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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독서란 얼마나 편협한 장르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보통은 편협해지지 않으려고 독서를 하지만 이 책은 반대로 나의 독서의 편협함을 여실히 알게 해주었다. 훌륭한 성품과 따뜻한 유머의 소유자로 동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작가 정아은. 그녀의 소설을 난 지금까지 단 한 편도 읽지 못했던 것이다. 죽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소설을 통해 한 소설가의 존재를 알게 되는 아이러니라니… 그런데, 그녀를 향한 동료들의 진심어린 애도를 읽자니 이런 엔딩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를 애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한결같이 머뭇거리지만 사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만든다. 분명 애도의 현장을 다루지만 위로나 눈물보다는 9명의 소설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억과 슬픔, 따뜻했던 순간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들에서 ‘엔딩’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할 감정의 형태로 존재한다. 애도란 어떤 누군가가 각자에게 남겨지는 시간이라는 뜻이리라. 이 책에서 ‘달의 열두 초’를 쓴 소향 작가는 말했다. 정아은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삶의 태도도 함께 떠오른다고…멀리 서서 위치를 알려주는 부표이자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고. 이젠 곁에 없지만 늘 곁에 있는 느낌을 주는 작가 정아은. 긴 겨울밤, 그녀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느리게 읽어보고 싶어졌다. 모던 하트, 잠실동 사람들, 맨 얼굴의 사랑… 그녀처럼 죽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엔딩 없는 삶을 상상하자니 벌써 따뜻해져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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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숲을 걸었다. 나무들은 스스로 잎을 떨구어 나목(裸木)이 되어 서 있었다. 살기 위해 제 몸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버리는 투명한 선택 앞에서, 나는 ‘부재(不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흔히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가볍게 쓰이는 말이지만, 죽음이란 뜻을 덧입히면 전혀 다른 중량감으로 돌변하는 말이었다. 다시는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 귀퉁이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실감할 때, 뒤따르는 무력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망각이라는 파도에 맞서 기억의 둑을 부단히 쌓아 올린다. 마침표가 다음 문장을 불러오듯, 소설가 정아은의 죽음은 『엔딩은 있는가요』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래서 장강명, 차무진 등 아홉 명의 작가가 함께한 ‘이어 쓰기’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고인이 남긴 문장을 징검다리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고인을 만나고, 기억을 호출한다. 애도의 형식을 빌린 ‘이어 쓰기’는 추모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인이 던졌던 질문을 붙잡고 그것을 오늘의 현실로 소환하여 문학적 연대를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생전의 그녀는 세상과 치열하게 부딪쳤는데, 나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안온한 추모가 마냥 편할 수는 없었다. 여러 단편 중에서도 나는 최유안 작가의 「모두의 진심」에 오래 머물렀다. 막연한 불편함이 실체적으로 다가와서였다. 번역가로 고단하게 버티는 화자 ‘설아’의 시선을 통해 권력의 사다리를 놀이처럼 오르는 ‘현보’라는 인물이 드러난다. 8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앞에 두고, ‘나라’를 명분 삼아 친구들을 스펙의 도구로 부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그. 정제된 그의 태도를 서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설아의 자각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다. 고(故) 정아은 작가가 생전에 던진 화두가 역사 속 권력자에서 보편적인 개인으로 옮겨졌기에 발생하는 감각이었다. 생전 고인이 “왜 그들은 무릎 꿇지 않는가?”라며 확신범의 내면을 끝없이 추적했다면, 최유안 작가는 그 시선을 가져와 질문의 칼날을 내 옆자리로 끌고 왔다. 이제 확신범의 얼굴은 역사 속 권력자의 초상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마주 앉아 웃는 보통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절대 권력자는 사라졌지만, 그 논리와 태도는 파편화되어 개개인의 내면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 어쩌면 그 얼굴이 내 것일 수도 있다는 섬찟한 자각이 들었다. 악의가 없기에 더 바로잡기 힘든, 각자의 ‘진심’들이 빚어내는 모습을 소설은 펼쳐 보였다. 『엔딩은 있는가요』는 마음껏 슬퍼할 권리를 주기보다,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질문의 무게를 건넨다. 이것이 마치 고인을 기리는 치열하고도 정직한 방식이라는 듯이…. 최유안 작가는 작품을 통해 정아은 작가에게서 ‘용기’를 물려받았다고 고백한다. “내 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가겠다”라는 그녀의 다짐을 보며 생각했다. 용기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을 끝까지 듣게 만드는 태도이기도 하다고. 그렇다면 이 책은 분명 용기 있는 책이다. 독자에게 편안한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별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상실을 껴안는 일에 명쾌한 해법도 없다. 다만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잎이 진 자리에도 언젠가는 겨울눈이 맺힌다는 사실이다. 슬픔을 땔감 삼아 얼어붙은 시간을 녹이는 것도, 눈물을 흘려서 마음을 씻어내는 것도, 아끼는 책에 볕이 들도록 책장을 넘겨주는 것도 헤어짐을 견디는 방식일 것이다. 부재가 만들어낸 구멍을 이야기로 메우며, 한 영혼이 지녔던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아홉 명의 시도처럼 말이다. 책장을 덮었는데도 엔딩은 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속절없이 그녀의 문장을 다시 펼친다. 봄은 멀고, 읽어야 할 페이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이 책은 고인의 삶을 끝맺는 에필로그가 아니라고. “우리는 한 번 마음에 담았던 사람을 잊지 못한다. 마음에 담고 다니며 끊임없이 소환해 그리워한다”라던 정아은 작가의 문장처럼, 영원히 그녀가 쓰이고 읽히기를 나는 바랐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마음에 담는 일이며, 남겨진 우리가 ‘엔딩’을 유예하는 방식일 테니까. 겨울 숲이 봄을 부른다. 끝이 없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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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작가가 아홉 가지의 색으로 정아은 작가를 기리며 쓴 단편소설집이다. 고인의 부재와, 그녀의 ‘끝나지 않은’ 문학적 유산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담긴 추모집이다.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아련함이 전해진다. 누군가는 당신이라는 이야기를 건네고, 누군가는 달의 열두 초를, 또 누군가는 봄의 조문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진심을 말한다. ‘사람은 가도 사랑하는 마음은 남는다’는 정아은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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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은 있는가요』는 작년 12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정아은을 추모하며, 동료 작가 아홉 명이 쓴 단편소설집이다. 정아은 작가가 생전 자주 다루었던 불평등, 부동산 사기, 성형 등 사회적 부조리의 장면들을 각자의 테마로 나누어 소설로 이어 썼다. 이 소설들은 한 사람의 부재를 애도하는 동시에, 그가 끝내 다 쓰지 못한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정아은 작가가 써온 서평과 <잠실동 사람들>을 읽어 본 나는『엔딩은 있는가요』를 통해 그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따뜻하고 친절한 그녀가 작품에서만큼은 단단하고 성숙한 글들을 펴냈다는 것을. 그녀를 알고 나니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 둘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 시로 정아은 작가를 애도하고 싶다. 빈 의자 추억을 새기듯 꽃물을 들였던 손톱이 잘려 나갔다 함께 노래했던 시간마저 아득하다 여리고 순한 빛들이 빈 의자를 비춘다 곁을 더듬던 빛들은 빈 의자를 핥는다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 웃던 얼굴은 세상 모르는 천진한 소녀 사교육과 부동산 사기, 빈부 격차와 성형수술을 노래하던 단단한 얼굴이 그리워 차디찬 허공을 사뿐히 날아서 우리는 빈 의자에 모여 앉았다 문은 계속 열릴 것이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한 줄기 빛은 그가 못다 한 이야기들을 의자 위에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우리의 애도는 빛으로 당도한다 엔딩은 있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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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작가를 추모하기 위해 여러 명의 작가가 모여 ‘엔딩은 있는가요’라는 책을 냈다. 추모하는 정아은작가를 떠올리며 쓰인 글들을 읽다 보니, 그녀의 삶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사회 문제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선한 방향을 향해 살아온 사람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장강명의 〈신탁의 마이크〉 속 문장 중 “세상이 얼마나 허술한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 법이 얼마나 불친절한가. 제도가 얼마나 무성의한가.” 이 문장은 사회에 대한 불평보다, 날 것의 현실 그 자체처럼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비춰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고수하며 살아왔다고 믿었던 예의와 정직, 용기와 관용을 나는 실제로 삶에서 지켜내며 살아왔는지 반문하게 된다. 요즘의 나는, 내가 내 멋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 문장들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과거였다면 세상을 탓하고, 이런 현실을 원망했을 텐데, 이제는 세상을 향해 다른 태도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무리 세상이 부조리하고 무성의하더라도 그 안에 휩쓸려 살지는 말자고. 타인의 선을 침범하지 않으며, 내가 정한 선을 정확히 지켜내며 정직하게 살아가자고. 이 책은 그렇게, 다시 한번 삶의 태도를 다짐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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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소설집이라... 추모라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 그리운 이를 위한 선물이 이 한 권에 담겨있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정아은 작가의 책은 읽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도 그녀를 만난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그녀가 남기고 간 글들을 읽어 보고 싶다는 강한 생각에 내일 도서관에 갈 마음이다. 작가를 그리워하는 많은 동료 작가들이 그녀를 글로 쓰다듬고 안고 위로한다. 나에겐 소리 없이 떠난 친구가 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주었으면 한 번 더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친구를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서 긴 시간 기억하지 않으려 애썼다. 성숙하지 못한 처신이었다. 내 마음속 깊은 갈래 어느 곳에 문이 하나 생겼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아은 작가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사랑이 많은 작가는 나를 환하게 반기며 안부를 묻고 잊고 지낸 내 친구와의 재회를 계획해 준다. 적어도 하늘에 있는 그녀는 그렇게 해줄 것 같다. “제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요?” 라는 나의 이상한 질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만나본 적 없는 정아은 작가가 나 또한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