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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근대화의 산물인가?
- 에릭 홉스봄,『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창작과 비평사, 1994년 -
이 때까지 고등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나는 이과생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아주 기본적인 내용,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6.25 전쟁, 임진왜란 같은 굵직한 사건만 알고 있었지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과 배경을 알지 못했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역사적 배경은 고1때 공통과목인 국사를 통해서 어느정도 배웠지만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고 보는것이 좋을 정도다. 프랑스혁명을 나에게 물어보면 '아, 그거 중학교 때 배웠는데 그게 왜 중요한데?'라고 속으로 되물어보면서 나의 이런 무지가 혹여나 다른사람에게 드러나지 않을까 모르는게 있어도 다른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묵묵히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역사적 사건을 파악해나갔다. 항상 이과생이라는 핑계하에, 고등학교 시절에 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역사를 잘 모르는 것을 합리화시켰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핵심교양수업을 듣다보니 이런 무지함은 오히려 나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내용은 이해가 되지 않고, 모르는 것을 교수님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려고 하면 나의 무식함이 드러나 조소당할까 무섭고, 이런 악순환은 계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역사와 상식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긍정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준 책이 있다. 바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이다. 처음 읽었을 때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당장 포기하고 싶었던 책이지만 이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던 세계사적인 역사적 배경, 그 중에서도 근대 이후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다다익선이라고 모르는 내용을 3-4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내용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고,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세계사적인 흐름과 그것의 영향에 의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통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부분에 나는 이 책을 읽은 목적을 두었으며 대학 1학기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다.
보통 민족이라 하면 항고불변의 실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민족의 경우 북방계 동이족이 우리의 조상이며 혈연을 바탕으로 맺어진 단일민족이다. 이렇게 과거의 조상에서부터 민족이란 개념이 생겨났고, 이것이 점차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단일민족으로서의 감정이 우리들 사이에 생겨났는데 이것이 ‘민족주의’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홉스봄에 따르면 민족주의란 근대 이후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가공되고 만들어진 감정으로 해석된다. 그는 시민혁명의 일종인 프랑스혁명부터 소련의 몰락에 이르는 서구 근대사를 살펴보는 가운데 민족주의는 민족의 원초적 일체감에 기반을 두었다기보다는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여 지배계층이 인위적으로 가공시킨 이데올로기임을 증명해보이고자 한다. 즉, 현재의 세계사에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민족주의를 근대사의 산물로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을 시대의 흐름에 따른 민족주의의 정의와 적용, 그리고 한계로 구조를 세분화하여 살펴보았다.
이 책은 크게 6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각 부분은 특정 시기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한 민족주의의 성립배경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주의의 성립에는 근대 자본주의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계층간의 분화가 나타나는데 특히 상공업을 비롯한 다양한 생산수단을 이용하여 경제적으로 성장한 부르주아가 경제적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다. 그들에겐 정치적 발언권이 있었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군주제를 타도하려고 했다. 따라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기초하여 시민혁명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민주정치가 확립되고 민족주의가 세계사적으로 성립하게 된다.
저자는 민족주의의 변천 과정을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근대 이전까지는 민족적 신성성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민족주의의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을 자신의 영토에 대한 최고의 민족적 통치기관으로 지배하려 했다. 하지만 18세기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을 내세운 프랑스혁명에 의해 처음으로 근대 민족주의의 초기형태가 정의된다. 이 때, 민족은 자신의 정치적 자결을 위해 투쟁하면서 억눌려있던 피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난다. 보다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국가에 의해 시민은 국가정부와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국가의 이익은 시민의 참여에 의존하는 형태를 보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19세기 후반, 점증하는 대량 이주와 다양한 인종을 가진 사람들의 조화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시킨 종족적 민족주의가 정의된다. 이 때 국가는 계속적으로 생겨나는 언어에 대한 통제력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민족성을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기준을 한 언어적 민족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자본주의의 체제하에서 발달한 민족주의는 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롭게 폐쇄적 민족주의로 정의된다. 당시 세계경제는 붕괴의 직전이어서 국제적 이주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또한 외환거래가 통제됨으로써 거래와 투자가 축소되어 세계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이 때 자본주의는 독립된 단위의 민족국가로 후퇴하게 되고,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한계 및 잠재력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 이후 1930~40년에는 보다 전통적인 영역에서 눈을 돌려 현대적이고 도시화된 요소에서 민족을 파악하려 하는데 이 때 현대적 매스 미디어가 출현한다.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선수․팀간의 시합인 스포츠를 중계함으로써 민족은 하나라는 공통된 감정을 강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종결된 이후로는 지속되지 못한다. 이 때는 민족주의를 근본주의와 비교해서 정의하는데 주된 차이는 근본주의는 관습과 전통, 과거의 행위에 호소하는 한편 민족주의는 과거의 파괴를 바탕으로 성립된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분리주의가 나타났는데 이는 1920년대에 불완전했던 민족주의의 개념을 부활시킨 것이다.
민족주의의 변화과정을 언급하는 가운데 저자가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근대 민족 및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의 기본적 특징은 근대성이다.”이다. 민족이란 기본적인 의미에서 동일한 정부 아래서 공통의 전통과 열망을 가지며 그 집단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중앙권력에 종속된 시민 공동체이다. 기본적으로 민족이 형성되었을 땐 그 나름대로의 전통과 역사를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근대성의 측면에서 민족을 짧은 역사를 지닌 공동체로 파악함으로써 앞으로 발전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한다. 스탈린의 정의에 사용된 역사, 문화생활, 경제력, 언어, 영토 등의 요소에서 벗어나 근대적 측면에서 민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근대적 측면이란 단편적인 판단기준이 아닌 복합적인 변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그 근거로서 민족주의에 대한 스탈린의 정의의 기준을 만족하는 각각의 구성원들 모두를 동일한 민족이라고 간주할 수 없으며, 하나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된 상태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준들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 복합적인 변수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판단기준에서 벗어나 근대 이후의 사건을 기준으로 민족과 민족주의를 정의하자는 것이다.
한편 현대 시기에는 민주주의의 개념이 최고로 발달했다. 따라서 그는 민족을 파악할 때 전통적인 영역의 밖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와 관련된 사례는 미디어와 스포츠 중계이다. 스포츠의 국제경기는 다민족 국가의 통일을 상징함으로써 집단 갈등의 배출구를 제공했다. 또한 정치적 성향을 띠지 않은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였다. 시민들은 이런 점에 묘한 일체감을 가졌는데 바로 이러한 감정이 민족주의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91년 소련의 경제적 곤란에 의해 냉전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시민들은 독립을 간절히 추구했다. 이때껏 억눌려있던 감정은 폭증하는 분리주의로 이어졌고 대부분의 국가는 자주적인 민족국가로 탈바꿈했다. 그는 이들 국가는 약소국에 불가했지만 경제적 생존력은 큰 국가와 비교해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그들의 민족적 단결성을 추측했고, 이것을 민족주의와 관련시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2장에서 언급된 ‘원형민족적 결속’이다. 이는 근대 후반부에 나타난 언어적 민족주의와 관련되는데 ‘대중적 원형민족주의’라고도 한다. 저자는 기존의 집단적 소속감의 변형을 언어 요소를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인접해 살지만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 작용하는 언어적 장벽만으로 잠재적 민족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실체들을 분리시킬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글’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즉, 서울 사람은 제주도 토박민의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제주도 토박민을 우리 민족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배층과 문자해득층을 제외하고는 언어가 원형민족적 결속을 변형시키는 주된 요인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언어는 민족형성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가 이전의 정의와는 다르게 원형민족적 결속을 언급하며 베네딕트 앤더슨의 정의를 인용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현실속에 존재하는 실재의 공동체가 아닌 상상의 공동체라고 칭했다. 즉, 민족은 인간 공동체와 그 네트워크의 부재, 또는 퇴각이나 분열에 의한 ‘감정의 공백’을 메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실제 공동체를 상실한 사람들이 왜 이러한 특수 형태의 대체물을 상상해야 하는지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공동체를 상실함으로써 감정의 공백을 경험한 그들의 집단적 소속감에는 이미 변형이 일어났기 때문에 또다시 소속감의 변형을 가져오기 위해선 원형민족적 결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크레올이 원형민족적 결속과 관련됨을 발견했다. 크레올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과 프랑스인의 자손들을 말한다. 그들은 16세기 중엽 에스파냐 인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에스파냐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신대륙에서 태어난 그들을 에스파냐인들은 위험인물로 간주해 주요 관직에 임명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민족임에도 정신적인 차별을 견뎌야 했다. 따라서 유학으로 유럽의 자유사상을 접한 크레올의 후손들은 에스파냐 인들에게 불만을 품고 독립운동을 전개시켰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단합된 에스파냐 민족의 상(像)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집단적 소속감이 커졌고 그것을 독립운동을 통해 표출했다. 즉, 주된 연결고리는 크레올이 감정의 공백을 메우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근대성의 측면에서 정의내린 저자의 관점은 약간 편향된 것 같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근대 이전에는 민족주의를 파악할만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민족간에 공통으로 생겨난 무언가의 감정이 없었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오히려 과거에서 민족주의를 파악할만한 중요한 사건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부터 지금까지는 채 500년이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므로 장기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는 지금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 해석된 것이므로 우리는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적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를 파악할 때는 전통적인 시기에서부터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또한 이 책은 유럽의 사례를 토대로 민족주의를 정의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동일하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근대성의 한 측면인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이 비교적 최근에 형성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때껏 봉건적 체제하에 살면서 혈통의식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이후의 시기로부턴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건을 찾기가 힘들다. 오히려 근대 이전에서 이러한 사건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민족국가형성이란 측면에서의 조선의 건국과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통해 민족주의적 정서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임진왜란 당시 어려움을 관군, 의병, 승병 등 국민의 단결된 힘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단결력을 알 수 있다. 근대성이란 기준은 각 나라마다 상이하기 때문에 민족주의의 개념은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반적 상식에서 벗어난 내용과 전문적인 지식들이 많이 소개되어 이해하기 다소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은 근대적인 시각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경제력, 영토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판단기준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복합적 변수들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하는 이유는 ‘민족’은 양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민족이 가진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3.1운동으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기본으로 민족대표 33인 외 전 국민들이 함께 동참하여 일제의 부당성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또한 2002년 월드컵 때의 전국적 응원열기는 우리 민족에의 공통된 감정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감정을 항구불변의 실재로 맹신하거나, 서로가 자기 민족만의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이는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중동지역에서의 이슬람 종파 간의 갈등,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대한 군사행동과 반발, 근본적인 식량과 기아문제와 관련한 아프리카 지역의 폭력적 갈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현재의 독도문제, 동북공정과 같은 분쟁거리는 민족주의를 확고부동하고 영원한 감정, 아니면 시대에 따라서 변화되는 유동적인 감정으로 보는지에 따라 해결될 가능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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