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한 경험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특별한 경험을 이겨내는 힘 또한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일들 중에서 신이 갑작스러운 이벤트를 준비라도 한 듯 감각하지 못했던 일이 별안간 닥칠 때에는, 준비되지 못한 심신이 쉽사리 무너지기 마련이다.경험에도 정도가 있다면,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은 당사자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적어도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얻는 감정들은 일반적이지도, 친절할 리도 없을 터다. 하지만 발단이 긍정적이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각자의 방식대로 얼마든지 부정을 밀어낼 수도 있지 않나.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겪은 특별한 사실을 이야기처럼 그려 나간다. 새로운 사건을 마주한 탐정처럼, 과거로부터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베일 속에서 수면 위로 오른 진실과 마주한다. 자신의 삶의 역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수용하며 진실을 알고자 한다. 그 길 끝에 대단한 위안이나 정당성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 담담함에서 오는 슬픔과 희망을 우리는 고스란히 마주한다. 우리가 문학을 만날 때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담담함이 주는 깊은 슬픔이다. 담담한 말이 전하는 슬픔이나 담담한 모습이 주는 슬픔과는 다르다. 문학에서 이 담담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유들을 가져와 가장 빛나는 삶의 순간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로써 누군가의 사적인 경험도 우리의 경험이 되게 한다. 그들의 전쟁도 우리의 전쟁이 되고, 그들의 슬픔도 우리의 슬픔이 되게 한다. 이러한 유대적이고 성찰적인 연결은 진실을 만날 때 더 견고해지고, 그런 이야기의 힘이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작가는 자신에게 닥친 거대한 침묵을 자연을 통해 축소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원을 가꾸는 엄마를 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치유와 연결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일들은 작아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직접 손으로 느끼는 정원의 생동은 그녀의 많은 짐을 덜어주고, 삶의 부분들에 가장 알맞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인생은 정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나날이 흐르는 흐름 속에 그저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우리를 자연 안에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빈틈과 디테일로 가득 찬 인생은 무언가를 파헤치기보다 그것 그대로 지켜봐 주어야 한다고, 함께 걷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의 서사를 통해 우리에게 좀 더 많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은 모두 사랑을 알아차리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사랑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정말이지, 언제 어느 때고 다시 꺼내볼 때마다 새로운 보물로 다가올 몹시 아름다운 책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선물 같은 기회를 주신 바람북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랑 앞에 우리가 매정해지지 않도록, 우리가 보듬을 것들 앞에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를,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이처럼 자주 무너지는 세상에는 너무 당연하게도 더 큰 사랑이 필요하지 않나. 가장 인간적인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바깥의사랑들 #쿄매클리어 #바람북스 #서평 #책추천 #도서추천 #북서평 #booklover #book |
|
《 바깥의 사랑들 》 - 흙과 틈 사이로 자라난 비밀과 상실 그리고 식물에 관한 이야기 _쿄 매클리어 (지은이), 김서해 (옮긴이)바람북스(2025-10-25)원제 : Unearthing “까다롭게 굴고 싶지는 않지만, 내게 예전엔 아버지가 한 분이었고, 그러다 두 분이 되었고, 지금은 사실상 한 분도 없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작가 자신과 가족, 주변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한 분의 아빠가 돌아가신 후, 공립 온실을 찾아갔다. 7주간(49제)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식물이 가득한 유리 건물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을 녹였다. 깊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식물원으로 스며들어간 것이다. 식물원을 택한 이유는 작가가 꽃, 식물재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식물 사랑은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식물원 직원이 작은 식물이 한가득 놓인 물받이 쟁반을 들고 왔다. “블루 초코스틱스 예요” 그가 말했다. 작가가 속으로 “너는 어디서 왔니?” 그는 마치 작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건 남아프리카에서 왔어요” 하고 답했다. 그 멀리서 이 (다육성)식물은 박물관이자 식물원인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잠깐 자신의 처지를 대입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런던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네 살 때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작가는 식물을 심고 가꿀 때마다 자신의 뿌리는 어디에 내려놓아야 하는가 고심했을 것이다. 혈통과 뿌리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부계 쪽 계보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특히 아빠의 엄마인 작가의 할머니의 삶이 궁금해졌다.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친구가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DNA 검사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DNA 키트 플라스틱 튜브에 침을 뱉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DNA 검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한 DNA 회사가 그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개인의 타액 샘플을 우편으로 보내면 조상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최초로 제공한 업체이다. 2022년 말 기준 500만 명 이상의 DNA를 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석결과에서 ‘내 친척 현황’을 클릭하면 그동안 전혀 모르고 있었던 형제, 자매들이 수두룩하게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두 가지로 정리된다. 부모의 외도 또는 정자제공). 작가는 DNA 검사결과를 받아보고 혼란스럽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빠와 자신의 DNA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를 세상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누구인가?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보자 대답이 애매하다.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후 작가는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자신의 출생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수사(?)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 돌아가신 아빠가 무정자증이었다는 것과 아마도 누군가 정자 기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내 친척 현황’을 통해 알게 된 여러 피붙이들과 폰이나 웹상으로 소통한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생부의 존재에 상당히 근접해졌다. 사진까지 얻게 된다. 엄마 옆에서 그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작가가 한 마디 했다. “잘 생기셨어” 그러자 그 동안 생부 이야기라면 입도 뻥끗 안하고 피하기만 하던 엄마가 무슨 변덕인지 한 마디 했다. “응, 잘 생겼었지”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작가 부부는 얼음땡이다. 잠시 후 작가의 남편은 슬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모녀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엄마가 무심히 툭 던진 한마디 때문에 이 책의 분량이 두 배로 늘어났을 것이다(그 만큼 이야기 거리가 보태졌기 때문에). 작가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작업, 식물재배, 백인들의 틈에서 이민족(특히 아시안)이 받는 차별과 멸시(생부의 조상인 유대인도 포함된다)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진다. 후반부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그리고 엄마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지난 기억을 회복시키고자 애쓰는 딸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책의 원제 Unearthing은 1) (땅 속에서)파내다, 발굴하다 라는 뜻과 2) (비밀 또는 원인을) 찾다, 밝혀내다 라는 뜻이다. 책 제목을 잘 지었다. 『바깥의 사랑들』이라는 번역제목도 안성맞춤이다. 작가의 두 아빠는 ‘바깥사랑’에 매우 열심이었다(그런 면에선 작가의 엄마도 만만치 않지만). 유명작가이기도 하지만, 대학에서 ‘창의적 글쓰기’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글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아울러 책을 옮긴이 김서해 작가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책을 읽는 중, 외서 번역서가 아닌 국내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처럼 걸림 없이 부드럽고 섬세하기까지 하면 매우 잘 된 번역이다(나의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바깥의사랑들 #쿄매클리어 #김서해 #바람북스 #쎄인트의책이야기2026 |
|
아마도 곡우나 대서 즈음의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번역 중인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출간을 기다리다가, 한로와 상강 사이에 출간되자마자 읽기 시작했습니다. 『바깥의 사랑들』은 원제 Unearthing이 의미하는 것처럼 흙 속에 묻혀 있던 관계와 기억을 끄집어내는 책입니다. 이 책의 시간은 절기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지만, 책의 내용이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고 있어요. 책에는 엄마, 아버지, 비밀, 뿌리(생물학적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외국살이(alien experience) 같은 주제들이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주제가 얽혀 있는듯해서 파악이 어려웠는데, 곧 그것이 삶의 모습이겠지요. 책의 표지와 본문 곳곳에는 음각으로 새긴 잎사귀와 나뭇가지의 삽화들이 등장합니다. 그 도장이 삶 속의 어떤 사실이나 경험이라면, 종이 위의 삽화들은 그것이 어떻게 반복되고, 또 어떻게 다르게 찍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
✔️ 한 줄 요약 : 작가의 정원에 숨어 들어가 흙 한 줌 가져 나와 내 정원에 뿌려본다.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내 정원에서도 꽃피워주길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미신을 믿는 삼촌에게서 가문에 저주가 내려져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때부터 였을까? 작가는 선대의 영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DNA 검사를 실시한다. 결과는 50%는 엄마와 같은 일본인, 50%는 백인인 아빠가 아닌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즉 평생 아빠라고 믿어온 사람이 생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보지만 엄마는 교묘하게 말을 흐리는 등 무언가를 계속 숨기고 있다. 진실을 알고 싶었지만 엄마는 암을 진단받고 수술과 치료를 해야 했고, 종국엔 치매 증상이 나타나며 이야기는 번복되기 일쑤였으며 기억에 오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작가는 결심한다. 엄마의 또 다른 언어인 흙과 비료, 식물들과 친숙해지자고. 📖 나는 엄마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엄마가 가장 잘 아는 언어 속에 존재했다. (…) 엄마가 두 번째로 유창하게 구사하는 언어를 선택했다. 엄마가 내게 결코 강요하지 않았던, 바로 그 거칠고 푸른 언어를. (p.20) 엄마가 정원을 파헤치고 뒤엎기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며 작가 또한 진실을 파헤치고 때론 뒤엎고 다시 파헤치기를 반복한다. 중간 즈음부터 엄마의 비밀이 밝혀지고 일본인이라는, 그리고 엄마라는 틀에 가둔 고약한 도덕주의적 생각들은 떼어내고 그저 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곧이어 생각지도 못했던 아빠의 비밀 역시 드러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혼혈인으로 살아온 저자와 이주민들의 삶을 식물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한 내용들이었다. 특히, 저자는 이주민을 “이국적인 표본, 잘 가꾸어진 희귀 품종, 질서 정연함은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기이한 식물 표본 시트”들에 빗대어 표현하고, 백인들은 “야생 식물, 고유한 주소지에서 자생하는 생명”으로 표현하는 등 감탄을 자아냈다. 작가는 “은유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로 가족을 만들어내는 방식”(p430)이라고 말한다. 이주민들의 삶을 식물에 투영하며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이 식물들을 통해 상호의존과 공생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식물들이 제 의지와 무관하게 고정된 자세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낯선 정원에서, 식물들이 갑자기 움직이기를,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p104) 가계도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유대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부의 처절한 삶도 그려진다. 파시즘이 기세를 올리고 있던 1940년, 그들은 비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명을 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으며, 숨죽여 말하고 모든 것을 억눌러야 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결코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 동화되는 것은 까다롭다. 눈에 띌 정도로 달라서 호감이 가고 흥미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위협적이거나 괴롭힘을 “자초”할 만큼 너무 다르게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 (p.267) 가장 최근에 있었던 팬데믹 때는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혐오 범죄가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바이러스에 국적을 부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상징”(p370)으로 작가가 겪었던 경험들은 그 당시 백인 사회 속 아시아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이 외에도 작가는 이런 많은 비밀 속에서도 부모님들이 왜 결혼이라는 법적 제도를 끊어내지 않았는지를 고민하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그들이 가진 감정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제 끝났구나 싶을 때 즈음 또다시 새로운 조각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장은 “후기”라는 제목을 달고 각종 성찰을 하는 동시에 앞의 이야기들에 이은 반전의 조각을 덜컥 건네기도 한다. 결국 이 책은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마음의 끈을 묶는 걸까.” 동시에 수많은 주제들을 다룬다. 혈연, 이민, 인종차별, 식민주의, 파시즘, 그리고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사랑까지. 이 모든 것들이 식물에 비유되고, 그 속엔 철학이 담겨 있으며, 작가만의 해석과 깨달음이 담겨있다. * 바람북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엄마는 깊이, 아주 깊이 심었다. 파내고, 끙끙대고, 들어올리고, 다져 넣었다. 마치 마음속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반복해서 되씹듯, 흙을 자꾸 뒤집었다. 엄마는 도저히 치유되지 않는 것들을 무디게 하기 위해, 세상과의 싸움을 멈추기 위해 흙을 사용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땅을 일구었고, 먹기 위해 심었으며, 수확한 것들을 작은 종이봉투에 담아 나에게 건넸다. 엄마는 익숙한 규범을 뒤집고, 일반적으로 예쁘다고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면서 내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이한 아름다움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돌나물에도, 유포르비아에도,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서양향나무에도. p.207 가끔 그런 책을 만난다. 자아와 텍스트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나와 책 사이에서 마법같은 화학적 반응이 느껴지는 그런 책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말하는 한 방식이라면, 이 책은 분명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그저 홀린 듯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 단연코 손에 꼽을 만큼 좋았던 책이다.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DNA 검사를 통해 석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서로의 진정한 말벗이라고 생각해왔기에 그 결과는 큰 충격이었다. 이 책은 오래도록 숨겨져 있던 가족의 비밀, 과거와의 연결고리, 생물학적 기원과 뿌리를 찾으려는 긴 여정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집 앞 뜰을 정원으로 가꾸고, 보살피는 식물의 언어였다는 점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사람이었고, 오래 묵혀둔 가족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저자는 자신의 유전적 계보를 추적하며 어머니의 또다른 언어인 가드닝을 통해 천천히 부모의 삶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식물의 시간으로 상상한다는 건 우리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를 따라서 나도 정원의 언어를 구사해보려고 애쓴다... 엄마는 나에게 겉껍질, 뼈대, 겨울의 줄기로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 우리는 단풍나무의 마지막 다섯 잎을 휩쓸어가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땅을 덮은 진흙의 칙칙함으로 말하고, 영양분 가득한 부패의 냄새로 말한다. 우리는 또한 공기로 말한다. 퇴비로 가득 찬 공기, 젖은 쇠와 피 냄새가 배어 있는 공기로, 우리는 언어로 채 담지 못하는 것들을 만진다. 나는 잠시 믿게 된다. 정원의 분해 과정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 엄마의 쇠약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죽은 꽃들이 건네는 본질적인 조언을 듣는다. 그것이 아름다운 풍경이 꾸며낸 거짓이든, 눈송이가 얇게 쌓인 매혹적인 폐허의 기만이든 상관없다. p.338 이 책은 일본의 24절기를 단락의 제목으로 하고 있다. 덕분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지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부터 겨울을 마무리하는 대한까지 일 년 열두 달을 24절기로 나눈다. 봄비가 내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우수, 본격적인 논농사 준비를 하는 청명, 보리 베고 모 심는 망종, 여름 더위와 장마의 시작 소서, 더위가 그치고 가을이 다가오는 처서,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한로, 겨울 첫눈이 내리는 소설, 겨울 중 가장 추운 때인 소한 등등 절기는 1년 동안 하늘을 지나가는 해의 발걸음을 스물네 걸음으로 나눈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계절을 24개의 셋키(절기) 또는 계절의 마디들로 나누어 기록한다고 한다. 다이칸(대한), 슌분(춘분), 세메(청명)... 소코(상강), 릿토(입동), 토오지(동지)로 구분되어 있는 장들은 2019년 1월부터 시작해 2021년 9월까지의 시간들을 담고 있다. 원제인 ‘Unearthing(파헤치다)’은 땅을 파헤치고, 식물을 심고 돌보는 행위와 작가 자신의 유전적 위치를 확인하는 일, 가족의 새로운 연대기를 구성하는 작업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 혼혈 여성으로 살아온 정체성, 부모 세대의 전쟁과 이주, 동화의 역사 등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종과 문화, 사랑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한다. 식물을 엉뚱한 자리에 심으면, 정원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사정없이 일러주며,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며 통제하려 드는 강박을 비웃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종이와 잉크로 좁아진 나의 길을 벗어나는 우회로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저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랑하는 딸, 또 하나의 이야기를 줄게.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로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잊은 것들로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라고. 그러니 모든 점이 선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든 것이 무늬처럼 자일 수는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저자는 칼데콧 아너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림책 작가다. 국내에도 저자의 꽤 많은 그림책들이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에세이, 논픽션을 써 주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여름은 고작 계절>의 김서해 작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쿄 매클리어의 아름답고 사색적인 문장을 너무도 섬세하게 고스란히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든 페이지를 옮겨 적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문장들로 가득한 이 눈부신 작품을 놓치지 말자! |
|
이 책은 혼혈 이민자 여성이 자신의 가족 역사와 정체성을 다시 발견해가는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만약 내가 평생 믿어온 관계와 혈연, 그리고 삶의 모든 기반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이 생물학적으로는 그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한 줄의 결과는 그녀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뿌리와 소속감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하기 시작한다. 책의 원제는 《언얼씽(Unearthing)》. ’파헤친다‘는 뜻의 제목처럼, 이 책은 기억과 관계의 땅을 조심스레 뒤집는 여정을 담고 있다. 각 챕터가 일본의 ’절기(節氣)‘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계절의 미묘한 변화처럼 작가의 내면과 가족의 이야기도 작은 균열과 떨림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정원을 돌보는 일이 흙을 헤집고 다시 씨앗을 심는 일이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인간관계 역시 그런 반복 속에서 자라나는 게 아닐까. 숨겨진 기억을 마주할 용기, 다시 사랑을 심어가는 마음. 어쩌면 ‘파헤침’은 아픔의 다른 이름이자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진실이 언제나 구원을 가져다 주진 않는 것 같다. 때때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분노, 혼란, 공허함, 수치심, 그리고 깊은 슬픔을 수반한다. 작가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은 어쩌면 백인 남성과 결혼한 동양인 이민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침묵의 언어는 아니었을지. 그리고 그 비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평생을 경계 위에서 자라온 딸뿐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이해와 오해, 사랑과 거리감이 교차하는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 엄마와 딸은 결국 서로의 그림자를 닮아간다. 이 책은 사랑이란 결국 돌봄의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읽는 내내 가족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혈연이 나를 정의하는가, 아니면 내가 사랑한 기억이 나를 만드는가. 만약 가족이라는 관계가 혈연과 유전의 끈이 아니라 기억과 돌봄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거라면, 내 삶의 정원을 가꾸듯 이들을 소중히 돌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선택하고 길러내는 관계로서의 가족 말이다. 《바깥의 사랑들》은 결국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심고 돌보는 이야기다. 사랑과 기억으로 삶의 정원을 가꾸어가는 일. 그 속에서 나또한 내 뿌리를, 그리고 나를 자라게 한 모든 손길을 떠올렸다. 멋진 책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며 조심스럽게 올해의 책으로 꼽아 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돌아가신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라는 비밀을 알게되며비롯된 여정, 편협함을 벗어나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고, 무엇을 앞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와 통찰이담긴 에세이 『바깥의 사랑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혈연을 넘어선 친족성, 유전을 넘어선 계승에 대한 이야기”이며 “인종과 이주, 전쟁과 동화, 그리고 제멋대로 흐르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상도 못한 유전자 검사 결과에서 비롯되어 비밀을 파헤치는 저자의 여정을 함께하며 느낀 것은 얼마나 무수한 사색과 상념에 잠기었을지 가늠도 못하겠다는 거다. 그 소중한 깨달음과 성찰들을 책 안에서 만나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차마 다 담기지 못했을 저자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통찰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2021년 가을/ 후기: 나는 기억한다 챕터를 읽고 또 읽어보았던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페페 올메도가 마르타 곤살레스에게 그랬듯, 나 자신을 기울여야한다”는 말과 행동을 보인 저자처럼 나의 지워지지않는 가족을 이해해나가고싶다 책의 구성이 흥미로운데 24개의 절기로 나뉘어있다! 엄마의 언어로 식물을 선택해 정원을 가꾸며 엄마의 영토에서 그녀의 방식대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길을 개척한 저자와 책의 후반 쯤 나오는 <사랑하는 딸에게> 라는 장이 맞물리며 마음을 울렸다…🥹 생각해 볼 거리, 저자의 깊은 통찰이 가득 담긴 <바깥의 사랑>이야말로 재독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 |
|
Unearthing : 발굴 이라는 영어 제목과 함께 놓여진 한국어 제목은 ‘바깥의 사랑들’이다. 책을 펼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엇의 바깥인지는 매우 빠르게 알 수 있다. DNA 바깥의 사랑. 알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저자가 자신이 알게된 질문(혹은 진실)에 피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며 파해치는 모습에서는 ‘Unearthing'이라는 원제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구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식물과 혈연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듯한 글이였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와 혈연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며 서로 별 상관없는 각자의 내용을 갖고 있는 척 흘러가다가 동일한 의미를 드러내며 정렬된다. 수색천사와 수목관리사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놓은 부분도 그렇고 많은 장면들이 마치 영화속에서 두 씬이 교차편집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듯이 식물이야기와 혈연이야기를 함께 보여준다. 진솔하면서도 강력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혈연에 관한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일상적인 식물이야기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 또한 한쪽의 이야기에서 알게되는 감각이 다른 이야기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주기도한다. 초반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서느라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저자의 고민은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해까지 이른다. 혈연을 통해 친족성이 확인되고 구성되는게 아니라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과 성립되는 관계들이 인간을 구성한다는 결론으로 저자는 자신이 알게된 질문의 답을 내놓는다. 독자에게도 사랑은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깥에서도 충분한 공간이 있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은 피와살로만 이루어진게 아니라 정신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결론과 저자의 어머니의 질환을 함께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끝에서 저자의 다짐이 더 결연하게 느껴진다.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게 자신의 의무라는 이유로 모두 써내린 용기와 사랑이 가득한 글이다. |
|
사람마다 슬픔의 정도가 다르고, 애도의 형태도 다르다는 쿄의 말은 오랫동안 묻어 놓았던 감정을 불러왔다. 괜찮아졌고, 그렇게 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도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만으로 해결될 만큼 시시한 감정이 아니다. 내 나이 만 16세 봄에 아버지는 영면에 들었다. 매클리어와 다르게 나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삶을 좀 더 내밀하게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였으니까. 매클리어는 마음에 가둔 아버지를 온실 속에서 보내주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있는 스파티필룸이 꽃을 피울 때마다 아버지를 상기했고, 스노우 사파이어가 풍성하게 제 모양을 갖춰갈 때도 아버지를 놓아주지 못했다. 몬스테라의 공중 뿌리는 마치 눈이 있는 것처럼 흙을 찾아 파고들었고, 줄기도 점점 두꺼워졌다. 새로 나온 잎들은 더 과하게 찢어졌고, 더욱 거대하게 성장했다. 이 식물들은 하나같이 달라졌다. 스파티필룸은 많은 낙엽을 떨구었고, 몬스테라의 첫 잎들은 그 흔적만 남긴 채 두꺼운 줄기의 훈장이 되었다. 어설픈 양육에도 불평 없이 쑥쑥 자라는 식물은 금가고 깨진 자아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나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습기가 가시고 가파른 추위가 찾아온 10월 말, 늦었지만 이제 나도 쿄처럼 아버지를 보내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