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널리 알려진 세계 문학의 경우 소담의 'Bestseller worldbook' 시리즈를 즐겨 찾는 편이다. 그런데 우연히 서점에서 청목의 Steady books 시리즈가 눈에 띄었고, 대강 훑어보니 활자 크기가 크고 하단에 낱말풀이가 되어 있는 점이 신선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베스트셀러 월드북 시리즈의 죄와벌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왜 이렇게 오자, 탈자가 난무하는 건지 모르겠다. 제본 상태나 활자 크기는 맘에 들었는데 오자, 탈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그 점만 빼면, 표지디자인이 현란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고.. 전체적으로 그냥 무난했다. |
|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긴 하지만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았던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한 사회였다. 빈부의 차이도 극심하였고, 각종 부조리가 사회 전반에 나타났다. 작품의 주인공인 '라스꼴리니꼬프'는 가난한 사람들 중 하나로서, 당시의 러시아 사회와 같이 부조리가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정의와 부정의 개념을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많은 부조리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일종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느끼고 그에 분노하였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형편이 매우 어려워 하숙비 내기도 곤란할 정도였으니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분격은 두 사람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더욱 커졌다. 바로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소피아(소냐)'이다.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고리대금업은 매우 가혹하다. 당시의 사회가 매우 어려웠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것은 뭇 사람들의 비난과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 사람,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피아 세묘노브나'는, 알료나와는 대조적으로 남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아버지인 마르멜라도프는 역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어이없이 비극적 결말을 맞는 가련한 인물이지만, 그의 딸인 소피야는 자신을 희생시켜 가족을 수양하는, 불쌍하지만 정말로 장한 인물이다. 그러한 두 인물에 대해 알게 되며 그 자신 역시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라스꼴리니꼬프가 점점 더 우울해졌음은 당연하다. 동시에 알료나 이바노브나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생충과 같았던,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별다른 목적성 없이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돈 역시 하나의 목표 내지는 제 2의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알료나의 돈은 액수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묻어버렸지만 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그 자신이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살인 동기에는 우연히 듣게 된 알료나의 나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라스꼴리니꼬프가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을 보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커다란 죄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불안은 남들로부터 그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데서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모습과 그 부조리에 크게 분노를 느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만한 배짱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 그는 가족들, 즉 어머니 '뿔리헤리야'와 여동생 '두냐'와 다시 만나게 되며, 그들과 관련하여 '뾰뜨르 뻬뜨로비치(루진)'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 사람 모두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혼란, 부조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루진은 돈과 권력이라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열하고 치사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또,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계획적으로 부인을 살해하는, 그런 인물이다. 라스꼴리니꼬프의 가족과 소냐는 그 두 사람으로부터 농락을 당했다. 물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소냐에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이 소냐의 마음에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의 설득, '뽀르피리'의 방문 등으로 결국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고 시베리아에서 8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두 사람은 라스꼴리니꼬프와 소냐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숱한 사회경험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 우울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몸을 팔면서도 항상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굳게 살아가는 소냐를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가 소냐의 발 밑에 엎드려 소냐의 발에 키스했던 것, '전 인류의 고통 앞에 엎드렸다.'라고 말하던 것들은, 소냐의 영혼에 대한 감동과 연민, 그런 것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나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무뚝뚝하고 음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자신을 따르리라는 소냐에게 감화되어, 대중 앞에서 센나야 광장에 엎드려 '자신이 더럽힌 대지'에 입맞춘다. 그는 그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환희와 행복을 느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행복감을 느낀 것은, 그 눈물이 그의 내부에 응어리진 죄의식과 고통을 풀어주는, 일종의 정화작용을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데, 이는 군중의 조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명백한 죄의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사람을 죽인 것은 죄이지만, 그의 생각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도 잘 사는 사람은 없어져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자신은 그런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비뚤어져 있던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 앞에 눈물 흘리며 소냐의 참사랑을 느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다. 소냐는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대했으며, 다른 죄수들 모두가 소냐를 어머니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소냐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한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새로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부조리는 남아있다.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참된 '정의'의 의미를 한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이다. 소냐처럼 한 인간을 진실로 사랑해준다면, 그 사람이 참된 사랑과 선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진정으로 훌륭한 정의는 그렇게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
| 나는 평소엔 비소설을 주로 읽는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죄와 벌'을 인용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나이에 이런 고서를 읽어보지 못한 것이다. 어릴적부터 '죄와 벌'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과 도스또예프스키가 유명한 작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정말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책은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나를 7시간동안 책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긴장감과 고뇌가 적절히 섞이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기술은 역시 명작이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주인공의 고뇌와 심경변화가 내 가슴을 조리게 했다. 그리고 법과 도덕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사회 안에서 저지른 사건과 사회 밖에서 저지른 사건. 이 둘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영웅과 범죄자를 만드는 척도이다. 이런 도덕을 누가 평가할 것인가? 신이 하는가? 그러면 왜 인간은 인간을 평가하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서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
| 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역시 불후의 명작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전반적으로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해 탐구했다고 느껴지는데요, 위대한 작가의 모습이고, 우리가 본받아야할 모습이라고 느껴집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와 그에 따른 벌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무엇이 죄이고, 어떤 벌이 정당한가? 자신은 비범인으로서 처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우리가 비난만 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겠지만,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해 왔을 것 같네요... 정말 좋은 책은 책을 읽고 난 후에 생각하고 곱씹어서 고민하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돌아볼 수있게 하는 책...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은 정말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쉬웠던 점은 약간의 번역상의 오류와 오자들이었습니다. 물론 내용 이해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좀더 책에 대해 정성을 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작가 장정일 님은 말씀 하셨다. 30 대가 되도록 옆구리에 문학을 끼고 다니는 젊은이가 많은 사회는 안될 사회라고. 20대에 정말 무섭도록 훌륭한 고전들을 한 100여권 추려 읽고나서는 문학은 던져버려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시작했다. 불후의 문학 100권 읽기. 그러나 어떤 작품을 읽을지 아직 다 정하지는 못했다. 마침 동생방 책꽂이에 고전작품이 많이 잠자고있기로 닥치는대로 다뽑아 내 방에 쌓았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님의 죄와 벌을 우선 집어들고 읽은 후 내친김에 리뷰 쓰기까지 도전하려고 한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얼마나 많이 썼다가 지웠는지 모르겠다. 오랫만에 쓰는 글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부담이 참 컸다. 그것은 첫째, 고전이라고 하면 이미 그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들인데 그것에 대해 감히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있을까하는 점과 둘째, 리뷰의 수준이 예전 내가 학생때 끄적거린 독후감보다는 나아야 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결국 나는 부담감에 리뷰 쓰기를 포기했지만, 다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고야 말았다. 오늘 문득 공부를 하다가 이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가 계속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
참으로 긴 사설이었다. 아무튼 이제 진짜 리뷰를 시작하려 한다. 3일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고심 끝에 나는 , 죄와 벌, 제목에 이미 나와 있듯이 죄, 그리고 벌에 대한 여러 모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으로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하숙집에 살고 있다. 그나마도 형편이 나빠져 대학은 휴학중이다.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온종일 힘들게 일하고, 특히 여동생은 가정교사일을 하며 모욕적인 일을 참아내고 오빠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기꺼이 팔 각오가 되어있다. 그러나 이웃집 전당포를 운영하는 노파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쥐어짜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을 한 사람은 반대자를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어느날 노파의 머리에 도끼를 휘두르고 만다.
물론 라스콜리니코프의 행동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잘못 즉 죄이나,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노파의 행동은 죄인가? 선인가? 어떤 사람의 행동을 죄인가, 선인가 흑백논리로 판단하려 드는 것은 잘못이긴하나, 굳이 따지자면 노파의 행동은 분명 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파는 벌을 받지도 않고 기생충처럼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거..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인간은 물론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지만 어떤 행동을 죄라고 결정짓고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데 있어서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 테두리는 모든 경우에 있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며 허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생계형 범죄, 잘못된 증거로 죄를 뒤집어 쓴 사람, 죄를 짓고도 권력으로 무마시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 법을 악이용한 범죄들.. 그런 것들에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