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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최성운의 사고실험>이라는 채널이 있는데 거기서 처음 조수용이라는 사람을 알았다. 말을 하는 태도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사용하는 언어는 더하거나 뺄 게 없었다. 사전에 협의된 인터뷰인만큼 질문도 미리 받고 대답도 미리 준비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는 습관까지 준비할 수는 없다. 대답이 대본이라면 태도는 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연기를 하지 않는 보통의 생활인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고 해도 연기 중에 본인의 언어습관이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조수용 대표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흘러갔다. 그게 연기였다면 평소에도 그런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원래 그런 사람보다도 더 대단한 일이다.
인터뷰어인 최성운 PD는 이를 두고 “쉽고 정직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느낌이었다. 정직한 언어는 과장하거나 감추려는 게 없는 언어다. 말은 자기표현이므로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말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요컨대 솔직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솔직함이라는 게 어렵다.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자신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신이 아닌지 모른다면 솔직해질 수도 없다. 다만 이 ‘규격’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일관된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솔직하다는 건 감정의 무분별한 발산이 아니다. 어떤 때는 이랬다가 어떤 때는 저랬다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하다는 건 한결같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한결같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일러 정직하다고 말한다.
인터뷰에서 다 말하지 못한 정직한 사람의 언어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주변을 서성거리듯이 정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조금이나마 더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이 책은 카테고리 상으로는 자기계발서에 해당하지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는 조금 다르다. 이 분야의 대표격인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보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데 반해 <일의 감각>에 나온 레퍼런스는 저자의 경험이 유일하다. 마치 조수용이라는 개인의 포트폴리오처럼 보일 정도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가 최대한 많은 사례를 끌어오는 이유는 저자의 주장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보편적 경험에 근거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데 그런 점에서 <일의 감각>은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서전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에 필요한 세 가지 중에서 거의 에토스에 온전히 기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다양한 사례는 귀납적 증거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AS를 불렀는데 기사가 “다른 집들은 다 괜찮은데….”라고 말하면 마치 잘못이 이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수한 사례를 모아놓은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니 너도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되면 그건 책 때문이 아니라 “당신 탓”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저자가 사례들 속으로 숨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일의 감각>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는 점에서는 자기계발서지만 이 책의 저자는 외부 사례들 속으로 숨지 않는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밝힌 다음 이룩한 성과와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의 언어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이야기가 성공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방법에 대한 것처럼 들렸다.
본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아이디어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고. 그게 무엇이든 선택은 선택과 비선택의 동시 결정이다. 말하자면 하나를 고르는 순간 다른 것은 고르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서 더하는 대신 기존에 있는 것 중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빼면 기존의 것은 뾰족해진다. 이 예기로 앞을 뚫고 나가는 게 아이디어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흔히 자기계발이라고 하면 우리는 뭔가 더하는 걸 생각하곤 한다. 운동을 더 하거나 다이어트를 더 하거나 공부를 더 하거나 해서 지금의 나에게 뭔가를 플러스해나가는 게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수용 대표의 말대로라면 그건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온갖 잡동사니를 가져다 놓으면 벽을 뚫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길을 막는 셈이 된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이른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고 그 외에 부수적인 것들은 하나씩 쳐나가는 게 진짜 상황을 개선하는 아이디어이며 나아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감각, 즉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조수용 대표는 말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에서도 읽은 적이 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있는데 거기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을 때의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조수용 대표가 했던 말로 바꾸면 계속해서 플러스를 시키는 것보다 마이너스를 시키는 게 오히려 진짜 자기 자신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마이너스를 해야 그게 본연의 모습임을 알 수 있게 될까.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추구하는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재미를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초적인 쾌락을 갈구하는 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준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쾌락이 아니라 내면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지향점을 향해 불특정한 자기계발을 하는 대신 지향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스펙을 채우는 일이 아닌 고양감을 채우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진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 즐거운 일은 어떻게 찾는가. 예전에 한창 꿈을 쫓아라,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라는 말이 유행할 때 많은 사람들을 난처하게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느냐는 거였다. 세상에는 우연히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면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좋아하는 일과 본연의 모습을 찾게 해주는 즐거운 일은 다른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좋아하는 일은 누구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중에서 자기를 소모시킨다고 생각되는 일이 아닌 고양시키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무엇을 하면 마음이 뿌듯해지는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삶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인생을 좀 더 가볍고 경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지면 움직이기가 쉬워진다. 말하자면 삶의 활동반경과 운동성이 늘어나는 것이다. <일의 감각>에서 말하는 마이너스의 개념이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면 자기가 하는 일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찾을 수 있고 바로 거기서부터 일의 감각은 새롭게 깨어난다고 책은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문구가 있었다. 바로 “안정감이란 업에 진심인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말이다. 성실하게 노력한다는 말은 달리고 있는 자전거를 떠올리게 한다. 자전거는 달리고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가만히 있을 때 불안을 느낀다. 휴일에 쉬면서 불안을 느낀다는 말이 아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직장도 놀이도 연애도 운동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왜냐하면 세상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공간도 사람도 변하고 움직이고 바뀐다. 모두가 움직이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있는 것처럼 불안한 일은 없다. 말하자면 불안감은 소외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진정으로 몰입하지 못할 때 불안감을 느낀다. 안정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생각하려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뺄 것인지 고민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내 삶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는 것은 앞서 말한 정직해지는 방법, 즉 자기 자신의 규격을 재기 위한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세 가지 요소 로고스와 파토스, 에토스 중에서 에토스를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대로 한 사람이 삶을 만들어온 역사는 논리와 감정에 앞선다. 이 책에 현란한 문장이나 치밀한 논리, 감정을 이입시키는 매끄러운 통로 같은 건 없다. 있는 것은 단지 담담하게 적힌 한 사람의 정직한 언어뿐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의 내용보다 그 언어가 좋았다. 그 언어를 나오게끔 한 태도가 좋았다. 이 책에서 배우고 싶었던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다.
2025년 2월 15일부터 2025년 2월 18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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