권을 수립하고 추파를 던지지만 무솔리니는 그를 경계하였고 1935년 4월 영국, 프랑스와 반 독일동맹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자 조약'을 체결합니다. 또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돌푸스 수상을 살해하고 무력으로 합병하려고 하자 군대를 급파하여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이 시기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절정에 달했을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디오피아 침략을 놓고 영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이탈리아는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였고 히틀러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때부터 히틀러와는 동맹자이자 라이벌로서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경제 불황과 장기 집권으로 인해 지지도가 저하되자 무리하게 인기성 치적에만 매달려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몰락이었습니다.
올초에 현인 출판사에서 무솔리니의 자서전인 《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원저 : My autobiography)》가 출간되었습니다. 1928년에 무솔리니가 쓴 책으로 한창 자신감 넘치던 리즈 시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정치판에 어떻게 뛰어들었는지, 1차 세계대전의 참전, 로마 진군과 정권의 장악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가들의 자서전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주로 자기 자랑 일색입니다. 하지만 히틀러 자신도 부끄러워 할만큼 헛소리와 모순 투성이인 《나의 투쟁》에 비한다면 무솔리니는 나름대로 당대 명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인 만큼 이탈리아 근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무솔리니의 자기 자랑은 빼고라도 그의 사상과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무런 정치적 기반도 없었던 그가 어떻게 지지자들을 모아서 정적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되었고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은 평전이 아니라 자서전이기에 이 책 한권만으로 무솔리니와 파시즘을 전반적으로 알기에는 부족합니다. 영어권이나 하다못해 일어판으로도 파시즘의 창시자인 무솔리니 평전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만, 국내에는 한권도 없습니다. 사실 모 출판사에서 언젠가 출판하려고 번역까지 했지만 도무지 돈이 안될 것같아서 결국 출간은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그만큼 무솔리니와 이탈리아가 국내에서는 관심밖의 존재이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인문학 시장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느낌입니다.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역자가 간략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습니다. 대신 가장 큰 단점은 요즘 나오는 책답지 않은 편집 상태입니다. 책 사이즈가 작다보니 활자 또한 작아서 가독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왠만큼 관심 있는 분이 아니라면 손 가기가 어려울 듯. 저가로 내놓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