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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얼마나 반복하면 전문적이고 아름다워질까. 내 슬픔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시를 읽을 때는 아니었는데, 읽고 쓰기 시작하니 문득 사강의 작품이 떠오른다. 벌써 가물가물한 사강의 책 속 슬픔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린다. 사강 특유의 감각이 도드라졌던 기억이다. ‘슬픔이여, 안녕’ 속 아프고 가벼운 슬픔은 성숙을 위한 발판이었다. 시인 리산의 시에서 슬픔은 ㅡ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갈고닦아 견고해진 슬픔. 연약하지 않고 단단하게, 철을 단련하듯 계속해서 두드리고 담금질을 한 슬픔. 그렇게 완성된 아름다움. 슬픔을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시인이 그러했듯 순수한 슬픔은 반길 만한 것일 수도. 슬픔을 이겨내고 반기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슬픔이란 끓어오른 감정을 담근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슬픔은 모두 단순반복 노동처럼 익숙해지기.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시로, 슬픔으로 소화하며 또 살아갈 수 있다. 시는 언제나 어렵지만, 재밌게 읽었다. *교유당서포터즈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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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모두 읽어내는 것보다 한 구절이라도 시인의 시선으로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예상보다 난해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처럼 전문적인 느낌을 주는 이 시집은 완독했을 때 큰 성취감을 안겨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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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같기도(34p) 하고, 예술가의 향이 진하게 배인 시집. 리산이 노래하는 슬픔은 아름답다. 천둥과 번개 뒤에는 무지개가 온다는 것을 (111p) 알려주는 따뜻한 사람이다. 심장이 나이테 없는 나무토막이 되도록 사랑을 내어준 마음은 슬퍼요. -122p 이 모든 게 환상을 믿는 것(129p)이라도 뭐 어떤가요. 믿는 게 곧 현실이죠. 어쩌면 제가 같은 코드라고 느낀 건, 머무르면서 떠나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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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교유당 서포터즈로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 서서 글을 쓰는 사람 ─ 「발자국은 꽃잎 모양」 中 「헬레네, 아름다운 헬레네」 헬레네는 제우스와 레다의 딸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미녀로 손꼽히는 반신(半神)이다. 헬레네가 가진 그 아름다움은 트로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이 되었다. 많은 남자가 헬레네를 쟁취하기 위하여. '아름다움'은 말을 하는 상태가 아니다. 욕망의 대상이 될 뿐. 헬레네의 구혼자들은 아름다운 헬레네를 갖기 위해 전쟁을 하지만, 트로이 전쟁의 서사를 듣는 이들이 헬레네의 진정한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던가? ─ 지난여름 무렵, 말해지지 못하고 남성 서사 속 장치로만 이용되었던 신화 속 여인의 서사를 새로 쓴 장편소설을 읽었다. 여자의 권위가 남자보다 못했던 그 오래전 스치듯 등장하고 왜곡된 여성 캐릭터에 현대의 시선으로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라는 소설이었다. 『키르케』를 읽으며 신선함과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더 많은 지워진 여성의 목소리는 얼마나 될지, 씁쓸한 마음으로 떠올리기도 했다. 책 띠지에 적힌 '전 세계에서 쏟아진 찬사!'라는 문구를 보며 또다시 지워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 스스로를 표현할 길 없는 무대 (…) 당신의 언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구하러 갈 수 없었습니다 ─ 「서서히 (눈)물로 채워진다」 ─ 2006년 가을 <시안>으로 등단하고 창비 시선집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주세요』 등으로 자신만의 시를 써내려왔던 리산 시인이 교유서가 시집을 통해 새 작품을 공개했다.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 그때 우리는 슬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우리의 슬픔은 증폭되고 슬픔 외엔 관심이 없었지 우리의 슬픔은 주말이면 무럭무럭 번성하고 우리는 우거진 슬픔 속에서 잠이 들고 음악을 듣고, 이를테면 그 시절 우리는 휴일 저녁 슬픔의 전문가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웠네 ─ 「Veinte Años」 이 시집을 받고 읽으며 떠올랐던 것, 시인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대상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거나, 지워진 여성들이었다. 시인은 이러한 페미니즘적 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인 전달이 아닌 우회하는 방식으로 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각 장에서 언급되는 이름 '헬레네'와 '스스로를 표현할 길 없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 구하러 갈 수 없'는 언어, 그리고 누군가가 건넨 책은 '예전 책에는 없는 부분이고 상위 개념의 문제'라는 표현들. 문자조차 감히 배울 수 없었던 까마득한 과거와 오늘날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란 마치 낯선 나라의 이방인과도 같고, 토해지듯 태어나는 여성들은 영광이 이미 지나간 폐허에서 축제를 하고 숲에서는 노화를 숨기는 가장행렬을 한다. 세상에 상처 입고 고통스러워도 겨우 물푸레나무로 만든 신발을 끌며 설산을 넘어가는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그럼에도 여성이 가지는 강인함과 희망을 비추고, 몇 년 간의 불면 이후 가하는 고작 거울을 깨는 행위는 물리적 폭력은 되지 않은 여성의 상징적 분노가 서려있다. 여성을 위한 시, 여성을 위한 시집. …아마도. 소설가 김숨과의 산문이 시집 말미에 실려있다. 아직 시 읽기가 어려운 초보 독자로서 늘 시집 뒤에는 해설이 있기를 더 바라지만, 시집의 여운을 좀 더 유예할 수 있도록 노래하는 듯한 두 사람의 이야기 역시 좋았다. 곱씹어 보면 해설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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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집을 조금씩 읽으며 ‘시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교유서가에서 출간된 리산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예요. 제목부터 이미 이 시집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표지는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부농부농’한 색감이지만, 시집의 분위기는 오히려 겨울에 더 잘 어울립니다. 겉모습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공기와 외로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위로가 담겨 있죠. 리산의 시는 섬세하면서도 묘하게 단단한 인상을 줍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저의 20대를 떠올렸어요. 친구들과 사랑 이야기를 하며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인 양 웃고 울던 시절이요. 그때의 감정은 어설펐지만, 동시에 진심이었기에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시인은 그 시절의 서툰 슬픔조차 따뜻한 시선으로 껴안습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리산의 시 세계가 느껴집니다. 어둠 속에서도 등불을 켜는 마음,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쓰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죠. 그의 시는 슬픔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슬픔’이라는 감정이 단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슬픔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마주할 때, 그 안에서 비로소 따뜻함과 생이 보이니까요. 리산은 그런 ‘정직한 슬픔’을 시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리산의 시는 숨은 뜻을 애써 찾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문장 그 자체의 리듬과 온도가 읽는 이를 끌어당기고, 복잡한 해석 없이도 마음이 움직입니다. 시를 어렵게 느꼈던 독자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덮으며 슬픔은 어쩌면 살아 있는 증거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연말리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억수같이 내리는 빗속에 폐허가 된 성의 뜰에 도착해/굶기를 밥 먹듯 하는 사이비 귀족에게 재워달라고 부탁하는/루이 14세 시대의 유랑 배우들처럼//방문객들이 도착한다 계속해서 도착한다/앉을 곳을 이리저리 찾는다 계단에 앉는다/문 뒤에 앉은 사람들 때문에 현관문은 열기도 어렵다/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정원에 모여 음식을 만든다 - '겨울 샐러드' 중에서, p.33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소후에 시인의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연두색,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는 빨간색, 리사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는 핑크색인데, 표지 빛깔에 맞는 컬러로 그라데이션을 준 내지도 너무 예쁘다. 사실은 이 내지 때문에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를 앞으로 계속 모으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ㅋㅋ 리산 시인은 아주 오래 전에 문학동네시인선으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라는 시집으로 만난 적이 있다. 눈 앞에 장소가 그려지는 듯한 서사성이 강한 시라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난 시집도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 스토리가 보이는 시들이라 참 좋았다. 이번에는 '교환독서'로 읽게 되었는데, 한 권의 시집을 함께 읽는 시간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유와 함축의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집은 교환독서로 읽기에 정말 훌륭한 텍스트가 아닌가 싶다. 시집을 읽고, 생각하고, 메모된 글을 읽고, 시를 다시 읽으면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도 느끼게 되고, 나와 다른 방식의 감상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폐허 위에 눈이 내리고, 환하게 불을 밝히며 지나가는 밤 기차를 타고, 허물어져가는 신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상상을 해본다. 전나무가 길게 늘어선 숲, 꽃들은 눈처럼 향기롭게 떨어집니다, 발밑으로 길어지는 당신의 낭만,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건, 꿈꾸는 이상적인 울적한 하루가 전부여서, 마른 꽃들은 발밑으로 떨어지고,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허밍을 하는, 이 낡고 오래된 집에서도, 왜 꿈은 오래 꿈꾸던 꿈일 수가 없는지 - '산책에서 돌아오지 않기' 중에서, p.108 이 시집은 특히 '시인의 말'이 좋았다. '오래된 마음은 가라/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뛰어드네/다시/맨 처음으로'라는 짧지만 임팩트 있는 문구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리산 시인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다시 펼쳐 보았다. 역시나 시인의 말은 짧았다.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고 한다. 내 시의 대부분은 휴일에 씌어졌다.'였다. 2013년 5월에 나왔던 시집과 2025년 12월에 나온 시집을 함께 두 손에 들고 오고 가며 번갈아 읽었다. 비슷한 듯 다른 느낌, 시간의 밀도 만큼 다르게 읽히는 시들이 참 좋았다. '겨울 샐러드'라는 시도 즐겁게 읽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요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파티의 한 장면을 그린 시인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따뜻함으로/가득하게 아주 많이 철철 넘치게'라는 대목처럼 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상하게 따스한 느낌이 들어 겨울밤에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시였다. 이번 시집에는 해설 대신 김숨 작가님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시같은 소설을 쓰는 김숨 작가님의 글과 소설처럼 읽히는 시를 쓰는 리산 시인의 글이 너무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리산 시인의 산문을 읽어 보고 싶다. 리산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산문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언젠가 시의적절 시리즈에 한번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