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이 출판된 후 당대 독일 대부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그 책. 베르테르의 복장을 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부녀를 사랑하는 것 심지어는 자살 방법까지 유행했다하니 그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하겠다. 덕분에 유명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의 자살에 있어 일종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故 김종현씨의 명복을 빈다. 그를 사랑했던 수만은 팬들과 동료 연예인들도 하루빨리 슬픔을 이겨낼 수 있길 바란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뉴스에서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베르테르는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국내 대기업 '롯데'라는 이름의 주인공이기도 한 샬로테 부프. 소설 속에서는 참 아름다운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롯데그룹은 아름다운 여인 같은 기업이 되고 싶었던 걸까. 왜 그 이름을 차용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랑은 비극적일 수록 아름다운 법.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고, 베르테르는 우정의 탈을 쓰고 로테의 옆자리를 사수한다. 그녀와 대화하고 교감하며 시간이 흐를 수록 빠져들어버린다. 정해진 사람이 있는 여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부도덕한 일인 법.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베르테르는 멀리 떠나지만 그 곳에서의 생활은 도통 만족스럽지 못하다. 결국 로테에게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올바른 길임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달리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돌아온 로테의 곁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 인간의 유한함, 사회의 억압에 대해 고찰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촉발될 행동들은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결국 세상에 등을 진다.
단순히 한 젊은이의 사랑극으로만 읽혀지지지는 않았다. 괴테가 공허한 형식과 외면적 도덕률을 타파하려는 문학주의를 가졌음에 바탕을 고려해보자면 답답했던 사회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던 의지가 벌이는 하나의 저항극이었다. 책 중에서 로테의 약혼자이자 베르트르와 대립되는 인물인 알베르트와의 설전에서 그 부분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둘은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한다. 알베르트는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주장을 펼친다. 자살은 이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절대 합리화 될 수 없으며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올바른 삶이라는 주장. 그러나 베르테르는 타인이 함부로 그들의 상황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된다고 반론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역설한다. 주인공 베르트르는 앞서 언급했듯 감정과 본질에 충실했고 괴테는 자신의 뜻을 주인공에 투영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사실 현실에서는 알베르트 같은 이들이 힘을 얻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이 이 땅위에 마천루를 건설할 수 있게 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작금의 평화를 영위할 수 있는 건 본능을 자제한 이성과 지성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르트르의 주장도 아예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베르트르는 자살한 이가 잘했네 잘못했네를 판단하는 건 의미없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잣대가 아닌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아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매우 합리적인 주장이다. 세상만사가 그렇겠지만 흑백논리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양 극을 적절히 배합하여 중심을 잡을 때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베르트르와 알베르트의 자살에 대한 논쟁을 보고있자니 문득 보도(報道)와 문학(文學)의 차이에 대한 어느 글이 떠올랐다. 인간행위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문학과 신문기사가 있는데 신문기사는 육하원칙에 의해 복잡다단한 사건을 알기 쉽게 서술하며 선과 악에 대한 선긋기에 치중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라는 건 사실 명확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며 글 몇 줄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문학이야 말로 실제 인간의 행위를 더 잘 설명해준다는 어느 책에서 봤던 글. 필사해놓았지만 출처를 적지 않아 어느 책에서 읽었는 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여하튼 괴테 또한 이 글을 보여주었다면 적극 동의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베르테르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말이 곧 괴테가 하고자 했던 말이며, 괴테가 이를 논문이나 에세이가 아닌 소설에 적어낸 것도 다 이를 위한 일이 아니었을까. 독자들이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하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나는 좋은 글을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 기자는 빠르고 정확한 사실 전달을 직업적 사명으로 삼는 줄로 안다. 문학의 입장에서 보도가 인간 행위를 이해하기에는 그리 좋은 글이 아닐 수는 있지만 기사라는 글이 지니는 나름의 의미가 또 있지 않을까. 정보 전달이라는 딱딱한 네 글자 말고도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나는 아직 어리고 미숙하여 스스로 생각해 내기에는 부족하지만 많은 경험이 쌓인 후에 내가 찾아내거나, 혹은 선배들이 남겨놓은 좋은 책이나 조언에서 언젠가 그 해답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꼽으라면 몇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포함된다고들 하는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사실적인 풍경묘사나 감정을 나타내는 문장들이 얼마나 훌륭한 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여 원서를 읽었다면 또 모를까 번역본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의 아름다움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다. 그러나 이 소설이 쓰여졌던 당대의 문학적 기조와 괴테가 지녔던 문학적 철학, 그리고 그 고전이 지금의 나에게 제시해준 여러 생각거리들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자살 같은 걸 대체 왜 하는거야?"라는 생각에 어느정도 동의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베르테르가 해준 그 말, 그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보려 노력해야한다는 그 말이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얼마 전 갑작스레 스스로 세상을 떠난 그 비운의 아티스트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죽음에 누가 원인이고 잘못했고 잘했고를 따지는 것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 전에 그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같은 사회에서 살아갔던 사람들로서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