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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른들이 버린 도시를 아이의 눈으로 보다
방서현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제목부터 뭔가 '작정하고 비판할거다' 같은 느낌이 오는 책이었다. 이 책은 자본주의 한복판인 '서울'을 배경으로 우리 사회에 깊이 박힌 '수저 계급론'과 '양극화' 문제를 대놓고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시선으로 펼쳐지는데, 이 친구가 자신이 사는 곳이랑 할머니의 삶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달동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동네들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진짜 요즘 사회 문제를 아이의 눈으로 서술하다 보니 단순화 되는 면도 없지 않지만, 그래서 더 와 닿고 날카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디스토피아처럼 그려지는 건 단순한 일시적 비판이 아니라, 도시의 구조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이라는 평을 봤다. 그렇게까지 심오하게? 라는 감도 없지 않지만 자본에 찌든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면에서는 확실한 효과를 발휘한다. 작가는 단순히 사회 현상을 나열하는 걸 넘어,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는 글을 써낸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살피고 고민 해 온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싶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대비되는 서울의 잔혹한 현실이 읽는이에게 더 큰 충격과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살고 있나?’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동시에,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까지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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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달동네에 대한 기억은 마냥 푸르다. 그것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영롱하고, 보석처럼 빛나며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눈부시다. (-20-) 혜미가 재촉했다. 일수는 고양이 목줄을 꽉 잡았다. 그러더니 그것을 위로 들어올렸다. 이어 줄과 함께 고양이도 따라 올라가고, 순식간에 고양이는 공중에 매달려 바둥바둥댔다. (-53-) 옥상은 평평해 바닥이 초록색으로 칠해 있고, 방금 청소한 것처럼 깨끗하다.옥상에는 원형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4개가 놓여 있다. (-77-) 현수는 빵을 가져와 내게 주었다. 봉지에 든 단팥빵인데, 위로 풍성하게 부풀어져 있고, 검은 개가 가운데 !뿌려져 먹음직스럽다. 빵을 먹고 나자 현수는 검은 속셈을 드러냈다. 현수는 내게 집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 달라고 했다. (-97-) 할머니 말에 의하면 학원은 폐지가 많다고 한다. 학생들이 다 본 학습지나 문제집, 시험지, 답안지 등은 물론 일주일치의 신문도 나온다. 할머니는 젊은 여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올 테니 학원에서 나오는 폐지를 다라고. (-138-) 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누군가에겐 낯설게 느겨지지만 누군가에겐 익숙한 이야기가 될 수 잇다. 새벽에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 되면, 어두컴컴한 밤에 커다란 리어카가 움직인다. 재활용 쓰레기 주변에, 폐지나 종이박스, 돈이 될만한 비철을 모으고, 그것을 가까운 재활용센터에 가져다가 키로당 얼마씱 팔아간다. 그 돈으로 생활비로 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잇는 그 달동네에선 조용한 날이 없다. 시끌벅적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너머에는 가난이 숨어 있으며,그들을 똥수저, 흙수저라 한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아이, 아이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잇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 뿐이었다.해가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바래가 잘 마르지 않고, 방은 곰팡이가 쓸어 있다.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연탄과 동거 동락하며, 질식사하고, 가까운 곳에는 아파트가 있다. 학교에서,가난한 아이는 왕따가 되어도,참아야 했다. 남들은 당연한 데도, 자신은 그 당여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 아이들은 소소한 돈으로 , 어두운 속셈을 드러내고, 돈의 권력을 이용하고 있다. 가난한 아이는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 유일한 방법은 공부 뿐이다. 학원을 다닐 수 없는 가정형편, 오직 교과서와 수업을 통해서, 전교 상위권이 되었다. 학교에서 임원이 되는데, 그로 인해 달콤한 제안이 들어왔다. 할머니에게,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된다는 그 달콤한 제안, 아이는 고민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 반지하,옥탑방, 달동네에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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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길에서 주워다 기른 초등학생이 이 소설의 '화자'다. 소설이라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면서 '다큐멘터리' 냄새가 자욱해서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다. 집에 화장실을 두지 못해 동네마다 '공동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고 그건 아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냄새도 지독했지만 그곳에 빠지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한다. 가스가 차서 거의 질식해서 죽게 된다고 한다. 다행히 이 부분에서 이게 소설이란 걸 깨닫는다. 아이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혼자 살아 나온 다는 얘기를 통해 '이건 소설이구나'하고 깨달으면 숨이 쉬어졌다. 이야기는 '똥수저 동네 - 흙수저 동네 - 은수저 동네 - 금수저 동네'로 이어진다. 흙수저가 제일 아래 계층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똥수저 동네'라는 단어를 보고 '그렇지!'하고 납득했다. 동네에 '공동 푸세식 화장실'은 그 '똥수저 동네'인 '달동네'를 상징한다.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화장실조차도 그냥 몇 개 '통'으로 설치된 곳에 배설해야 하는 그곳에서. 고아 소년과 할머니는 동네를 돌며 '빈 상자'를 주으면서 이 소설의 서사가 펼쳐진다. 그들의 눈으로 시선으로 계급의 상징이 동네가 순차적으로 독자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해맑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표상이자 거울이다. '가진 것'을 아는 아이들은 그게 '권력이자 힘'인 것을 안다. '없는 아이'들에게 그 힘을 과시하고 차별하고 그것을 즐긴다. 생명은 항상 '포식자와 먹잇감'으로 분리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그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고 표출한다. 인간 문명 속에서 그 '잔인함'이 아이들 세상에서 드러난다. 그건 어른들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친 업보다. 문제는 어른들이 그것을 즐긴다. 힘을 얻으려 발버둥 치다 못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으로 발전한다. 소년은 결국 보호자인 할머니마저 사고로 잃는다. 그 하류인생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도구인 수레는 '만취운전자의 살인 음주 운전'으로 막을 내린다. 아마 그 뒤 서사는 그 '만취운전자의 음주 살인'은 결국 비싼 법무법인 변호사를 사서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이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의 물러터진 법이다. '음주 운전 범죄'의 최하 형량을 7년 이상으로 하면 절대로 '집행유예'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법을 만들 때 최하 형량을 어설프게 만들고 최고 형량만 높여서 마케팅을 하고 결국 돈 있는 자는 그 법의 그물망을 비껴간다. 법은 만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 사이에 있다. 달리 말하면 권력 있는 자와 권력 없는 자 사이에 법이 있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과연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영웅이 국회로 가길 서원한다! #장편소설 #수저계급론 #삶의양극화 #내가버린도시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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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읽다가 ‘수저’라는 단어가 눈에 오래 남았습니다.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은 이미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넘기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 단어가 아이들의 세계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특히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서울의 동네들이 수저 색깔로 나뉜다는 설정이 단순한 사회 비판이 아니라, 꽤 날것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 같았어요. ‘아이의 눈에 비친 수저 계급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 질문이 이 책을 읽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초등학생 남자아이입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함께 산동네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학교에 다니며 처음으로 ‘비교’라는 세계를 배웁니다. 친구들이 사는 동네, 입는 옷, 타고 오는 차, 그리고 부모의 직업까지 아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서열이 만들어집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아이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똥수저,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로 불리는 동네들을 경험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꿈은 현실 앞에서 조용히 밀려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한 아이의 성장기이면서도,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가 사람을 어떻게 분류하고 길들이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처럼 읽힙니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아이가 아파트 불빛을 올려다보며 상상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가족일지 조심스럽게 그려보는 순간이요. 그 상상은 부러움이기도 하고, 닿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체념이기도 했습니다. 어른의 언어가 아닌 아이의 눈으로 그려지기에, 불평등은 더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이게 현실이다’라고 조용히 보여주는 방식이 오래도록 마음을 눌렀습니다. 이 책은 서울에 살고 있거나, 한때 서울을 꿈꿨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또한 ‘열심히 하면 다 가능하다’는 말이 왜 누군가에게는 너무 가혹한 문장이 되는지 고민해본 적 있는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겁지만 피하지 않고 읽어볼 만한 이야기이며, 특히 사회 문제를 감정이 아닌 서사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잘 맞는 소설입니다. #장편소설 #수저계급론 #삶의양극화 #내가버린도시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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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문이당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곳을 잘 묘사하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달동네의 삶과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동네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읽으면서 동네에 따라 사람들과 환경이 다름을 알게 되며 가난을 못 벗어나서 계속 살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그 환경에 적응하여 사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표현과 환경이 읽으면서도 머릿속에 상상으로 그려지면서 초등학생 때는 그나마 낭만이 있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안 좋은 환경에서 성인이 되어서도 있는 것은 안될 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소설이지만 같은 서울 안에서 이렇게 수저별로 동네가 나누어져 있고 그 속에서 사는 아이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어릴 때부터 자신의 미래를 잘 설계하고 아주 금수저는 아니지만 자신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해봅니다. 똥수저동네라는 것이 어떤 곳인지 이 책을 통하여 읽게 됩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데도 워낙 자주 들어서 무감각하며 대부분이 돈 때문에 부부가 싸우는 모습입니다. 돈이 없는 곳이라 달동네라고 부르는데 육이오 때 남으로 피난을 와서 산비탈에 집을 짓고 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며 같은 달동네라도 사람들의 집이 조금씩 다릅니다. 전기선이 엉망으로 되어 있지만 환경에 따라 여러 가구 형태로 보이며 대부분 사람들이 몸이 아프거나 빚이 많거나 하는 가정환경이 가장 커서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 가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집은 판자로 둘러 만든 집이며 지붕에 비닐과 천막으로 싸여 있으며 오래된 물건들이 있으며 화장실이 집안에 없어서 제일 불편해합니다. 과거 육이오 때는 이런 삶이 당연하였지만 시대가 변하여 많은 사람들이 환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주인공은 그렇지 못한 환경입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이사를 갑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주택에서 산 기억이 나며 초등학교 때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아파트의 면적이 늘어나고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은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식들이 자라게 하려고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 가시는 것에 관심을 두셔서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 친구들의 집이 다 달랐던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 고급 주택에 사는 친구, 상가건물에 사는 친구 등 많았는데 그래도 어릴 때는 그런 환경에 여의치 않고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계급적인 환경으로 친구를 나누질 않았는데 지금은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친구들도 다르게 만다는 것을 보면 과거와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알 수가 있습니다. 소설이지만 읽으면서 이렇게 사는 분들이 서울에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내가버린도시서울 #방서현 #문이당 #장편소설 #수저계급론 #삶의양극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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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문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방서현 작가의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수저 계급론'이 공기처럼 당연해진 현대 도시의 비정한 단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작품은 자본에 의해 철저히 분절된 '서울'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양극화가 단순한 경제적 격차를 넘어 인간의 삶을 집어삼키는 '사회적 재난'이 되어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1. 성채가 된 도시: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는 풍경 작가는 소설의 목차를 '똥수저 동네'부터 '금수저 동네'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상징하는 단어들로 배치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 구분을 넘어, 태생적 자산에 의해 존재의 가치마저 서열화되는 서글픈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다. 서울은 겉보기에 세련되고 눈부신 메트로폴리스다. 그러나 작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와 노후 주택가가 '성채 안팎'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공간적 분절에 주목한다. 스스로를 화려함에 가려 실상을 보지 못했던 '눈뜬 장님'이라 고백하는 화자의 시선은, 자본주의의 번영 뒤편에 은폐된 추악한 이면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2. 가난의 미학화: 낭만이라는 이름의 폭력 소설 전반부인 '산언덕에서'는 재개발과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휩쓸고 간 달동네의 모순을 서늘하게 고발한다. 외부인에게 이곳은 '레트로(Retro)' 감성이 충만한 사진 맛집이자 '정'이 살아있는 낭만적 공간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에게 달동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스러운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작가는 미디어가 가난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묘사하는 방식이 실제의 곤궁을 얼마나 잔인하게 왜곡하는지 꼬집는다. 화려한 벽화로 덧칠해진 담장 뒤에서 빈집은 늘어가고, 출입 금지 딱지가 붙은 대문들은 '전시된 빈곤'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3. 대물림되는 결핍: 아이들의 놀이에 침투한 자본 '똥수저 동네' 장은 가난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부부의 일상이 된 욕설과 폭력, 사채 빚의 굴레, 비가 새는 천장과 쥐가 들끓는 단칸방의 풍경은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다.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아이들의 소꿉놀이 장면이다. 숲속 오두막에서 가족 역할을 수행하는 아이들은 현실의 결핍을 놀이 속으로 그대로 이식한다.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정하고, 흙을 씹어뱉으며 가짜 성찬을 연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계급의 굴레가 유년의 순수함마저 잠식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대목이다. 4. 저항으로서의 기록: 버려진 존재들의 연대 문학평론가 최의진의 평처럼, 소설은 '고아' 혹은 '쓰레기'라 불리는 주인공 '나'의 시선을 통해 양극화의 재난 속에서도 침묵하는 세상을 가로지른다. 자본의 논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며 진보를 외치지만, 정작 가난한 이들을 성벽 밖으로 밀어내는 견고한 시스템은 단 한 뼘도 변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에 편승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는 행위, 즉 '기록하는 저항'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꾼다. 이는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채 소외된 이들을 향한 작가만의 따뜻한 위로이자 투쟁 방식이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주거 형태가 곧 신분증이 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공간'이라는 매개체로 증명해낸 수작이다. 타인의 빈곤을 미학적으로 소비하는 시선을 꾸짖고,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복원해낸다. 작가는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치며, 흐려지는 시력 대신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강조했다. 이 소설은 화려한 마천루의 그늘 아래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민낯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공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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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린다는 의미가 가진 묘한 중첩감을 느낀다. 미워하고 떠나지만 다시 바라보고 돌아오는 무한 궤도와 같은 이질감의 궤적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그 도시는 버려지고 다시 담겨진다. 누군가의 가슴엔 파괴의 공간으로 누군가의 기억엔 열망의 공간으로 또 누군가에겐 버려짐의 장소가 된다. 서울에 살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꼈을 익숙한 풍경과 질감이 저자의 문장을 통해 여실히 보여진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이들이 도시에 붙어 있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치며 버텨내고 있는지 속속들이 드러난다. 덕분에 잊고 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달동네. 예전엔 참 많은 지역에 달동네가 존재했고 그곳에서 다양한 이들이 얽히고 설키며 살았다. 달동네와 그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 넌너와 언덕 아래의 또 다른 동네들의 대비는 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되었고 이 책도 궤를 같이 한다. 한때 서울을 기회의 도시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두가 꿈을 좇는 곳이었고 희망적인 말을 먼저 떠올렸지만 정작 서울은 아비규환이고 이수라장이고 치열한 전쟁터다. 저자는 소설 속 서울을 하나의 거대한 수저 지도를 이루는 도시로 그 지도 위에서 아이들조차 저마다 부여받은 숟가락을 쥔채 아둥바둥 거리는 존재로 그려낸다. 아이들의 대화에서 조차도 그 수저의 한게와 슬픔이 그대로 보여진다. 쥐어진 수저에 따라 꿈도 다르며 신고 있는 신발에서 부터 계급은 나뉜다. 입고 있는 옷에서도 심지어 말투에서 조차 계급이 나뉜다. 누구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자신의 계급과 상대방의 게급을 너무도 정확히 안다. 저자는 버리고 떠남이 단순한 도망이 아님을 말한다.그저 억지로라도 숨이 트이기 위한 치열한 행동이며, 미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삶이지만 그 안에도 작은 희망은 존재한다고 그래서 자신을 회복하고 또 다시 도시로 돌아 온다고 말한다.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다. 애써 공평하다고 평등하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수저에서부터 불공평하다. 다만 그것을 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서울은 버리려 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처럼,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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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방서현 장편소설 두 번째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서울을 소개한다.그곳은 어떤 곳일까?전국의 젊은이를 비롯하여 많은이들이 오죽하면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라는 말을 할까! 수저라는 말이 이처럼 수저계급론 사회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일줄 몰랐다.바퀴벌레처럼 오글오글 살아가는 현실에서 풀어가는 보석같은 작가의 의도함이 더욱 빛나는 소설이다.그런데 왜? 굳이 서울에서 살고 싶을까? 도로를 가운데 두고 동네가 이토록 달라진다고...,
수저의 이름으로 불리는 네 개의 동네가 도로 하나 차이로 촘촘하게 맞 닿아있다.삶의 양극화 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네 금수저,은수저,흙수저,똥수저 중에 나는 똥수저 동네, 달동네로 불리는 그곳에서 나는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길에서 주워다 기른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다.글쎄 어쩌면 나면서부터 정해지는 것인가? 똥수저 동네가 배경으로 시작되는 수저 계급론 흥미로운 이야기가 진행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그어지는 삶의 양극화 세계에서 살아가는 서울을 나의 눈으로 보고 표현하고 있다.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달동네를 옮겨놓은 듯 어릴적 냉골인 다락방에서 체온으로 몸을 데웠던 연탄불이 꺼져 오돌오돌 떨던 그때가 떠오르는 소설이다.폐지를 줍던 할머니 일수와 혜미 그리고 길고양이들 술취한 사람들,서로 죽일듯 하는 고성과 싸움 좀비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이다.
초등 학교 숙제가 우리 집 아빠 차 소개하기,우리 집 자랑거리 써오기처럼 가정 형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주제는 사는 동네를 바탕으로 계급을 나누고 힘과 외모,부모의 능력을 기준으로 세세하게 서열을 짓는 서울의 모습인가 보이지 않는 양극화는 정 떨어지게 하는 살벌한 모습이다.할머니마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나를 버린 도시,어디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수 있을까! 방서현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서울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
돈이 꽃이고, 돈이 꿈이고, 돈이 저 빛나는 별이 되고 말았다. 방서현 작가의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계급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특히 책의 목차에서부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요즘 사회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인 ‘수저계급론’을 차용해 각 동네의 이름을 정해 둠으로써, 태어난 환경이 곧 삶의 수준과 가능성을 결정하는 냉혹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끝까지 ‘나’라고만 서술하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이는 ‘나’가 특별한 존재, 인생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사회 속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강조하며,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계급의 벽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한다. 주인공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달동네에 사는 초등학생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끊임없는 왕따와 괴롭힘을 당한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성적’뿐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유일한 탈출구로 삼아 공부에 매달린 끝에 상류층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맞는다. 보호막이 사라진 ‘나’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하고, 공부로 신분 상승을 이루겠다는 희망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다. 제목인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겉으로는 떠나고 싶은 도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벗어날 수 없는 서울의 계급 사회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표현처럼 느껴진다. 현실을 버리고자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공간, 그 안에서의 냉혹한 생존을 작품은 뼈아프게 보여준다. #문이당 #내가버린도시,서울 #방서현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서평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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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현실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원래 경치도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한층 달라지듯이 이 책은 "계급"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서울을 보여주기에 조금 더 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작가가 제시하는 똥수저, 흙수저, 은수저,금수저로 나뉜 사람들의 삶은 낯설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주인공인 "나"는 달동네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폐지를 줍던 할머니에게 발견되어서 아기 때부터 키워진 나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달동네의 삶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버겁다. 더욱더 씁쓸한 이유는, 아이들조차 서로가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내주는 "우리 아빠 차 소개하기"와 같은 숙제는 현실을 너무나 뚜렷하게 보여준다. 선생님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소한 질문 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이미 상처가 돼버린 듯.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계급에 따른, 전혀 다른 서울의 풍경을 보여준다. 똥수저와 흙수저가 사는 동네는 어둡고 습하며, 아이들의 말투와 표정은 힘든 만큼 거칠다. 반면 은수저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편의 시설이 가득하고 금수저가 사는 고급 빌라촌은 담장과 경비로 둘러싸여 있지만 분위기만큼은 여유롭다. 같은 서울인데,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삶의 간극이 분명하게 보인다. 계급에 따른 삶의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소설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고 있진 않다. 형편은 어려워도 이웃을 살뜰하게 챙기는 송이 엄마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도 많고 여유롭지만 알바생에게 갑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단비 엄마 같은 사람도 있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늘 이런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은 쉽게 희망을 말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 왜 누군가는 이렇게 힘든 출발선에 서야 하는지' 묻고 있지만 이 소설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그저 독자의 선택으로 남기는 것 같다. "누군 거지로 태어나고 싶은 것도 아닌데 뼈 빠지게 일만 하며 거지처럼 살고, 누군 태어날 때부터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평생 호강하며 띵가띵가 살아요. 왜 이렇게 세상은 불공평한가요?" - 160쪽 - 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미 멀리까지 와버린 서울의 양극화와 부의 격차를 드러낸다. 주인공인 "나"처럼 누군가는 불편함을 감내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게 되는 도시, 서울. 읽고 난 후에도 큰 여운이 남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소설의 설정 자체는 누군가의 꿈속 세계, 혹은 누군가가 꾼 악몽이라고 되어있기에 좀 더 가볍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읽고 난 후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모두들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느끼고 있는 빈부 격차와 탈출구 없는 삶을 잘 그려내고 있는 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내가버린도시서울, 방서현, 문이당, 한국소설, 한국장편소설, 소설추천, 드라마, 몽실북카페, 몽실북클럽, 몽실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