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기 이탈리아 사람인 단테의 시집입니다. 단테 자신이 베르질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일종의 기행기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대서사시라길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었습니다만, 저자가 번역하면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산문체로 많이 변형을 해서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이런 번역자의 임의적인 형식 변형 때문에 원문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할 수 있겠지만, 번역서에서도 '지옥편'에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연옥편'에서는 안타까움이, '천국편'에서는 행복함과 기쁨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번역은 깔끔했습니다. 종교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던 중세 시대에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이 기독교적인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그 시대에는 종교에 좀더 귀의할 것을 촉구하는 종교 계몽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철저히 중세 기독교 사상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가 지옥 중에서도 깊숙한 지옥에 있다는 등의 지금의 인식과는 괴리된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면을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지옥이나 연옥, 천국을 묘사할 때의 저자의 상상력과 그 표현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정말 천국이나 지옥이 존재한다면 정말 그런 모습일 테지요. 다만 중세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조금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좀더 깊게 책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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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즉 2001년 여름, 학교에서 1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이 발표되고 세권을 택하여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이름난 책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곡'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이름만 듣고 접근은 해 본적이 없었는데 한번 읽고픈 충동이 저를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두 책과 더불어 이 작품을 읽어보려 했고, 그리하여 이곳에서 구매한 것입니다.
곡은 기독교의 권위가 하늘에 극에 달하던 시기인 중세때에 단테가 쓴 운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운문문학이 그렇듯이 상징적이고 함축적이어서 우리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러한 운문을 산문형태로 편집하여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원작의 느낌을 100% 재현해 낼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이해를 도와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무척이나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죄를 지었던 이들은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연옥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죄를 씻기위해 몸부림치고, 천국은 진정으로 성스러운 이들만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 천국을 동경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는 아름다운 광채와 성인들과 행복만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항상 꿈꾸던 그러한 세상입니다. 물론 기독교적인 관점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명작으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런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약 신곡이 시문학이라 난해하다 생각하여 접근을 꺼리시는 분들께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이 책은 원작을 소설형태로 편집하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천국에 오른 단테는 천체의 신비와 그 질서를 노래하며 그 오묘한 조화와 위대한 빛의 모습을 좀더 확실히 알기 위한 열망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온 우주를 남김없이 비춰주고 있으나 곳에 따라 빛이 더하기도 하고 덜할 수도 있음을 말하면서 지상의 소망이 이를 뒤따르면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한다고 실토한다. 단테는 그 신비를 깨닫게 된 것이 그의 지성, 즉 정신 안에 가장 값진 보물이 되어 간직될 수 있는 것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이 신비로운 모습을 노래할 수 있도록 뮤즈와 아폴로에게 도움을 빌었다. |
| 호메로스, 세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의 명작인 <신곡>은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한 것을 다룬 작품이다. 지옥편 33곡,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 전체서문 1곡, 모두 총 100곡으로 이루어진 이 장대한 시는 인간세상을 초월하여 신의 영역을 탐구한다. <신곡>은 단테가 죄 지은 자들이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 끝없이 고통받는 지옥과 정죄를 목적으로 하는 연옥과 하나님과 같이 있는 축복의 세계 천국을 두루 여행하고 돌아와 쓴 서사시이다. 처음 그가 지옥에 떨어졌을 때는 지식의 상징인 베르질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며, 천국으로 올라가는 그 곳에서는 신앙의 상징인 단테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와 함께 여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가 계신 곳을 보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때는 성 베르나르도의 인도를 받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 한 번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죄"라는 것에 대해 의문점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죄와 복은 엄연히 다르다. 죄는 복으로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값을 치러야만 그 죄는 사해지는 것이고, 그 복은 지은 만큼 복으로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들이 저지른 만행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격의 것들도 있었다. 특히나 4차 십자군은 아예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었다. 같은 기독교 국가를 약탈하고 곤경에 빠트린 그들이 어째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내가 또 다시 생각해 본 점은 각기 지옥과 연옥,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마호메트라고 알고 있는 무하마드 -이슬람교의 교조-는 8번째 지옥의 9번째 구덩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분열을 일으킨 자들이 그 죄값을 받고 있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씻어지지 않는 상흔을 보았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인 제 9옥에는 루치펠과 가롯 유다, 부르투스, 카시우스가 영원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유다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부르투스와 카시우스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이사르를 찔러 죽인 게 그렇게나 큰 죄였던가. 어떻게 생각하면 독재를 막기 위한 시도였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느낀 것은 일종의 모순이었다. 구원받은 자는 지옥에 있는 자에 대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박해자들이 구원받길 기도한다. 또한 단테가 지옥에 있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 곳에 올만한 죄를 지었으니 그 곳에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들을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에 목련존자 이야기가 생각났다. 목련존자는 불도를 닦으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모친이 지옥에서 아귀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니를 구하고자 지옥으로 내려간다. 그 곳에서 자신의 모친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게 되는데, 목련존자의 자비심과 고통 받던 이들이 참회한 결과였다. 스님들이 공양 후 밥그릇을 깨끗하게 하여 물을 땅에 붓는 이유도 지옥의 아귀들이 배가 고프니까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불편하고 화가 났던 것은 바로 "오타"였다. 어찌나 오타가 많은지 처음에는 내용 연결이 잘 안 되어서 고민했는데, 자세히 보니 의문문을 평서문으로 만들어 놓고, ~의가 되어야 하는데 '은, 는'을 붙여놓았다. 그 밖에도 기본적인 단어 오타가 많았다. 동, 서양의 차이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고전이라고 반드시 읽어보라는 작품들 중에 우리에게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나에게는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같은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신앙을 두텁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대로 된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신곡>신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