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이 처음에 나온 것이 1994년인가 그랬을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한참동안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역사의 종언'을 떠들어대고 있을 때 이 책이 설 자리는 딱히 없었을 것 같다. 역사를 말하는 이들의 몰역사성을 따지기란 쉽다. 다만 어려운 것은 몰역사성에 물든 현실, 그리고 그 몰역사성이야말로 역사라고 착각하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절판되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서점에서 사 보지 않았다. 헌책방 구석에 쳐박혀 있는 것을 3000원주고 얻었을 뿐이다. 벤 에거라는 생소한 학자가 쓴 이 책을 훑어보면, 헤겔과 맑스, 그 후의 비판적 맑스주의 등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기 보다는 우선 이 책을 쓴 지은이의 끓어오르는 가슴을 느끼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의 우리는 그를 향해, 이 책을 향해 현실을 모른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 사실 이 책의 내용이 그리 새롭다거나 하지는 않다. 현재 나온 다른 책들을 보아도 충분히 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물론 나름대로 '좋은' 책을 읽어야한다는 전제가 붙겠지만). 다만 이 책이 나올 즈음에 이 책이 견뎌야 했던 그 맞바람이 지금도 느껴질 뿐이다. 혹 누군가가 이 책을 구한다면, 이런 느낌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이다. 책은 단순히 머리로만 씹어대는 물건은 아니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이 책의 제목을 발견하고 기분이 씁쓸했다. 그래서 아쉬운 소리를 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