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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묘한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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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놓쳐서는 안될 아까운 책..이 책에서 진술이라는 책을 만났다.  다른 책들에 비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고문학이라는 장르라 생소함도 덜할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생각보다 얇고, 술술 읽히는게 제법 괜찮다.이 책은 하일지라는 작가가 썼다.1990년 경마장 가는 길이라는 책을 우리 문단에 갖고 나왔지만 문단 일각에선 심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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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놓쳐서는 안될 아까운 책..
이 책에서 진술이라는 책을 만났다.  다른 책들에 비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문학이라는 장르라 생소함도 덜할것 같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생각보다 얇고, 술술 읽히는게 제법 괜찮다.

이 책은 하일지라는 작가가 썼다.
1990년 경마장 가는 길이라는 책을 우리 문단에 갖고 나왔지만 문단 일각에선 심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경마장 가는 길은 우리 문학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도래를 알리는 우렁찬 나팔 소리와 같았다고 말한다.  경마장 연작 이후 발표한  소설 진술은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작품이라고 한다.

"진술"에는 철학교수이자 살인자인 화자 말고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어떤 인물의 목소리도 울려나오지 않고 오로지 철학교수 화자 단 한사람만 등장한다.
그 조건만 보면 무척 지루하고 재미없을 듯 하지만 실제 읽어보니 그렇지 않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철학교수의 단조로운 독백.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거짓말을 한다. 또한 그것을 뒤집는 언술로 왔다 갔다하지만 이 책은 묘한 슬픔이 있다.   이 책의 장소는 경찰서 취조실이고 철학교수를 신문하는 자리에 앉히고 화자(철학교수)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경청한다.

살인 사건이 있고, 범인은 긴급체포 된다.
죽은 자는 정신과 의사이고, 그를 죽인 자는 그의 매제 바로 소설의 화자 철학 교수다.
그는 진술을 통해 자신은 결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야기 한다.
모든 상황을 봤을때 그가 분명 범인이지만 그는 그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 부정의 가장 안쪽에는 아내의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
열일곱살난 소녀 제자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 기혼자.
소녀의 아버지와 오빠에게 혼쭐이나고 전처와의 이혼 소송도 패소한다.


참 기묘하다.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이었기에 그렇게 간절했을까?
지나친 정신적 충격은 사람을 자신만의 성에 가두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무섭고, 어떻게 보면 슬프고, 어떻게 보면 안타깝다.
그렇게 변해버린 철학교수의 모습이...

사랑은 변하는 것이고 변한 사랑에 칼부림도 나는 세상이지만
정신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는 그의 삶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는 모양이다.
있을때 잘해....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1.09.08. 신고 공감 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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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의 진술
"하일지의 진술" 내용보기
참으로 특색있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류는 또 처음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진술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문장을 이해하는데 버거움도 없고 말이다.    문단 문단간의 여백은 글의 흐름을 잘 타게 만들어준다.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일지의 진술" 내용보기

 참으로 특색있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류는 또 처음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진술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문장을 이해하는데 버거움도 없고 말이다.

 

 문단 문단간의 여백은

글의 흐름을 잘 타게 만들어준다.

 

 글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a*******g 2009.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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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술을 들어보자
"그의 진술을 들어보자" 내용보기
화자는 단 한명, 국립대 철학교수인 주인공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다. 10년전, 제자와 결혼한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왔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오게 된다. 처남의 살해혐의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지만, 조목조목 논리를 따져가며 얼토당토않은 오 해를 풀고자 내키지 않는 진술을 하게
"그의 진술을 들어보자" 내용보기
화자는 단 한명, 국립대 철학교수인 주인공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다. 10년전, 제자와 결혼한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주인공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왔다가 경찰에 의해 끌려오게 된다. 처남의 살해혐의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지만, 조목조목 논리를 따져가며 얼토당토않은 오 해를 풀고자 내키지 않는 진술을 하게된다. 그의 전처와의 관계, 외국유학 시절의 고달픔,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까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떻게 주인공이 이런 혐의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점점 진도가 나아갈수록 이 주인공의 진술이 어딘가 모른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같은 이야기를 쉴새없이 반복하며 다른사람과는 다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안에 갖혀 살고 있는 주인공의 진술은 결국 정신병자의 읊조림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8년전에 죽은 아내와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처남을 죽임으로서 자신의 혼란을 무마시키려 한 주인공의 정신상태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을 뿐인것이다.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물 흐르듯이 이어나가는 화법이다. 글 전체가 대화체로 되어 있어 이야기의 끊김없이 지속적인 호흡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팽팽한 긴장과 막판의 반전은 예기치못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얼마전 읽은 프랑스의 신예 작가의 '적의 화장법'이란 작품에서도 이러한 대화체식의 서술과 종국의 반전으로서 호평을 받은 바가 있지만, 이 작품에 비한다면 정말이지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선긋기같은 글이다. '경마장 가는 길'로 부터 접하게 된 하일지의 글은 그의 수업을 통해서, 또한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그의 역량에 대해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c*****1 2002.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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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고 있는 건 현실인가,환상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건 현실인가,환상인가..." 내용보기
가끔.. 정말 아주 가끔씩인데, 내가 있는 이곳, 현실에 정말 내가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때가 있다. 그런때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머리속이 정리가 안될때다. 현실과 그리고 머리속에서 창조해낸 세계가 뚜렷한 경계를 이루지 않는...그런 잠시동안의 '모호하고 불투명한 비경계의 현실'이 만약 당신 전 생애를 잠식한다면...? 여기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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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정말 아주 가끔씩인데, 내가 있는 이곳, 현실에 정말 내가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들때가 있다. 그런때는 여러가지 문제들로 머리속이 정리가 안될때다. 현실과 그리고 머리속에서 창조해낸 세계가 뚜렷한 경계를 이루지 않는...그런 잠시동안의 '모호하고 불투명한 비경계의 현실'이 만약 당신 전 생애를 잠식한다면...? 여기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작가가 자기의 눈을 통해 본 현실적 인생을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따분한 얘기를 초서에 꺼내는 것은 소설에 대한 개념적 정의에 대해 논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최근 내가 접한 하일지의 장편소설 <진술> 이 이러한 소설적인 '창조적 이야기'의 매력을 듬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개를 할까한다. 소설이란 그것이 픽션이라고는 해도 완전한 픽션을 구사하기란 참 어렵다.그것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경험을 토대로 백지위에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다보면 어느 한 부분에 있어서건 "아~그래 맞아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 라고 느껴지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경험을 접하게 된다. 하일지의 <진술>은 그러한 공감대는 적은 대신에 소설이 가지는 픽션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철학과 대학교수가 그의 아내와 여행을 간 제주도에서 처남을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자신은 상상도 못한 살인사건에 용의자로 검거되어 그때부터 자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술'을 하게 된다. 그 '진술'이 정말 자신(주인공)의 진실을 밝혀주는 역할을 할지, 못할지는 소설을 읽다보면 알게 될 일이지만 말이다. 소설이 가지는 기능은 첫째,인간성의 옹호와 둘째,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 즉,인간성 탐구이다. 하일지의 <진술>은 이러한 소설적 기능 중 '인간성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추고 한 인간의 내면적 심리묘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 독특한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가 단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난 이책을 단 두시간만에 독파했다.) 하일지의 소설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의 작가적 상상력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것이다. 또 한가지! 환상과 실재와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법하다.주인공의 말처럼..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과 환상과의 구별이 가능한 일인지.. 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그것들은 과연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 실제를 어떻게 증명 할 수 있는지..
f******s 2002.12.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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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모노드라마였다.
"한편의 모노드라마였다." 내용보기
아내의 죽음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한남자가 있다. 어리고 여리고 부드럽고 사랑스런 아내를 한순간 잃은 그 남자는 처남의 허상을 허상의 그가 죽이고 더 큰 행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살인과 부인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꿈일 뿐이었다. 그는 어둡고 힘들던 모든것을 부정하려한다. 오로지 부인과의 행복했던 순간과 추억과 그녀와의 관계만을 기억속에 넣고 싶어했고 유지하려
"한편의 모노드라마였다." 내용보기
아내의 죽음앞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한남자가 있다. 어리고 여리고 부드럽고 사랑스런 아내를 한순간 잃은 그 남자는 처남의 허상을 허상의 그가 죽이고 더 큰 행복을 기대하고 있다. 그에게는 살인과 부인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꿈일 뿐이었다. 그는 어둡고 힘들던 모든것을 부정하려한다. 오로지 부인과의 행복했던 순간과 추억과 그녀와의 관계만을 기억속에 넣고 싶어했고 유지하려 했기때문에 극단적인 정신분열에 이르게 된다. 처음엔 추리소설을 읽는듯 스릴있고 흥미진진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애틋하고 가슴이 아릿해진다. 마치 모노드라마 연극을 무대의 맨 앞켠에서 관람하고 있는듯한 생생함이 담겨져 있어 읽는이로 하여금 한줄이라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y***a 2002.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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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았다. 엽기, 공포 소설도 아닌데.
"소름이 돋았다. 엽기, 공포 소설도 아닌데." 내용보기
그의 진술을 듣다(읽다)보면 어느새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만 느끼는 감정이었을까. 죽은 환영과 8년이나 살았다는 사실을 내가 다른 독자들보다 좀더 늦게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흐르다니! 그 눈물은 뜨겁지도 차갑지고 않았다.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으니. 내 눈이 어딘가 안좋은가 보다 생각했다.)정말 나는 뒤를, 주위를
"소름이 돋았다. 엽기, 공포 소설도 아닌데." 내용보기
그의 진술을 듣다(읽다)보면 어느새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만 느끼는 감정이었을까. 죽은 환영과 8년이나 살았다는 사실을 내가 다른 독자들보다 좀더 늦게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흐르다니! 그 눈물은 뜨겁지도 차갑지고 않았다. 순식간에 볼을 타고 흘러내렸으니. 내 눈이 어딘가 안좋은가 보다 생각했다.)정말 나는 뒤를, 주위를 둘러보았다. (텅빈 사무실에 앉아 혼자 독서를 즐기고 있었으니까.) 이성적인 학문을 하는, 마흔 셋의 철학박사가 내뱉은 확신에 찬 음성과 거친 몸짓이 거짓이었다니! 내가 알고 있던 한 세계가 맥없이 폭삭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진술은 너무나 간결했고 솔직했고 능청스러웠는데.... 나는 배신당했다는 기분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좀 늦된 독자고, 작가의 의도를 금새 파악하지 못하는 독자고, 내용정리와 결론이 일사천리로 안되는 독자니까, 나의 당혹감이 얼마나 컸으랴! -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쉽게 책을 읽다가 포기하는 사람한테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바입니다. ^^ (아내가 열살이나 어린 고등학교 제자였다는데, 쉽게 책장을 덮진 않겠지....)그러나 작가후기에서, 작가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c*******5 2002.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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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홀로 남겨진 한 사내의 독백.
"방 안에 홀로 남겨진 한 사내의 독백." 내용보기
1. 한 사내가 있다. 취조실과 같은 방, 강한 조명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있다던 의 그레고리 잠자처럼, 이 사내는 눈을 뜨자 엉뚱한 곳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안다. 당혹스럽지만 당당한 어투로, 그는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그의 태도는 변화한다. 주위 사람이 있는지 조
"방 안에 홀로 남겨진 한 사내의 독백." 내용보기
1. 한 사내가 있다. 취조실과 같은 방, 강한 조명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있다던 <변신>의 그레고리 잠자처럼, 이 사내는 눈을 뜨자 엉뚱한 곳에 자신이 놓여있음을 안다. 당혹스럽지만 당당한 어투로, 그는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그의 태도는 변화한다. 주위 사람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 취조실에서, 그는 당당한 어투에서 주눅든 어투로, 논리정연한 문장에서 횡설수설하는 문장으로 자신의 말을 간신히 뱉어낸다. 질문 없는 답변으로 가득 찬 소설, 하일지의 <진술>은 그런 소설이다. 2.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넘긴다. 한 사내의 독백에 이렇게 귀를 기울이는 자기 자신이 이상하면서도,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계속 다음 장을 기다리는 것이다. 까뮈의 <전락>과 같은 독백체 문장이지만, 하일지의 <진술>은 까뮈의 소설에서 찾을 수 없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묻어난다. 하일지는 많은 인터뷰에서 '화행(話行)의 필연성'을 거론한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꼭 필요할 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하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언급했던 절제와 간결의 미덕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소설이 <진술>이다. 하일지가 말하는 '화행의 필연성'을, 오로지 답변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 풀어낸다. 장정일의 말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범인이었음을 소설이 끝나기 훨씬 전에 독자가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까닭은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처남을 '누가' 죽였는가, 가 아니라 '왜' 죽였는가 이기 때문이다. 하일지의 <화행의 '필연성'>은 여타 추리 소설이나 미스테리 소설이 초점을 맞추는 <누가>에서 벗어나, <왜>에 초점을 맞춘다. 3. 이 소설의 기본 바탕, 그리고 주인공에게 주어진 '병'은 서양의 정신학적 이론, 즉 정신 분열증과 병적 애도 반응, 그리고 동양의 생사일여, 몽매일여이다. 영혼은 둘로 나뉘고 생과 사는 겹친다. 서양의 <분리적 세계관>과 동양의 <합일적 세계관>이 겹친다. 분리와 합일의 결합은 주인공의 언술변화로 나타나고, 이러한 언술 변화는 독자에게 언어에 대한, 그리고 이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꿈과 현실은 어느덧 이 남자의 머릿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고, 그가 내뱉는 말들은 자폐적 커뮤니케이션이며, 따라서 심문자와 피심문자가 그의 머릿 속에 동시에 자리잡는다. 그러기에 진실을 밝힐 수록 자신을 옭아매는 외디푸스와 같이, 진술자는 스스로 자신이 범인이었음을 자백한다. 실상과 허상의 교묘한 착란은 <메멘토>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메멘토의 주인공의 기억이 불안정하기에 영화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관람객이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의 이러한 착란은 독자에게 소설에 대한 믿음을 뒤흔든다. 대다수의 소설의 경우, 그것이 1인칭이건 3인칭이건, 독자는 화자의 말을 전폭적으로 믿게 되고, 이 믿음이라는 전제 하에 소설은 구축된다. 독자는 화자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화자의 언술은 적어도 그 소설 내에서만큼은 진실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하일지의 <진술>은 이러한 전제를 확연히 무너뜨리고 독자의 그 믿음을 부순다. 그토록 정직해보이던 그의 말들에 전적인 믿음을 부여했던 독자들은 심문자에 의한 억압없이 이루어진 그의 언술 변화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화자의 언술에 대한 믿음, 소설의 기본 토대인 <믿음>은 허물어지고 의혹을 지닌 채 소설을 읽게된다. 언어와 이성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의심은, 그렇게 독자를 당혹시키고 동시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된다.
YES마니아 : 로얄 o***e 2002.03.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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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인 소설. 그리고 경마장 시리즈의 연장
"연극적인 소설. 그리고 경마장 시리즈의 연장" 내용보기
학부때 소설가 하일지의 경마장 시리즈를 처음 접하였다. 그때 느낌이 참 묘했었고 며칠전엔 그 기억을 되살려 그의 신작 "진술"이라는 책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그의 소설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든다. 부분부분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어 다른 것에 신경쓰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히치콕 영화를 보는 것처럼. 게
"연극적인 소설. 그리고 경마장 시리즈의 연장" 내용보기
학부때 소설가 하일지의 경마장 시리즈를 처음 접하였다. 그때 느낌이 참 묘했었고 며칠전엔 그 기억을 되살려 그의 신작 "진술"이라는 책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했다. 그의 소설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든다. 부분부분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되어 다른 것에 신경쓰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히치콕 영화를 보는 것처럼. 게다가 하루끼 類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매력이다. 왜그럴까? 아마도 그의 대부분 작품의 처음부분에 "죽음, 살인, 어디론가의 납치" 등등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그 이유와 과정을 캐묻는 추리소설형식 때문이 아닐까. 또한 재밌는 것은 그의 작품엔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이 있음에도 위의 묘한 분위기와 희석되고 또 그 표현이 적나라하여 독자로 하여금 romance의 환상에 빠지지 않게 한다. 대부부의 작가들이 그렇지만 하일지의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지식인. 그리고 까마득히 무료한 일상. 그것을 깨뜨리고 싶은 "충격적 사건, 예컨대 죽음"에 대한 환상. 이런것들이 버무려져 있는 것같다. 80년대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헛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주자였던 그.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은 왠지 사치스러워 보인다
m*****w 2001.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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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진술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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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은 살인사건 용의자의 하룻밤 동안의 진술일 뿐이다. 글로 옮겨지지 않는,그래서 미루어 짐작해야하는, 수사관의 질문에 대한 화자이자 주인공인 K대 철학교수의 진술을 빙자한 독백이다. 소설 초반부의 범행을 부인하는 조리있고 신빙성있는 진술은 범죄자와 경찰관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극적인 반전을 예고하는 듯 보여 흡사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를 연상케 했다. 꿈틀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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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은 살인사건 용의자의 하룻밤 동안의 진술일 뿐이다. 글로 옮겨지지 않는,그래서 미루어 짐작해야하는, 수사관의 질문에 대한 화자이자 주인공인 K대 철학교수의 진술을 빙자한 독백이다. 소설 초반부의 범행을 부인하는 조리있고 신빙성있는 진술은 범죄자와 경찰관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극적인 반전을 예고하는 듯 보여 흡사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를 연상케 했다. 꿈틀거리는 호기심과 막연한 기대로 눈동자까지 빨라졌다. 답변 형식의 독백으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의 묘미는 중반부의 '그래요. 사실을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한 진술은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라는 진술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한 진술은 모두 거짓이죠?'라는 질문을 미리 삼켜버리고서 한꺼번에 토해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상 그리 극적인 상황에서의 반전이 아니라 다소 허탈함을 주었지만 혼란스러움과 긴장감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혼란과 긴장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처음부터 심증을 굳힌,오로지 화자의 답변안에서만 존재하는, 수사관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충분히 사건의 내막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이미 그의 진술에서 신빙성은 색이 바래진다. 억지와 거짓의 연속이지만 증오와는 거리가 먼 연민이 느껴진다. 그렇게 진술은 계속된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결코 자백(시인)하지 않는다. 끝까지 부인한다. 하지만... (읽어보면 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영화 '장미의 이름'이 떠올랐다. 인간의 '웃음'이 신을 모독하는 천박한 행위라 여기고 살인을 저지르는 노수사와 '진술'의 주인공 K대 철학교수가 겹쳐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실한 신앙과 광적인 신앙이 백지 한 장 차이라면 역시 지고지순한 사랑도 그렇게 변질될 수 있을 것 같다.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 살아가는데 아무런 유익한 정보나 교양을 주지 못하고 따라서 그런 것을 구하려던 독자들은 크게 실망을 하게 될텐데...'라는 우려에 반은 동의한다. 유익한 정보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반은 동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하일지씨의 작품을 두 편 읽었다. 다른 한 편은 오래 전에 읽었던 작가의 처녀작인 '경마장 가는길'이다. 두 소설의 공통적인 면이 있다. 소설속의 주인공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에게 헌신하고 열렬히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또한 추측을 불허하는 난해한 '경마장'에 대한 언급이다. '진술'에서도 두 번에 걸쳐 언급되지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경마장의 오리나무는 또 뭘까? 재미있는 점은 경마장 가는길에서는 특별한 사건이나 묘사없이도 시간의 흐름이 자연스레 주인공의 파멸로 느껴졌었는데 '진술'에서는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를 넘나들며 거듭 거짓진술을 하지만 주인공의 시종일관된 범행 부인의 진술은 결국에 가면 자백(시인)의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들고 있던 아령으로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 지긋 지긋한 처남의 허상을 향하여 말입니다. 처남의 허상을 제거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만약 뒤를 돌아보면 그 허상은 다시 살아나 엉뚱한 말을 할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실제 내 처남이 죽었다니 하늘에 맹세코 그건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그건 다른 누군가가 한 짓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처남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중에 한 사람의 소행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처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니까요.
b******l 2000.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진실과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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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다. 굳이 어렵게 작품분석을 하지 않아도 그저 읽는 것 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살인용의자로 심문받는 한 대학교수. 교수는 시종 자신이 무슨 일로 잡혀왔는지 알 수 없다며 호텔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걱정한다. 실상 그의 아내는 8년전에 죽었으며 그가 체포된 죄목은 가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던 처남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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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다. 굳이 어렵게 작품분석을 하지 않아도 그저 읽는 것 만으로도 기쁨을 준다. 살인용의자로 심문받는 한 대학교수. 교수는 시종 자신이 무슨 일로 잡혀왔는지 알 수 없다며 호텔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걱정한다. 실상 그의 아내는 8년전에 죽었으며 그가 체포된 죄목은 가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던 처남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아내는 죽지 않았다. 언젠가 아내가 죽은 악몽을 꾼 적이 있을뿐 곧 다시 돌아와 늘 곁에서 함께 해주지 않았던가. 모든 현실은 그의 기억속에선 새롭게 재구성되고 그는 자신의 현실외엔 누구의 말에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자신은 처남을 살해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아내를 괴롭히던 처남의 허상을 없애려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처남은 누가 죽인 것일까. 이 사실을 알면 아내가 무척이나 슬퍼할텐데. 그러나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못보는 것인지...
m*****a 2001.08.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