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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0년 후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화 되었을까?현재 국민들이 꿈꾸고 있는 보편적 복지,차별없는 사회,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그리고 에너지 강국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100년 전 이 땅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지금 이 나라가 어떤 나라였기를 꿈꾸셨을까? 이 한권의 책으로 이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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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최인석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1953년생이며 이번이 열두번째 소설이라고 하니 이 부분만 보더라도 검증이 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소설을 처음 읽는 거지만 사회문제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이 소설은 아주 적당한 책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105년 미래의 대한민국이다. 물론 나는 그 전에 죽어 사라진 뒤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이다. 우선 2100년에는 어떤 세계가 되어 있을 것인지는 많은 미래 학자들의 예측이 난무하다. 책으로도 많이 나와 주기별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최인석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바로 사람이었다. 그 배경을 현실에서 미래로 옮겨갔을 뿐이다. 사는 모습은 사람이기에 비슷하다. 단, 우리의 환경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상함과 아픔, 상실, 인간성은 지금과 비교해도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이 책은 소설이기에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녹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미래에 있을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더불어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성이 어떻게 변해 갈 것이며 우리의 주변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삶이라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은 더더욱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고 사회적 동물이기에 몸이 죽지 않는 한 이 세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속에는 몇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각 나름의 개성과 특성들을 보여준다.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느 한 인물을 좇아갈 때 어지러울 필요가 없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가 사는 방법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소설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이름들은 이렇다. 서두에 시작하는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ss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다. 지니의 세계관은 건조하고 기계적이라는 문장으로 지니가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 이런 소개로 인해 지니가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해선 안되겠다.왜냐하면 세상이 지니를 침묵의 인간으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화물 배달기사 '제임스'와 '멜라니' 사실 멜라니가 나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나는 한때 이 세상을 원망하고 부숴버리고 싶은 복수의 화신 같은 마음이 있었던 적이 있다. 가진 자들에 대해 나는 가질 수 없는 어떤 분노가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멜라니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물론 멜라니는 여자인듯 싶지만 성별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리고 간호사 '에스더' 사실 에스더도 내 모습의 일부분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 때 종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말을 과장해석하면 안되겠다. 종교는 세상이 점점 12시를 향하여 갈수록 필요한 최선의 인간안전장치이다. 종교의 긍정성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게 만드는 브레이크 역활을 한다. 그러나 종교를 중심으로 인간의 문화생활과 이성적인 부분을 제외시키고 과도하게 몰입하면 종교는 언제든지 타락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능들을 상실시켜 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뿐 아니라 미래에도 종교를 우상화 하면 모든 사람을 기계적으로,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저자가 만들어 낸 세계는 지금처럼 남녀가 사랑을 한다. 노동을 하고, 지금처럼 서민들이 탄압을 받는다. 가진 자들이 활개를 친다. 이것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문제들이다. 또한 인간들의 실패작이다. 우리들은 미래를 대비하여 질서있는 제도를 통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여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면 세계는 충분히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을 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 낸 소설의 배경은 이러한 노력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암울한 소식들 뿐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은 울트라 에너지 돔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비춰준다. 바로 가진자들의 행태다. 2014년 현재 대한민국은 정부가 대기업과 부자들 감세해주면서 서민들에겐 과도한 세금을 부여한다. 마치 조용히 자고 있는 사람 피를 모기가 쪽쪽 빨아먹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대한민국도 지금처럼 개한민국이 될 가능성을 넌지시 시사해준다. 그런 환경속에서 지니와 제임스는 삶을 살아가는 전투속에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세상은 그렇게 또 돌고 돌고 힘없고 빽없는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암시를 준다. 그럼에도 저자는 지니와 제임스를 통해 삶의 희망을 제시해 준다. 바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인간다움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비록 작지만 이런 공간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금 2014년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고한다. 여기에 귀를 귀울이는 사람들은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신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나갈 것이요. 그렇지 않은자는 2014년이나 2105년이나 여전히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지 않는 부류들로 무한경쟁속에서 서로 물고 뜯게 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가진 자들은 뒤에서 서민들이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서민들이 피해를 받고 그 피해 또한 서민들 스스로 원인을 자처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로 우리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품으며 나아가자고 외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해석과 저자의 해석이 다르겠지만 소설을 보는 것은 독자이기에 다양한 관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인간이 돈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그 가치를 모두가 받들어 더불어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부터 미래의 희망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주기 위해서라도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작은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소설을 통해 부디 이러한 생각들과 노력들이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공동체 중심으로 곳곳에 많은 무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를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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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 . 하지만 우리사회 현실은 중세 시대의 삶과 흡사하다.
돈 많은 권력자가 사회를 통제하고 인간의 권리 조차도 통제하는 삶,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삶이 그 시대를 대변 한다. 30대 그룹의 정규직은 100명 중 1명일 정도로 취업난이 심하며 일자리 창출 이라는 이유로 인턴을 대거 모집해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사회 물론 정규직을 미끼로 암묵적으로 압박하는 사회다.
정부도 통제 불능 상태가 된지 오래 되어 언제 부터 잘못 되었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신경이 마비가 되어 있다. 소수의견은 무시 되는 지금의 사회는 창조 경제를 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암담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자회사를 만들어 인간을 통제하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 이러한 디스토피아는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미래를 진지하게 논하려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쌍방의 시점에서 언급해야 한다.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일만하기만 하면 되는 삶?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인생은 죽음보다도 못한 우리의 삶이다. 인간의 삶은 종교도 정부도 사회구성원도 막을수 없는 인간의 자기의지라 하겠다.
(네이버 출처 두산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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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 ![]() ![]() 이렇게 맨 앞에 이육사 시의 한귀절을 쓰여진 소설...
이 소설의 제목이 사뭇 의미심장하다고는 느꼈는데...그런 부분에서 아~~~하고 느끼게 된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후의 미래이야기를 하고 지금으로부터 약 100전의 시로 전해지는 것... 두 남녀주인공 지니,차지연과 제임스,윤재선의 삶은 현대의 우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별만 다를바를 모를 정도이다. 역사를 배우며 지금 무지 발전한듯 한데 그래도 과거가 현재의 거울이듯 미래역시 현재의 거울이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들이 문제들로 있는 비정규직문제는 미래에서는 더욱 답답함을 보여준것 같다. 결국에는 대기업쯤으로 생각되는 그 형태의 SS울트라돔은 국가보다 더 강해보여서 그 권력은 아마 지금의 부로 축척된 대기업들이 재벌들이 장악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이 되고 지금도 언론들이나 국가권력에도 힘을 발휘하는 대기업들이 어쩜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은 더 강해진다.마치 고려시대 호족이나 유럽봉건시대의 영주같다고나 할까?참 비슷하다. 두 주인공이 찾은 서해안의 사지는 오히려 희망으로 느껴지는 것은 요즘 귀촌하는 사람들과도 비교되고 지식층이나 도시생활만한 어느 젋은 부부가 시골깊은곳으로 들어가 문명의 삶보다 자연속에서 적응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이유와도 닮아있는 것 같다. 현재의 우리 삶이 보여주는 것을 미래에도 아님 더 그런 갈망을 가지는 것은 밝은 미래가 앞으로 펼쳐져 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육사의 시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소설을 읽다 만나는 미래속의 아픈 미래때문일것이다. 희망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그런데 희망을 바라는 마음이 막막한 것이다. 식민지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 시가 어쩜 이시대를 사는 우리같은 개미들에게 어울리게 다가오고 미래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과 이렇게 매치되는 것은 참 서글프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희망이 좀 존재해 주면 안될까? 삶이 주는 기쁨을 조금은 누릴 권리도 행복해질 권리도 있으니까...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의미있는 삶을 꾸리고 싶은 보통의 사람의 바람이 생긴다. 현실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못하면 어쩜 소설처럼만도 못할까봐 겁이 난다...물론 그때 난 세상에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것이리라... 소설 <강철무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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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무지개]90년 후 미래한국의 풍경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이 책은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인석의 12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미 중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저자이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
소설은 2105년 미래의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앞으로 90년 후 근미래사회의 한국이다. 비무장지대를 오갈 수 있고 북한을 지나 중국과의 국경을 넘나든다는 설정이 통일보다는 분단의 고착화를 보여주고 사회는 더 정교하게 기계화되고 시스템화된 모습이다. 효율화라는 가치 속에 인간성은 더욱 소멸되고 기계성이 사회를 장악한 모습이다. 국가 기능은 축소되고 사기업이 득세하면서 더욱 탐욕스러워진 세상에서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라는 단어조차 무색해진 세계다.
선택된 자들만 살아가는 SS울트라 에너지돔은 의식주, 교육, 직업, 의료, 세금도 모두 무상인 환상적인 집합거주지구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사람들은 늘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어디에도 갈만한 곳, 숨을 만한 곳은 없을 정도로 모든 기록이 코드화 되어 있다.
건조하고 기계적인 세계인 SS 울트라마켓 계산원인 지니(차지연)는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의 비정규직인 재선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폐허가 된 서해안을 찾는다.
거대 기업인 SS 울트라마켓은 계산에 오류가 생기면 교정되기까지 판매장의 모든 직원이 퇴근을 못하는 시스템인데다 책임자가 차액을 물거나 작업카드를 빼앗기고 해고당하는 곳이다. 계산대의 지연은 늘 기계적인 말만 반복하는 기계 인간 같은 자신의 모습, 높은 물가에 비해 턱 없이 낮은 보수로 일하는 것에 점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일인용의 무비베드에서 규칙적으로 잠을 청해야하는 SS울트라돔은 점점 신물이 나고 남자와의 연애도 늘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마치 감정의 뇌가 제거된 인간 같다.
한편 재선은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의 비정규직이다. 그의 한 달짜리 직업카드는 늘 고용불안을 가져온다. 일회용의 폐기용 노동자로서의 삶이 끝나고 나서 카드를 불법 사용하게 되면 테러리스트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직원을 소모적인 부품으로 대하는 기업 시스템이다. 모든 시스템이 너무나 잘 짜여 있기에 쉽게 대항하지 못하는 기업 위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서해안의 폐허는 중국 핵폐기물을 실은 중국 화물선 인줘호의 공해상에서의 침몰로 서해가 죽음의 바다가 됐기 때문이다. 출입금지가 된 서해안은 유령의 땅이 되고, 둘 만의 사랑을 위해 탈출해온 곳이지만 결국엔 붙잡히게 되고…….
회장인 한창수의 수술을 위해 날아간 멕시코시티에선 미모의 여간호사인 아이리스가 실종된다. 그녀가 실종된 지 몇 년이 지나자 아이리스의 애인이라는 제임스가 나타나 그녀를 찾게 되고 결국 아이리스는 테러리스트가 되어 나타나는데…….
무당의 딸 영희는 꼬임에 넘어가 노숙자 신세에서 마릴린이라는 가명으로 매춘을 하게 된다. 이후 탈출에 성공하면서 다시 노숙자가 되고, 끼니를 해결하기위해 찾아간 밥차를 통해 기독 단체에 들어가면서 나오미로 개명을 한다.
북한의 중강진까지 배달한 뒤 작업 지시를 받고 베이징으로 가는 모습에서 동북아에서 휴전선이 무너지고 국경선이 개방되는 긍정의 모습은 있다. 하지만 민영화로 인한 거대 기업의 출현은 개발과 소비, 에너지돔과 에너지돔과의 세계적인 네트워크화, 국가조차 네트워크 속으로 합류하거나 거대기업이 국가를 사버리는 형국을 보며 기업인의 탐욕을 꼬집고 있다.
공익이 없는 기업의 문제, 일회용의 폐기용 노동자이자 소모적인 일꾼으로 밥벌이에 나서야하는 비정규직의 세분화, 모든 인간과 사물의 코드화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체제, 초거대기업의 횡포와 직업카드가 없으면 테러리스트로 지정되는 폐쇄적인 사회의 모습에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그래도 자유의지를 찾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사회시스템을 거부하고 탈출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90년 후 미래한국의 풍경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대부분의 미래소설처럼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한 줄기 희망을 찾고 있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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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문학에서 SF소설, 특히나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책들이 많이 발간되어 SF소설 장르를 좋아하는 내게는 참 좋은 일이다. 80~90대에 이르는 한 때에서 일본에서 이런 만화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아키라가 가장 대표적이다. 헐리우드도 마찬가지여서 명작인 블레이드 러너가 일본의 공각기동대에 영향을 줬고 그 영향이 다시 할리우드로 넘어가 제5원소, 매트릭스 등에 영향을 줬다.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소설적인 재미라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지 모른다. 필립 K딕 전집을 사지 못한 것이 한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워낙 유명하니 도서관에도 다 비치되어 있으니까 뭐.
이 작품은 거의 백년뒤인 2105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태 여러많은 SF소설들에서 나온 비슷한 설정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무대가 한국인 것이 재밌었다. 물론 인물들의 이름이 외국이름이 많이 쓰인 것이 좀 불만이긴 했다. K나 M이라든지 이름의 머릿글자로 한국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편도 많긴 하지만 한국 소설은 한국 소설답게 한국이름으로 된 인물들의 설정을 개인적으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SF소설은 화당무계한 설정과 공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그저 장르의 특화된 설정일 뿐이지 작가들이 인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내는 것은 현대의 사회상이고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 한다. 이 작품도 역시 백여년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사회의 톱니바퀴로 생활하는 소모품인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산업혁명 이후로 너무나 보편화되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어 버린 것도 우리가 맞닿은 현실이지 않은가.
책에서 나오는 울트라돔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고 현실의 공산주의는 붕괴되었지만, 공산주의의 참 뜻은 분명 현실의 왜곡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 어찌 잘못이겠느냐만은, 현실은 소수의 독재자들만이 다수의 민중들을 탄압하는데 그치지 않았으니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나름 건재하지만.
기계화되고 조직화되 조직의 톱니바퀴 생활을 영위하는 주인공들은 억압된 곳을 떠나 밝은 미래를 꿈꾼다. 허나 환경파괴라든지 자본주의의 모순과 정치적인 문제를 쏟아내는 이 작품은 현실을 마주하고 비판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폐해가 있었듯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소설은 소설적 재미는 충만한만큼 밝은 미래가 오기를 꿈꿔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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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현재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막장으로 치닫는 자본의 얼굴에 이념도 혁명도 철지난 남루한 한 벌의 옷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인석 작가는 강철 무지개라는 희망의 빛이 절망에서 생겼다는 전언과 함께 봄이 시작된다는 희망을 겹쳐 놓음으로 굳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읽지 않더라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강렬한 메세지를 작품에 녹여 놓았다. 인간성의 상실과 자본의 속성은 사랑과 테러로 결말을 맺지만 그의 작품이 전하는 단 하나의 희망은 그래도 인간이 먼저라는 사람이 먼저라는 절망에서 건져올린 한마디 말이 아닐까. 아담의 존재가 어린아이라거나 아이리스의 원형이 성모 마리아라거나 안영희의 고난이 멸시와 천대속에서 생존을 구하는 민중의 다름 이름이거나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보다 중요한것은 지난 80년대를 거친 의식의 끝머리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현재와 미래로 상상하는 디스토피아로 그려냄으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그 원형을 파헤치려는 작가의 수고를 마다않는 진정성에 있지 않을까.
꿈이 없는 자는 살아있을지라도 노래를 듣지 않는다. 그가 부르는 강철 무지개는 겨울이 빚어낸 우리들의 모습이면서 왜 우리들의 꿈이 희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당연한 물음일 것이다.
강철 무지개는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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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불안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미래 사회를 그린 소설이나 영화들을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아니 안타깝게도 그 작품들 속 미래 사회는 매우 암울하기만 하다. 세계는 거듭 발전을 해왔고, 앞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해 갈 것임에 틀림없음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머나먼 미래에는 왜 '희망'이란 것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바로 이 소설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 사회의 가장 큰 축은 'SS 울트라'라는 대기업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아마 그 기업을 떠올렸겠지. SS를 비롯한 몇개의 대기업은 에너지 돔이란 거대한 집합 거주지구를 구축하여 모든 생활을 그 안에서 영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모든 것을 책임진다. 하지만, 그 거대한 괴물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인공의 거대한 자본 속에 인간들을 가두고 주인공들은 소비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소비되고 만다. (그들에게 허용된 삶의 방식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도, 삶도 부정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이 없는 삶, 이를테면 캄캄한 삶, 삶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삶을 버려야만, 그들 스스로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아슬아슬 생존이라는 밧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런 사회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네명의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다. ss울트라마켓 계산원인 지연(지니),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에서 비정규직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재선(제임스), 재선의 보조로 그날 하루만 하산까지 화물을 배달해야하는 의문의 여인 혹은 사내 안영희(멜라니), 간호사 아이리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하지만 소비되고 소비되는 생존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 네 인물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들의 복잡하고 아픈 관계들이 드러난다. 이런 점은 살짝 추리소설적 요소가 드러나기도 하여 가독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찌하여 미래를 이야기하는 여타 소설이나 영화들은 미래를 전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그려놓는가? 답은 간단다하. 미래를 예측하는 척도는 과거, 그리고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우 씁쓸하게도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이 시점이 너무도 암울하기에 이런 시점에서 예측해보는 미래 역시 한없이 암울하기만 한 것이다.
이 책의 띠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괴물같은 세계, 2105년의 대한민국.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다." 이 문구 중 괴물같은 세계, 생생한 디스토피아를 그린다는 확실한 사실이지만 '2105년의 대한민국'이란 문구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2105년, 지금으로부터 90년후의 대한민국이라니! 작가는 실로 엄청난 뻥쟁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절실히, 그리고 매우 씁쓸하고도 아프게 깨달았으리라,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얘기하고 있단 것을.
이육사 시인은 절정이란 시 말미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했다. 최인석 작가 또한 이 소설의 제목을 여기서 따왔다. 책의 제목은 책의 주제와 직결된다. 책 속 미래(...라고 쓰고 현재라고 읽어야 하리라.)는 춥디 추운 '겨울'이고 '강철'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비참함 속에서 무지개(희망 혹은 바꿔나가려는 의지)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아마 2105년까지 살긴 힘들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 이 소설속과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의 후손들이 이 책을 읽고 비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유토피아의 그때 이 소설은 그저 '허구'로만 남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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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묵직한 우리 소설 한 권을 읽었다. 22세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은 바로 현실의 문제들이다. 단지 그 문제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부분에서 이런 미래가 펼쳐질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암울한 미래를 다룬 디스토피아 sf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sf적인 상상력은 기존 장르 소설의 그것을 결코 넘지 못한다. 지금보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기술 발전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SS 울트라마트 계산직원 지니, 지연의 일상을 단단하면서 견고한 문체로 보여준다. 기계적인 삶을 문장의 리듬에 맞춰 보여주는 도입부는 이 소설 최고의 대목이다. 반복되는 용어와 이어지는 작업들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낸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덕분에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조금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의 불안정한 삶이 소모적인 일회성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 시작은 같은 회사의 상사인 브라운이다. 그가 보여준 카드의 위력은 그녀를 사로잡고, 하나의 반복적인 규칙이 된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난다. 제임스, 재선이다. 그도 역시 계약직 택배기사다.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하남 출장소 소장 백스터가 등장하여 재선이 일하는 곳의 풍경을 보여준다. 회사 작업카드를 불법 사용한 외국 노동자를 쫓아내는 장면에서 이 세계의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이다. 계약직 중에서는 일회성 계약직도 있다. 멜라니, 안영희가 바로 그렇다. 이 둘이 함께 낡은 트럭을 타고 러시아까지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그들은 떠났고, 회사의 말단 관리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나쁜 기억이 있다, 그것은 멕시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장 한창수의 짐꾼으로 갔다가 생긴 일이다.
유기홍 박사와 한창수 회장의 만남이 나온다. 이 둘은 한 회장의 간 이식 때문에 하나로 묶였다. 그런데 이 간 이식이 불법으로 멕시코 소년 아담의 간을 옮긴 것이다. 몇 년 동안 문제없이 잘 살았는데 갑자기 이상이 생겼다. 건강검진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술집에 멕시코에 함께 간 사람들이 모인다. 이 일을 주선한 인물은 강태기 사장이다. 백스터와 더스틴은 단순한 짐꾼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아이리스다. 그녀의 실종은 이 소설의 구성을 미스터리 물로 만드는 큰 역할을 한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남자 친구의 존재가 이들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멜라니, 안영희, 마릴린, 프랭크, 나오미는 모두 같은 인물이다. 안영희로 태어나서 마릴린, 나오미, 프랭크, 멜라니 등의 삶을 살아왔다. 이 이름들은 한때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 배고프고 굶던 시절 도움인 줄 알고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다. 제리도, 에스더도. 제리는 열한 살 그녀를 매춘으로 몰았고, 에스더는 근본주의 기독교 선교단체의 군인으로 자라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에스더가 아이리스다. 그녀는 나오미와 한때 연인처럼 보낸 적이 있다. 에스더는 다른 이유로 단체에서 쫓겨났고, 먼 훗날 다른 이름은 둘은 다시 만난다. 이 둘은 강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아이리스가 죽었을 때 프랭크는 그것을 느낀다.
각 등장인물이 엮이고 섞이면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든다. 지연과 재선은 통제된 세상을 벗어나서 살고자 했지만 중일전쟁으로 자신들만의 터전에 쫓겨났고, 지연은 달아나 에너지돔이란 곳에서 산다. 재선은 그녀를 늘 찾고 있고, 지금은 멜라니와 함께 배송을 한다. 하루살이 같은 삶을 유지하는 노동자의 일상을 그가 보여준다. 한창수 회장과 함께 간 그의 부하 직원들이 멕시코에서 겪은 경험들은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 중요한 사건에 연결된 부분을 제외하면 불필요하게 분량이 많다. 이렇게 각자의 삶이 뒤섞인다. 시간도 뒤섞인다. 이 장치가 아이리스의 실종과 그녀의 애인이 누굴까 하는 의문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이 거대한 디스토피아 미래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자 장치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읽기는 조금 무겁다. 보통의 sf소설을 생각하고 읽으면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다. 노작가가 바라본 한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이 설정이 하나의 가정이라고 해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과 미래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암울한 미래 속에서도 사랑은 존재한다. 이 사랑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결과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엄청난 일로 발전한다. 발전과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어쩌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재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