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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끝나고 나의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 그 찰나의 틈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얽힌 관계의 실마리를 서사로 하나씩 풀어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 게 하나처럼 느껴졌다. 인물의 성격이 세밀하게 나와있고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일들이 하나 둘씩 풀려갈 때의 희열과 따스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
진실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을까. 속이고 속아가면서 당신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지고 원하는 역할로 살아볼 수 있는 세계야. 액터스 헤븐.” 빛 속에 함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어둠속에 함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으면 꽉 쥐고 놓지 말아야 한다.액터스 헤븐은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지고 원하는 역할로 살아볼 수 있는 세계’이다. 그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번에 나을은 배우 지망생의 역할을 선택한 듯했다. 나을이 첫 영화를 찍고 있었을 때 즈음, 초등학교 동창의 게시글로 인해 학폭 논란이 수면 위에 오른다. 모든 걸 터놓으라는 윤대표의 말에 나을은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대표에게 들려준다. 그로부터 이 책의 세계관은 시우, 시우의 엄마인 하영, 나을의 엄마인 소영으로까지 확장된다. 각 장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흩어진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색에 잠기곤 한다. 줄곧 ‘-일까’와 같은 어미로 말을 맺으며 상대는 물론 자신을 이해해 보려 한다. 그들의 고찰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 모든 세계관을 깨우친 이는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뚜렷하게 마주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하영이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듯했다. 그때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하영을 바라는 만큼 하영도 나를 바라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마음이 동일한 질량으로 서로를 원하게 되기를, 어둠 속에서도 서로 함께 있기를 바랐다.훗날 소영은 자신의 인생이 어찌하여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회고한다. 자신의 인생을 죽 톺아볼 뿐 성찰을 하지는 않는다. 몇십 년 전 시우의 원망 어린 눈빛에서 느낀 죄책감은 뒤로 한 채로. 이 모든 시간의 시발점은 소영에게부터 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소영이 하영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하영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모두의 삶이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영의 비정상적인 집착과 더불어, 하영의 우유부단함에도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영은 이미 무너져버린 삶에 대한 관념으로 인해 소영에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나을에게 질투가 났다. 누군가를 원망하느라 인생을 망치지 않아서. 좌절로 인생을 물들이지 않아서.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아서. 욕심껏 살아가고 있어서.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고 있어서. 나을은 그게 나에게 주어진 행운들이라 말했다. 자신이 탐을 내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 것이라면 반드시 내 곁으로 오게 되어 있다고, 자신은 그런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낙담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낙담하기만을 선택한 우리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다른 선택을 해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반짝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을 놓지 말자고 했다.성인이 된 시우는 나을이 배우로써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와 연인을 빼앗았다. 그럼에도 나을은 시우에게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간 것일 거라며 현상을 받아들이려 했다. 나을의 엄마인 소영이 시우의 엄마인 하영의 삶을 망가트렸듯, 시우 또한 나을의 삶을 망가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당신이 내 전부를 가져갔듯, 나도 당신의 전부를 가져가겠다는 셈법을 작용한 것이다. 소영에게는 하영을 제외하고 그 어떤 이도 큰 역할을 차지하지 않았으니 셈법은 틀린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을은 시우의 이런 속내를 인지하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묵묵히 죗값을 치러내고 있었을지 모른다. 등장인물과 그들의 감정이 여러 갈래로 교차할 때 즈음, 어쩌면 이 세계가 액터스 헤븐이고 한 명의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얼굴에서 그늘에 드리워진 듯한 어두운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었기에 동일한 사람처럼 보였다. 혹은 소영이 만든 어둠에 모두가 휩싸여버리고 만 것일 수도 있다. 그녀가 ‘헤븐’이 아닌 반대의 세계를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김나현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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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번 교환독서 순서인 분께 남기는 편지글로 서평을 대신합니다. 옥대장님께. 파란색 펜을 들고 처음 읽기 시작한 날짜와 제 이름을 썼습니다. 다음 번 이 책을 읽을 옥대장님을 떠올리며, 저와는 비슷하게 또는 다르게 읽을 모든 시간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요. 책 안에 남긴 파란 펜의 흔적들에서 느끼실 수 있겠지만, 저는 거듭 아픈 마음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흉내내는 것과 진짜 그렇게 사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요. 왜 어떤 이는 홀로서기에 실패하는 걸까요. 다른 사람과의 유대가 왜곡된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를 진정 좋아한다는 건 뭘까요.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요. 실패와 고난 앞에 무너지고 도태하는 사람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저 청소년 문학의 일종일 거라 미루어 짐작한 저에게는 다소 묵직한 소재의 책이었습니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연속해서 쏟아지는 동안 ‘아픈 마음‘에 대해 자꾸만 고민했습니다. 읽는 내내 그런 마음들을 피할 수 없었어요. 이야기 안에서 비틀리고 반복되는 감정들이 혹시 나에게도, 혹은 우리가 스쳐온 누군가에게도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다 지나간 일은 아니더라고요. 누군가의 상처는 그때 멈춰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상처를 밟고 겨우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습니다. 옥대장님은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시려나요. 저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멈추실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장에서 오래 머무르실 수도 있겠지요. 그 차이가 저는 늘 흥미롭고 기대되고 또 고맙습니다. 옥대장님과 이렇게 책으로 이어지는 순간마다 제 마음은 절로 단단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연필로 사유를 써내려간 적은 있지만 펜은 처음이에요. 파란 펜으로 남긴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제 마음의 결이 조금은 분명히 드러날 거예요. 서툴지만, 숨기지 않은 채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옥대장님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의 생각과 옅은 감정들이 한 번쯤 스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제 손을 떠난 이 책은 옥대장님 품에 있습니다. 함께 읽는다는 게 이런 감각이라면, 저는 계속해서 책을 주고받고 싶습니다. 이 책도 함께 읽을 수 있어 몹시 기쁩니다. 다정하게 읽고 나누어주세요. 기다릴게요. 밤비 올림. #교환독서 #함께읽기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김나현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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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 김나현> 자극적으로 얘기하자면 ‘집착 로맨스’ ——— 처음 김나현 작가를 알게 된 건 『예감의 우주』를 통해서였다. 그때부터 그녀의 문체와 감정선에 매료되어 이번 은행잎 활동 도서인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에 대한 기대도 컸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 읽는 내내 작가의 문장이 마음에 쏙쏙 들어왔다. 문체는 담백하지만 감정의 결이 세밀했고, 스토리는 흥미로워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평소 나는 여러 인물의 시선이 오가는 다중 시점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감정을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감정이 궁금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교차하는 서술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마지막에는 주요 인물이 아닌, ‘서브주인공’의 이야기가 에필로그에 등장했다. 그 순간, 작가가 독자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나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작가 덕분에 아드레날린이 솟았다. ——— 📘 소설의 주인공 ‘이나을’은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주연 자리를 거머쥔 신예 배우다. 인생의 봄이 막 시작되려는 순간, 그녀의 과거가 폭로된다. 열세 살, 아직 미성숙했던 시절의 상처가 세상 앞에 드러나며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이 사건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나을의 기억과 진심, 그리고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계기가 된다. ——— ✔️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 속에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사건들이 얽혀 있었다. 나을뿐 아니라 친구 시우, 부모, 그리고 정체모를 낯선 인물까지. 그들의 관계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한 가닥의 실로 이어져 있는 건 아닐까?” ✔️ 그들은 각자의 시간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들만의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시간은 누군가가 써놓은 시나리오일 수도, 스스로 만들어낸 인생의 장면일 수도 있다. ✔️ 어릴 적, 나는 종종 상상했다. 어쩌면 지구 밖의 누군가가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이미 정해진 각본 속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소설은 바로 그 ‘운명’과 ‘통제’의 문제를 섬세하게 건드린다. ✔️ 결국 배우 이나을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 사회가 정한 역할, 타인이 써놓은 기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연기한다. 그러나 나을처럼 그 무대 위에서 흔들리고, 상처받고, 결국 자신만의 대사를 찾아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 ✔️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경계 위에서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이다.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말은, 결국 ‘모든 순간이 나를 만든다’는 뜻이 아닐까.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 🔖 p.19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암막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얇은 새벽빛을 차단하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얼룩진 과거의 한 조각도 이렇게 손쉽게 덮어지면 좋으련만, 생각하면서. p.133 누군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란 언제나 화면을 통해서만 투명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으니 이쪽이야말로 현실이 아닌 듯해서 더욱 빤히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 더욱 생동하는 세계는 현실보다는 그 현실을 교묘히 빼닮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p.228 그리고 이제는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늦되게 꿈을 이뤄가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p.299 해야 할 일을 영영 미루기만 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갑갑한 비밀을 품 안에 간직하기만 했다. p.317 혹시라도 앞으로 나을에게 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 아이의 속이 무방비한 상태로 시꺼멓게 멍이 들어간다면, 나는 몇 번이나 그 앵두 참을 뭉개고 또 뭉개버릴 것이었다. p.353 그러는 동안 나는 실패해도 계속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 📖독서빈 평점 5/5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김나현 #은행나무 #장편소설 #은행잎2기 #은행잎서재 #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책추천 #독서 #독후감 #독서평 #독서빈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북리뷰 #책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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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 김나현 (지은이) 은행나무 2025-10-15> ♡ 사실 표지를 보고는 내가 선호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한 마음) 읽다가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재밌잖아…!!! 23세 나을은 윤희재 감독의 작품에서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모 역으로 캐스팅 되었다. 그런 나을 앞에 “윤 감독의 차기작 출연 배우 학폭 고발” 이란 글로 앵두라는 글쓴이의 글이 올라온다. 그 글로 인해 작품에서 하차될 수도 있는 나는 10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한다. 13세의 나을은 앵두라는 아이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2년 전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앵두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자신도 괴롭히던 애랑 싸우고 화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앵두는 점점 더 나을을 괴롭힌다. 그때 나타난 전학생 시우, 그리고 엄마가 나을의 과외선생님으로 데리고 온 사람은 시우의 엄마이자 한주 선생님. 그런 나을 앞에 그들은 갑자기 사라지고, 과거와 현재의 미래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글의 구성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기억이 다른 이에게는 다르게 기억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또 막상 읽으면서 새로운 충격을 다가온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일 것 같지만 사실은 무엇을 기준에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해야할까. 모든 일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 중첩되어 벌어지는 것들이고, 다양한 마음들이 섞여서 완전히 다른 사건들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걸. 살기 위해 선택한 삶도 있다는 걸. 그러나 연극엔 끝이 있듯이 연극에 끝을 내는 것도 자신이어야 한다는 걸. 이 소설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왜 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 자신만이 가진 책임감과 양심으로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이 감동적이었다.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아서 더더욱 공감했다. 이 책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았다. 강추!!! ✴︎ ”나을이도 잘못한 게 있어. 너를 오해하게 내버려두었잖아. 흥분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야지.“ (54) ✴︎ “나는 선생님을 영원히 좋아하고 싶어요.” 한주 선생님이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계속 좋아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해. 시간이 우리를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74) ✴︎ 그저 어떤 기회들이 날아가버릴 뿐이지 나 자신이 흩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290) ✴︎ ”그냥 아는 거죠. 사실 그렇잖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거니까요.“ (330)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은행잎2기 #김나현 #은행잎서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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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김나현의 장편소설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를 처음 봤을 땐 제목부터 표지까지 판타지가 가미 된 성장소설이 아닐까 추측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200페이지쯤이 되자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며 독자들의 추리력을 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좀 더 읽어보자 어쩐지 섬뜩한 이 이야기는 호러나 고딕 소설인 지 모르겠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소설의 매력으로 결말까지 재미있게 달려냈다! 23세 신인 배우 나을은 원하던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자신이 학교 폭력을 했다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나율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거듭된 반전과 달라지는 분위기만이 아니다. 아직 어려서 뭘 모르던 청소년 시절부터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어려운 나이,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세월 동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내 인생에 주인공은 나이며, 나는 이 인생에 주인공만이 아니라 감독이기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 폭력을 당했던 나을이 도리어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나을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학폭을 가한 당사자를 찾아가 따져 묻기는커녕 평온한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서 앵두란 애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두는거야." 🔖나을은 그게 나에게 주어진 행운들이라 말했다. 자신이 탐을 내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 것이라면 반드시 내 곁으로 오게 되어 있다고, 자신은 그런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한 마디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 다음 나을의 인생에서 알아볼 수 있다. 기분 나빴던 인연을 그저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일, 좋아했던 사람을 용기 내어 다시 찾아가는 일.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본인의 온전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해내는 일. 이 단단하고 씩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어쩐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소설을 한 편 읽고 나면 과연 이 소설이 재밌었나, 재미 없었나를 따져 묻게 된다. 아무래도 소설은 재밌어야지. 나는 이 소설이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라서 추천하고 싶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다정하면서 어쩐지 섬뜩한 이야기가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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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신의 삶이 누군가 써놓은 각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만약 우리의 운명이 정해져있다면 주어진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갈 것인지. 주인공 나을은 신인배우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명한 윤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되지만, 학교폭력 폭로 글이 올라오고 위기에 처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땐 학폭에 휩싸인 과거를 되돌리는 이야기인가? 생각했지만, 이야기는 뜻밖의 여러 인물의 기억과 시간이 교차하면서 훨씬 광범위하게 뻗어나간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가정에서는 딸이나 아들, 사회에서는 학생, 직장인, 친구 같은 이름으로, 마치 누군가 써놓은 시나리오 속 인물처럼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소설 속 배우라는 직업은 이 은유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극 중 배역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자기 인생을 연기하는 사람. 어쩌면 현실조차 연기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을. 작품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복수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경계가 흐려져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지만, 이 작품에서 하영이 시나리오 속 인물로 살아가는 것과, 소영이 하영의 삶에 개입하려 하는 장면은 어쩐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들의 선택을 되짚어보면,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시간을 다시 쓰게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각본을 어디까지 내가 쓸 수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또 꿈과 기다림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타인의 시간과 기억을 헤매던 사람이 마침내 나로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때, 그 순간이야말로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순간이 아닐까? _ 🔖 “내가 말했잖아요. 어떤 과거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그 과거를 어떤 미래로 연결할지 미리 손을 써두는 거예요.” (p. 30) 🔖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낙담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낙담하기만을 선택한 우리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다른 선택을 해볼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반짝이는 것을, 아름다운 것을 놓지 말자고 했다. (p. 228) 🔖 정말로 나는 어떤 역할로 살아보고 싶은 것일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딱 한 사람만이 떠올랐다.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강렬하고 생생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어.“ 시우가 고개를 기울여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누구일 필요가 없는 나. 그게 내가 원하는 역할이야.“ (p. 292)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김나현 #은행잎2기 #은행잎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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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우리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자신 있게 자신의 삶에서 완벽하게 스스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주인공을 모두 소화하고 있을까? 얕게 생각한다면 여기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책을 읽은 후에는 아무도 여기에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표지의 귀여움과는 달리 마지막 반전에서 뒤통수를 맞으면서 독자는 자신의 인생을 리와인드 하게 된다.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 줄거리는 여배우가 되어 첫 주연을 맡은 나을에게 학폭 증언 사례가 터지면서 시작한다. 학창 시절 나을은 아버지가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이런 그녀 앞에 시우라는 예쁜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고 서로 친하게 지낸다. 둘의 엄마인 소영과 하영 또한 학창 시절부터 친구이다. 그러나 나을의 잘못에 대한 벌을 시우가 받으며 시우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각자의 삶에 크나큰 비밀을 품고 있는 그녀들의 얽힌 인생은 결말에서 크나큰 반전을 이룬다.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는 우리에게 살아간다는 건 연기하는 일이고, 연기하는 동안 우리는 그 대본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이를 말하기 위하여 전면에 나을을 내세운 뒤, 그녀의 엄마 소영과 친구 하영, 그리고 하영의 딸 시우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이 독백의 묘미는 모두 다른 나이 대의 위치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소설은 네 명의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결국 하나의 인격이 시대와 이름을 바꿔가며 스스로를 연기하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럼 먼저 등장인물들의 역할부터 살펴보자. 모든 사건의 기원인 하영과 소영은 학창 시절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났지만 서로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는 관계가 된다. 처음엔 완벽하게 두 명의 인물로 느껴지지만 페이지가 넘어가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들은 외형만 다를 뿐, 한 인간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통제하려는 나와 보호받고 싶은 나로서의 두 욕망의 충돌로 읽힌다. 소영은 자기 불안을 다스리려는 방식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간다. 하영의 경우는 더욱 복잡하다. 극단적인 두려움으로 몰린 상태에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소영에게 의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딸을 살리기 위한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하여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려고 작정한다. 작품 속 주인공이 손가락을 하나 잘라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완벽한 그녀가 되기 위하여 자신도 동일한 행동을 할 정도로. 이런 그녀의 행위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구원을 얻기 위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부분인 고등학교 3학년 때 똑같이 임신하여 같은 나이의 딸을 낳는 설정은 단순히 개연성이 없다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비개연성의 파편들이 오히려 하나의 인물이라는 해석으로 수렴된다. 이는 표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서로의 얼굴이 겹쳐 통과되어 하나가 되는 장면에서. 결국 소영과 하영은 자아의 욕망이 서로를 미러링 하며 부딪히는 내면의 전투가 아닐까? 그렇기에 서로를 소름 끼쳐 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으며 상대의 소름 끼치는 실체를 알아도 같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나을과 시우는 모성 세대가 남긴 내면의 분열을 각자의 방식으로 반복하고 정화하는 인물이다. 이 둘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겪는 경험은 그녀들의 어머니인 소영과 하영을 저절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시우의 경우는 시나리오 속의 여주인공의 삶을 훔친 엄마 하영의 분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 나’로 살아간다. 그러나 나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삶에서 시련이 닥쳐오면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타인의 시선, 시간의 통증을 견디며 자기 리듬으로 살아가는 자아로 남는다. 사실 작품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가진 이는 나을이다. 그녀의 위치였던 학폭 사건의 희생자도, 스타의 자리도, 사랑마저도 모두 시우에게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을은 끝내 타인의 서사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이, 남의 말이, 남의 행동이 규정한 각본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대에 남아 있는 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아마 대부분 이런 상황에 닥치면 "그래서 어쩌라고?"이지만 나을이 보여준 것은 "그럼에도 산다"였다. 이것이 바로 이전 세대가 서로를 통제하고 복제하며 누가 더 주인공인가를 다퉜다면 나을은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선언한 셈이다. 그리고 이 선언이 바로 타인의 시나리오에서의 삶을 벗어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게 너에게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도 이런 초연함을 가지고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견뎌낸다. 플라톤적 수용의 경지를 넘어, 존재의 시간성을 인정하며. 역설적으로, 그녀가 타인의 각본을 인정한 순간 비로소 자기 각본이 생겨버린 순간인 셈이었다. 결국 소영은 통제와 복제, 자기 파괴로, 하영은 믿음과 몰입, 자기 상실로, 시우는 욕망과 회복, 자기 초월로, 나을은 수용과 지속, 자기 확립으로. 결국 이 넷을 한 인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허구의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바꿔가며, 타인의 시나리오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사랑하고, 통제하고, 무너지고, 견디며 같은 욕망을 반복한다. 소영이 하영이고, 하영이 시우이며, 시우가 나을인 것은 이들이 닮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런 순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나현의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의 남의 시나리오에 따른 삶에 구속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타인이 건네는 격려 한 마디에 사로잡힘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타인의 시나리오로 둔갑하게 됨을 책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처음의 질문을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한다. 당신은 온전히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여기에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없는 이라면 타인이 쓴 대본 위의 삶을 그린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모든시간이나에게일어나 #김나현 #은행나무 #은행잎2기 #은행잎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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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작가는 인간의 내면탐구를 정말 잘 하는 것 같음 일단 이 책의 소개로 ‘운명이라는 시나리오 위에서 영원해질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음 읽기 전에는 딱히 와닿지 않는 문구였는데 다 읽고 이 문구를 다시 마주하니 이보다 정확한 설명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듦 운명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고 시나리오는 내가 고치고 싶은 쪽으로 고칠 수 있는거잖음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운명을 고치려 드는 행위마저 우리의 운명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음 이야기를 바꾸려는 시도조차 시나리오 속에 이미 써진 서사인거임 등장인물들은 서로 너무 사랑함 근데 너무 사랑해서 그 마음을 다룰 수가 없는 상태같아 보였음 특히 나을의 엄마인 소영의 모습과 그녀가 평생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것들이 기억에 깊게 남음 소영이라는 인물은 운명마저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가장 잘 나타낸 인물인 것 같음 하지만 통제하려는 운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끝에 가서야 후회인지 참회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는 모습마저도 인간의 욕심인 듯 했음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아주 작은 선택을 할지라도 그 선택은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채 흔들어버릴 수 있는 선택이라는 걸 잘 보여준 인물이었음 그리고 이 책에는 ‘액터스 헤븐’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역할 하나를 맡아서 살아볼 수 있는 세계임 하지만 한 번 고른 역할은 바꿀 수 없음 편집자님의 말처럼 나도 어떤 인물로 살지 끝내 고를 수 없었음 사랑해서 속이는 사람도, 사랑하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속는 사람도 나는 되고 싶지 않았음 이미 짜여진 시나리오같은 인생 속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시나리오를 바꾸려 드는지,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그 범위는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했음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제목에 대한 고민도 들었음 『모든 시간이 나에게 일어나』라는 제목에서 시간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 뿐임 시간은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절대적 범주에 있기에 우리는 허락되는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내비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마음을 전하기 위해 주어지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그 두 사람은 내가 쓴 이야기를 실제 자기들 인생으로 살아내고 있는 거예요." 스물셋 나을은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신입 배우였다. 제작만 하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물론 국제 영화제에도 자주 노미네이트되는 거장 감독의 신작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후 나을은 줄곧 지상에서 한 발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온라인 게시판에 학교폭력 고발 글을 올렸고, 신작의 제작 발표와 공개를 앞두고 민감한 시기였기에 수습을 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쓴 건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던 나을은 십년 전 앵두 머리끈을 하고 자신을 괴롭히던 한 아이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괴롭힘을 막아주었던 친구 시우를 떠올린다. 그렇게 이야기는 나을이 열세살이던 시절로 간다. 아빠가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와 바람이 나서 엄마와 이혼을 한 뒤, 추잡한 소문이 동네에 퍼져 이사를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6학년 새 학기가 되고, 나을의 아빠가 의사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괴롭힘이 시작된다. 소문에 의하면 앵두라는 아이의 아빠가 의료 사고 피해자라고 하는데, 그 후 주변에서 부모가 의사인 아이만 마주치면 맹목적으로 괴롭혀왔다고 한다. 그리고 시우라는 전학생이 오고, 곧 앵두의 표적이 나을에게서 시우로 옮겨 간다. 하지만 시우는 나을과는 달리 당당하게 맞서는 아이였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에 나을을 돌봐줄 선생님으로 한주 선생님이 집에 오는데, 시우와 함께 였다. 한주 선생님이 시우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우와 나을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간다. 어느 날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로 갑작스럽게 멀어지기 전까지는. 그 어린 시절의 순수한 호의가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우정이 모두 거짓에 토대를 둔 유령 같은 것이었는데도 나을은 그런 우정이라도 영원히 추억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으면 충분히 좋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 따뜻한 말을 수없이 돌이켜보면서 그런 말들이 정말로 내가 들은 것인가, 아니면 내가 바란 것을 그저 마음으로 그려낸 것인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먹을 꼭 쥐고서 그것을, 나에게 온 행운을, 내 곁에 남아 있을 운명으로 빋어보고 싶었다. p.228~229 나을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난 윤감독은 직접 그를 찾으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나을 씨, 그 시우란 친구 말이에요. 혹시 내가 만나봐도 될까요?" 아무래도 확인할 게 있다는 감독의 수수께끼 같은 말은 그가 오래 전에 썼던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었다. 시우와 한주가 윤감독이 무명 시절 썼다가 도둑맞은 시나리오 속 인물의 서사를 그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한주, 이시우라는 이름부터 모든 것이 나을이 어린 시절 알고 있던 것과 똑같았다. 누군가 쓴 이야기를 실제 자기들 인생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왜 멀쩡한 자신의 삶을 두고 허구의 이야기를 살아내야 하는 걸까. 대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이야기는 나을의 스물셋 현재에서 시작해 나을의 열세살로 갔다가 서른셋의 하영, 마흔셋의 시우를 거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펼쳐진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이 살아낸 수많은 세계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미래의 내가 살았을지도 모를 세계가 무수한 가능성의 우주가 되어 펼쳐지는 것이다. 살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 대해 가끔 상상해 보곤 한다. 그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이 삶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다른 삶을 살았을 테고, 나는 얼마쯤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정해진 운명같은 게 있다면 어떤 시간을 거치든 도달하는 곳은 비슷할 것이다. 그쪽의 나도, 지금의 나도, 어찌되었든 나 자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가끔은 궁금해진다. 내가 다른 역할을 맡아서 살아가는 모습이, 새로운 세계 속에서의 경험이,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결말이.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이야기의 우주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다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