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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삶 섞임의 형이상학 에미누엘레 코치아/류지석 에코라이브르/2025.11.25. sanbaram <식물의 삶>에서는 동물,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철학적 사고방식을 식물 중심으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인 코치아는 “식물을 통해 존재란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섞이고 상호 침투, 상호 의존하는 과정임을 드러낸다.(p.209)”고 옮긴이는 말한다. 다섯 개의 주제 ‘1부 식물의 역사/ 2부 잎의 이론 : 세계의 대기/ 3부 뿌리의 이론 : 천체의 생명? 4부 꽃의 이론 : 이성의 형태/ 5부 새로 지향해야 할 철학의 세계’로 구성된 글에서 그는 인간, 동물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 모든 존재의 상호 연결성과 평등성, 존재의 세계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강조하면서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한다는 것이다. 저자인 에미누엘레 코치아는 이탈리아의 농업고등학교 5년 졸업 후, 피렌체 대학교에서 중세철학 및 문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부터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예술사 및 예술이론연구소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 <감각적인 삶>, <식물의 삶>, <집의 철학>, <위계> 등이 있다. <식물의 삶>의 서문에서, 이 책은 “식물의 본성과 침묵, 그리고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한 분명한 무관심을 5년간 사색하며 떠올린 생각들을 되살려보려는 시도다.(p.3)”라고 밝히고 있다. 이 세상의 근본은 식물에 있으며, 그중에서 식물의 뿌리를 중심으로 모든 생명체와 공간과 우주를 네트워크화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1부 근대 이후 식물이 무시당해온 역사를 살피고, 2부 잎을 주제로, 3부 뿌리의 문제, 4부 꽃에 대한 이론을 거쳐, 5부 대학 공동체와 전문화된 학문 영역의 정직성과 한계를 지적하며’, 기존의 철학이 세계를 진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식물의 삶을 모델로 한 섞임의 형이상학 같이, 경계 없이 상호 침투하고 섞이는 새로운 자연철학적 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타자의 생명에 기대는 것이다. 즉 다른 존재들이 만들거나 발명해낸 생명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P.22)”생명체의 영역에는 일종의 기생성, 널리 퍼진 동종 포식 행위가 내재해 있다. 생명체는 자기 주도로 영양을 섭취하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며, 다른 형태와 다른 존재 방식을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한다. 식물은 다른 어떤 유기체도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생명을 발견한다. 식물은 자신이 닿는 모든 것을 생명으로 바꾸고 물질, 공기, 햇빛을 다른 생명체들의 거주 공간, 곧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낸다. “성적 성숙에 도달하면 발육이 멈추는 고등 동물과 달리, 식물은 끝없이 성장하며 새로운 기관(잎, 꽃, 줄기 등)을 창조한다.(P.28)”이들은 자신이 잃었거나 버린 신체 부위까지 재구성한다. 그들의 몸은 형태 생성의 산업 현장이자 중단 없는 변형의 공정이다. 지구상의 생명은, 기생적인 동물계의 삶 또한 자율적인 식물계의 삶 못지않게, 잎에 의존하는 엽록소 색소체와 작용력 덕분에 가능해진다. 잎은 대다수의 생명체에게 공통인 하나의 환경, 즉 공기를 제공한다. “지각부터 소화까지, 사유부터 쾌락까지, 말부터 운동까지 생명체의 모든 것은 호흡의 유기적 결합일 뿐이다. 모든 것은 호흡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반복이자 강화, 변주다.(p.81)”바로 이 때문에 의학에서 신학, 우주론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다양한 형태의 지식이 가장 다양한 언어 속에서 호흡을 생명의 고유한 이름으로 삼았다. 그 위상을 인정하기 위해 형상과 질료와 존재, 즉 정신을 통해서 그것을 다른 것들과 분리된 실체로 만들었다. 그러나 호흡의 최우선이자 가장 역설적인 속성이 그 비실체성이다. 호흡은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생명에 열리고 다른 대상들과 혼합되는 진동이며, 잠시라도 세계의 질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율동이다. “나무는 머리인 뿌리를 땅속 깊이 내려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반면 인간은 뿌리와 같은 머리를 공기 중에 드러내는데, 이는 사람이 정신으로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p.110)”칼 폰 린네는 이러한 유비를 뒤집어 식물을 뒤집힌 동물로 이야기한다. 뿌리가 제공하는 이점은 고립과 차별화가 아닌 연결망 형성에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2차적, 장식적 부속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이다. 뿌리는 우리가 믿어온 것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식물 존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모호성, 혼종성, 양서의 이중적 특성을 표현하고 구현한다. “식물의 가장 전형적인 기관인 엽록체는 우리가 생명이라 부르는 모든 유기계의 활동을 태양계 에너지의 중심과 합치는 연결고리다. 이것이 바로 식물의 우주적 기능이다.(p.120)” 이 우주적 매개 과정에서 뿌리는 식물이 지구를 행성이라는 차원으로 참여시키도록 해준다. 지구가 물리적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해도, 이 연결이 생명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식물에서 비롯하며, 식물 덕분이다. 식물은 빛을 유기물질로 변형시켜 생명을 태양 중심적 현상으로 만든다. “우리 세계의 핵심은 영원히 안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성질을 가지며, 우리는 태양 자체가 원인인 운동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존재다. 모든 것은 이 원천 덕분 존재한다.(p.128)”반대로 우리의 몸과 바위, 돌, 동물은 하늘의 극한에 위치한 존재이다. 우리 세계의 심장은 태양이다. 모든 거주 행위는 결국 집이 아닌 하늘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뿌리가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언어가 가장 완벽한 거주의 예로 여기는 뿌리는 사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기계 장치의 말단에 불과하여 땅을 그 중심부까지 천체로 전환시키는 책략이다. 움직임이 없는 존재는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지리학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몸을 수용하며 만남을 가능케 할 매개 공간도 없다. 모든 고착된 존재는 세계를 위해 스스로가 세계가 되어야 하며, 자기 내부에 세계 자체를 위한 역설적 환경의 장소를 구축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고착된 존재에게 세계는 눈으로 만지거나 훑어볼 수 있는 경계로 구분된, 여러 실체의 집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세계는 오직 강도와 밀도가 변하는 단일한 실체일 뿐이다. “꽃은 섞임의 능동적 도구다. 다른 개체와의 모든 만남과 결합은 꽃을 통해 이루어진다.(p.139)” 그러나 엄밀히 말해 꽃은 단일 기관이 아니다. 이는 생식을 가능케 하기 위해 변형된 다양한 기관들의 집합체다. 꽃은 개체와 종의 유기적인 돌연변이,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에 스스로를 열어놓은 마지막 문턱이다. 그 안에서 감수 분열 과정을 통해 전체 유기체와 종의 유기체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따라서 꽃은 총체성의 바깥에 위치하며, 하나를 위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장소다. |