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현이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를 읽고 최성현이 좋아져서 산 책이다. 이 책은 일본에서 잘 알려진 스님들의 일화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처음 소개된 것들도 있다. 최성현은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힘을 준 이야기들을 가려 뽑았다고 한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접한 것들이리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듣게 되는 수많은 말들과 읽게 되는 수많은 글 속에서 우리는 문득 자신을 키우고 있는 글귀나 한 도막의 말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최성현의 마음 속에도 그런 글귀나 말들이 많을 것 같다. 여기에 모인 이야기들은 우리가 늘상 매달리는 소모적인 일들로부터 한번쯤 멀어져서 삶을 관조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주고, 그 속의 번민도 함께 어루만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최성현도 좋고 이 책도 좋다. 다만 책 표지가 너무 두껍다. 양장본은 좋지가 않다. 이렇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이런 표지가 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모르겠다. 재생지를 가지고 출판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많이 팔리기보다 두고두고 아끼면서 읽는 그런 글들이라면 우리는 더욱 포장보다는 내실에 더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술술 읽히면서도 '아하!' 무릎 치게 하는 글들이 많으니, 시간 내어 꼭 읽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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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친구 생일에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문학과 지성사)와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아름드리)를 선물했다. 모처럼 친구에게 편지라도 쓸까 하다 요즘 들어 아무리 주워 읽어도 속에서 영글어지는 묵직함이랄지, 목구멍을 구치는 전도하고 싶은 기운이랄지 하는 것이 손톱만큼도 생기지 않기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하고는 함께 밥을 먹었다. 친구는 밋밋한 책 속장이 아쉬웠던지 그러지 말고 한 마디라도, 아니면 이름이라도 써서 달라 하는데 도무지 쓸 말이 있어야지.
2. 그러다 <다섯 줌의 쌀>에서 읽어음직한 대목이 생각나 몇 자 덧붙여 끄적이고는 밥집을 서둘러 나왔다.
우리 모두 벌거숭이로 왔거늘
무엇이 부족
- 이큐 선사의 하이쿠 전문 p42
빈 몸으로 왔으니
욕심을 버릴만도한데...
버리지 못할 바에야
한 껏 잘 써야지.
3. 선승이나 선인들의 경지에 내 어찌 이를 수 있으랴. 나로선 내가 소화해낸 분량만큼만 살아야지.. 이 책 <다섯 줌의 쌀>에는 한 두번 읽었음직한 예화들이 자세한 실명과 함께 보여진다. 그리고 하이쿠가 불교의 선시와 통하는 구석을 맛보는 기쁨도 잠시 누려볼 수 있었다. 엮은이 말로는 지독히 외로운 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때, 갈 곳이 한 군데도 없는 날, 죽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누구에게나 힘든 때가 있다. 나는 내 인생의 힘든 시기를 이 책에 나오는 일본 선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이야기를 하나 둘 정리하며 넘겼다. 좋은 길동무였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어려울 때 친구가 되어주는 책은 절대로 흔치 않다.
고 하는데 부담 없이 읽으며, 읽다 말고 혼자 멍하니 허공을 응시해보기도 하고, 아님 혼자서 '푸핫!'하며 방바닥을 쳐보기도 하고, 아무튼 혼자 부담없이 읽기에 좋은 책 같다.
4. 나무를 심은 사람, 이란 출판사 '달라이라마'가 요즘처럼 주목받기 전, 그러니까 국내에 달라이라마가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에 류시화씨가 옮긴 <달라이라마 예수를 말하다>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땐 <티벳에서 보낸 3일>이라는 달라이라마의 책을 너무 어려워하던 차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 반가와 했던 기억이 난다.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그러면서도 잠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책들을 이 출판사를 통해 만나게 되니 즐겁다. [인상깊은구절] 어떤 사람이 이큐 선사를 찾아와 그림 한 폭을 내놓으며 말했다. "선사님. 이 그림에 글을 한 줄 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말을 그린 그림이었는데, 거기에 찬讚, 즉 그 그림을 기리는 글을 청하는 것이었다. 이큐 선사는 망설이지 않고 글을 지어 주었다. 말인 것 같다 그 사람은 그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고, 화가 잔뜩 나서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얼마 뒤 그 사람은 그 그림을 가지고 비구니 렌료 스님에게 갔다. 렌뇨는 이큐 선사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비구니 스님이다. 그는 스님에게 정중히 부탁하였다. "이 그림의 글을 어떻게 잘 고쳐 써주실 수 없겠습니까?" 렌뇨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이큐 스님의 찬 옆으로 써 내려갔다. 그런 것 같다 두 스님이 찬을 이어 읽으면, 말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그 사람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그림은 점차 유명해져 나중에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천하의 보물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