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시도하고 있는 가장 획기적인 한자 학습방법은 암기위주의 한자 학습의 탈피다.
주지 하듯이, 억지로 배우면 그 만큼 깊이 들어갈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주위를 겉도는 것일 것이다. 외우는 것 만큼 '억지로'라는 말과 친근한 말은 없을 것이다.
환언하면 아무리 날카로운 암기법이라 해도 무딘 흥미의 칼날보다 더 깊숙하게 찌를수 없다는 것이다.
蹂(짓밟다 유) 躪(짓밟다 린) 蹴(차다 축) 路(길 로) 踐(밟다 천)
이 글자들은 모두 '발'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공통점을 보면 足(발 족)자의 변형된 부수다.
따라서 足이 부수로 쓰이면 '발'과 관련되 의미라는 것을 유추해 낼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친절하고 상세하게 이 책 뒷부분에서 다루고 있다.
죽을 사 부 가 죽은 사람의 뼈를 나타내고 匕(비수비)는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크게 변화된 것이라는 사실로 死(죽을사)를 익히면 머릿속에 쉽게 익혀질 것이고,(실사 부)가 끈과 실, 혹은 천 따위를 나타낸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이 쓰인 글자의 의미 풀이도 한결 수월해 진다.
組(짤 조) 織(짤 직) 縮(줄일 축) 紅(붉은 홍)은 모두 끈, 실 , 천과 관련이 있는 글자들이다.
縮(줄이다 축)은 원래 동여매다 라는 뜻으로 나타내기 위한 글자였다고 하며 紅(붉은 홍)은 붉은 비단을 나타내기 위한 글자였다 한다.
육(肉)이 부수로 쓰인 글자들은 거의 고기와 인체의 부분을 나타낸다.-臟(오장 장), 腸(창자 장), 肩(어깨 견) 肺(허파 폐).
頁(머리 혈 부)와 首(머리수 부)자 역시 대부분 머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頂(정수리 정) 頸(목 경).
자(自 스스로 자 부)가 쓰이면 코와 관련된 글자로서 -鼻(코 비) 臭(냄새 맡을 취)등이 이에 딸린다.
이것만 보더라도 글자의 원리만 파악하면 거의 모든 한자의 풀이가 웬만큼 명확해 진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물론 추상적인 기호 같이 제설(諸說)이 구구한 글자들도 있기는 하다.)
徵(부를 징)과 懲(징계할 징)을 보면 懲(징계할 징)에 =心(마음심)이 추가 되어 있고 발음은 같다.
저자는 '마음심( =心)이 의미요소로 쓰인 것은 마음을 달리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한자를 익혀나가면 徵과 懲을 명확하게 구분, 동시에 두 글자를 깨우칠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다.
參(간여할 참)과 慘(참혹할 참)이란 두 글자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기도(祈禱)라는 글자를 보면 그 글자가 꽤 복잡해 보인다.
祈와 禱를 우선 따로 두어 보고. 이번엔 제사(祭祀)라는 글자를 보면 역시 쉬운 글자는 아니다. 祈 禱 祭 祀 이렇게 네 글자를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示(보일시) 자다.
저자는 示(보일 시)가 의미요소로 쓰일 때 제사와 관련된 의미(示는 신주神主)를 본뜬 글자라 한다.)이니, '제사 시'로 풀이 한다 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에 기억해 두면 示가 쓰인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용이하다.
한자 변모(變貌)의 일면을 엿볼수 있는 글자가 바로 전갈 채 자(일만만자 아래 벌레 충을 덧 붙인 글자)다.
일만 만(萬)이라고 알고 있는 萬이라는 글자가 기실 전갈을 뜻하는 글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그것이 숫자 '만'으로 쓰이는 예가 많아지자 따로 만든 글자가 벌레 충자를 덧붙인 전갈 채자라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면 者(놈 자)는 삶다 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솥에 무엇을 넣고 삶는 모습을 본뜬 것이었는데 '.....하는 것' '....하는 사람'이라는 명사화 용법으로 활용되는 예가 많아지자 본래 뜻을 위해서 불화( =火)자를 보탠 煮(삶을 자)가 추가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렇게 읽다보면 저절로 萬과 전갈채자 煮와 者를 구별해서 익힐수가 있다. 무조건 암기 할 때는 얻지 못할 지적인 충만감을 선사해 준다는 점과, 저자가 전통 문자학자라는 미더운 점이 이 책의 가치와 위력(?)을 증명해 준다. 이 책에서 2350자를 풀이했다고 하지만 이 내용만 잘 이해하고 소화하면 나머지 한자들은 여반장(如反掌)이라고 극언(極言)할수 있다.
한자 풀이 외(外)에도 실용 넉자 숙어, 약자(略字), 필순(筆順), 두음 법칙, 잘못 쓰기 쉬운 한자, 반대어, 상대어, 반대자, 상대자, 유의자, 부수 장악 비결, 한자의 원리,자형,뜻 등 한자 다 방면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해설이 수록되어있어 옹골찬 한자 학습서로서 손색이 없는 듯 싶다.
또, 한자의 모음 길이를 표시하고, 영어를 곁들여 한자의 뜻을 더욱 적확(的確)히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鳴(sing-울다 명: 새가 울다.) 泣(weep-울다 읍: 눈물을 흘리며 울다.)
哭(cry-울다 곡: 입으로 크게 소리내어 울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견강부회(牽强附會) 억측파자(臆測破字) 망문생의(望文生義) 같은 엉터리 책들이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가끔 우스꽝스럽게, 자신만이 고안해 낸 방법으로 한자를 외우는 사람을 보곤 한다.
물론 일시적인 시험을 위한 방법이라면 구태여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고립될수 없는 문화의유구한 흐름과 우리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조악한 방법은 그만두고, 원리를 터득하며 한자를 익히면 어떨지.
이 책을 대할 때 마다 중학교 입학전에 읽을수 있었다면, 몇 년 더 일찍 출판 되었다면 하는 애석함을 느낀다. 아쉬움이 클수록 이 책과의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자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 혹은 무서운 한자 선생님의 눈치를 봐가며 괴롭게 한자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췌언(贅言)을 덧 붙이자면, 이 책을 처음부터 정독 하려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천천히 훑어 보면서 차근차근 호기심과 재미를 쌓아가는게 좋을 듯 싶다.
다시 한번 이 책을 권한다.!!!!-혼자보기 너무 아까운 명저(名著)다.
[인상깊은구절] 한자와 한문의 차이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은 것 같다. 한자는 낱 글자를 말하며, 한문은 낱낱의 글자, 즉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sentence)을 말한다. 한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낱말이 되는 경우가 있고, 다른 글자와 더불어 새로운 낱말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山이라는 글자는 그 자체로 '뫼(a mountain)'라는 낱말이 되는가 하면, '맥(脈)'이라는 글자와 더불어 '山脈'(산맥, mountain range)이라는 또 하나의 낱말을 구성한다. 따라서 한문 공부는 한자로만 이루어진 문장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것인 반면에, 한자 공부는 우리의 국어에 약 70~80%에 달하는 한자 어휘, 즉 한자말의 정확한 뜻을 파악 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바꾸어 말해 보자. 한문은 고전 문헌을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한자는 우리말에 쓰이는 한자말의 말뜻을 정확하게 아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고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한문이 아니라 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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