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활동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는 만들 수 있다 p.377 나의 삶에 철학이 지배하던 20대가 지나고 삶에 순응하며 잔잔한 미래를 꿈꾸며 40대의 삶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때의 철학을 배우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작가의 마지막 글 처럼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는 말이 가슴이 남는다. 과거를 읽음으로써 현재를 여는 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근대 철학자들의 삶과 글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는 눈을 여는 순간 우리는 지금의 삶을 더 높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카이로스의 빛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추천작 [카이로스 극장], 과거의 철학자들을 통해 현 시대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카이로스극장 #고명섭 #도올김용옥추천 #철학도서추천 #정치철학도서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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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오랫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카이로스 극장>,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우리가 함께 겪어낸 격동의 시간을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광장까지 종횡무진하며 읽어내는 하나의 장대한 사유였다. 플라톤과 윤석열을, 맥베스와 내란 세력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검찰 권력을 같은 무대 위에 세워놓고 대화하게 만드는 이 지적 모험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를 통과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저자가 윤석열 정부 초기에 인용한 플라톤의 <정치가> 비유는 섬뜩할 정도로 예언적이었다. "조타수와 선원들의 무능으로 배가 침몰하듯, 통치술을 모르는 자들의 무능으로 나라가 몰락한다"는 경고는 그저 고전의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목도한 현실 그 자체였다. 검찰 권력이라는 좁은 경험만을 가진 이가 국가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잡았을 때, 우리는 정말로 그 배가 춤을 추며 난파 직전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국가>에 등장하는 사이비 선원들의 모습이었다. 선주인 민중의 눈을 가리고 권력을 탈취한 뒤 공동체의 재산을 탕진하는 선원들. 이들은 진정한 항해술을 가진 이를 '쓸데없이 하늘만 쳐다보는 몽상가'라며 조롱한다. 지난 3년 반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역사의식이, 민주주의의 원칙이 얼마나 철저히 조롱당했는가. '쓸모'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가 얼마나 쉽게 폄하되었는가.... 그러나 플라톤의 비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조타수는 "별과 계절과 바람을 관찰하며" 항해한다. 즉, 즉각적인 이익이나 권력이 아니라 더 큰 질서와 원리를 이해하는 자만이 배를 안전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배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적 인기나 권력 투쟁이 아니라, 정의와 공익이라는 별을 바라보며 항해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겪은 위기는 바로 그런 조타수의 부재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책에서 가장 깊이 각인된 부분은 법과 정의에 대한 성찰이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은 욕구 없는 지성"이라는 정의와 헤르메스 신화를 교차시키며, 법을 다루는 이들의 타락이 초래하는 위험을 경고한다. 헤르메스는 해석과 통역의 신이지만 동시에 은폐와 왜곡, 속임수의 신이기도 하다. 법 해석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가진 이 양면성은, 그것을 다루는 이들의 도덕성에 따라 정의의 도구가 될 수도, 불의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바로 후자였다. 검찰과 사법부가 "정신 없는 욕구"에 사로잡혀 법을 정적 제거의 도구로 전락시킬 때, 법치는 이름뿐이고 실상은 무법 상태가 된다. 있는 죄는 묻고 없는 죄는 만들어내며, 권력의 비호를 받는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저항하는 자에게는 가혹한 이중 잣대. 이것이 우리가 경험한 '헤르메스 동굴'의 어둠이었다. 특히 내란이라는 명백한 헌정 파괴 행위 앞에서조차 법기술자들이 온갖 해석과 절차를 동원해 책임자들을 비호하려 할 때,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분노를 넘어선 깊은 배신감이다.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가 흔들린다. 아테네가 기원전 461년 에피알데스의 개혁을 통해 소수 특권층의 사법 독점을 깨고 시민 배심원 제도를 도입한 것은, 바로 이런 신뢰 붕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법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서로를 봐주는 담합의 도구가 될 때, 시민들은 직접 정의를 실현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검찰 권력의 방종과 사법부의 편향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특정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법이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의 근본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테네의 사법 민주화가 보여주듯,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공화국 정신의 핵심이다.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것도 결국 이것 아니었던가. 저자는 언어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 모든 공동체는 언어 공동체 " 라는 그의 진단은 명료하다. 언어가 공동체의 토대이고 혈관이라면, 그 언어의 질이 곧 공동체의 질을 결정한다. 연민과 이성에 기반한 언어는 공동체를 높이지만, 탐욕과 기만의 언어는 공동체를 갉아먹는다.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은 정치 언어의 극심한 타락이었다. 내란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 포장하고, 헌정 파괴를 '구국의 결단'이라 미화하는 언어의 전도. 이런 왜곡된 언어는 현실을 잘못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에게, 언어의 왜곡은 곧 사유의 왜곡이고 현실 인식의 왜곡이다. 오웰이<1984>에서 경고한 '신어(newspeak)'의 공포가 바로 이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타락한 언어를 전파하는 미디어의 역할이다.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 거짓과 왜곡을 확산시킬 때, 시민들은 월터 리프먼이 말한 ’의사 환경(pseudo-environment)' 속에 갇힌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실제 현실이 아니라 그림자만을 보며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일부 언론과 유튜브 채널들이 만들어낸 평행 현실 속에서, 어떤 이들은 내란을 민주주의 수호로, 범죄자를 애국자로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언어는 회복될 수 있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탄핵하라", "민주주의를 지켜라"는 구호들은 타락한 정치 언어에 맞서 본래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언어 투쟁이었다. 왜곡된 언어를 바로잡고, 사물을 제 이름으로 부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막스 베버의 구분을 빌려 저자는 '권력정치'와 '윤리정치'를 대비시킨다. 권력정치는 권력의 획득과 향유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정치다. 공익이나 이념이 아니라 권력이 주는 위세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다. 베버는 이런 권력정치인들이 결국 "내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보고, 잘난 체하고 우쭐대지만 실상 속이 텅 빈 제스처의 이면에 어떤 허약함과 무력함이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정확히 이런 패턴을 따랐다. 검찰 권력을 등에 업고 집권했지만, 실제로는 국가를 이끌 비전도 능력도 없었던 권력정치의 전형. 모든 비판을 억압하고 사적 이익을 챙기다가 내란이라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결국 시민의 저항 앞에 무너졌다. 맥베스가 피로 왕관을 찬탈했지만 불안에 떨다 폭군이 되고 반란을 자초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윤리정치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통합한다. 옳다고 믿는 원칙을 견지하되, 그 원칙이 현실에서 낳을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정치.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소명을 가진 이들이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윤리정치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카이로스 극장>을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민주주의란 한 번 쟁취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고 심화시켜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이 보여주듯, 어떤 정치 체제도 타락과 변질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민주정조차 중우정으로 타락할 수 있고, 그 혼란 속에서 독재가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겪은 위기는 바로 민주주의가 형식만 남고 내용이 공허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선거라는 절차는 있었지만, 그 선거가 시민의 주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은 있었지만, 권력이 그 원칙을 무시하고 폭주했다. 법치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회복력도 목격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 진실을 보도하려 애쓴 언론인들, 원칙을 지키려 한 공직자들, 헌법을 수호하려 한 국회의원들. 이들이 보여준 것은 민주주의란 결국 그것을 믿고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으로만 유지된다는 진리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의 바탕에는 시민의 각성과 연대가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깨어있고, 서로 연대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때만 유지된다. 우리가 광장에서 보여준 그 힘, 그 연대, 그 의지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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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격언처럼 인생이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면, C(chronicle)와 E(eternal) 사이에 있는 건 D(death)이다. 그래서 인생은 크로노스의 시간인 동시에 카이로스의 시간인 것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후회로 남지 않게 행동하고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건 오늘의 나뿐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자.” 지난 광장을 겪으며 쓴 글이다. 12월 3일에 국회 앞으로 나설 때부터 4월 4일에 ‘파면은 끝이 아니다’라고 외칠 때까지 모든 순간은 내게 실존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 어떤 약속은 지켰고, 어떤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영광과 상처의 순간으로 얼룩진 과거가 히드라의 두 머리가 되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베어도 베어도 솟아나는 그 기억 속으로 매몰되지 않는 것이 2026년의 목표 중 하나다. 그래서 사계절 출판사에서 《카이로스 극장》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을 때, 나는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정말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정치적 격변의 역사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건져올리는 것이 이 책이 제시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크로노스는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는 시간, 시계와 달력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와 반대로 흐른다. 카이로스는 미래에서 시작해 과거를 밝힘으로써 현재를 열어젖히는 시간이다…역사의 뜻에 비추어볼 때 반드시 잡아야 하고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하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p.20) 저자는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는 카이로스의 순간을 좇으며 시공간을 넘나든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장까지, 삼장법사의 눈에 비친 인도에서 민주 시민이 바라본 2025년의 대한민국까지 저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저자는 플라톤과 프로이트, 아리스토텔레스와 한나 아렌트 사이를 오가며 2022년부터 2025년까지 펼쳐진 정치적 격변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와 현대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광장 한복판에서 나의 한 걸음걸음이 역사에 남길 흔적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와닿을 책이기도 하다. 미래에서 온 저자가 현재를 열어젖히기 위해 밝히려는 것이 그 발자국으로 남은 카이로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2025년, 윤석열 집권부터 내란 그 이후의 시기를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 싶은 분들, 깊이 있는 역사적, 철학적 시각으로 한국 정치 전반을 조망해 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나 또한 이 책을 다시 천천히 살피며 내가 붙잡아야 할 시간과 놓아주어야 할 시간을 분별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은 그런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 #도서제공 #서평단 #카이로스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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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점 : ★★★★★ 작성일 : 25. 12. 14. 도서명 :#카이로스 극장(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저 자: #고명섭 출판사 : #사계절 연 도 : 2025년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미션을 알려주는 카이로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 “법은 욕구없는 지성이다” 법은 보편적 이성의 총화다. 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가장 좋은 법을 세워 그 법으로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을 뜻한다. 통치자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때 법이 심판의 최종적인 저울대가 된다 그런데 법을 수호하고 봉사하는 자들이 법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잘못 사용했던 예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란 과제는 이론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도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최근 몇 년 우리사회가 경험한 잘못된 권력의 오만함과 오용에 대해 메스를 들이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잘못된 정치권력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과정속에서 얻게 되는 교훈을 인문학과 역사속에서 찾아 예리한 시각으로 전달한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소크라테스는 명성을 얻으려 허세를 부리는 자를 엉터리 피리연주자에 비유한다. 훌륭한 장군도 훌륭한 선장도 아닌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기를 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 쓸모없는 자가 국가를 이끌 적임자라고 속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대한 기만일세” 소크라테스의 이 말속에는 잘못된 정치 지도자를 뽑은 유권자의 책임도 숨겨져 있다. 결국 올바른 지도자를 선별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품성과 능력과 지성이 요구된다. 또 다른 중대한 기만으로 언론을 지목한다 20세기 미국 저널리증믜 대표적 언론인 월터 리프먼의 대표작 <여론>에서는 언론을 플라톤이 동굴속의 죄수들이 보는 왜곡된 이미지로 비유한다. 언론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부풀리고 축소하고 뒤틀어 여론을 오도하는 행위로 여론이 오염과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 언급했듯이 왕은 개인들이 전쟁상태를 견딜 수 없어 각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권자로 내세운 대리자일 뿐이다. 그래서 왕이란 단순히 왕이라는 직위를 지닌 채 인민 개개인의 행복에 봉사해야 할 일종의 공적 종복(civil servant)이 된다. 결국 정부가 정부다울 때에만 정부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며 국민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정부는 이권집단일수 있어도 참된 정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권력자는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1931~2007)는 ‘아이러니스트’의 모습에 비유한다. 아이러니스트는 언제나 형성 중인 인간이며 자기 의심을 통해 자기 확신을 부정하고 극복하는 인간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봄으로써 자기 행동에 제한을 가하고 자기를 넘어서려는 것이 아이러니스트의 태도다. 권력자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권력의 자기중심성에 갇히지 않으려면 권력자는 아이러니스트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가 설명하는 정치철학과 권력의 역학관계, 깨어 있는 유권자의 시민의식, 언론의 역할 등이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독자에게 보다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다가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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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극장』은 한겨레 선임기자를 지낸 고명섭 저자(지은이 소개란에 ‘철학 저술가’ 로 소개한다)께서 2022년 3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글을 엮은 책이다. 랫동안 한겨레신문에서 고명섭 기자님을 구독해왔기에 <고명섭의 카이로스> 칼럼도 역시나 꾸준히 읽어왔던 글들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10일 이후로 기자님의 새로운 칼럼이 올라오지 않아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이번 신간이 『카이로스 극장』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뻤다. 그간 기자님이 온라인에 연재하는 기사들은 거의 다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한겨레신문의 <고명섭의 카이로스> 칼럼도 내심 책으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 고명섭 저자께서 2022년 3월부터 2025년 9월에 걸쳐 쓴 글들이다. 저자는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란 세력이 검찰의 저강도 쿠데타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던 때에서 시작해, 그 내련 세력이 반역을 감행했다 실패한 뒤 우두머리가 권좌에서 쫓겨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 단죄 작업이 속도를 내기까지 3년 6개월에 아우른다. 내란 세력의 집권 • 반란 • 몰락으로 이어지는 그 기간은 셰익스피어의 《멕베스》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고전적 드라마의 기승전결을 보여주었다. 마녀의 속삭임에서 맥베스의 감당 못 할 권력 야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마저 내란 수괴의 어리석은 형태와 닮았다. ❞ 『카이로스 극장』의 부제는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펼쳐졌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내란 세력의 집권-몰락 드라마를 해석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 우리의 침침한 눈은 고명섭 기자가 알기 쉽게 들려주는 동서고금의 정치 서사를 통해 조금씩 밝아진다. 제목의 ‘카이로스’라는 단어는 ‘크로노스’와 짝을 이루는 말로, 둘 다 시간을 뜻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크로노스는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는 시간을 말한다. 즉 시계와 달력의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와 반대로 흐르는데, 카이로스는 미래에서 시작해 과거를 밝힘으로써 현재를 열어젖히는 시간이다. ❝ 카이로스는 타이밍이다. 역사의 뜻에 비추어볼 때 반드시 잡아야 하고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하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 이 책은 동서고금의 역사와 철학, 신화와 문학, 종교와 예술 등(주로 서구 중심이긴 하다)에 관한 광범위한 텍스트 속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 ‘바로 지금’ 필요한 통찰들을 길어올려 건네준다. 이 책은 크세노폰이 말하는 좋은 지도자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지막은 니체의 운명애가 집단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에드워드 핼릿 카가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 말을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도 볼 수 있으며, 20세기 사상가 함석헌이 말하는 ‘위대한 성격’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망명 일기’에 적힌 민주주의의 각오에 대한 글로 끝난다. 풍부한 텍스트들을 읽어가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복잡한 과제들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이번 책에 실린 50편의 글들을 읽어가며 거듭 확인한 부분은 민주주의 체제는 태생부터 자기 내부에 자기 파괴적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요소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흔들린다. 민주주의 실천은 시민의 정치적 판단력에 달려있다. 나는 스스로를 반성했다. ❝ 민주주의 실천은 벼랑 위로 난 좁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정치를 보는 시민의 눈이 흐려지면 민주주의는 길을 벗어나 미끄러진다. ❞ ❝ 민주주의 성패의 관건은 시민 정신이다. 시민 정신이 성숙할수록 민주주의는 더 높게 나아가지만, 시민 정신이 낮은 수준을 떨쳐내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전진할 수 없다. ❞ 질 낮은 선동가와 정치꾼들에게 흔들리면서 본인의 역량과 품성의 부족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탓과 공동체의 탓만 한다면, 나/너/우리는 이 사회의 미래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나/너/우리가 가진 책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온갖 어지럽고 억장이 무너지는 뉴스에 반사적이고 동물적으로만 반응하고, 정치적 피로감만 호소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었으면 좋겠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 변화 없이 그렇게 살 것이라면 그것은 이 사회에 독을 타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어리석음의 지배를 막으려면 시민이 곧은 눈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는 수밖에 없다. 역사의식이 바로 서지 않은 나라, 역사의 참뜻을 묻지 않는 나라는 들개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다. ❞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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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카이로스’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빛으로 과거를 다시 읽고, 그 빛으로 현재를 결단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 저자는 함석헌의 ‘역사의 뜻’을 불러와 묻는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폐기할 것인가. 인간 존엄, 자유,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치를 붙들 것인가, 아니면 권력과 탐욕의 언어에 끌려갈 것인가.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도덕법칙이 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같은 구체적 제도로 곧장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것들은 시혜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오랜 투쟁 끝에 쌓아 올린 사회적 방파제다. 이를 허무는 정치는 곧 인간을 다시 수단으로만 쓰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또한 저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르메스 신화를 통해 법과 검찰 권력이 타락할 때 어떤 사회적 파국이 도래하는지를 날카롭게 경고한다. 법이 욕망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은 있어도 법이 없는 무법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을 시민의 정치 문해력, 거짓과 진실을 분별하는 판단 능력, 그리고 타락한 언어에 저항하는 감수성에서 찾는다.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은, 교실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나에게 특히 깊게 와 닿는다. 왜곡된 기억 위에 세운 공동체는 결국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엄 포고령이 내려지던 밤 국회 앞으로 달려갔던 시민들, 수개월 동안 광장을 지켜낸 사람들의 힘을 저자는 ‘에로스의 힘’이라 부른다.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향한 갈망,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공동 존재의 자각이 역사를 다시 앞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정치 뉴스를 이해하는 독자이기 이전에,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할지를 다시 고민하는 교사가 되었다. 《카이로스 극장》은 분노로 끝나는 고발서가 아니다. 권력, 법, 언어, 시민, 역사라는 민주주의의 모든 축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드는 질문의 책이다.
우리 공화국의 가치인 ‘인간 존엄성의 존중’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인간과 역사를 함께 돌아보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카이로스극장 #고명섭 #사계절 #정치철학 #민주주의 #시민의힘 #정치문해력 #인간존엄 #책읽는샘 #함께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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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가 평생 중 가장 빨리 사라진 한 해 같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난 내란 이후의 날들... 모든 소식을 따라 읽기엔 체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기사 제목만으로도 충분한 분노와 모욕을 거듭 맛보며 산다. 그래도 그 시간을 극장 무대에 올린 든든하게 큼직한 이 책의 서사와 사유는 차분하게 따라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고맙게 내 안의 것들도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모인 글은 2022년 3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것들이다. (...) 3년 6개월을 아우른다.” 새삼스럽게 3년 6개월에 눈이 시리다. 끝없는 모욕감과 분노로 정신을 앙다물고 지나왔던 시간이다. 현대인이 당면한 많은 문제는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준거가 지켜지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익이냐 사익이냐’의 척도가 없던 이 정권의 결말은 이토록 필연이다. 신문에 실린 논설이라서, 한편마다 주제와 논조가 선명하다. 한 권의 책이 된 집적물이, 바로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주는 역사다. 지난 정권의 악행과 무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대의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다시 확인하며, 결국 시민이 분별력과 정치적 문해력을 갖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절감한다. 고단하지만, 오염된 것도 망가진 것도 너무 많으니 시민이 해야할 일은 산적해있다. “반상식이 상식 노릇을 하면 공동체의 윤리성은 존립의 토대를 잃는다. (...) 상식을 희롱하고 공동체를 모욕하는 반공동체 세력을 공적 공간에서 퇴출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식이다.” 극우의 부상, 혹은 극우라는 이데올로기조차 갖추지 못한 폭력배들의 부상은, 짐작보다 오래된 계획과 체계적 지원의 결과일 것이다. 언급되는 것은 이명박 정권 때이지만, 한국 사회에 이런 유의 집단적 경험과 구조로 굳어진 집단적 의식은 청산하지 못한 더 먼 역사적 뿌리를 가졌다. 그러니 힘이 많이 든다. 일단 성립된 존재들이 가지는 관성은 공고하고, 항상 이익과 계산이 최우선인 집단의 성실함과 끈질김은 최강이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싸워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히드라의 머리를 다시 자라게 하는 심장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썩은 검찰 사법”이라는 저자에게 동의한다. 그러니 정치권은 가진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고, 시민들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통찰로 오염된 생각과 언어를 바꿔야한다. 공동체의 요구로 만들어야한다.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카이로스timing가 지금이 아닐까.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 (...) 좋은 정치는 언어를 정련함으로써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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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윤석열이 당선된 뒤로 3년이 조금 못 미치는 임기기간 동안, 이게 우리나라 대통령의 자질이 맞나 의심스러웠던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아직도 선명하다. 때론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다. 비상계엄령 선포 전에는 그저 빨리 끝나길 바라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탄핵까지의 기간 동안은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내내 탈진해 있었다. 내가 뭘 어찌할 수 있으랴, 투표 결과가 그러했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 칸트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동시에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작동 원리대로 놔두면, 타인의 인격이 오로지 수단이 되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수단으로 쓰이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인간을 수단으로 쓰더라도 '동시에 항상' 목적으로 대한다는 원칙이 관철되는 것이다. 목적의 나라는 인간의 수단화가 아예 없는 나라가 아니라 인간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는 나라,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서로를 존엄한 자율적 인격체로 대하는 나라다. ─ 제 1부, 「2.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칸트의 도덕법칙이 말하는 것」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억이 무수한 '나'를 관통해 전체를 이루면 집단의 기억이 된다. 그 집단의 기억이 역사다. 역사, 곧 집단적 기억이 없다면 집단을 지탱해주는 정체성이 생겨날 수 없고 정체성이 없으면 집단은 집단으로서 존속할 수 없다. 역사가 집단을 집단으로 만들어준다. 아니면 그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를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 제 2부, 「26. '항일독립군인가 간도특설대인가' 역사의식과 집단기억」 /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새로운 것의 창조는 익숙한 삶의 문법을 깨뜨리는 반역적 행위에서 나온다. 시대를 거역하는 창조적 정신은 기성의 질서를 흔들기에 그 질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반감과 적대를 부른다. 창조적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 문화의 압박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 사건'이라고 불렀다. '진리 사건'이란 '참된 것의 출현'이다. 정치에서도 참된 것은 일어난다. 창조적 영감은 우리를 묶어두고 있던 관습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연다. 그 사건이 역사를 바꾸는 큰 전환의 출발점이 되느냐 마느냐는 그 사건에 참여한 사람들의 비전과 결의가 얼마나 뚜렷하고 굳세냐에 달렸다. ─ 제 3부, 「33. 창조적 영감은 어떻게 솟아나는가」 알고리즘이 편집한 세계를 사는 시대, 저마다 자기만의 반향실에 갇혀있는 우리에게 벽을 허물어주는 도끼 같은 책. 정치의 의미도 퇴색되어가고 대화도 공론장도 점점 사라져 가는 지금, 고명섭 작가님의 『카이로스 극장』은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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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부정 선거가 확실하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은 아리스테이데스의 도편추방 일화를 전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한 사람이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도자기 조각을 내밀며 이름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적어 넣을 이름을 묻자 '아리스테이데스'라고 말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도자기 조각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고는 물었다. <카이로스 극장>은 한겨레신문 기자를 지냈던 고명섭 철학 저술가가 철학과 역사를 렌즈로 삼아 카이로스의 눈으로 우리 시대가 써낸 정치 드라마의 격류를 조망한 책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인 2022년 3월부터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그 이듬해 2025년 9월까지 신문과 잡지에 쓴 글들을 모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는 윤석열이 '사익을 공익으로 무능을 유능으로 포장'한 정치꾼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무 쓸모 없는 자가 국가를 이끌 적임자라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기만'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플라톤의 묘사처럼 '이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그런 자들이 할 법한 방식으로 항해 (p. 59)'를 한 집권 세력이었다. 플라톤은 묻는다. 이런 자들은 조타수가 아니라 '하늘을 보며 별점이나 치는 수다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사이비 조타수가 키를 잡으면 배가 난파할 수 있다는 경고도 플라톤은 덧붙였다. 플라톤의 경고대로 결국 윤석열 정권은 계엄이라는 내란을 일으켜 스스로 침몰했다. '이때 스펜서에게 '가장 잘 적응한 자'는 '가장 우월한 자'를 의미했다. 그러므로 적자생존이라는 스펜서 원리는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한다는 우승열패,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이로 삼는다는 약육강식을 내장한다. (p. 156)' 다윈이 생각한 적자,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자 자'라는 의미와 거리가 먼 스펜서의 '약육강식'이란 말은 강자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위세를 떨친다. 상대편이 아니라 힘없는 쪽에 잘못이 있다는 논리는 마침내 2023년 윤석열의 3.1절 기념사에 침략당한 우리가 문제였다는 제국주의 논리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을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 제104주년 3.1절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 중에서'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억이 무수한 '나'를 관통해 전체를 이루면 집단의 기억이 된다. 그 집단의 기억이 역사다. (p. 202)'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역사인식이 달라진다.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 싸운 항일독립군이 아닌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를 기억하는 자들의 논리가 순국선열을 기억하자는 3.1절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를 바꿔치기하면서까지 일제강점기에 했던 부역자 노릇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집권 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윤리의식마저 저열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12.3 내란 1년을 하루 앞둔 국무회의에서 내란에 대한 결처한 진상조사를 거듭 강조하며 쿠데타 등 국가폭력을 저지른 자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이다. 일제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반윤리적이고 반상식적인 세력이 남아 어떤 반성도 없이 지금도 역사의식이 바로 서지 못하도록 훼방놓고 있지 않은가. '아리스테이데스 추방에 찬성한 그 시골 사람은 문자적 문맹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문맹이기도 했다. 고대 아테네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다. (p. 230)' 윤석열이 대통령 직무를 수행했던 3년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쉽게 저급한 선동정치의 먹이가 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민주주의 체제는 내부에 자기 파괴적 요소도 품고 있어 시민들이 정치적 문맹 상태에 있을 때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탈선한다는 역사적 교훈도 체험했다. '크로노스가 타임(time)이라면, 카이로스는 타이밍(timing)이다. 역사의 뜻에 비추어볼 때 반드시 잡아야 하고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하는 순간이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p. 20)' 지금이 시민들이 정치 문해력을 갖춰야 할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더 이상 정치인의 거짓 선동에 속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만과 속임수로 깨지기 쉬운 민주주의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짓을 막으려면 시민 스스로 거진과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남들이 다 그러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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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카이로스 극장 by고명섭 🌱 우리는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폐기할 것인가? 역사의 뜻을 밝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너와 나의 자유가 이루는 공동 존재의 꿈을 찾는 카이로스의 시간! 🌱 ~현대 정치를 철학으로 읽어내는 고명섭 작가가 <카이로스 극장>으로 돌아왔다. 전작 <니체극장>과 <하이데거 극장>에 이은 <카이로스 극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의미하는 바가 깊다. 그래서 이 책을 보기에 앞서 '카이로스' 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카이로스는 시간을 뜻하는 의미로, 크로노스와 비교해서 말한다. 크로노스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는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결정적인 순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순간이나 절호의 기회를 뜻한다. 역사의 뜻으로 본다면 반드시 잡아야 하고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하는 타이밍이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은 카이로스의 시간에 놓여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정치사의 카이로스를 최근 3년 6개월 정도를 아우르는 내란세력의 집권, 반란, 몰락의 시간으로 본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을 연상시키는 어리석음이 드러나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는 상황과 같다. 이러한 정치상황을 보다 폭 넓게 역사와 정치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2022, 2023, 2024, 2025 년을 나누고 해당연도마다 주제를 부여하여 무엇이 잘못되었었고, 어떻게 되었으며 앞으로는 어찌해야 하는 지를 깊이있는 시선으로 설명한다. 각 년도마다 부여된 제목부터 의미하는 바는 크다. 2022년 좋은 정치의 조건 2023년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길 2024년 정치판단력과 창조적 영감 2025년 카이로스의 빛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나간 시간들의 암흑기를 알기에 제목만 보아도 씁쓸하다. 저자가 각 해를 상징하는 제목을 정하는 데 고심했을 것 같다. 우리의 암흑기는 2024년에 정점을 찍었고, 2025년에서야 서서히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2025년이 거의 끝나는 지금도 빛은 희미하다. 카이로스의 빛은 히드라의 머리를 없애기 위해 몸통을 해체해야 하는 데, 그 과정이 참으로 어렵다. 광범위하고 폭넓은 서술이 내게는 다소 어려워서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현상을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이해해보는 경험을 하게 되어 좋았다. 무척이나 사고가 넓어지는 지적인 경험이었다. 기나긴 역사에서 시기마다 반복되어왔던 일이 21세기에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인 지도 모르겠다. 어찌 그렇게도 똑같이 어리석은 지! 끝으로 지금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바닥을 다 드러내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당신들의 미래는 이미 역사 속에 다 나와있다' @sakyejul #카이로스극장 #고명섭 #사계절 #역사 #정치철학 #니체극장 #하이데거극장 #정치 🔅< 사계절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