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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클래식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는 무릇 사람들이 우아하게 교양을 쌓는 문화 생활을 즐겨보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바깥에 선거 유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이를 상쇄시킬 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도 루틴처럼 듣고는 있지만 크게 관심이나 교양이 없어서 아직까지 내 '듣는 귀'의 수준은 문외한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와 어느 지휘자가 쓴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란 책이 눈에 들어서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가슴에 품고 이들의 공연을 다시 정중히 감상해 보았는데, 지휘자의 성향과 오케스트라의 훈련, 그리고 이를 보는 디테일한 관전포인트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흥미로움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즉, 내용 중에는 "오케스트라를 훈련하는 기술"이라는 표현으로 지휘자만의 성향이 드러나는데 '오자와'의 경우 당대 최고의 지휘자라 할 수 있는 '카라얀'과 '번스타인' 모두로부터 사사하여 지휘지도를 받았기에 상반된 두 스승의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코어를 읽는다"는 것 역시 자신만의 곡 해석이자 지휘의 처음이기에 더욱 치밀하게 파악하여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같은 곡도 지휘자가 바뀌면 음악도 달라지고, 같은 지휘자더라도 연주 시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음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 공간에서 연주자와 객석이 음악으로 함께 공감하고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지시를 내리면 개개의 연주자가 바람이 잘 통하게 돼요. 좋은 음악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것은 일단 스파크(발화)이고, 그다음이 마술이다. 음악은 그들 사이에서 '공감'을 구하고자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 행위 자체에서 청중 역시도 자연스레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음악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음은 나에게도 이제 단순히 소음을 덮어버리는 영역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이며 이를 이해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자와 세이지'님은 2024년 2월 6일 생을 마감하였다. 이 인터뷰가 2010년 11월부터 약 일 년에 걸쳐 이뤄졌으니 그가 식도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중 자신이 경주한 그간의 음악적 행적과 철학을 돌이켜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엔 '무라카미'가 '오자와 세이지 스위스 국제 음악 아카데미'와 약 열흘 간 동행하며 보고 느낀 바를 함께 교감하는 내용이 나온다. 무엇보다 진짜 좋은 음악을 다음 세대에 물려 주는 것, 그 확실한 감촉을 전달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던 '오자와'씨의 열정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벌써 2주기를 앞두고 있는데 그의 뜻을 이어 받은 음악가들이 널리 퍼져 나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좋은 음악'을 들려줄 것 같다. 어쩌면 인터뷰를 주도한 '무라카미' 역시 그러한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음악이란 것은 그 정도로 저변이 넓고 속이 깊기 때문이다.
#오자와세이지 #무라카미하루키 #리딩스타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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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음식처럼 접하기 쉽고 익숙한 대상이고 마치 향기와 같이 그것을 느끼는데 제한이 없는 포용성을 가졌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잘 아는 것 혹은 그런 개념이 있다면 잘 느끼는 것에 대한 장벽이 있다.
도래미파솔라시도 계이름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음악적 지식의 전부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정규교육을 통해 음악을 배우고,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과 힘께 해오면서도 가수 아무개, 시대적 유명세를 탔던 어떤 노래들을 알고 있는 것 외에 가창이나 연주의 기교와 정확성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가늠할 수 없는 건 아쉽고 스스로 못마땅한 생각이 들기도 하다. 좀 알고 있어서 잰채하는 용도로 쓰는 것민이라도 얼마니 효용이 있겠는가(?)
사실 문학을 애정하는 나는 문학을 통해 얻는 즐거움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조를 튱해서 이야기를 흐름 고조시키거나 완화하는 방식, 캐릭터의 구축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과 인과성을 확보하는 노력, 사건을 통해 복선을 만들고 은유와 같은 수사를 통해 가볍지 않게 서사를 형성하는 노력들을 작가의 의도와 관계 없이 독자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이헤하고 느끼는 재미가 문학이 가진 힘이고, 또 문학을 통해 보편적 가치나 철학의 코어를 간잡적으러 접하면서 실질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내적 근육을 키우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효용이다.
음악 도 분명히 그런것이 있고, 나는 그것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흡수하고 싶다.
클래식의 역사나 작픔의 해설에 관한 것도, 악기와 연주 기법 그리고 연주자의 스킬과 카타르시스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분석적 청취를 통해 취향을 구축하고 내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음악적 테라피를 활용하는 상상을 한다.
음악 애호가 수준도 못되는 사람으로서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믾이 듣고, 익숙해 지고 사랑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하고 잘 이해하고 싶은 만큼 찾아보아야하는데 그저 고고한 멋을 부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 정도 만큼 그 언저리를 떠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많이도 쫓아 다니고, 그 옛날 귀족들이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즐기며 어떤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잘 알지 못해고, 더 좋아지고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잘 듣고 싶다는 의지는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오자와 세이지라는 훌륭한 지휘자를 알게 된 것도 디행이고, 하루키의 고상하면서도 편집증적인 음악에 대힌 깊이 있는 이해에 질투보다 경외심이 든다.
수준 높은 위대힌 지휘자외 작가의 대화는 쫓지 못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분명히 음악에 대해서 좋았어 보다는 어떻게 좋았는지 어떤식으로 들렸는 지를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이해를 갖추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커피나 술 처럼 좋아하게 되면 더 상세하게 느끼게 되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듯이 말이다.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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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넘었으니 오자와 씨는 낼모레면 90을 바라보겠군요. 늦게나마 이런 대화형식의 책을 통해 오자와 씨의 음악세계를 무라카미 씨가 질문하는 형식으로 끌어내 오자와 씨의 오래된 경험담을 들을수 있게되서 너무 좋았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브람스, 1960년대 이야기들, 구스타프 말러, 오페라 이야기까지 오자와 씨의 경험담과 생각들을 들을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