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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
"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 내용보기
김하늘 시인이 《샴토마토》(2016)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시집 《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타이피스트, 2025)이 도착했다. 색감과 디자인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겨울 감성 물씬 풍기는 예쁜 표지다. 그러나 막상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어보니 혼자 상상했던 분위기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재밌고 발칙한(?) 반전이었다.1. 김하늘 시인의 겨울은 몽글몽글, 따뜻함, 크리스마스,
"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 내용보기
김하늘 시인이 《샴토마토》(2016)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시집 《너의 지옥으로 사뿐사뿐》(타이피스트, 2025)이 도착했다. 색감과 디자인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겨울 감성 물씬 풍기는 예쁜 표지다. 그러나 막상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어보니 혼자 상상했던 분위기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재밌고 발칙한(?) 반전이었다.

1. 
김하늘 시인의 겨울은 몽글몽글, 따뜻함, 크리스마스, 캐럴 등 이런 신나고 밝은 류의 감성보다 적막, 정적, 고요, 고독, 그리움, 상실, 결핍의 감성이 좀 더 느껴진다. 「그날은 대설주의보가 내렸다」와 「눈이 오면 핑계가 필요하지」의 경우 이러한 느낌이 잘 묻어 있다. 이 시 두 편을 읽고 일본 영화 《러브레터》(1995)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적이고 죽은 옛 연인이라는 상실의 아픔을 겪어서 이를 그리워하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떠올랐다. 「그날은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화자가 담담하고 절제되게 풀어내는 겨울 풍경, 눈, 차가운 겨울 공기, 고구마로 매개되는 일상의 회상이 히로코의 과거 회상과 유사하다. 특히 눈 소리가 언젠가 자장가가 되길 바란다는 마지막 문장은 히로코가 약혼자를 잃은 겨울이라는 상실의 계절을 지나 평온하길 바라는 영화의 결말과 닮았다. 「눈이 오면 핑계가 필요하지」 역시 옛 연인의 흔적, 보내야 하면서도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조심스럽고 소심한 집착과 그리움의공존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히로코와 닮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두 시는 히로코가 오타루 어딘가에서 세상을 떠난 약혼자를 향한 그리움과 애도가 담긴 편지를 읽는 느낌이다. 

2.
「나의 우울이 가치있기를」은 나의 우울증도 사랑해달라는 그런 이기적인 의미가 아니라 모종의 상처로 인한 화자의 우울이 누군가에게 방향과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독자들 가운데 김하늘 시인의 전작을 읽고 공감과 위안을 받았다는 분들도 더러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무튼 시 속 ‘나의 우울’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맥락없는 하루, 덜 불편한 날이 많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던’ 즉 평범하지 못했던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결핍처럼 읽힌다. 
이 시를 읽으니, 2025년 하반기 극장가의 화제였던 일본 애니 영화 《체인소맨: 레제 편》이 떠올랐다. 시의 내용은 영화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레제의 과거와 정확히 겹친다. 화자가 자신의 우울이 가치가 있기를 바라는 태도는 레제가 자신의 비극적 경험을 통해 오히려 덴지에게 평범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역설적인 장면들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특히 영화 최후반부에 꽃을 들고 덴지에게 향하는 레제는 시의 화자가 ‘너’에게 가기 전에 수선화 한 송이 구매했다는 구절과 겹친다. 어쩌면 평범하게 자라지 않은 사람이 평범함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3. 
김하늘 시인의 전작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상처, 우울, 결핍, 고독, 시니컬, 슬픔, 체념하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이러한 느낌은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이러한 다수가 외면하는 소위 부정적인 감정을 시로 표현하여 감정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함이 김하늘 시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작과의 차이점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랄까.. ‘너’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설사 불구덩이 지옥일지라도 사뿐사뿐 도도한 발걸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결연하되 재치있는 의지와 여유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하늘 시인이라고 늘 시니컬한 시를 쓰지 않는다. 전작에서 사랑에 대한 시를 쓰더라도 다소 시크하거나 어른의 분위기를 자아냈던 김하늘 시인이 고양이에 대한 시를 쓸 때는 한없이 사랑스러워지고 다정하다. 「Pit a pat」과 「NEAR DEAR」을 읽으니, 김하늘 시인의 고양이 사랑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김하늘 시인도 온 세상 여타 고양이 집사들처럼 아기들 한정으로 무장해제되나보다. 세상 모든 고양이 집사들이 두 시를 읽는다면 반려묘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울고 웃고 하면서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 두편의 시 뿐만 아니라 시집 곳곳에 고양이는 많이 언급된다.

4. 
최애 시는 비밀이고, 산문 「편의점에서 구원도 팔았으면 좋겠어」에 좋은 구절 인용하면서 끝.

“모든 존재가 우연처럼 다가온 것 같지만 때로는 숙명적이었을 것이다.”
e*******d 2025.1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