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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선을 긋는다면, 그 선은 어디쯤 그어져야 할까. 우진영의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읽으며 나는 끊임없이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김환기의 '푸른 점화'가 123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뉴스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던 날, 한국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빛나는 그 순간에도, 정작 우리는 그 빛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빛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에서 시작된 예술가들의 고민이 2020년대 서울의 갤러리에서 어떻게 메아리치고 있는지, 저자는 47명의 예술가를 통해 섬세하게 직조해낸다. 책의 첫 장을 여는 것은 도시 풍경이다. 김주경의 1927년작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정영주의 2020년작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 거의 100년의 시차를 두고 그려진 두 그림은 놀랍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가 포착한 김주경의 그림 속 경성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1920년대 경성, 붉은 양산을 쓴 신여성이 경성부청을 향해 걷는 모습은 변화의 한복판에 선 도시의 초상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신여성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모던함과 희망이 공존하던 순간, 김주경은 그 찰나를 캔버스에 담아냈다. 반면 정영주가 그린 2020년의 서울은 어떤가. 한지를 구겨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으로 만들어낸 판잣집들은 빼곡하게 모여 있지만, 그 안에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저자는 이 불빛을 보며 "온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고층 빌딩이 아닌 판잣집을,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을 선택한 정영주의 시선은 도시 한구석에 숨어 있는 인간적인 온기를 향한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시는 변했지만, 예술가들이 포착하고자 한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김주경이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면, 정영주는 초고속 발전의 그늘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을 그려냈다. 두 작가 모두 자신이 발 딛고 선 '지금, 여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 성실함이 10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책의 두 번째 장에서 저자가 연결하는 것은 주경과 노은주, 정물화를 그린 두 예술가다. 그런데 같은 꽃을 그렸을 뿐인데, 그 온도는 정반대다. 주경의 1920년 작품 《온실의 꽃》에서는 뜨거움이 뿜어져 나온다. "나무판 위에 펼쳐진 활달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속도감 있는 붓놀림이다. 꽃잎들이 살아나 춤출 것 같다"는 저자의 묘사는 그림을 직접 보지 않고도 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주경은 어린 나이에 이미 서양화의 매력을 알았고, 유학을 통해 당대 최신의 미술 사조를 흡수했다. 그의 정물화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넘나들며, 때로는 정교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대상을 포착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뜨거움'이다. 캔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것은 단순히 색채의 선명함이 아니라 그리는 이의 기운이다. 안타깝게도 유학 중 가세가 기울면서 그의 예술적 전성기는 일찍 막을 내렸지만, 남겨진 작품들은 여전히 뜨겁게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반면 노은주의 《스틸 라이트 2》는 냉정하다. 가느다란 철사 같은 선들, 색을 잃은 꽃송이들, 무채색의 화면. 처음 이 그림을 본 저자는 "폐허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며 저자는 깨닫는다. 이 차가움은 절망이 아니라 단단함이라는 것을. "낙화가 아니었다. 《스틸 라이트 2》 속 꽃들은 피어나고 있다." 노은주는 도시의 건축물과 버려진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그가 그리는 정원은 예쁘지만은 않다. 개화와 낙화가 공존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물들의 정원. 하지만 그 차가운 정물화 속에는 "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이를 "스틸 라이트"라고 명명한다. 꺼지지 않는 빛. 두 작가의 대비는 명확하다. 주경의 열정과 노은주의 냉정. 그러나 저자가 포착한 것은 그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이다. 두 작가 모두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주경은 왕성하게 타오르는 생명력을, 노은주는 시들어가면서도 존재하는 생명의 존엄함을 그려낸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갑듯, 두 작가의 그림은 삶의 양면을 보여준다. 책의 중후반부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김기창과 현덕식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이 둘을 "장애와 상처 너머"라는 키워드로 묶는다. 김기창은 여덟 살에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다. "거리를 활보하던 남자아이는 교실 한쪽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들리지 않던 공백을 채운 것은 그림이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김기창의 작품은 《군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서 저자는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여섯 마리의 말들이 각자 제멋대로 뛰고, 날뛰고, 포효한다. "그 무질서함이 싫지 않다. 숨지 않는 감정들이 통쾌하다." 이 그림은 김기창의 외침이다. 들을 수 없었던 세계를 딛고 나아가겠다는, 소리를 향한 평생의 갈망을 거침없이 드러낸 선언이다. 김기창의 삶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가 평생 "소리"를 그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청》 속 축음기에 귀 기울이는 여성들, 《싸움》 속 언쟁하는 사람들, 《군작 싸움》 속 지저귀는 참새들. 들을 수 없는 세계를 살면서도 그는 소리로 가득 찬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아내 박래현과 함께 구화술을 배워 마침내 소리를 내었다. 저자는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현덕식의 《유시도》는 또 다른 의미의 외침이다. 검은 화면을 가득 채운 얼음 덩어리들. 저자는 처음에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 이 책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여성 작가들에 대한 서술이다. 저자는 이인성과 정수정을 "시대 속 여성들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연결한다. 이인성은 남성 작가이지만, 그가 그린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시대를 읽어낸다. 이인성의 1934년작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모던걸"의 자신감이다. "비스듬히 쓴 흰색 모자와 벗겨지듯 신고 있는 슬리퍼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모델은 이인성의 아내 김옥순, 당시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인성이 그린 여성들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진다. 《가을 어느 날》 속 반라의 여성은 "표정이 없다." 《해당화》 속 소녀들의 눈망울은 "비감함"을 더한다. 저자는 이를 이인성 개인의 비극과 연결한다. 아내 김옥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림 속 여성들의 눈은 더 자주 감겼다. 하지만 저자가 더 주목하는 것은 "재현되거나 관찰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던 여성들의 모습"이다. 여성은 그려지는 대상이었지, 그리는 주체가 아니었던 시대. 그 한계를 저자는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반면 정수정은 스스로 붓을 든 여성 작가다. 그의 2023년작 《뿔》 앞에서 저자는 혼란을 느낀다. "채도 높은 색들이 엉켜 기묘한 에너지를 뿜는다." 측면으로 돌아선 여성이 피리를 불고 있고, 주변에는 고래 같은 생명체와 애벌레가 있다. 환상인가, 현실인가? 정수정은 대답한다. "나의 욕망과 야망을 인정하고 싶다." 정수정이 그리는 여성들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고, 나체로 사막에서 춤추고, 피리를 분다. "씩씩하고 전투적인 여성"이다. 저자는 이를 "진정한 리얼리즘"이라고 평가한다.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 정직함. 정수정의 그림은 100년 전 이인성이 그린 여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이제 여성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다. 책의 후반부을 장식하는 것은 김환기와 손승범이다. 저자는 이 둘을 "영원을 꿈꾸고 사라짐을 맞이하는"이라는 주제로 묶는다. 김환기의 《영원한 노래》를 보며 저자는 "피아노 선율"을 떠올린다. "지속되는 반음들이 맑고 맑아서 더욱 귀 기울이게 된다." 김환기는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그렸다. 달, 학, 매화, 항아리. 한국적인 것들. 저자는 묻는다. "왜 그토록 바라던 파리에 이르러서도 같은 모티프들을 그렸을까?" 그리고 답한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흠모와 바람." 김환기는 영원을 추구했다. 서양의 기법으로 동양의 정서를 담아내며, 추상 속에 구상을, 점 속에 우주를 담았다. 반면 손승범은 "사라지는 것"에 주목한다. 《투명하게 사라지는 믿음 I》에서 저자가 본 것은 "서서히 무너져가는 관계"다. 고대 조각상 위로 나무와 식물이 뒤덮인다. "한때는 영광을 자랑했던 조각상들은 여러 부분 지워져 있다." 버려진 형상들. 하지만 저자는 깨닫는다. "폐기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자투리 조각들이 느리게 나아가는 예술가의 삶과 닮아 보였다." 손승범의 최근 작품들은 "사라져가는 것"뿐 아니라 "자라나는 것"도 그린다. "예전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주위에 피어 있거나 자라나는 생성하는 것들에도 관심이 간다." 저자는 이를 통해 말한다. "뒷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던 관계에 자책하지 말라고." 김환기와 손승범. 한 사람은 영원을 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소멸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둘 다 삶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캔버스 앞에 섰다. 김환기는 "꿈은 무한하다"고 말했고, 손승범은 "투명하게 사라지는 믿음"을 그렸다. 저자는 이 둘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이다. 저자는 미술사학자이면서도 전문 용어로 독자를 압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한국화에 대한 솔직한 속내였다. (…) 유려하지만 난해하게만 느껴졌다." 이상범의 《귀로》를 보고 나서야 한국화를 알고 싶어졌다는 고백은, 미술을 어려워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저자는 작품을 설명할 때도 어렵지 않다. 대신 생생하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햇볕이 뜨거워서일까, 차가운 색을 따뜻하게 풀어냈기 때문일까." "목덜미부터 젖는 듯하다." 이런 문장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만든다. 또한 저자는 작품을 삶과 연결한다. 정영주의 그림을 보며 "직장에서의 일들이 벅차게 느껴질 때"를 떠올리고, 노은주의 작품 앞에서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날"을 회상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작품 해석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독자는 미술이 미술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잇기'다. 근대와 현대를, 과거와 현재를, 예술과 삶을 잇는 것. 저자는 47명의 예술가를 통해 보여준다. 1920년대 경성에서 고민하던 것과 2020년대 서울에서 고민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김주경과 정영주는 모두 도시를 그렸다. 주경과 노은주는 모두 정물화를 그렸다. 이상범과 권세진은 모두 수묵화를 그렸다. 이인성과 정수정은 모두 여성을 그렸다. 김기창과 현덕식은 모두 내면의 소리를 그렸다. 김환기와 손승범은 모두 시간을 그렸다. 장르도, 기법도, 시대도 다르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은 같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는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작품들을 통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독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정영주의 불빛을 보며 "도시의 밤, 그 안에 가만히 안겨 있고 싶다는 바람"을 느끼고, 노은주의 꽃을 보며 "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현덕식의 얼음을 보며 "못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술의 힘이다. 100년 전 그림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캔버스 위의 점과 선과 색이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저자는 이 연결고리를 섬세하게 직조해내며, 독자들을 경성에서 서울로, 과거에서 현재로, 미술관에서 삶 속으로 이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읽고 나면, 미술관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다시' 가고 싶어진다. 한 번 스쳐 지나갔던 그림들 앞에 더 오래 서 있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나 자신에게, 내 삶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이 책은 미술사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근대와 현대를 잇는 것은 결국 시간이 아니라 삶이고,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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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 근처에 소재한 미술관의 전시가 바뀔 때마다 다녀오곤 하는데요. 그만큼 다양한 미술 작품이나 화가에 관심은 있는 편이지만, 관련 분야의 책을 각잡고 읽은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우진영 작가가 쓴 첫 저서로, 미술사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한국의 예술가들과 그들 작품들 간의 접점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5개 부에 걸쳐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제시하며, 각 이야기의 끝에는 대개 현대 작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먼저 제시되는 인물은 근대 예술가, 뒤에 제시되는 인물은 현대 예술가, 그리고 부록은 현대 예술가의 인터뷰) 총 47인의 근·현대 예술가의 삶과 여정을 따라가며, 각 인물의 작품 세계와 의미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제게 한국 근현대미술사는 꽤 생소한 분야로,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근·현대 화가들이 꽤 낯설었어요. 하지만 작가님의 간결하고도 친절한 해설 덕분에, 새로운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기를 통과한 근대 예술가들의 고민을 현대 예술가들의 삶과 연결짓고, 단순한 미술사적 해석을 넘어 사회와 예술의 연관성을 탐구하며 시대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도 넓혀줍니다. 자칫 어려울 수도 있는 작품 해설이지만, 작가님의 일화와 디테일한 설명을 통해 당대 예술가들의 고민, 사회 변동, 문화적 영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마산 출신의 예술가인 '문신'이 등장하는 꼭지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저는 문신을 '조각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다부진 신체와 생동하는 노동을 담은 회화가 처음이었다니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몸'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특히 '분열하는 몸'의 이미지를 담아낸 강철규 작가의 작품도 신선했어요.
책은 이처럼 한국의 근대와 현대 미술사를 통찰력 있게 연결해, 각각의 예술가들이 개인적 체험과 시대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미술적 시도와 변화를 이끌었는지 보여줘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예술 역사서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인간적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나아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 비교적 유명한 근대 예술가들의 생소한 작품들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조명과 관심을 받고 있는 여러 현대 미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도 지켜보는 재미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읽는 내내 ‘미술은 삶과 맞닿아 있다’는 메시지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예술사의 큰 흐름뿐만 아니라 각 예술가의 삶과 철학,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함께 엮어주어, 저처럼 한국 근·현대 미술에 생소하거나 처음 접하는 독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고요. 한국 근대 미술과 현대 미술 사이의 간극뿐 아니라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합니다. *이 후기는 하니포터 11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솔직히 적은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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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들 속사정이야 어떻든 친구와 나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둘러싼 전광판을 보며 '감다뒤'라고 수근거리며 혀를 차기 바쁘다. 특히 시즌을 맞은 이런 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 한때는 전광판이 설치되면 그 앞을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반복되는 화려한 영상을 굳이 감상하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 뒤로 가려진 본점의 고풍스런 외관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계속 광고판을 올려둔다는 결정을 접한 이후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가을의 돌담길을 보란듯이 한번 더 걸으며 낭만이 뭔지 모른다며 실망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의 의미로 존재하곤 한다. 서울의 낮과 밤을 이야기하며 시작한 도시 이야기는 독자를 그림과 풍경 사이로 인도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자연스러우면서 낯선 감각이다. 예술과 관련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면 내가 소화해 낼 바탕이 있는지 없는지 셈하기도 전에 일단 들이받듯 읽어보고 싶어진다. 쩔쩔매며 읽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것들을 끌어왔다가 애를 먹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도 자꾸만 손에 들고만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두 작가가 이어지는 지점을 이해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 어떤 부분들은 분절된 채로, 어떤 부분들은 내 방식대로 이어가며 읽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독특한 관람 경험이 된 듯 해 큰 숨이 들어찼다 빠져나가는 뻐근함이 남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가장 먼저 나혜석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림 속 모던걸의 어두움이 저자의 편견을 뒤집었다(106)는 말에, 다시 바라본 그림 속 여성의 얼굴에서 웃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의 웃지 않음, 돌려말하지 않음, 친절하지 않음이 그 안에 있었다. 여성이며 사람인 존재의 초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강렬한 인상이 만족스러운 한편, 대부분 근대의 작품들에 더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 작품과 함께 묶인 작가와의 연결점은 특히 더 그 고리가 약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아이돌>연작에 대한 이재헌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어딘지 모호했다. 아이돌이 되고자하는 연습생들의 열망과 절제된 생활과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홈마의 존재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화상>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만큼 아쉬운 지점이었다. 반대로 현대의 미술에 더 시선을 빼앗긴 것은 이어진 서민정 작가의 <너와 나 01>의 소개(126)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함께 소개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본 뒷모습은 과연, 땀에 절은 채 사막에 남겨진 야스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성질을 감당해내야 하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내면을 짐작해보게 만든다. 견뎌내야 하는 사막이 그 안에 있는 듯도 하고, 그 기질적인 예민과 불안을 눌러담은 뒷모습이 익숙한 듯 초연해보이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탓일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본 그림은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202)였다.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2024년 11월의 눈 내린 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2025년의 12월 눈 내린 날에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얀 풍경은 그전까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프랑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의 풍경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눈이 온다는 설렘이 점차 쓸쓸히 덧대여지는 흰 풍경과 함께 흐려지던 긴 저녁이었다. 올해의 겨울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이 함께 생각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의 특별함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있다. 보통은 작가보다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또 자주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가의 인터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신껏 '핑계 대지 말자.(289)'는 답변을 내놓는 강단이나 규칙적인 일과(59)를 강조하는 답변처럼 그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라 잠시나마 시선을 돌려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인터뷰의 존재가 매력적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의 일이라 한동안 병증으로 어깨를 쓰기 어려웠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183)에 투병을 거듭하느라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좋아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병마와 공존하는 삶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환기 시켜주곤 하는 그믐의 대표분이 떠올랐다. 덩달아 모든 이들의 무사안녕을 조용히 바라게 되는 연말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인삼각에 함께 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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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의 흐름을 아주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나타났다...! 근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예술가 47명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시대의 변화와 그 속에서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게 보여줌! 🎨🧑🎨 특히 중간중간 들어가는 작가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데, 작품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고민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책에 생생함이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어려운 전문 용어 대신 이야기처럼 풀어줘서 미술 비전공자도 편하게 읽히고, 작품 사진도 많이 실려 있어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굳! 한국 근현대 미술을 한 권으로 정리하고 싶거나, 그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부담 없이 시작하기 좋은 책입니다!✨ #도서제공 #근대와현대미술잇기 #우진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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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시대를 가로질러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가들의 고뇌와 고민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열망은 작품으로 발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는 근대와 현대, 전통과 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예술 이야기를 담아낸다. 다양한 작품들의 도판과 작가들의 인터뷰를 함께 엮어 예술가들의 고민과 열정을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시대 속 여성과 장애를 경계에서, 계절의 풍경을 색에 담아 탐구한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근현대 미술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억압과 탄압의 시간 속에서도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 현실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예술가들의 태도를 구체적인 흔적들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들이 마주한 시간이 작품에 어떻게 남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책을 읽다 보면 근현대 미술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뚜렷하게 구분될 거란 생각과 달리 근대와 현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각 시대의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시대 변화를 받아들였는지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저자는 미술을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느린 호흡으로 읽어갈 수 있는 대상으로 보여준다.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들의 목소리와 시대상, 그리고 과거 경성이라 불렀던 서울의 풍경은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미술이 가진 결을 천천히 따라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도서제공 #근대와현대미술잇기 #우진영 #한겨레출판 #도서리뷰 #서평 #하니포터 #하니포트1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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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대형 간판 예술가들의 작품이 자주 찾아오는 우리나라 전시회장. 하지만 인상주의처럼 유명한 화풍이나, 사람이 이렇게 불행할 수 있을까 싶을, 고된 운명의 화가, 고흐, 또는 현대인의 불안을 담았다는 뭉크의 그림처럼 유명한 화가의 이름과 작품에 가려져 느끼지 못해온, 온전히 작품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그런 예술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나는 그런 갈증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엔날레에 들뜨지 않는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나태하다고 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다.”(p.142)라는, 뒤늦게 미술사를 전공한 우진영 저자만의 소신 덕분이다. 그는 화려한 비엘날레 대신 근대작가의 작품 하나와 그에 상응하는 현대작가의 작품을 이 책에서 이어 글로 써냈다. 총 3부로 1부 ‘나와 당신의 도시’에서는 근대작가와 화가 작가가 어떻게 변화하고 공명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겼다. 가장 처음에 소개하는, 근대의 경성을 그린 김주경 작가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1927년)과 현대의 서울을 그린 정영주 작가의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2020년)으로 답한다.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같은 외국인이나 나혜석, 들리지 않는 김기창 작가의 작품들을 다룬다.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계절을 잇는다.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우진영 저자가 민준홍 작가에게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에 대해 묻자 “80억이 넘는 동일 종이 존재하는 세상에는 80억 개의 감상평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그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p.57)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전시회를 좋아하면서도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해 양가적인 마음이 있었는데, 저자의 이런 인터뷰는 앞으로 미술관을 좀 더 수월한 마음으로 가서 보고와도 된다고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또 산수화라고 하면 중국의 대가가 한 그 방식 그대로 따라하는 게 산수화의 기본 공식 같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깬 이상범 작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현대 한국화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유한 형태와 정서를 창현함으로써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1961년 이상범의 글이다. (p.66) 전통적인 작품이라고 오롯이 전통만을 담고 있는 틀에 박힌 작품이 아니라는 것. 영향은 받았겠지만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이상범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또 이에 대해 “나의 산수화를 개척하겠다고.(...) 현실에 발 디딘 풍경을 그려내는 이상범의 산수화는 시작되었다. 예술가란 신비롭다. 갇힌 시대에도 창문을 연다. 고맙다.”(p.65) 라고 쓰는 저자의 마음이 유난히 따시다. 그 외에도 “끌림의 이유를 생각하다 여러 질문을 건네게 된다. ‘여성일까, 소녀일까?’ ‘그림 속 화면은 환상일까, 실제일까?’ ‘어떤 감정으로 피리를 불고 있을까?’ 자세히 알고 싶어 그림에 다가갈수록 실제인지 비현실인지 혼란스럽다.(...) 다시 보니 작은 나비 인 줄 알았던 생명체는 애벌레였다. 틀이 깨진다. 머리가 아파오다 갑자기 맑아졌다.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하지 뭐’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제야 조금은 난해한 전시의 기획 의도보다 그림의 의미가 선명해짐을 느꼈다.”(p.100) 미술 관련한 다른 책들처럼 화가의 스토리와 작품을 연결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림을 보고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낸 점이 이 책의 매력으로 보인다. 그림에 대한 전문가적인 시선만 있는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위로받는 관람가의 시점이 느껴져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훨씬 공감하면서 그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을 본 경험을 써서 그런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얼른 전시회에 가고 싶다. 저자처럼 오롯이 그림에서만 낚아올릴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다. 옥에 티가 있다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제인 에어> 속 제인의 말이다.”(p.106) 음. 샬럿 브론테로 알고 있었지만, 이마저 화가의 명성에 기대지 말고 오롯이 그림만을 온전히 보길 바라는 저자의 훼이크로 보인다. |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가 <한겨레>토요판에 연재한 미술 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와 이후 웹진 <아르떼>로 지면을 옮겨 연재한 미술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산책' 글들을 보완해 만들어졌다.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 거의 모든 예술 분야의 사교육을 받았다는 저자는 나름 좋아했고 꽤 열심히 했지만 사춘기 무렵 '내게는 예술적 재능이 없다'를 깨닫고 미술사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에겐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까지 있어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으니 요즘말로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싶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선 매 글마다 두 명의 화가가 다루어 진다. 한명은 근대, 한명은 현대다. 한국 서양화의 역사는 길지 않기에 사실 근대와 현대가 구분이 되려나 싶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의 매글마다 덧붙여진 현대화가 작가들의 인터뷰에선 매번 비슷한 답변이 있었다. '한국의 근대 작가들을 많이 알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작가를 알게 되었다' 라고... 그러니 일반 독자로서 우리는 얼마나 생소한 작가들이겠는가, 고로 이참에 한국 서양화가들에 대해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근대 화가와 현대 화가를 묶은 기준은 오롯이 작가의 감상에 따른 결과물이다. 감상이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독자가 보기엔 왜 이 두 화가를 엮었는지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또한 이 책을 감상하는 재미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내겐 그러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라서 더구나 한국의 서양화에 대해선 거의 무지하다할 정도인 나라서 이 책이 재미가 있으려나 싶기도 했는데, 왠걸 첫 글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근대 화가로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현대 화가로 정영주의 [도시-사라지는 풍경531]을 다루었는데 이게 근대와 현대가 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그림에서 느껴지는 시대감이 영 달랐다. 글을 읽어나갈수록 드는 생각이, 근대로 구분된 화가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 시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잘 그리는 서양화가들이 많았다고? 싶었다. 내가 서양화라고는 했지만 이게 맞는 표현이 아니긴 하다. 수묵화를 그린 화가들도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묵화도 전통적 방식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 서양화를 배운 사람들이 나름 서양화적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반영하며 그린 그림들이라 또 아주 틀린 표현이 아닌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라는 것이 그리는 사람도 주관적 해석을 해서 그리는 거고 보는 사람도 화가와 다른 주관적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이다 보니 때론 화가의 해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라고 할 저자도 어떤 그림에선 뭔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하니 일반 독자는 오죽하랴. 하지만 저자는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하지 뭐'라고 결론 내리고 감상을 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사실 독자로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은 그림에 대한 감상 보다는 이런 저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게다가 저자가 열심히 쓴 문장들을 나름 투영해 볼 대상인 그림이 실려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대략난감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들어떠하고 저런들어떠하리, 새로운 것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쉼의 시간을 주는데. 그러니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우진영은 그 명제를 글로 증명해냈다'며 표지에 거창하게 둘러댄 홍보문구처럼 책속에 인문학도 역사도 그닥 없다고 해서 욕할 것 없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에 이런 멋진 그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감상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은 것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이또한 괜찮다. 그림이 궁금해져야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고싶다는 열망이 생길 테니까.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외국미술관과 협약된 대규모 전시회들이 성황이라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론 잘 모르는 작가더라도 소규모 전시더라도 부러 찾아가고 싶어질 것 같다. 한국에도 이런 멋진 작품들을 그려내는 화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다 내가 열광할만한 애정하는 화가를 발굴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미술관에 가본지 꽤 오래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너무나 미술관에 가보고 싶어진다. 어떤 그림이든 그림을 보고 일상을 잊고 온전히 그림에 대한 감상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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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전에, 이렇게 묻기로 하자. 캔버스에 붙박인 작품은 어떻게 시공을 넘어 감각되는가? 여기, 지금의 서울을 걷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의 경성과 서울을 거닐던 이가 있었다. 그림 앞의 그는 묻는다. 당신은 내게 무어라 말하고 있느냐고. 독자는 마주한다. 그와 자신의 세계가 중첩되고 엇갈리는 풍경을. 저자 우진영은 현대미술관에 몸담고 있다 한다. 현실의 폐부 깊숙한 곳, 그러니 이 한 권의 책은 쏟아지는 선과 면 사이에서 의미를 길어내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이가 묻고 답한 기록일 것이다. p.36 죄책감의 무게와 함께. 붓 끝까지 전해지던 야망을 애써 식혀냈다. 우리의 근대는 자주 또 때로 비정했다. 귀국 후 대구에 정착하며 그는 미술 교육에 힘썼고 행정가로 오래도록 활동했다. 기량이 절정을 향하던 때였다. 그 시간이 그에게 조금 더 허락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누구의 몫일까. p.88 두 화가가 그려낸 낯선 공간을 향한 애정에는 거짓이 없다. 감추어진 이야기의 공간과 넓은 여백에 나를 데려다놓으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것도 없으니 나라는 존재가 더욱 선명해진다. 망설였던 어떤 선택에도 자신이 생긴다. 스스로를 믿고 싶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타자화된 두 화가의 그림 속 시선은 현실에 대한 외면이 아닌 우리에게 보내는 찬사임을, 여름이다. 아, 서울. 이 징글맞게 번화하고 쓸쓸한 도시는 언젠가 망국의 모던이었고,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이 영영 그리운 기억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차가운 잿빛 거리일 뿐이다. 근현대의 질곡 속, 그 풍경을 거니는 이들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그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눈물겹고, 찬란했으며, 아프고, 당당했던가. 저자가 마주한 한 점 평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밤과 낮, 기억과 환상이 있다. 그림 너머의 그들은 외로웠고, 그리워했으며, 이따금 발랄하고, 사랑했다. 그를 알고 읽는다면 독자가 마주한 그림은 더이상 한 조각 창이 아닌 삶의 발자취이자 번뜩이는 이상일 것이다. p.111 나혜석의 〈자화상〉이 당혹스러웠던 건 솔직함 때문이었다. 같은 근대 시기 남자 작가들이 그려낸 '신여성'의 모습은 이와는 다르다. 단정하고 곱다. 정태적 시각이다. 오직 만들어진 여성스러움이다. 〈자화상〉 속 굳게 다문 입이 움직인다. "세상과 맞서는 진짜 신여성이 여기 있다." p.154 이혁이 그려낸 켜켜이 뜯겨지고 무참히 헐벗은 공간이 다르게 보인다. 더 이상 초현실적인 이세계가 아니다. (...)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행려하리라. 바라마지 않는 어떤 초현실의 먼 곳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행려도〉 속 개가 움직인다. 어둠을 뚫고. 살아가리라. 언젠가, 꿈이 두렵고, 불면의 시간이 두려워 뜬 눈으로 떨며 지샌 밤이 있었다. 감은 눈에 비치는 어둠이 두려워 내도록 이를 악문 채 버텨내던 시간이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밤을 지나온 날 어떤 그림을 보았다면, 돌아올 밤이 버거워 숨을 몰아쉬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떤 말은 천국이 아니기에 위로가 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방긋,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본디 깜찍과 끔찍은 한끗차이 아닌가. 까마득한 심연 앞에 도도히 치켜드는 얼굴을 믿는다. 괴이와 악몽, 그보다 더한 현실에 맞서는 눈을 믿는다. 마침내 이어진 시와 공의 접점에서, 저자가 마주한 그림은 말한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고. p.283 〈데우스 엑스 마키나〉 속 형상들의 신체는 다부지다. 심히 구부러지고 기이하게 들어져 있을지언정 단단한 몸이다. '상상과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본다. 캔버스 속 모티프들을 읽어내기가 두려워서였다. 중앙에 우뚝 솟은 막대는 짐승의 머리에 꽂혔다. 누구의 공격일까. 알 수 없다. 사방으로 삐죽한 뿔을 가진 이 생명체는 과연 죽음을 맞이했을까. p.339 악마들과 고야의 그림 속 고약한 신, 잠들지 못하는 화가와 곰돌이 인형들이 있는 이 장면에 함께하고 싶다. (...) 주제는 무거워도 그의 회화가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나에게 다정해지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악의'를 행했던 많은 순간들에게. 악마들과 함께 잠드는 우정수 회화의 주인공들처럼 오늘은 잘 자고 싶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20년대의 콘크리트 건물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활기찬 표상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과 그 사이를 메우는 회색 콘크리느는 그저 현실의 배경일뿐이다. 이 책에서 여러 의미의 콘크리트를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 작가 정영주는 화려한 마천루가 아닌 재개발로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산동네의 판잣집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한지 위에 따스하게 불을 밝힌 그 집들을 보며 이 도시가 단순히 차가운 구조물이 아님을 깨닫는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잊은 채 바쁘게 살다가 문득 달력을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벌써 12월이라니.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을 읽으며 잊고 있던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 피어나는 생명력을 다시 만났다.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오히려 가장 화려하고 명랑한 색채로 여름을 그린 백영수의 작품은 마음을 울렸다. 포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해바라기를 보며 어쩌면 예술과 삶이란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뚫고 기어이 희망을 피우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내 작가가 수만 개의 점을 찍어 완성한 여름 밤하늘도 너무 생동감 있었다.
마치 수행하듯 점 하나하나를 찍어 내려갔을 그 인내의 시간은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나의 일상과 겹쳐보였다. 혹독한 겨울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더라도, 그 끝에는 반드시 나만의 색채가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전해져 왔다.
이 책에서는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예술이라는 끈을 통해 시댈들 건너, 공간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밤하늘에 뜬 별처럼 반짝이는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와현대미술잇기 #우진영 #미술에세이 #직장인추천도서 #한국미술 #김환기 #나혜석 #정영주 #예술서적 #힐링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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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조선의 한양과 오늘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인지, 혹은 한국 미술사의 변화를 따라가는 여정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발레, 한국무용, 미술, 가야금, 장구까지 거의 모든 예술 교육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씩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싶어 대학원에 왔고, 예술과 사상을 공부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근대 미술을 향한 애정과 현대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예술가들을 만나며 스스로도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도시와 그림이 포개지는 한겹. “도시는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사라지는 풍경에는 도시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토로하는 슬픔도 스며 있다. “치열한 도시 속에서의 오늘이 괴로웠다면 지나간다고 다독여보고, 어제가 아쉬웠다면 새로운 날을 기대해본다.” 책은 이렇듯 묵묵하게 오늘과 어제를 잇는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열정과 냉정, 분투하는 도시의 공기가 모두 녹아 있다. 저마다의 사정과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인지 그림은 더 풍부한 색채로 보인다. 특히 작가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어 작품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림이란 풍경만 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일생까지 품어내는구나 싶었다. 과감하고 의도적인 붓질, 사랑하는 도시의 불빛을 기억하는 마음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일정한 테마 아래 서로 대화하듯 배치된 두 점의 그림, 그에 얽힌 설명과 작가의 일화는 시대와 예술의 서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내면의 욕망, 시대의 핍박 같은 것들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처럼 시대를 흔들어놓은 이들의 용기도 오래 남는다. 이름조차 몰랐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들의 시대적 낭만과 계절감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한국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는 도시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지 종종 궁금하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풍경과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한 면모가 사실은 내게 조금 먼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공간을 다루고 있기에, 작품 속 도시를 바라보는 감각도 어쩐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외감이 스며들었다. 마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풍경 앞에 나만 한 발 떨어져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