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지 않는게 더 나았을까? . . . 햄릿, 파우스트, 오이디푸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자기 삶에 대한 부정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부정적 표현으로 이어진다. 고통과 절망 투성이인 삶이기 때문에 무(無)의 형태로 유지 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삶의 부정은 자칫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철학적으로 큰 착오다. 자살을 통해 긍정되는 것은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라는 사고방식으로써 이미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선택권도 없을 뿐더러 그것을 실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생이 반복되고 영원한 멸종과 불사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이 우주의 원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서 '베네타'의 탄생해악론은 우주의 원리에 거스르는 기만적이고 무례한 철학적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쾌락과 고통을 저울질 함으로써 쾌락이 없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 고통이 있는 것은 나쁜 것, 고통을 느낄 수 없이 없는 상태는 좋은 것이라고 결론 내리며 결국은 존재하여 고통을 받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아서 고통 자체를 모르는 편이 더 쾌락적이라는 철학자의 주장이다. '태어나지 않았음이 더 나았을 수 있겠다'라는 말까지는 푸념과 현실 도피성 발언으로 이해가 가겠지만 지능적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그런 상황에 대처하여 합리적인 과정을 이끌어내려는 도전을 하지 않고 베네타처럼 고통의 존재로 인해 무궁한 쾌락을 경험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애버리자는 염세적 입장을 취한다면 '이미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인간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편이 더 많을테니 자신만의 고립된 철학으로 세상 문밖에 내지 않고 혼자 안고 살아가야함을 느꼈고 그의 사상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찰나, 마지막 줄에 저자 모리오카 마사히로도 "베네타의 탄생해악론은 그 깊은 곳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로 덧붙여 내가 책을 읽어나갈 명분이 생기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탄생해악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만 모아 놓은 책이다보니 읽는 내내 신선하고 새로운 관점이 생김과 동시에 불쾌하고 깊은 곳에서 화가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 동기가 되어 이런 탄생의 부정을 옹호하고 심지어 그것이 선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을까? 이들의 유년 시절이 유복하지 않았음에 그랬던 탓일까? 혹은 그들도 오이디푸스 처럼 아주 크나큰 실연을 겪었기에 이런 염세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을까? 그것을 나는 겪어보지 못했기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모름이기 때문이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아주 깊은 고뇌와 사색에 빠진 염세주의적 철학자들이 논하는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는 참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태어난 삶을 어쩌겠는가? 앞단에 적어 놓았던 것처럼, 그에 대한 해결이 자살로 귀결되는 것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적어 놓았듯이 이미 태어난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면? 주어진 것에 알차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아, 너무 낙관론자의 단순한 기분파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태어났다'는 전제는 결코 바뀔 수 없는데. 많이 불쾌하고도 어리석은 사람들을 많이 소개 된 책은 처음이었다. 불교에서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빠져드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이 가지는 욕망은 반드시 괴로움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그 이상적인 상태를 잃게 되며 이것이 고통으로 찾아온다. 세상의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즉, 길함의 뒤에는 흉함이 기다리고 있고 흉함 뒤에는 길함이 기다리고 있다. 베네타와 불교적 사상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탄생불합론을 펼친 베네타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선이고 태어남은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태어난 것에 대한 장점은 증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붓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을 취하여 형이상학적인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 태어나거나 그렇지 않음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니 태어났음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삶을 살게 되면 반사실적인 태어나서 불행이라는 것을 부정하게 되며 나아가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탄생긍정을 추구했다. 결국, 베네타는 탄생 부정에만 선을 부여하였고 붓다는 열반에 이르러야 하는 탄생부정과 동시에 팔고의 욕망과 고통을 극복하여 태어났음에 다행이라는 탄생 긍정을 양립했다. 탄생을 부정하던 베네타와 쇼펜하우어와는 달리 니체는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긍정의 철학자였다. 그는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간의 끝이 시작으로 돌아가 몇 번이고 계속 반복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이 일이 일어나기 까지의 과거와 현재, 영원히 반복되는 우주의 원리로 미래까지 모두가 삶이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세상과 운명을 사랑하고 계속 반복 될 인생을 살만 한 것으로 행동하며 살아라고 조언했다. 니체의 철학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존재하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문장이다. 존재와 생성의 이율배반적인 명제를 양립하기 위해 애썻던 흔적이다. 일반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을 존재보다 우위에 놓고 보았으며 니체는 다시 이것을 <권력에의 의지>에서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하는 것이 최고의 권력에의 의지이며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가 존재의 세계로 향하는 극한적 근접'이라고 씀으로 인해 존재와 생성을 거대한 운명애의 영원회귀적 사상과 결부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탄생부정부터 현대의 탄생긍정까지 잘 알아보았다. 단순한 생명철학에 대한 논의와 나아가 존재와 생성에 대한 고찰, 이 세상 너머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의 대한 여부, 우리를 이루는 실체와 과거, 현재, 미래를 이루는 시공간적 의미는 어떤 것인지, 이 삶은 영원히 영속되는 것인지 해탈하면 끝나는 것인지, 현재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자 니체의 사상이 더 실효성이 있는지, 이상적인 이 너머의 세계를 그리는 플라톤적 사상이 더 실효성이 있는지 등 이 책 한권에서 많은 사상과 철학가들의 평생을 고찰한 흔적이 드러난다. 앞서 설명했던 베네타의 주장에 대한 탄생해악론에 강한 거부감을 표했던 것도 책을 막바지로 읽어내려갈 때 쯔음 여러 생각들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지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사그러들어졌다. 소개 된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자신이 뜻하는 어떤 철학자의 사상을 승계하면서도 자신의 철학관을 덧입혀 그것을 변형하거나 정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는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철학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종합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이 책도 대부분이 저자인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의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론과 주장을 많이 알고 있다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어떤 철학의 기둥을 세우고 어떤 앎의 실천을 꾸준히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기초적 토대가 되는 것 같다.
|
|
이 책은 인간 탄생을 둘러싼 가장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은가?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반출생주의와 탄생 긍정 사이의 넓고 깊은 철학적 지형을 탐색하며, 서양 고전철학에서 우파니샤드와 불교, 니체 철학까지 가로지른다. 책의 흐름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염세적 선언으로 시작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문장은 베네타와 같은 철학자들이 치열하게 논쟁해 온 ‘탄생 해악론’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3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쇼펜하우어는 이 책의 중심축을 이룬다. “세계는 의지다.”라는 그의 단언, 욕구를 끊어 아사로 죽는 것을 긍정했던 사유, 그리고 말과 삶의 괴리까지. 그의 철학을 따라가다 보면 ‘의지를 버리려는 급진적 욕망’이 어떻게 반출생주의의 뿌리가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브라흐만 개념, 불교의 해탈과 윤회, 니체의 ‘아모르 파티’까지 이어지며 책은 점점 더 확장된 시선으로 태어남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특히 6장에서 니체가 말하는 '어떤 삶이든 그 삶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탄생 긍정의 가장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답처럼 느껴진다. 요가를 3년째 하고 있고, 불교 수행은 어느덧 1년을 넘어섰다. 소승불교의 역사부터 대승의 굵직한 경전들까지, 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다 보니 예전엔 한 귀로 듣고 흘리던 철학자들의 말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결로 들리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수행 중 마주하는 감각들 이를테면 무아, 윤회, 집착과 해탈이 이 책을 읽으며 모두 하나의 선 위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생명철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범주가 오히려 내가 지난 몇 년간 체험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주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둘째가 어느 날 뜬금없이 묻는다. “엄마, 나는 왜 태어났어?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면서? 그럼 나는 왜 사는 거야?” 아직은 “엄마는 왜 나를 낳았어?”라고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깐 안도하면서도, 그 작은 철학자의 진지함에 웃음이 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너는 세상에 사랑을 베풀기 위해 태어났지.”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생명철학적 관점인 탄생 긍정이이 바로 여기에 닿아 있다. 이왕 태어났으니 잘 살아보자는 단순한 심리학적 위로가 아니라, 존재가 이미 세상 속에서 어떤 응답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관점.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와도 아주 불교는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해탈의 조건으로 삼지만, 거기에는 탄생과 삶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없다. 수행 속에서 반복해서 느끼는 건 오히려 그 반대다. 누구든, 어떤 사람도 ‘낳음 당함’의 이유는 이미 쓰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 쓰임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돕는 순간, 누군가의 슬픔을 덜어주는 마음,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돌아서게 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태어난 이유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열거한 탄생 부정의 다섯 감각(절망, 빠져나갈 수 없는 인생, 더 나은 삶을 향한 바람, 비존재에 대한 갈망,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은 수행을 통해 내가 자주 마주했던 인간의 고통들과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이 책은 학문적 사유를 넘어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탄생을 둘러싼 논쟁을 결론으로 끌어가기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태어나기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떤 삶으로 응답할 것인가? #사계절출판사 #철학책추천 #철학책신간 #생명철학 #태어나지않는게더나았을까 |
|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 모리오카 마사히로 #도서지원 #서평단 @sakyejul ‘언어철학, 마음의 철학, 역사철학은 있지만 아직 생명철학은 없다’고 합니다. 생명철학, 사실 용어 자체가 낯설고 또 책을 읽으면서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어요. 태어나고 죽는 일, ‘태어남’의 행위를 무어라 정의내려본 적은 없었습니다. 작년 읽었던 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거야>를 읽고 나서 독서모임을 할 때 이네스의 탄생은 엄마의 선택일까, 이네스의 운명일까에 대한 이야기는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네스라는 존재 자체에 천착한 질문이었지 ‘태어남’이라는 주제로는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철학이라는 용어도, 또 그것을 이야기 하는 해설들도 사실 조금 어려웠습니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해 보였어요. 니체나 쇼펜 하우어, 붓다와 파우스트등 어렴풋하게 이름은 알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라 외국어처럼 난해하지만은 않았지만)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태어난 이후 우리가 겪게되는 삶은 고통이 필연적인데 그것을 괴로워하기 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지 않았느냐, 즉 탄생 부정 사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태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들이 내세운 주장 중에 붓다의 출가를 이어 붙여 이야기 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면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출가를 전제로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142’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해석이라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기존 불교 사상중 열반을 이해하기에 이런 지점들이 완전히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조금 더 뒷부분에 니체가 등장하는데요. 영원회귀 사상이 탄생 긍정과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후반부에는 자녀를 낳아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요. 그 중 한 문구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부모가 되려는 사람은 태어난 아이가 탄생 부정의 생각을 품고 부모에게 왜 자신을 낳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물음에 진지하게 응답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합니다. 240’ ‘출산철학’이라는 생소한 용어에 다시 한번 생각이 많아졌지요. 책의 내용을 따라가는 일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것들의 요점은 꽤 명확해 보였습니다. ‘저는 살아가는 의미 문제를 태어난 것의 긍정 문제로 변환하고 철학적으로 추구해 갈 것을 제안합니다.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긍정의 문제로 설정하는 편이 더 알찬 성과로 연결된다고 새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생의 의미 철학 속에 탄생 긍정 철학을 끼워넣고 싶습니다. (...) 나아가 탄생 긍정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인생의 의미 철학 속에서 한층 고찰할 수 있습니다. 257’ 무수하게 거론된 탄생 부정 철학(삶은 곧 고통이다)을 전복함으로써 긍정 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결론이 마음에 들었고요.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사실 세세한 철학적 사상들이 하나 하나 다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익숙하지 않아 소화시키기가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탄생의 긍부정을 떠올려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된 건 분명합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로 고민을 돌려 보실 수 있다면 이 책이 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추천합니다! #태어나지않는게더나았을까 #모리오카마사히로 #생명철학 #철학서 #철학 #이원천 #책벗뜰 #책사애 #책추천 #사계절 #철학서추천 #니체 #쇼펜하우어 |
|
낳음당했다 2탄.
아직 내 인생에 대한 고찰도 완성되지 않은 지금. 만일 내 아이가 ‘나를 왜 낳았느냐?’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너를 사랑해서 낳았다’는 한 마디로 내 아이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긍정하고, “탄생 부정”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어려울 줄을 알면서도 이 책을 펼쳐든 이유가.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라는 역사의 오랜 질문에 철학적 고찰을 더하며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삶을 긍정하기 위한 다양한 사유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탄생긍정 철학을 주창하는데 이를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가능 세계 해석” 다른 하나는 “반-반출생주의 해석”이 그것이다.
먼저 ‘가능 세계 해석’은 내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가 해결된 가능 세계를 상정했다고 해도, 그 가능 세계에서 태어나면 좋았을 거라고 마음 깊이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반-반출생주의 해석’은 내가 태어나는 것과 태어나지 않는 것을 비교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제와 그 소원은 원리적으로 실현될 수 없으므로 실현 불가능한 선택사항에 집착하는 대신 ‘나는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다’는 생각을 해체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철학적, 심리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데, 철학적 차원에서는 나의 현실 세계와 ‘가능 세계’ 혹은 ‘태어나지 않은 세계’는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양상을 잘못 비교한 것이므로, 내가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심리학적 차원의 고찰을 더하면 위의 기술된 것과 같이, ‘가능 세계’를 상상하더라도 마음 깊이 바라지 않는 것, 실현 불가능한 선택사항에서 벗어나 그 생각을 해체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서 “탄생 긍정”의 기반이 열린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지만, ‘탄생 긍정의 철학’이 ‘탄생 부정’을 반박하는 완벽한 논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태어난 것’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것도 온전히 긍정하지 못하는 경계선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그 위에 각자의 삶을 구축한다고 하면, 바꿀 수 없고, 선택할 수 없었던 결정에 인생의 설계도를 맡기기 보다는 주어진 내 삶과 현실에 기초한 설계도를 그리는 편이 훨씬 더 나은 인생의 집을 완성하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내 아이의 물음에 나는 ‘탄생 긍정’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태어나지않는게더나았을까? #모리오카마사히로 #이원천 #사계절 #낳음당했다 #탄생부정 #탄생긍정 #생명철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도서지원 |
|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가장 극단적이고 솔직한 질문을 던질 때 마주하게 되는 철학적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책이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우울의 표현, 혹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씨름해 온 근원적 물음이었다. 저자는 이 질문을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그 한복판으로 들어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탄생 부정’의 계보를 차근차근 더듬는다. 책의 초반부에서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부정하는 영’모든 존재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힘을 통해 인간이 삶을 부정하게 되는 근본 정서를 파고든다. 파우스트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뇌하는 모습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상황과도 닮아 있다. 존재 자체의 무게에 눌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쉽게 탄생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그 감정을 단순히 부정적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사유의 지점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오이디푸스, 쇼펜하우어, 붓다, 베네타 등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의 사상가들이 어떻게 “삶은 해악인가, 고통인가, 혹은 축복인가?”라는 질문에 답해 왔는지를 폭넓게 다룬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 불교의 고(苦) 개념, 반출생주의의 급진적 주장, 닉체의 운명애(Amor fati) 등이 서로 겹쳐지고 충돌하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며 스스로 사고하도록 이끈다. 이 책이 인상적인 점은 어떤 사상의 우열을 가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탄생 부정”이라는 사상을 차분히 따라가되, 그것이 왜 매력적인가와 동시에 왜 위험할 수 있는가를 함께 보여 준다. 특히 베네타의 탄생해악론처럼 강렬한 반출생주의 주장까지도 솔직하게 다루며, 그 속에 담긴 논리적 힘과 실존적 절박함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책의 핵심은 결국 마지막 파트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깊절한 고뇌 끝에 ‘탄생 긍정’이라는 철학을 제시한다. 이는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강요나 천진한 낙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탄생의 고통, 삶의 모순,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정직하게 마주한 뒤에도, “그래도 태어난 것이 다행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기 위한 ‘철학적 용기’에 가깝다. 삶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하며, 그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삶을 긍정하는 첫걸음일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탄생 긍정’은 바로 그점이 핵심이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태어났는가?”*라는 질문 안에서 절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 자체를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는 단순한 철학 해설서가 아니다. 자신을 부정해 본 사람, 태어난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초대장이다. 절망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서서히 희망을 길어 올리는 이 여정은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특히 지금 시대처럼 불확실성과 개인적 고독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이 책은 존재 그 자체를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철학적 나침반이 되어 준다. |
|
"다음 생에 돌멩이로 태어날 거야. " "나는…. 안 태어날 거야. " "무슨 소리야. 다음 생은 없어. " 이 책은 내가 며칠 전 술자리에서 시시한 이야깃거리로 치부했던, 인간의 탄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독자 자신이 적절한 해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태어남을 정하고,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이 될 수 있을까? 탄생은 인간인 내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반복함에도 선택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왜냐고? 질문을 마주하기 전, 이미 나는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명 철학". 단어만 보아도 어려운 내용이기도 하고, 철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온전히 읽어내는 자체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생명 긍정, 탄생 부정 이러한 단어들이 주는 흥미로운 화두 덕분에 방대하고 딱딱한 주제였으나, 흥미진진하게 읽어냈다. 괴테의 파우스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쇼펜하우어의 삶이 고통이다, 윤회사상, 불교에서의 생명철학, 니체의 영원회귀와 운명애에 대한 흥미로운 문학과 철학자의 생명 철학, 마지막 탄생 긍정까지. 시대를 뛰어넘어 철학자들이 품었던 질문과 내가 하는 고민이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퍽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실존적 비극에 대해 애써 받아들임과 동시에 회피함을 반복하면서 쉽사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가득한, 매우 이상하고도 미스터리한 인생을 계속 살아간다. 세상에 왜 태어났냐는 탄생의 본질적 의문을 가진 사람, 삶의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 인생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품는다. 책 속에서 길어 올린 절실한 물음들이 내가 찾는 해답으로 이끄는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도서제공 #사계절출판사 #태어나지않는게더나았을까 #생명철학 #모리오카마사히로 #니체 #서평 지은이 모리오카 마사히로 옮긴이 이원천 펴낸이 강맑실 출판사 (주)사계절 |
|
삶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객관적 조건만으로 행복을 지속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행복의 부재가 곧 고통이냐고 물으면, 오래 생각해봐야할 문제이지만.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삶을 살아도 고통을 늘 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심장이 아파오는 제목의 책이다. 저자의 나의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의 대답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다. “‘태어날지, 태어나지 않을지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번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을 보고 오해한 철학책이다. 사회적 문제로서의 생명 부정과 자살의 문제, ‘그럼에도’ 살아가야할 이유 등을 담은 내용인가 했는데, 동서고금 문명사 전체를 살펴보며, 인류가 교류한 생명에 관한 철학을 소개한다. 문해력이 약해서 살짝 두려웠으나, 체감상 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철학 사상이라서, 반갑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그야말로 보편 경험이고, 사유하는 생명체로서 이보다 더 궁금한 소재도 없다.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배후에는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 그렇지만 (...) 해결되면 동시에 해소되는 탄식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한계 또한 인식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우주에서 물질화된 모든 것이 재활용 - 재생 - 되는 방식의 윤회는 분명하니, ‘애초에 무엇이 윤회하는가’라는 불교의 논쟁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그럼에도, 개체로서의 내 존재 - 또한 사랑하는 이들 - 의 소멸은, 어찌되었든 근본적으로 서러운 일이라서, 수행자가 “모든 세상에서 증발하듯 사라”진다는 불교의 “열반”이라는 종착점이, 우매한 내게는 큰 평안이자 여전한 통증이다. 제목 같은 생각이 든 적이 있는 이들도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요즘도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동안 겪는 삶의 모든 면면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기에 견딜 만하기도 하다. “운명애란 단순히 운명이라는 필연성을 긍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필연성의 내용이 무엇이건 그것을 긍정하고 수용하겠다는 결의를 내포한 개념입니다.” 이제는 정말 흐릿한 전생의 꿈같지만, 나는 대학원에서 철학도 배웠다. 대단한 통찰이나 성취는 없었지만, 철학서를 읽는 훈련은 지치도록 받았다. 덕분에 그때는 몰랐던, 생명철학을 읽는 지금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러니 순응이 아닌 ‘결의’로 삶을 받아들이고, 잘 살아내지 못하도록 하는 불의한 것들을 또 다른 ‘결의들’로 함께 바꿔나가고 싶다. 그리하여 인간이라서 외롭고 괴로운 ‘운명이라는 필연성’이 조금 더 견딜만해 지기를 바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